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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큰아들과 나가려는 작은아들

 

줄곧 얘기했듯, 동분의 큰아들 주성과 작은아들 주홍은 같은 배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성격, 성향, 취미, 식성 등 어느 것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그 가운데서도 동분이 생각하는 두 아들의 가장 큰 차이는 독립 성향이다. 작은아들 주홍은 어떻게든 집을 나가려는 아들이었고, 큰아들 주성은 어떻게든 안 나가려는 아들이었다.

 

“너는 스물셋에 집 나가서 줄곧 혼자 살았잖어.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닐 때 집으로 다시 들어오라고 해도 한 6개월 살다가 또 나가고. 서울로 이직했다가 다시 대전 내려올 때도 들어오라니까 따로 집 얻고. 이혼하고 대전 와서도 갈 때 없으면 와서 살라고 했는데도 곧 죽어도 혼자 살겠다고 안 들어오고.”

 

그에 반해 주성은, 군대 가 있던 4년을 제외하면 줄곧 동분, 남편 송일영과 함께 살았다. 불과 3년 전, 그러니까 주성 나이 서른아홉까지 말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주성의 뜻이었다. 동분은 주성이 20대이던 언젠가 슬쩍 물은 적도 있다. 다른 애들은 혼자 살고 싶어 안달이던데, 넌 독립할 생각 없느냐고. 주성이 그러더란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데, 뭐 하러 혼자 살면서 고생하느냐고. 주성의 아내가 한국에 들어올 때도 동분은 재차 물었다. 그래도 신혼인데, 따로 나가 살 계획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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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에 찍은 주성 가족사진

 

“니네 형 한다는 말이, 이미 베트남에서 맞선 볼 때 니네 형수랑 ‘합의’를 했다는 거여. 부모님 모시고 같이 살기로. 니네 아빠야 맏아들이 먼저 나서서 모시고 산다니까 내심 좋았는지도 모르지. 근데, 엄마는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더라고. 넌 잘 모르겄지만, 주방 살림이라는 게 원래 여러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렇다고 엄마가 한국 음식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니네 형수한테 주방 맡길 수 있냐? 그렇게 니네 형수가 요리한다고 한들, 입맛 까다로운 니네 아빠가 먹겠느냐고.”

 

여기서 잠시, 주성과 아내가 베트남에서 맞선 보던 날로 시계를 돌려보자. 주성은 아내에게 자신의 원대한 꿈을 얘기했다. 평생 부모님 모시며 애들 서넛 낳아 복작복작하게 살고 싶다는 꿈 말이다. 이에 아내는 ‘그런 걸 왜 묻지? 당연한걸?’이라는 반응이었단다. 이유인즉, 지난 편에서도 얘기했듯 베트남은 역사‧지리적으로 중국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다. 하여, 정서적으로 보나 문화적으로 보나 ‘한중일’보다는 ‘한중베’로 묶는 게 마땅할 정도다.

 

실제로 주성의 아내 또한 베트남 살 때 친할머니, 큰아버지 내외, 엄마, 동생 셋까지 대식구가 함께 살았다(아버지는 결혼 몇 해 전 돌아가셨다). 뿐더러 바로 집 근처에 고모와 이모들이 살았단다. 그런 환경과 분위기에서 나고 자랐으니, 주성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도리어 새삼스러울 수밖에. 그렇게 베트남에서 의기투합(?) 한 주성 내외는 결혼식 올리고도 분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분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베트남 며느리와의 갈등

 

“니네 형수가 한국 오자마자 요섭이 임신했잖어. 근데 니가 생각해 봐라. 타지도 아니고, 타국에 와서 임신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겄냐. 말도 잘 안 통하지, 음식도 입에 안 맞지, 친정엄마도 보고 싶을 테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을 테고. 그나마 마음 줄 사람은 남편뿐인데, 니네 형은 그때도 택배기사 했었으니까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나 들어왔잖어.”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 제9조의5(결혼동거 목적의 사증 발급 기준 등) 제1항 제6호에 따라 피초청인은 ‘한국어능력시험 1급 이상 취득’ 등 기초 수준 이상의 한국어 구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여, 주성의 아내 또한 한국에 올 때 이미 기본적인 수준의 한국어는 구사했다. 그럼에도 원어민 같을 순 없기에 한계는 있었다. 지금은 한국 생활 8년 차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물론, 한국어도 원어민 수준이다.

