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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주홍 글자 : 간통녀로 낙인찍힌 여자의 일생

 
 
 
 
 
외전
 
 

 

 

소설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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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음사>

 

 

트로츠키의 유언

 

의식을 깨친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특히 그중 42년 동안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투쟁해 왔다. 내가 새로이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를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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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나타샤가 마당을 가로질러 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에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 1940년 2월 27일,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레온 트로츠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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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의 레온 트로츠키

 

1917년,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인 러시아에서 레닌의 지도하에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이는 기존의 혁명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단련된 전위 운동가들이 마르크스주의라는 체계적 이론에 따라 일으킨, 완전히 계획된 혁명이었다. 그들은 착취 계급의 제거와 평등 실현, 프롤레타리아트 권력, 생산 수단의 공유화 등 기존 서유럽 국가들의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 건설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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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장례식

출처-<링크>

 

7년 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이 사망했다. 권력은 두 혁명가가 양분했다.

 

1. 레온 트로츠키 : 레닌과 동급의 위치에서 러시아 혁명 무장 투쟁을 지도했던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겸 국방장관인 ‘젊은 독수리’ 혹은 ‘고독한 늑대’

 

2. 이오시프 스탈린 : 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서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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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좌)과 트로츠키(우)

 

권력만이 아닌 캐릭터, 정치 노선 등 모든 분야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둘의 싸움은 ‘강철의 대원수’이며 ‘그루지야의 인간 백정’인 스탈린의 승리로 끝났다.

 

1929년, 트로츠키는 소비에트에서 추방되어 망명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고, 스탈린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1,000만 명이 죽었다고 알려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법 살인, 스탈린의 대숙청이 시작되었다. 1940년 8월 20일, 트로츠키는 그의 마지막 망명지였던 멕시코의 자택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 ‘라몬 메르카데르’에 의해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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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트로츠키

 

 

늙은 돼지 '메이저'의 꿈

 

자, 동무들, 동물들의 삶이 어떻습니까? 우리 똑바로 봅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달프고 짧소. 우리는 태어나 몸뚱이에 숨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먹이만을 얻어먹고, 숨 쉴 수 있는 자들은 마지막 힘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 하오. 그러다가 이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겨지면 그날로 우리는 아주 참혹하게 도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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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동물 농장(1954)’>

 

‘메너 농장’의 ‘존스’ 씨가 잠들자, 농장의 동물들이 모였다. 모임을 주도한 것은 늙은 수퇘지 ‘메이저’였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농장의 모든 동물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헛간 대들보에 매달린 등불 밑의 메이저는 현명하고 자애롭고 위엄이 넘쳐 보였다. 개들, 짐수레를 끄는 말 ‘복서’와 ‘클로버’, 똑똑한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 염소와 닭들...... 농장의 모든 동물이 메이저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다. 

 

메이저는 목청을 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동물들의 비참한 일생에 대해 또박또박 설득력 있게 풀어갔다. 그의 연설이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고 인간은 동물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이며,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자, 모여든 동물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었다.

 

메이저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꿈은 인간이 사라진 다음의 지상에 대한 것이었으며, 자신이 오래전에 잊고 있던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해 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메이저가 꿈을 통해 기억해 낸 것, 그것은 바로 ‘영국의 짐승들’이라는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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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날이 오리,

독재자 인간이 쫓겨나고

영국의 기름진 들판이

짐승들의 것으로 돌아오는 그날이.

 

우리의 코에서 코뚜레가 사라지고

우리의 등짝에서 멍에가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혹한 회초리도 없어지리라

 

늙은 메이저의 노래에 동물들은 흥분했다. 그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돼지와 개처럼 머리 좋은 동물들은 금방 가사를 외워버렸기에 노래는 곧 우렁찬 합창으로 바뀌었다. 이 왁자지껄함을 통해 동물들에게 메이저가 준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것은 ‘반란을 일으키라, 반란을!’,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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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메이저는 잠결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를 통해 농장의 동물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반란의 성공과 동물 농장의 건설 

 

