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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4일, 두 인물이 서로 마주 앉아 있다.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마주한 두 사람. 사관학교 동기로 40년 가까이 군문에 몸을 담은 이들이, 이제 한 명은 국회의원으로 또 한 명은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풀영상]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관테크' 논란(오전)_5월 4일(수)_KBS 22-29 screenshot.png

출처 - (링크)

 

김병주 의원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보면서 ‘아이러니’란 단어가 떠올랐다. ‘국방부 장관’에 가까웠던 이라면, 김병주 의원이었다. 대장 출신에, 여당 국회의원이었으며, 지난 대선에서 발 벗고 뛰었다. 여기저기 소문에 의하면 본인도 국방부 장관직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관 자리는 이종섭에게 돌아갔다.

 

세간에선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김병주 의원이 이종섭 장관 후보자를 물고 뜯을 거로 예측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는 원래 좀 부드럽다. 장군까지 올라가려면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문제는 다 털고 난 다음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 1호 국방부 장관이다. 웬만하면 좋게 넘어갈 상황이었다. 게다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을 사관학교 동기 아닌가? 김병주 의원도 치고 나갈 듯이 분위기는 잡았지만, 좋게 좋게 끝을 맺었다.

 

이종섭.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선이었다. 이종섭 예비역 중장이 국방부 장관 후보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18년 만에 중장 출신이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중장 출신이 국방부 장관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이례적인’ 일이었다.

 

의외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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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前 장관이 능력이 있냐 없냐 따져 묻는다면,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그는 능력이 있다.”

 

육사 출신에 40년 가까이 군문에 몸을 담았다. 미국에 유학하러 가서 박사학위까지 땄다. 이후에 미국통으로 분류돼 이런저런 대미정책을 담당했다. 청와대 안보 정책담당관과 국정원 국방보좌관 등 권력의 중심에도 있어 봤다. 똑똑하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올라갈 수 없다.

 

그의 보직을 쭉 살펴보다 보면, 그는 제대로 이력 관리를 한 엘리트 군인이 맞다. 여기서 한 마디 더 보태자면, 그는 야전에서 뛰어다니는 야전 군인 스타일이 아니라 정책통 군인이었다(정책통을 비하하는 의미는 없다).

 

중장에서 예편한 그는, 그대로 ‘잊힌 군인’이 되는 듯 보였다. 더 높은 곳을 바라는 예비역 장성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그는 대외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2년간의 공백 뒤 그는 생뚱맞게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자 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인수위원이 됐으며, 뒤이어 국방부 장관이 됐다.

 

믿을 수 있는(?!) 군인

 

윤석열이라는 ‘개인’에게 있어 믿을 수 있는 ‘군 관련’ 인맥은 누가 있을까? 누가 봐도 김용현이었다. 대선후보들이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하던 시절, 각 캠프의 군 인사들과 접촉을 했던 적이 있다. 후보들의 안보 보좌관들 토론회를 준비하던 시절. 윤석열 캠프 쪽 군 인사를 확인하자,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대답했다.

 

“김용현 예비역 중장이 윤석열 캠프 쪽 안보 파트를 맡고 있을 겁니다.”

 

이때 김용현 예비역 중장을 섭외하려 했는데, 김용현 중장은 자신 대신 이종섭 중장을 추천했다.

 

“내 후배지만, 정책통으로 비상한 친구다.”

 

캠프 내에 있던 이종섭 예비역 중장을 추천했던 게 김용현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면, 국방부 장관은 김용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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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경호처장

출처 - <대통령실>

 

준장, 소장, 중장을 모두 1차 진급한 육사 38기의 에이스 김용현. 정치적 변수가 없었다면, 그는 대장이 됐을 수도 있었다. 1차 대장 진급 때, 한 번 물을 먹었는데(박근혜 정부 당시 군 인사는 워낙 ‘특이’해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김용현도 임호영에게 밀려 1차 진급에서 밀렸다), 1년을 기다려 다시 한번 대장을 노렸다. 하지만,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예상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싹 물갈이가 된다. 문재인 정부의 육사 출신 힘 빼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김용현은 대장이 되지 못하고 옷을 벗는다.

