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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중국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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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기가 거의 끝나가던 2021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호주로 국빈 방문을 한다. 그리고 위 사진. 조선일보가 인용한 이 포스팅은,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며 국민들에게 성과를 보고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한 2021년 연말은 실로 민감한 시기였다. 한국에선 이 주제가 그렇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당시 호주와 중국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었다.

 

_중국이 호주를 '속국'으로 보고 있다_...호주, 중국에 맞서다 [풀영상] I 시사기획 창 330회 (2021.05.23) 1-48 screensho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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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중반까지 중국과 호주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호주는 중국에 석탄부터 바닷가재까지 온갖 물품을 수출하고 있었고, 시진핑 주석은 호주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타국 원수였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2016년을 기점으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사태를 지나며 험악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2020년대 초반의 호주와 중국의 대립에 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다. 나는 이것을 당시 정점으로 치닫던 미국-중국 대립의 한 파트로 보고 있다. 미국은 공식적인 2인자인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오르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지역, 외교/경제/군사 모든 면에서 압박을 가하려 했다. 호주는 말하자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한 축에서 미국의 대리전을 치른 셈이었다.

 

호주의 입장은 명확했다. 호주는 중국이 크게 거부 반응을 보인 쿼드(미/인/일/호 안보 대화)와 오커스(미/영/호 안보 파트너십)에 가입하며, 자신이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중국에 분명히 밝혔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주는 무역 상대국일 수는 있었으나, “서양 문명에 속할래, 아시아에 남을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호주가 망설일 여지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한국의 선택

 

한국의 입장은 호주만큼 분명하지는 않았다.

 

호주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것은 사실 꽤 당연한 수순이었다. 호주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다문화/다인종 국가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인구 대부분이 백인, 그중에서도 앵글로색슨계가 차지하고 있다. 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영연방의 주축 국가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그들 입장에선 ‘편안한’ 자리일 것이다.

 

한국은 좀 더 복잡하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발전해 온 신흥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방세계의 일원이지만, 한국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민족은 황인종이고, 민족적 구분으로 따지면 아시아의 일원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은 항상 한국에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백인이 될 수 없다고.

 

21세기에 들어서 한국이 이뤄낸 눈부신 경제성장은, 중국의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기에, 냉전의 최전선이던 한국은 대통령 탄핵까지 겪어내며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했다. 당시 이미 시진핑 주석의 1인 종신 독재 체제로 전환 중이던 중국 중심의 질서에, 한국이 완전히 편입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국이 대중국 무역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도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한국은 선택해야 했다. 호주처럼 분명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수준의 선택.

 

문재인의 등거리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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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호주에 국빈 방문한 2021년 12월은 이런 격랑의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호주 방문 당시 K9 자주포를 판 다음, 당시 화제였던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에는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눈부신 등거리 외교였다. 해양 국가인 호주가 K9 자주포를 쓰면 어디에다 쓰겠나. 외부의 적이 호주 대륙에 상륙했을 때, 이 자주포로 퇴치하겠다는 반쯤 적극적인 무력시위용으로 쓸 수밖에 없다. 지상군 전력의 핵심을 한국에서 구입한다는 것은, 중국에 ‘한국이 언제까지나 중국 편이라고만 생각하지 마라’라는 펀치를 날린 셈이었다.

 

중국은 당연히 반발해야 했다. 그리고 한국에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너희는 백인 중심의 서방 세계에 완전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 우리 쪽으로 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더 이상 예전의 한국이 아니었다. 무턱대고 외교적 압박만 하는 건, 중국 입장에서도 상책은 아니었다. 그 타이밍에 문 대통령이 ‘올림픽은 가겠다’고 의사를 밝혔으니, 이 이상 한국에 압력을 가하는 건 오히려 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중국은 한국의 K9 자주포 판매를 그냥저냥 넘어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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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말하는 '셀카놀이'

 

내가 서두에 인용한 조선일보의 기사를 오랫동안 비판하는 이유는 하나다. 국제정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맥락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절대로 모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1년 연말 등거리 외교는, 한반도의 정치지도자가 해 낸 외교 성과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호주 총리는 자국에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 내외가 나란히 셀카를 찍으며 우호를 강조할 정도로 문 대통령과의 관계가 돈독함을 과시했다. 중국에 ‘한국이 항상 너희 편일까’라는 의문부호를 던지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저 사진은 더욱 특별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문재인 정권을 칭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외교적인 맥락을 들이밀어, “호주에 너무 우호적이었다”던가, “지나치게 중국에 굴종적이었다”와 같은 말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등거리 외교였으니까. 결국 할 말이 없으니, 욕을 한 것이다.

 

국민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호주 정상과 셀카 놀이나 하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저 유명한 사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들은 미중 대립의 한 국면인 호주와 중국의 대립에서, 문재인 정권이 멋진 등거리 외교를 해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걸 있는 그대로 보도할 양심이 없었다. 다른 이유를 들어 정면으로 비판할 지성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욕설을 사용하지만 않았을 뿐, 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사설로 ‘금준미주 천인혈 옥반가효 만성고’를 외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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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호주 대사 임명, 그리고 국민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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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정권이 바뀌었다. 호주와 중국은, 과거의 극한 대립에서는 톤을 한 단계 낮춰 관계 개선의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 대선을 전후해 언제든 미중 대립은 다시 본격화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한국은 다른 모든 주요국에 대해서 그렇듯 호주와 관련한 정보를 적시에 취합하고 분석해 외교의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 중대한 시기에, 윤석열 정권은 ‘공수처가 부르면 내일이라도 귀국할’ 인물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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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이 눈부신 외교적 승리를 거뒀을 때, 그걸 비판할 지성이 없어 욕이나 하던 보수 언론은, 바로 그 중요한 호주 대사 자리에 ‘공수처가 부르면 와야 할’ 사람을 임명한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만한 후안무치는 실로 보기 드문 일이다.

 

윤석열 정권이 정권의 안위를 위해 공수처의 수사 대상자를 대사로 임명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자리가 심지어 호주 대사였다는 것은, 분노를 뛰어넘어 헛웃음이 나오게 한다.

 

2024년의 호주 대사직은 ‘국내에 명망 있는 인물이 사회생활의 마지막으로 영전하는 자리’ 같은 미사여구로 포장해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국운이 걸린 외교의 한가운데에, ‘내일이라도 귀국할’ 사람을 스스로 밀어 넣은 것이다.

 

총선까지 남은 시간 24일. 국민의 힘이 한국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 유권자들이 다시 한번 판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