동물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반란의 선봉에는 동물 중 가장 똑똑하다는 돼지들이 섰다. 돼지 중에서도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단연 뛰어난 지도자였다. 덩치 큰 수퇘지 나폴레옹은 과묵하고 고집이 셌으며, 스노볼은 쾌활하고 말재주가 좋았으나 나폴레옹만큼 심지가 깊지는 않았다. ‘스퀼러’도 동물들에게 뛰어난 언변으로 유명한 돼지였다. 이 세 마리 돼지들은 메이저의 가르침을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로 발전시켰고,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허나 모든 동물의 뜻이 일치한 건 아니었다. 반란을 방해하는 유일한 동물이 하나 있었다. 길든 큰 까마귀 ‘모리스’였다. 존스 씨가 특별히 아끼는 이 까마귀는 스파이였지만 동시에 영리한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슈거캔디산’이라는 신비한 하늘나라를 알고 있으며, 동물들은 죽으면 그곳에 가서 각설탕과 아마씨케이크를 맘껏 먹으며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돼지들은 모리스의 말이 거짓임을 설득하느라 땀깨나 흘려야 했다.

 

어마어마한 덩치와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진 짐수레 끄는 말 ‘복서’가 돼지들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 반란에 앞장섰다. 복서를 따라 다른 동물들도 인간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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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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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라!

 

존스 씨와 일꾼들은 이 난데없는 동물들의 봉기에 파랗게 질려 혼비백산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매질하던 동물들에게 걷어차이고 뿔에 받혔다. 끝내 그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드디어 동물들의 반란은 성공했다. 메너 농장은 동물들의 차지가 되었다. 반란에 성공한 동물들은 ‘영국의 짐승들’을 우렁차게 일곱 번 연창했다. 

 

목초지 조금 아래쪽에는 농장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조그만 둔덕이 하나 있었다. 동물들은 그 둔덕 위로 달려 올라가 맑은 아침 햇살 속에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랬다. 모두가 그들의 것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흰색과 검은색 페인트 통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글씨를 가장 잘 쓰는 스노볼이 돼지 발굽의 두 관절 사이에 붓을 끼고 농장 정문 맨 꼭대기 빗장에 쓰인 ‘메너 농장’이라는 글자를 지운 다음 ‘동물농장’이라고 고쳐 써넣었다. 동물농장. 그것이 최초로 동물들이 주인이 된 이 농장의 새 이름이었다.

 

 

복서의 헌신

 

복서는 모든 동물들에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존스 시절에도 그는 열심히 일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말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는 뭉쳐 놓은 것 같았다. 농장의 모든 일이 그의 힘센 두 어깨에 달려 있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는 밀고 당기며 일했고 가장 힘든 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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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의 지도하에 동물들은 열심히 일했다. 건초를 수확해야 했고, 옥수수를 걷어 탈곡해야 했고, 풀을 베고 긁어모아야 했다. 복서는 가장 열심히 일했다. 그는 수평아리에게 매일 아침 남들보다 30분 먼저 깨워달라고 부탁해 자발적으로 자원노동을 했다. 그는 무슨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가 더 열심히 할게!’라 말하곤 했다. 암탉과 오리들까지 마지막 풀줄기 하나까지 열심히 챙겨다 모았다. 그들은 각자 자기 능력에 따라 일했다.

 

과거 인색한 주인이 마지못해 동냥 주듯 던져 주는 먹이가 아닌 스스로가 생산한 먹이를 먹으며 상상도 못 할 만큼 행복해했다. 풀 한 조각 훔쳐 가는 동물도 없었다. 쓸모없는 기생충 인간들이 사라지자, 동물들에게는 먹을 것이 더 많이 돌아갔다. 존스 시절 그 흔하던 싸움질이나 질투 같은 것들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 누구도 꾀를 부리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각자의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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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은 동물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 스노볼은 다른 동물들을 모아 여러 가지 ‘동물위원회’를 조직했다. 가을쯤 되자 몇몇 동물들은 읽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복서는 알파벳 D까지 깨치고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스노볼이 조직한 여러 위원회에 냉담한 태도를 취했다. 나폴레옹은 이미 다 큰 동물들은 성과를 내기 어려우니 어린 동물들의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초 수확이 끝난 후, 암캐 ‘제시’와 ‘불루벨’이 투실투실한 새끼 아홉 마리를 낳았다. 나폴레옹은 그 새끼들이 젖을 떼자마자 자신이 이 강아지들의 교육을 책임지겠다며 어미 품에서 새끼들을 떼어갔다. 그리고 강아지들을 옮긴 후에는 그들을 철저히 격리했다. 그래서 농장의 동물들은 얼마 후 강아지들의 존재조차 잊어버렸다.