 

어쨌든, 당시 주성의 아내를 제일 괴롭힌 건 담배였다. 시아버지 송일영의 실내 흡연 말이다. 송일영 딴엔 혼자 쓰는 방에서 방문 닫고 공기청정기 켜고, 방 안쪽의 작은 베란다에서 피운다지만, 주성의 아내가 누군가! 주성과 맞선볼 때 물었던 첫 번째가 돼지띠였고, 두 번째가 바로 술 담배였다. 그 정도로 담배 냄새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더욱이 임산부인데! 갈등은 여기서 시작됐다.

 

“평생 집 안에서 대놓고 담배 피우던 양반이 그나마 며느리 눈치 본다고 쪽방 베란다에서 공기청정기까지 돌려가며 피운 겨. 니네 아빠 성질 잘 알겄지만, 그 정도면 굉장히 양보한 거지. 근데 니네 형수도 성격이 시원시원한 스타일 아니냐. 뭐 꾹 참고, 속으로 삭이고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거든? 그러니까 니네 형만 중간에서 죽어나는 거지. 그러더니만 나중엔 니네 형수가 나한테까지 큰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라고. 나도 참고 참다가, 하루 날 잡아서 니네 형수랑 단둘이 대화를 나눴지. 차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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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분과 며느리 이나은 씨

 

주성의 아내가 한국에 온 지 꼭 1년 됐을 때 일이다. 동분은 며느리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 줬다. 갑작스러운 타국 생활과 임신, 출산, 육아, 거기에 꽉 막힌 시아버지까지. 그 모든 걸 26살 여자가 감당하기엔 벅찰 수 있다는걸, 동분은 너무나 잘 안다고 얘기해 줬다. 자신도 시집살이 겪어봐서 이해한다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 얘기했지. 네가 한국 시어머니는 처음이듯, 나도 베트남 며느리는 처음이다. 너가 많이 힘들겠지만, 나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매일 새벽에 나가서 저녁까지 병원 청소하고, 집에 오자마자 너 잠깐이라도 쉬라고 요섭이 대신 봐주고, 너가 요섭이 밥 먹일 동안 나는 또 저녁 준비하고. 그렇게 힘들어도 이날 이때까지 너한테 싫은 소리 한 번 해본 적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피를 나누진 않았어도 우리는 한 가족 아니냐. 그러니까 우리 조금씩만 양보하고 이해하고 노력해 보자. 그런 얘길 차분하게 했더니 니네 형수가 ‘엄마 죄송해요.’ 하면서 나한테 안겨가지고 한참을 펑펑 울더라고. 그때 니네 형수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연 거 같어. 호호호. 그날 이후로 니네 형수랑 한 번도 얼굴 붉힌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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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거짓말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주성 내외는 2018년 큰아들 요섭과 2020년 둘째 딸 민설을 낳았다. 동분의 일상은 똑같았다. 새벽에 나가 종일 병원 청소하고, 집에 오면 곧바로 손주들을 봐줬다. 그 사이 며느리는 아이들 이유식을 만들었다. 며느리가 아이들 밥 먹이는 사이, 동분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주성과 남편 송일영이 퇴근해 돌아오면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며느리가 설거지와 뒷정리하는 사이, 동분은 다시 손주들과 놀아줬다. 그런 일상이 반복됐다. 그러는 동안 동분은 60살이 되고, 61살이 됐다.

 

“손주들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지, 좋은데. 엄마도 나이 먹으니까 힘이 달리더라고. 엄마가 집에서 노는 사람 같으면 얼마든지 손주들이랑 놀아줄 수 있지. 근데, 그게 아니었잖어. 그런 상황에서 2021년 되자마자 니네 형수가 셋째를 임신한 겨. 그 얘길 듣는데, 한편으론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이고,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고. 호호호. 셋째까지 낳으면 또 한동안은 봐줘야 할 텐데, 덜컥 겁이 나는 겨. 안 되겄어. 셋째 낳기 전에 담판 지어야지. 그래가지고 니네 형 따로 불러서 얘기했지. 주성아, 우리 이제 그만 따로 살자.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겄다. 5년이나 같이 살았으면 니 소원 실컷 이룬 거 아니냐. 니네도 이제는 따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 그랬더니, 니네 형이 ‘엄마 많이 힘들었어? 알았어. 얘기 한 번 해볼게.’ 하더라고. 근데 니네 형수가 끝까지 반대했지. 호호호. 자기 딴에도 혼자 애 셋을 키워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났겄지. 근데 니네 형이 어떻게 설득을 했나 봐. 그래가지고 지섭이 태어나기 전에 후다닥 분가한 겨.”

 

분가라고는 하지만, 주성은 멀리 떠나지 않았다. 차 끌고 겨우 5분 거리로 이사했다. 지금도 일주일이면 한두 번 동분이 주성 집으로 가고, 주성은 주말마다 아내와 애 셋을 데리고 동분 집으로 온다. 동분은 지금이 딱 좋다.

