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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강간범을 변호한 힐러리 변호사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창인 2016년 10월 9일,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후보자 토론이 열렸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수세에 몰리던 트럼프가 갑자기 힐러리에게 외쳤다.

 

“힐러리 클린턴이야말로 여성을 공격하는 사람이오. 오늘밤 4명이 여성이 이 자리에 있는데, 그중 1명은 불과 12살 때 강간을 당했소. 강간범을 변호한 사람이 힐러리 클린턴이었고, 결국 강간범은 풀려나왔소.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깔깔거리고 비웃기도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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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힐러리를 공격하는 트럼프 

출처-<게티 이미지>

 

트럼프가 말하는 여성은 캐시 셸턴(Kathy Shelton)이었다. 이 여성은 토론회 직전 트럼프와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12살 시절 나에게 참을 수 없는 짓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여자와 어린이를 위해 일하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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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힐러리 대선후보 토론장에 나타난

성폭행 피해자 캐시 셸턴 

출처-<게티 이미지>

 

도대체 힐러리 클린턴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걸까? 트럼프의 주장은 대략 이러했다.

 

“캐시 셸턴은 12살 때 41세 남성 토마스 테일러(Thomas Talyor)에게 강간당했다. 그 강간범 변호를 맡은 사람이 당시 힐러리 변호사였다. 힐러리의 변호 덕분에 강간범은 징역 10개월만 살고 나왔다. 게다가 힐러리가 소송에 이겼다며 깔깔 웃는 녹음테이프까지 나왔다. 어떻게 미성년자 강간범을 변호하고 가벼운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나? 힐러리는 사퇴하라!”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기간 동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을 위해 일하겠다.”고 공약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 주장을 들어보면, 힐러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 ‘최악의 위선자’로 보인다.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젊은 시절의 힐러리 클린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 당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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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당시의 힐러리 로댐

출처-<게티 이미지>

 

1975년 27살의 힐러리 로댐(처녀적 이름)은 예일대 로스쿨 졸업 후 초짜 변호사가 되어 아칸소의 법률구조공단 소속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용은 즉, 미성년자 강간 용의자의 (국선) 변호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힐러리는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당시 사건 담당 검사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는 그녀와의 대화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에서는 보통 검사와 국선변호인이 서로 친하거나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다) 

 

“왜 하필이면 나죠?”

 

“피고가 여자 변호사를 원한다고 콕 집어서 말했거든요.”

 

“나는 이 사건에서 빼주세요. 이런 사건은 맡을 수가 없어요.”

 

“로댐 변호사. 미안하지만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내가 아니라 판사가 당신을 직접 지명했어요. 판사가 변호인으로 지정하면 해야 합니다. 만약 판사 요청을 거절하면, 앞으로 변호사로 일하기 힘들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에서 성범죄 용의자들은 반대 인종의 여성 변호사를 선호한다. 그래야 판사와 배심원들에게 동정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여성 변호사가 많지 않던 1975년이라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힐러리가 거절하면 이 사건을 맡을 여자 변호사는 주변에는 없었다. 그러면 피고는 “판사가 내 요청을 안 들어준다”고 고집을 부리며, 재판을 지연시킬 수도 있었다. 판사와 검사가 하필 힐러리에게 변호를 맡으라고 압박을 가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검사의 회상은 계속됐다.

 

“힐러리는 직접 판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판사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죠. 힐러리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내키지 않는 사건이었지만, 힐러리는 형사사건 변호인이면 해야 할 절차를 모두 밟았다. 검찰에 증거 제출 신청, 피고 진술서 증거 배제 신청, 거짓말 탐지기 검사 실시 등이다. 힐러리는 사건 9년 후 1984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고는 당연히 강간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죠. 검사 결과는 ‘패스’였어요. 그 이후로 나는 거짓말 탐지기를 절대로 믿지 않아요.”