 

 

무공훈장을 받은 복서와 스노볼의 원대한 계획

 

동물농장이 아무 탈 없이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작은 위기와 큰 위기가 번갈아 닥치기도 했다. 

 

작은 위기는 계속 사라지는 우유가 돼지들의 사료로 쓰였다는 것, 그리고 동물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될 것이라 믿었던 떨어진 사과들을 돼지들만 먹도록 명령이 떨어진 것에 대해 동물들이 수군대며 동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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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위기는 ‘스퀼러’에 의해 금세 진정되었다. 뛰어난 말재주를 지닌 돼지 스퀼러는 열정적으로 동물들을 설득했다. 그는 돼지들이 머리를 쓰는 가장 중요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돼지들은 동물농장 모두의 복지를 위해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만약 돼지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것은 곧 존스의 복귀로 이어질 터이니 돼지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동물들 모두의 이익이 된다는 것이며 이것은 특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존스가 돌아온다는 말에 동물들은 설득되었다.

 

돼지들이 우선 건강해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은 너무도 명백해 보였다. 그렇게 해서 우유며 바람에 떨어진 사과(그리고 나중에는 익은 사과들까지)는 모두 돼지들의 몫이어야 한다는 데 더 이상 아무 군말 없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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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위기는 인간들의 공격이었다. 

 

동물농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두 농장, ‘폭스우드’와 ‘핀치필드’의 인간들은 자신의 농장에서도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봐 전전긍긍했다. 어느날 두 농장의 인간들이 문제의 싹을 없애겠다며 동물농장으로 쳐들어왔다. 이들의 공격을 물리친 최고 공신은 스노볼과 복서였다. 스노볼은 예상했다는 듯 능수능란하게 동물들을 지휘했으며 복서는 맨 앞에서 그 무시무시한 힘으로 인간들에게 발길질을 해 댔다.

 

스노볼은 인간들이 쏜 총에 등짝에서 피를 흘렸으며 복서는 발굽에 산탄총을 맞아가면서도 영웅적으로 싸웠다. 인간들이 도망치자 동물들은 승리의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동물들은 이날을 ‘외양간 전투’ 기념일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제 동물농장의 기념일은 ‘반란 기념일’과 함께 두 개가 되었다. 

 

동물들은 만장일치로 무공 훈장을 제정키로 했다. ‘동물 영웅 일등 훈장’은 그 자리에서 스노볼과 복서에게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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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에 겨울이 왔다. 1월이 되자 매서운 추위가 농장을 덮쳤다. 땅은 쇳덩이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었고 밭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스노볼이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것은 풍차 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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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은 힘들고 어렵겠지만 풍차를 만든다면 거기서 공급되는 전기로 난방은 물론이고, 여물 썰개와 착유기 등의 여러 가지 기구들을 돌릴 수 있다고 했다. 스노볼은 환상적인 기계 그림을 그려가며 열정적으로 동물들을 설득했다. 

 

나폴레옹은 스노볼이 그려 놓은 그림 위에 오줌을 내갈기는 것으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식량 증산이며 풍차 따위에 매달렸다가는 모두 굶어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스노볼과 주 삼 일 노동에 투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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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가득한 여물통에 투표를’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맞섰고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두 파로 나뉘어졌다.

 

 

나폴레옹의 권력장악과 대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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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폴레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특유의 곁눈질을 스노볼에게 한번 던지고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에게서 들어 본 적 없는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꽥 하고 내질렀다.