 

그리고 4년 뒤. 김용현은 윤석열 캠프에 들어가 외교 안보 파트를 담당한다. 툭 까놓고 말하자. 김용현은 윤석열이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군 인사였다. 그는 윤석열의 고등학교, 충암고 1년 선배였다. 학창 시절에 큰 교류가 있는 건 아니었고, 군대와 검찰은 거의 접점이 없는 직업군들이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찾는 건 고등학교 동문이었다.

 

실제로 김용현은 전역 후 윤석열과 인연을 이어나갔고,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또 캠프가 꾸려지자, 윤석열 캠프 안보 파트의 핵심이 되었다. 이때는 모두 이렇게 예상했다.

 

“김용현이 국방부 장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인물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대신, 김용현은 대통령 경호처장이 되었다. 장관급이 아닌 차관급인 경호처장이 된 이유가 뭘까? 이 당시 2개의 시나리오가 돌았다.

 

1. 17사단장 당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경호처장으로 갔다.

 

참고로, 17사단에서 병장이 익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병장이 후임을 구하고 죽은 것으로 조작했었다.

 

2.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경호를 맡기기 위해서.

 

뭐가 진실인진 모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믿을 만한 ‘군 관련 인맥’은 경호처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군인

 

이종섭 출국길 포착‥취재진에 _왜 이렇게까지_ (2024.03.11_뉴스투데이_MBC) 1-27 screenshot.png

출처 - (링크)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보냈을 때, 들었던 떠올랐던 첫 번째 생각.

 

윤석열 정부는 이종섭을 믿지 못하는구나.

 

그를 믿는다면, 이종섭을 그리 급하게 호주로 보내지는 않았을 터다. 공수처의 수사망이 서서히 조여 오는 이때,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는 이종섭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다면?

 

이종섭의 이력을 보면, 그가 윤석열에게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다. 장세동처럼 전두환을 대신해 감옥에 갈 충성심을 기대할 수도 없다. 여기서 성품이나 인격, 신념 등을 언급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를 두고 ‘신념이 없는 군인’이라는 세평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신념’을 말하는 것도 우습다. 보이지 않는 신념이나 인격을 말하는 것보다는 그의 ‘경력’을 살펴보는 게, 그의 성향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국방부 국제협력관실 대미정책총괄담당

 

국방부 한미동맹TF 근무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안보정책담당관 (행정관)

 

국가정보원 국방보좌관

 

몇 개만 뽑아 봤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정책통이다. 야전 군인이 아니라 데스크에서 전쟁을 치르는 인물이다. 군인이라기보다는 관료에 가깝고, 정무 감각이 단련될 수밖에 없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인물이다.

 

야전에서 지휘하며, 부하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겠다는 야전형 군인이 아니라, 책상 위에서 전투에선 져도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는 정책통 군인이다.

 

또 한 번 말하지만, 참모나 전투지원, 정책통들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전장에서 싸우는 것만이 군인의 임무가 아니며, 후방에서 전투지원을 한다고 비겁한 군인이 아니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형 군인이며, 참모에 특화된 인물이다. 덕분에 정무 감각도 뛰어나다. 아니라면, 그의 이력을 설명할 수 없다. 그가 거쳐 간 보직들은, 정무 감각이 없다면 일하기 힘든 곳들이었다.

 

그가 채수근 상병의 조사보고서를 처리하는 과정만 봐도 그의 정무 감각과 일 처리 방식을 알 수 있다. 그가 채수근 상병 사건의 조사 보고서를 받은 게 7월 30일. 이때가 일요일이었다. 아, 요일을 잘 기억하길 바란다.

 

이종섭 장관은 다음 주 출국을 준비 중이라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사보고서를 일요일에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조사보고서를 받은 게 아니라는 것. 해병대 사령관, 해군 참모총장, 그리고 수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대령이 이종섭 장관을 찾아갔다.