 

힐러리는 그러고는 가볍게 웃었다. 미국 사법 제도의 허술함에 대한 자조적 웃음이었다(힐러리 본인도 자기 의뢰인을 100% 믿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건 힐러리의 웃음소리는 고스란히 테이프에 녹음됐다. 트럼프 왈 ‘힐러리가 깔깔거리며 비웃었다’고 과장하는 그 웃음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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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 변호사 시절의 힐러리 로댐

출처-<게티 이미지>

 

 

당시 재판에서 힐러리의 변호 내용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사건이었지만, 힐러리는 변호인으로 해야 할 의무(즉, 변호사로서 윤리 규범)는 최선을 다해 지켰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힐러리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 어린이의 진술서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피해 어린이의 정신감정을 요청했다. 일반 시민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행동일 수 있지만, 변호인으로서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의심될 때 밟아야 할 당연한 절차였다. 힐러리의 요청은 법원에 의해 기각되어 이뤄지진 않았다. 

 

힐러리는 또 검찰 측 증거를 검토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강간의 결정적 증거인 피 묻은 속옷이 있었는데, 시료를 채취하던 과학수사대의 실수로 폐기되었던 것이다. 힐러리가 법의학자에게 물어본 결과, 과학수사대가 채취해 둔 시료는 DNA 검사 결과를 내기엔 한참 부족한 양이었다. 힐러리는 검사에게 이 사실을 들이댔다.

 

“그 속옷 좀 내 눈으로 한번 봅시다.” 

 

결정적 물증을 잃어버린 검사는 최대 징역 20년 구형을 포기하고, 징역 5년 및 집행유예 4년으로 형량을 낮췄다. 힐러리가 검사와 형량 협상에 합의한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10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피고 토마스 테일러는 풀려나왔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이 사건은 힐러리 클린턴이 처음으로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2007년에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민주당 내 경선 오바마 vs 힐러리). 그러나 이 사건은 금방 묻혔다. 무엇보다도 당시 강간 피해자였던 캐시 셸턴이 힐러리를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힐러리에게 아무런 악감정이 없습니다. 피고인을 변호하는 게 그의 일이었죠. 힐러리는 그냥 자기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사건 담당 검사 역시, 이렇게 회고했다.

 

"그녀의 변호 실력에 감명받았습니다. 솔직히 사건 결과는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검찰)가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년 후 2015년 상황이 달라졌다. 한 언론이 도서관 창고에서 썩고 있던 힐러리 인터뷰 테이프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힐러리가 대선에 출마하자, 트럼프와 언론은 인터뷰 속 힐러리의 웃음소리를 줄기차게 틀어댔다. 

 

뿐만 아니라 피해 여성에게 힐러리의 웃음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틀어주고, 힐러리의 정신감정 요청서도 들이댔다. 트럼프와 언론은 결국 피해 여성에게 기어코 이런 대답을 받아냈다.

 

“힐러리가 내 인생을 지옥으로 몰아갔어요. 내 인생을 진흙탕에 처박았어요.”

 

당시 복잡한 여성 관계와 막말, 성추행 의혹에 시달리던 트럼프는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소리높여 외쳤다. 

 

“힐러리는 성폭행범 변호인이다.” 

 

그 후의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대선의 결과와 그 이후의 상황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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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 이미지>

 

웃긴 점은, 트럼프가 2023년 여성 성추행 혐의로 뉴욕 법원 민사재판에서 패소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헌법상 권리

 

여기까지 읽었어도, 어떤 독자들은 여전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동 강간범 같은 인간 쓰레기를 변호할 수 있나?”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직관적 정서와 달리, 민주주의 법 시스템을 공부했고 그 시스템 안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미국 법조계는 2007년에도, 2016년에도 이런 반응을 보였다.

 

“힐러리는 미국 헌법에 따라 변호사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왜 이들의 반응은 이랬을까? 

 

미국 헌법 6조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범죄의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형사 피고인이 대상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변호사가 없다면 형사재판 피고는 부당한 혐의로 기소되거나, 불충분한, 부적절한 증거로 인해 유죄로 확정될 수 있다. 따라서 피고는 모든 형사재판 절차에 있어서 변호인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6조는 중대범죄와 경범죄를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형사재판 피고는 변호사를 선임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변호인은 자신이 믿는 사건의 진상과 상관없이, 피고의 유, 무죄 여부와 상관없이 전력을 다해 변호해야 한다.”