 

풍차 건설 투표일이었다. 스노볼의 설득력 있는 연설 앞에서 동물들의 마음이 그에게 기울어 갈 무렵이었다. 나폴레옹의 고함과 함께 사납고 커다란 개 아홉 마리가 회의장을 덮쳤다. 그 개들은 예전에 나폴레옹이 떼어다 몰래 키운 아홉 마리의 개들이었다. 스노볼은 상처를 입어가며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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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이 도망친 후, 나폴레옹은 회의를 폐지했고, 앞으로 돼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모든 사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더 이상 토론은 없다는 말과 함께. 복서를 비롯한 동물들은 무언가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젊은 돼지들이 반대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곧 침묵으로 바뀌었다. 아홉 마리 개들의 으르렁거리는 위협 때문이었다.

 

스노볼은 축출되었고 농장에는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었다. 그것은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였다. 동물들의 반발은 언제나 스퀼러의 말재주와 아홉 마리 개들의 위협에 의해 사그라들었다. 스노볼이 받았던 무공훈장의 기억도 지워야 했고, 농장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은 언제나 스노볼의 음모 때문이어야 했다.

 

동물농장의 일상이 점점 변해갔다. 동물들은 인간의 지배하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배급량은 점점 줄어갔다. 봄이 되자 동물들은 일주일에 육십 시간을 일해야 했다. 돼지들은 점점 살쪄갔고 동물들은 일요일 오후에도 일하게 되었다. 돼지들은 아예 금기시되었던 존스의 집으로 자신들의 ‘특별위원회’를 옮겼다. 이제 그들은 잠자리마저 다른 동물들과 구분했다. 

 

자백과 처형은 그런 식으로 계속되었다. 나폴레옹의 발 앞에는 죽은 동물들의 시체가 쌓이고 존스 축출 이후 처음으로 농장에는 피 냄새가 진동했다.

 

동물농장에 다시 겨울이 닥치고 동물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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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모든 동물에게 집합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지목한 동물들, 스노볼이 축출될 때 반발했던 젊은 돼지들, 특별위원회가 달걀을 뺏어가 인간에 팔자 그에 분노했던 암탉들, 두 마리의 양과 거위 등등...... 이들 모두 자신이 스노볼과 공모했음을 고백해야 했고 고백 후에는 그 자리에서 도살당해야 했다.

 

처형이 끝나자, 돼지들과 개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마당에서 사라졌다. 남은 동물들은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복서는 길고 검은 꼬리를 허리 쪽으로 휘두르며 이따금 작은 소리로 히힝거렸다. 이 충격적인 공포와 살육의 장면들은 늙은 메이저가 그들에게 반란을 사주했던 밤 그들이 꿈꾸고 기대했던 일이 결코 아니었다.  

 

 

풍차 건설 투쟁과 복서의 죽음

 

이제 나폴레옹은 다른 동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모든 명령은 스퀼러나 다른 돼지들을 통해 전달되었다. 동물들은 나폴레옹을 반드시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라 불러야 했다. 성공한 모든 일들은 나폴레옹 때문인 것이며, 실패한 모든 일들은 스노볼 때문이었다. ‘영국의 짐승들’은 금지곡이 되었고, 돼지를 길에서 만나는 동물들은 반드시 옆으로 공손히 비켜서야 했다.

 

동물들은 지금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며 자주 춥고 배고프다고 느꼈으나 그 생각은 스퀼러의 화려한 말재주에 의해 존스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안 좋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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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양초 등 모든 것들을 독점한 돼지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갔고 복서와 다른 동물들은 점점 야위어 갔다. 그래도 복서는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돼’라고 말하며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돌산 꼭대기로 오르는 비탈길에서 온몸으로 거대한 돌덩이를 끌어올릴 때의 복서는 그저 오로지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는 것 같았다. 그럴 때 그는 “내가 더 열심히 한다.”라고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막거리긴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복서가 쓰러졌다. 폐기되었던 스노볼의 풍차 건설 계획이 나폴레옹의 지시로 다시 추진되고 있을 때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복서가 쓰러진 것이었다. 그는 벌써 열두 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커다란 엉덩이는 살이 빠졌고 가죽은 예전의 윤기를 잃은 그였지만, 그는 자신의 은퇴 전까지 최대한 많은 돌을 풍차 건설 현장에 올려놓으려 애쓰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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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온 스퀼러는 복서를 둘러싼 동물들에게 복서를 최고의 수의사에 치료받게 할 것이라 말하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이틀 뒤, 스퀼러의 약속대로 복서를 병원으로 옮길 마차 한 대가 동물농장에 나타났다. 복서가 마차에 실리자, 동물들은 모두 마차 주위로 모여 ‘잘 가게 복서, 잘 갔다 와!’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당나귀 ‘벤저민’이 갑자기 작은 발굽으로 땅을 구르며 소리쳤다.