 

박정훈 대령이 수사 보고를 하는 자리에는, 이종섭 장관 혼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국방부 정책실장, 대변인, 보좌관 등이 참석하고 있었다. 박정훈 대령의 보고를 들은 이종섭 장관은 같이 있던 해군 참모총장과 대변인, 참모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의 스타일이 나온 거다. 그는 저돌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야전 지휘관이 아니라, 참모들의 의견을 구하고 돌다리를 두드려가며 건너는 관료형 스타일이었다. 좋게 보면 치밀한 것, 나쁘게 말하면 보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해군 참모총장과 참모들은 박정훈 대령의 조사보고서에 문제가 없었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제야 이종섭 장관은 수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대령에게 고생했다며 덕담을 건넸다. 그리고 결재했다.

 

채수근 상병 사건은 여기서 매조지가 되었다. 관료형 군인이며, 정무 감각이 뛰어난 이종섭 장관이 몇 번이나 의견을 구한 뒤에 결재했으니, 절차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해군 참모총장이 결재해서 올린 것이니, 해군과 해병대 쪽에서도 행정적으로 ‘깨끗하게’ 처리한 문제였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 측, 장관·참모총장·사령관 이첩 보고 결재 문건 공개 _ YTN 0-22 screensho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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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확인 과정과 직전 결재자의 의견 청취, 참모들의 의견까지 모두 취합해 결재했다. 수사를 담당한 박정훈 대령의 브리핑도 당연히 참고했다. 절차상으로 보면 완벽했다. 더구나 ‘일요일’이었다. 사안의 중대성을 알고 있고, 장관 일정상의 문제로 휴일에 참모들과 지휘관들이 다 모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심쩍음’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다음날 번복한다.

 

“결재할 때도 확신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

 

윗선의 지시인 거냐는 질문에도, 단호히 답했다.

 

“외압은 없었다.”

 

7월 30일 일요일, 조사 보고를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특이한 점은, 7월 31일 이종섭 장관은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즈벡에 가서 “우리나라 무기 괜찮아.”라며, 세일즈 외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하고, 해병대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즈벡으로 날아가서도 그는 끊임없이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 연락을 취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단 하나.

 

장관보다 높은 누군가의 명령이 있었다.

 

그는 하루 전 자신이 결재한 사실을 잊은 것처럼, 채수근 상병의 수사 과정을 롤백하려 했다. 그는 위에서 시키면 하는 존재였다. 상명하복의 결정체인 군문에서 산 지 40년이 넘고, 권력의 핵심부에서 권력의 속성을 지켜보기도 했던 인물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그게 이종섭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이종섭이 두려웠다. 이종섭이 입을 열 것 같았다.

 

이종섭의 지난 이력과 행보를 본다면, 군인이라기보다 관료였다. 수사가 들어오고, 주위의 압박이 거세진다면, 그는 입을 열게 뻔했다. 결국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호주로 보내버리자.”

 

만약 우리가 흔히 접하는 조폭 영화나 정치영화의 문법이라면, 이 대목에서 살인멸구(殺人滅口)가 등장했을 것이다. 영화를 너무 봤나.

 

[오늘 이 뉴스] _결국 내 지시 어겼다고 정훈이 엮을 것_..적중한 해병대사령관의 '예언' (2023.09.25_MBC뉴스) 6-22 screensho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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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입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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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종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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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온 정보는 차고 넘친다. 앞뒤 정황이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이종섭 장관이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남은 건 이종섭 장관이 그간의 상황을 자백하는 것밖에 없다. 그의 이력과 성격, 이제까지의 행동을 보면 그러할 것 같다.

 

안타까운 건 윤석열 정부의 행보다. 바이든 날리면 사건 때부터 느끼는 거지만, 윤석열 정부는 ‘수령 무오류설’에 빠져 있다. 이제껏 윤석열 정부에서 문제가 된 사건들을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었다. 그냥 사과하거나 정정하거나 하면 될 문제들. 애초에 잘 알아보고 입을 열지 않았다면 무난히 넘어갔을, 그저 그런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 일들이,

 

윤석열은 틀리지 않았다.

 

라는 결론이 덧씌워지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거다. 안타까운 건 이미 국민들은 윤석열이 틀렸다는 것, 잘못했다는 걸 안다. 그저 서류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나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은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에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만, 그저...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