 

-‘기드온 대 웨인라이트’ 판례Gideon v. Wainwright, 372 U.S. 335 (1963)(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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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판례를 다룬

헨리 폰다 주연의

영화 ‘기드온의 나팔’

 

그런데 변호인이 특정 범죄, 예를 들어서 “나는 아동 강간범 같은 인간쓰레기는 도저히 변호 못하겠소”라며 변호를 거부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100% 확률로 변호사 없이 혼자 법정에 서게 되고, 99% 확률로 유죄를 선고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맘에 안 드는 사람을 성추행, 성폭행범으로 몰아서 보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 죄로 기소되면 99% 유죄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변호인, 특히 국선변호인은 사건을 가려서 받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 역시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 고객을 변호해야 할 직업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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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살인범을 변호하는

국선변호인을 소재로 삼은

크리스찬 슬레이터, 개리 올드만 주연의

영화 ‘일급살인’

 

일반 대중은 악랄하고 엽기적인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이 사건을 맡은 검사들을 ‘정의의 사도’로 응원한다. 그리고 용의자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에게 이런 비난을 퍼부어댄다. 

 

“어떻게 저렇게 나쁜 놈을 변호할 수 있나?”

 

예를 들어서, O. J. 심슨 사건이 그렇다.

 

O. J. 심슨 사건이란, 유명 풋볼 스타인 O. J. 심슨이 전처 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O. J. 심슨은 ‘드림팀’으로 불리는 변호사들을 고용했고,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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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인 앨런 더쇼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O. J. 심슨

출처-<게티 이미지>

 

O. J. 심슨 사건에서 변호인을 맡아 무죄를 받아낸 앨런 더쇼비츠 하버드 로스쿨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말합니다. 어떻게 저런 악랄한 놈을 변호해서 무죄로 만들 수 있소? 하지만 우리 변호인은 오히려 더 큰 정의를 위해 변호합니다. 이번 재판에서 검찰은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우리 변호인은 이를 지적했을 뿐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지적하지 않았다면, 검찰, 경찰은 잘못된 수사 관행을 계속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유죄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변호인이 최선을 다해 변호할 때 사법제도는 더욱 정의롭고 완벽해집니다.”

 

필자가 경험한 일도 이야기 해보자. 무참한 살인사건이 있었고 살인 용의자가 체포됐다. 검사는 첫 공판에서 종신형을 구형할 의사를 밝혔다. 첫 공판이니만큼 유족들이 다수 재판에 참관했다. 첫 공판이 끝난 후 유족들은 검찰 회의실로 따로 불려 갔다. 거기에는 사건 담당 검사가 아니라, 최선임자인 검사장이 있었다. 유족에게 예의를 갖춘 검사장은 이렇게 당부했다.

 

“살인사건 재판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배심원 재판과 형량이 나오기까지 최소 2-3년은 걸립니다. 그동안 힘들겠지만 되도록 공판 때마다 매번 참석해 주십시오. 법정에 오기 두렵겠지만 스테미나와 체력을 길러주십시오. 법정에 유족이 있어야, 판사가 유족을 의식하고 판결에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2-3년이라고요? 왜 이렇게 재판이 오래 걸립니까? 저 사람을 빨리 처벌하고, 이 괴로운 절차를 빨리 끝낼 수 없습니까?”

 

“중대 살인사건은 그 결과가 사형 아니면 종신형입니다. 따라서, 피고 측 변호사는 법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모든 이의 제기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판사와 검찰은 피고 측의 그 어떤 요구라도 받아들여서 검토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이미 죽었는데, 왜 법정은 살인범의 편을 들어주고, 변호인의 말도 안 되는 요구도 들어주는 겁니까?”