 

“‘앨프리드 시먼즈, 말 도살업 및 아교 제조업, 윌링던 소재. 가죽과 골분도 취급함. 개집도 공급.’ 저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복서가 폐마 도축업자한테 끌려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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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마차 뒤를 따라가며 있는 대로 목청을 돋우어 소리를 질러댔다. 

 

“빨리 나와, 복서! 빨리 나와!”, “복서! 거기서 나와! 널 죽이러 가는 거야!”

 

그러나 마차는 속력을 내면서 동물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복서의 얼굴이 사라지더니 발굽으로 탕탕 차고 구르는 소리가 마차 안에서 시끄럽게 들려왔다. 그러나 젊을 때와 달리 힘이 빠진 복서는 마차를 뚫고 나올 수 없었다. 마차는 사라졌다. 동물들은 절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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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스퀼러는 복서가 병원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았으나 숨을 거두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스퀼러는 자신이 복서의 임종을 지켜보았으며 복서가 남긴 최후의 말은 ‘나폴레옹 동무는 언제나 옳다!’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동물들이 본 마차에 쓰인 문구는 예전 주인인 도축업자의 상호이며 마차의 새로운 주인인 수의사가 그것을 지우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모여든 동물들은 스퀼러의 말에 안도했다. 그리고 복서가 최고의 치료를 받으며 행복하게 최후를 맞이했다며 슬픔을 달랬다.

 

다음 날 정오가 될 때까지 본채에서는 돼지 한 마리도 부시럭거리지 않았다. 돼지들이 어디에선가 돈이 생겨 위스키를 한 상자나 사서 마셨다는 소문이 돌았다.

 

 

인간이 된 돼지들

 

여러 해가 흘렀다. 짧은 수명을 가진 많은 동물들이 사라져갔다. 최초의 반란과 복서를 기억하는 동물들도 늙은 당나귀 벤저민 등 몇몇을 빼고는 남지 않았다. 농장은 많이 부유해졌으나 거기 사는 동물들의 삶은 갈수록 고단해졌다. 돼지들과 개들 빼고는 모두가 그랬다. 돼지와 개들의 숫자는 많았으나, 그들은 자기네 식량을 자기네 손으로 생산하지 않았다. 

 

어느 날 늙은 노새 클로버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동물농장에 흔들었다. 동물들은 깜짝 놀라 마당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동물들의 눈에 클로버를 놀라게 한 장면이 보였다. 그것은 두 발로 걷고 있는 돼지, 스퀼러였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다른 돼지들도 직립보행으로 한 줄 행렬을 이룬 채 마당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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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거만한 태도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당당하게 직립한 자세였다. 그의 앞발굽에는 회초리가 들려 있었다.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놀라고 겁먹은 동물들은 줄지어 천천히 마당을 걷고 있는 돼지들의 긴 행렬을 지켜보며 한쪽에 몰려 서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거꾸로 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농장 일을 감독하러 나온 돼지들이 하나같이 앞발굽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고, 그들이 라디오를 사고 전화를 놓고 ‘데일리 미러’ 같은 신문 잡지들을 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존스처럼 검은 코트에 반바지 사냥복을 입은 것도,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고 있는 암퇘지가 옛날 존스 부인처럼 비단옷을 걸치고 있는 것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동물농장으로 여러 대의 마차가 들어왔다. 근처 농장주들이 동물농장을 시찰하러 온 것이었다. 그들을 마중 나온 돼지들을 보며, 동물들은 인간과 돼지 중 누구를 더 무서워해야 할 지 몰랐다. 그날 저녁 본채 안에서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고래고래 노래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과 동물의 음성이 섞인 소리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던 동물들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본채 쪽으로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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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클로버의 침침한 눈에 이상한 모습들이 보였다. 어떤 돼지는 턱이 다섯 개였고 또 어떤 돼지는 턱이 네 개였다. 돼지들의 얼굴에서 뭔가가 녹아내리고 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술에 취한 열두 개의 목소리들이 점점 똑같아졌다. 클로버는 비로소 돼지들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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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정치적이어야 하는 이유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폴리스)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中-