 

“그래도 5년 같이 살길 잘한 거 같어. 애초에 따로 살았으면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며느리는 며느리거든? 니네 형수 입장에서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인 거고. 근데 쭉 같이 살다가 분가해서 그런가, 니네 형수나 나나 이렇다 할 거리감이 없어. 니네 형수도 자기 집 드나들 듯이 우리 집에 불쑥불쑥 오고. 호호호. 엄마도 마찬가지여. 그래도 며느리 집이니까 가는 게 좀 조심스러워야 하잖아.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안 들더라? 어쨌든 간에 엄마는 지금이 딱 좋은 거 같어. 갈이 살 땐 진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 지금은 퇴근하고 집 와서 실컷 쉬다가, 니네 아빠랑 간단하게 저녁 먹으면 끝이니까, 훨씬 낫지. 그런 데다가 가까이 사니까 손주들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하면서 볼 수 있고.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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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이 돌 때 찍은 사진

왼쪽부터 셋째 지섭, 첫째 요섭, 둘째 민설  

 

사실, 동분은 주성 내외가 분가할 때 걱정을 조금 했다. 얘기했듯, 함께 살 땐 동분이 주도적으로 주방 살림을 했다. 하여 며느리 솜씨를 잘 몰랐다. 셋째 임신한 며느리가 이삿짐 싸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휴, 저 어린 게(분가할 당시 주성의 아내는 29살이었다) 애 셋을 혼자 키우면서 살림이나 제대로 할까. 기우였다.

 

“니네 형수도 엄마가 살림하니까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뿐이지, 원래가 살림꾼이었더라고. 하긴, 생각해 보면 베트남에서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친정엄마가 줄곧 밥벌이했으니까, 니네 형수가 동생 셋을 다 키운 거 아녀. 그러니 뭐, 괜한 걱정이었던 거지. 가보면 애 셋 키우는 집 같지가 않어. 왜, 애들 많은 집은 아무리 정리해도 어수선할 수밖에 없잖어. 근데 얼마나 깔끔을 떠나, 집이 항상 깨끗햐. 호호호. 냉장고도 맨날 청소하나 봐(소곤소곤). 한국 요리도 엄마보다 더 잘해. 요즘 애들이라 그런지 유튜브 같은 거 보면서 곧잘 따라 하더라고. 일주일이 멀다고 전화 와서 ‘엄마~ 갈비찜 해놨으니까 저녁 드시러 오세요.’ 그런다니까? 뭐 갈비찜, 잡채, 찌개 못 하는 게 없더라고. 그건 그렇고, 너는 니네 형수가 넷째 임신한 거 먼저 알았다면서??! 왜 엄마한테는 얘기 안 했냐, 치사하게. 아휴 근데 니네 형이나 형수나 대단들햐. 애 넷을 어떻게 다 키우려고. 호호호.(참고로 해당 인터뷰는 주성의 아내가 넷째 아이 출산하기 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마침내 네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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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의 카톡 프로필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셋째 지섭, 첫째 요섭, 넷째 은섭, 둘째 민설

 

동분은 며느리가 차려준 밥 얻어먹고, 셋이나 되는 자식에게 둘러싸여 놀아주는 주성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음이 가득 차는 걸 느낀다. 돌이켜보면 큰아들 주성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무엇 하나 해준 게 없는 아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메이커 운동화 한 번을 마음 편히 못 사줬다. 주성이 사회생활 시작한 뒤로는 도리어 받기만 했다. 이래저래 쪼들릴 때마다 주성에게 받아쓴 돈이 도대체 얼만지 모른다. 그랬는데도 반듯하게 자라, 어느덧 다둥이 아빠가 됐다.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뿐이다.

 

동분은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평생 부모님 모시며 대가족으로 살고 싶다던 주성의 꿈이, 과연 진심이었을까. 맏아들로서 책임감이 만들어 낸 선의의 거짓말은 아니었을까. 주성은 그러고도 남을 아들이니까. 그렇게나 부모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속 깊은 아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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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빠 보겠다며 줄줄이 마중 나온 아이들

왼쪽부터 셋째 지섭, 첫째 요섭, 둘째 민설

 

“엄마가 니네 형한테 바라는 게 뭐 있겄냐. 이제 니네 형도 42살 아녀. 새끼들 생각하면 앞으로도 20년은 더 밥벌이해야 하잖어. 택배기사 일이 쉬운 것도 아니고. 아무쪼록 몸조리 잘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아주면 부모로서 더 바랄 게 없지. 엄마, 아빠는 이제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리 걱정은 그만해줬으면 좋겄어. 호호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