 

“피고를 편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형 및 종신형 사건은 반드시 항소심, 3심까지 올라갑니다. 만약 1심에서 조금이라도 절차상 하자가 발견되면, 그래서 파기 환송되면, 유족 여러분들의 억울하고 괴로운 시간이 몇 년 더 늘어납니다. ”

 

“……”

 

“우리 검찰은 피고 측 변호인의 그 어떤 요구라도 시간을 들여 검토하고 철저히 반박할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항소심에 가서 재판 결과가 뒤집힐 여지가 없습니다.”

 

“……”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괴로운 일이 수도 있습니다. 피고 측 변호사가 피해자의 사생활이나 치부를 들춰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참으십시오. 그리고 상대방 변호사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저런 사람을 미워하지 말란 말입니까?”

 

“그것이 피고 측 변호사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피고를 변호하기 위해 무슨 주장이라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락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법정에서 더 많은 주장을 제기할수록, 우리 검찰이 철저히 반박할 것입니다. 그래야 뒤집어질 수 없는 재판 결과와 처벌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강간범을 변호하는 페미니스트 변호사

 

최선을 다해 피고를 변호하는 의무는 페미니스트 변호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조지타운 로스쿨 교수인 애비 스미스 변호사는 힐러리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성이고, 페미니스트, 법대 교수입니다. 하지만 나는 국선변호인으로서 강간죄 혐의를 받은 남자들을 많이 변호해 왔습니다. 물론 강간 사건이 좋아서 맡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 사상에 따라 강간죄 피고인을 변호합니다.

 

페미니즘은 원래 소외받고 외면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상입니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법이 결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 사법제도 하에는 가난하고 백인이 아닌 사람들일수록 더 많이 기소당하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습니다. 특히 현행 사법제도는 강간범, 아동성애자부터 시작해서 노상방뇨범, 포르노를 다운로드 받은 젊은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성범죄자로 취급하고, 과도하고 부당한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선을 다해 변호한다’는 원칙은 무고한 사람이나 가정폭력 남편을 정당방위로 살해한 아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변호사는 그 어떤 피고인에도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필자의 친구인 검사는 최근 살인사건 재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성 폭행 살인 용의자를 변호하는 젊은 여성 변호사 이야기였다.

 

“아내를 때려죽이고 암매장한 흑인 남자를 기소했죠. 언제나 그렇듯이 여성을 폭행 살해한 흑인 남자는 백인 여성 변호사를 변호사로 고용해요. 그래야 배심원들의 동정을 살 수 있으니까요. 상대방 국선 변호사는 명문 로스쿨을 졸업하고 10년 국선변호인으로 일한 백인 여자였어요.

 

이 사건은 시신도 발견됐고 증거도 너무 많았죠. 재판의 쟁점은 유무죄가 아니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냐, 가석방 가능한 종신형이냐였습니다. 국선변호인은 끝까지 변호했지만 결국 우리가 이겼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흑인 피고는 담담한데, 여자 변호사가 거의 울음을 터뜨렸어요. 우리(검찰)이 이기긴 했지만, 그 국선변호인은 정말로 전력을 다해서 자기 의뢰인을 변호했어요.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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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변호사

출처-<연합뉴스>

 

지난 금요일, 조수진 변호사가 서울 강북을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에서 사퇴했다. 과거 국선변호사로서 성범죄 가해자 변호를 맡아서 열심히 변호한 것을 국민의힘과 언론 및 여성단체 등에서 ‘2차 가해’라고 비난 폭격했는데, 이를 결국 견디지 못했다. 

 

피고인의 인격이나 사건의 경중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변호하는 것은 변호사의 의무다. 특히 흉악범을 변호하는 국선변호사의 노력은 명예나 돈이 아닌 사명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국선전담 변호인을 오래 하면서 가난한 피고들을 많이 변호해 온 조수진 변호사라면 특히 그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선변호인은 대충대충 일하고 선처만 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 소개한 것처럼, 미국에서는 박봉에도 불구하고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는 국선변호인들이 많다. 한국에도 그런 국선변호인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조수진 변호사의 삶을 보면, 그녀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다음부터는 국선 변호사로서 열심히 활동한 이력 때문에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인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