 

‘호모 폴리티쿠스(homo-politicus)’, 정치적 동물.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 중 하나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 국가 체제였던 당시 그리스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원문을 본다면 ‘정치’란 ‘폴리스’, 즉 정치공동체를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누구나 어떤 정치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 측면만 본다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이 인간의 육체입니다. 안정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당연히 효율적입니다. 씨족으로부터 국가까지. 인류의 역사가 곧 공동체 발전의 역사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입니다.

 

둘째, 인간은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타 생명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높은 욕망을 지닌 존재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생존의 차원이 아닌 생활과 문화라는 더 높은 차원을 향해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 집단, 정치적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이 필수입니다. 이것이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생존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춰 놓고도 필사적으로 인간 사회로 복귀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이유입니다.

 

개인과 그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상호작용, 이 둘의 변증법적 결과물이 내 인생의 양과 질을 결정합니다. 아프리카의 내전과 빈곤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와 북유럽의 복지 국가에서 태어난 아이의 평균 수명이 다르고 인생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행복한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위해서, 나와 당신, 우리의 인생이 정치적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산에 내려 인가를 찾아가 보니, / 아낙네 문간에 나와 맞이하네. 

띠집 처마 아래 손을 앉게 하고, / 나를 위해 밥과 반찬 내어오네.

 

.... .... 

 

사방을 둘러봐도 이웃은 없고, / 닭과 개만 산기슭을 오르내린다.

숲속에는 사나운 호랑이 많고, / 나물을 뜯어도 얼마 되지 않네.

 

슬프다, 외진 산림 무엇이 좋아서 / 가파른 이 산중에 있는고?

저쪽의 평지가 좋기야 하지만, / 원님이 무서워 갈 수가 없구나. 

                                 

-김창협, ‘산민(山民)’ 中-

 

조선 후기의 문인, 김창협 선생의 ‘산민’이란 한시입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기에 평지 고을에서 살지 못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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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대가를 받는 것, 친구 동료와 커피나 술 한잔을 마시는 것, 어떤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 이런 것들과 정치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언론이나 유튜브에 검열이 가해진다면, 과거 군부독재 시절처럼 야간 통행금지가 있다면 위에 말한 모든 것들에 심각한 제약이 생기거나 일부는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에게 정치란 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어떤 거대한 것이 아니라 곧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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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시원한 사과 하나를 사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면, 어느날 소줏값이 올라 화가 난다면, 누군가가 내가 낸 세금으로 자신의 양평 땅에 도로를 만들어 떼돈을 번다면, 그것 때문에 내 적금 액수가 푼돈으로 보여 울화통이 터진다면, 그것은 나나 당신의 잘못이 아닌 것입니다. 정치가 잘못한 것입니다.

 

‘막대한 소득격차는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권력에 유리하도록 온갖 법을 개정하고 특혜를 몰아준 결과이다.’        

 

-에라스무스(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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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도 사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 자신이 무능하다며 자책하지 마세요.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정치가 잘못된 것이니, 자책이 아닌 정치를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올바른 정치인에 대한 후원으로,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헌법에 보장된 참정권 행사로. 그래서 우리와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예순한 번째 인생 탐구로 짐수레를 끄는 말 ‘복서’의 삶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평생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엔 놀고먹는 돼지들의 하룻밤 여흥을 위한 위스키가 되기 위해 도축장으로 끌려가 죽어야 했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부당한 정치 체제와 그것을 만든 권력자들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비극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정치를 바꾸기 위해 ‘선거와 투표’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정치 참여 수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미국 영화배우 ‘윌 스미스’의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투표하지 않았다면 그냥 닥치고 있으라' 하셨기 때문에 투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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