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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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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운영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우리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변화하며, 그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경험한 것이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까지, 김정은과 트럼프는 서로 핵 단추의 크기를 자랑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끌어올렸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인 아베가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에 저지른 만행을 부정하는 극우적 발언을 계속했지만, 몇 년 만에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가 함께 만나며 긴장이 순식간에 완화되었다. 그리고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지역의 땅값이 들썩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모든 나라에 똑같이 내려진 전 지구적 숙제인 ‘코로나19’였지만, 한국은 국가 시스템의 운영 능력과 국민의 협조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대응해, 외국의 주요 매체에서 대한민국을 모범사례로 다루기도 했다. 또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시며 공군 호위 편대의 조종사들은 경례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당시, 그동안 한국 정부를 도왔던 특별기여자와 그들의 가족을 구출해 한국으로 데려온 다음 날. 나는 외국인 직원들과의 회의에서, 그들이 자기 나라 언론에 보도된 ‘미라클 작전’을 언급할 때,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어, 우린 원래 그랬어, 당연한 거 아냐?"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속으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대통령은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 당당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A급 참모들이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5년 중에 아주 잠깐은,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선진국에 산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젠 먼 옛날 일이지만.

 

퇴행

 

제20대 대통령이 취임한 후, 우리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적게는 몇 년 전, 길게는 수십 년 전에 이미 경험했던 일을 다시 겪고 있다. 나이가 어려 세상 경험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새로운 경험일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며 세상을 구경한 중년의 입장에서는 군대를 다시 가는 것만큼이나 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이 많다.

 

한국 사회는 수십 년 동안 과거의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들은 많이 개선해 왔다. 정권에 따라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다르기도 했고, 강약과 속도 조절은 있었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많은 것들이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개선되는 추세가 이어져 왔다.

 

그 결과, 과거에 범죄가 아니었던 규모의 식사 접대나 ‘쪼만한 선물’은 ‘뇌물’로 규정되었다. 어떤 사안은 범죄까지는 아니어도 지양해야 하는 행위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과거의 나빴던 모습 그대로 다시 등장했다. 이미 수많은 논의 과정을 통해 합의되고 개선된 많은 것들이, 그것이 개선되기 이전의 나쁜 상태로 돌아가고 있으니, 이것은 퇴행이다.

 

미적분을 풀던 학생이 말을 겨우 하는 수준이 될 때 퇴행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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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쪼만한 백'일지, '커다한 핵'일지는 두고 보자고

출처 - <MBC>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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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리나 작동 방식을 모르더라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규교육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대해 충분히 배우지 못하거나 잘못 배운 채로 사회에 나온 사람이 특별히 따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사회를 자신이 경험한 수준에서만, 보이는 대로만, 또는 누군가가 보여준 대로만 단편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무지에서 벗어나고 내가 사는 사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바쁜 삶을 살아야 하므로, 대부분은 언론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살아간다.

 

내가 수십 년 동안 관찰한 바로는 한국에서 자신이 보수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 나라가 구성된 원리나 작동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대부분은 열심히 돈을 벌고 기득권이 되는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별도의 공부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경험과 누군가가 보여준 단편적 정보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주로 나이가 많거나, 가진 돈이 많거나 혹은 기득권이 커서 자신이 틀린 생각과 말을 해도, 주변으로부터 질타를 받거나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을 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로 무지한 기득권 엘리트가 되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무지한 엘리트가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간다면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정치의 구조상 기득권 엘리트가 아니면 정치 리그에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그들이 정치를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들이 현장에서 겪은 전문성을 이용해 국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수정하거나 행정부를 감시해서,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지는 방향으로 개선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 보수 엘리트는 자신의 분야에서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자신의 다음 ‘진급 코스’로 생각한다. 사회에 관한 공부가 전혀 안 된 상태로 정치에 뛰어들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긴다.

 

사회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자신이 해왔던 것, 자신이 본 것 또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만을 정치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가상 세계

 

정치는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높은 철학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정책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매우 복잡하고 지루하며 어려운 일이라,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 제도의 역사적 맥락,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정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능력 부족은 국가 전체에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려가며 군부독재와 싸우던 시절. 국가고시에 합격해 기득권을 누리겠다며 세상에 관심을 완전히 끊고, 당구치고 술 마시다 법전을 열심히 외워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검사, 판사, 관료가 되었다. 사회에 대한 경험도 없이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를 차지한 그들이 출근하면 소파 앞 테이블에는 각종 보수 찌라시가 놓였을 터. 그때부터 그들은 그 찌라시의 허술한 논리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렇게 만들어진 일종의 '가상 세계'가 그들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틀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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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래퍼 곡선에 의한 부자 감세 정책을 펼쳤다

현재의 세율이 저 곡선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대체 무슨 수로 아나...

 

처음에는 그러한 잘못된 세계관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조직에서 오래 있다 보면 그 선배들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출세할 테니, 결국 자연스럽게 젖어 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조직에서 자신에게 말대꾸할 사람이 없어지는 정도가 되면, 아예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는 단계까지 간다. 그게 스스로 너무 그럴듯해서 견딜 수 없는 단계가 되면, 언젠가는 결국 그것이 말로 다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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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망언 정리

출처 - <민중의 소리> 

 

연극

 

사회를 편협한 방식으로 받아들인 보수 엘리트가 정치에 뛰어들어 권력을 잡으면, 그때부터 진짜 현실 세계를 맞닥뜨리게 된다. 애초에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었던 이들은, 정치를 혐오하는 언론이 보여주는 겉모습만 보았다. 스스로 창조한 상상 속 나라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에서 그들과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0.7% 더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을 얻었다.

 

권력을 잡은 후, 현실 세계가 그들이 수십 년 동안 한국언론을 통해 만들어 왔던 가상 세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왔다. 틀린 답을 들고 친구들끼리 서로 맞춰 보며 정답이라고 좋아했는데, 막상 성적표를 받아보니 엉망진창인 현실을 맞닥뜨리며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되면 말 한마디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폼 나게 의전 받고, 맛있는 거나 먹으면서 외국 돌아다니고, 국정이야 어차피 참모들 임명해 놓으면 알아서 다 하는 거니까 아무나 해도 될 것 같았을 거다. 친한 친구들 데려다 자리 하나씩 나눠줘도 되고, 고속도로 노선을 좀 바꾸더라도 딱히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당 지도자를 때려잡고, 측근 비리가 터지면 연예인을 때려잡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동안 한국언론이 그들에게 보여준 대통령들은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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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그 자리에 가 보니, 현실은 달랐을 것이다. 뭘 해야 하는지,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이거 해야 한다... 저거도 해야 한다… 저건 하지 말아야 한다… 요구사항이 많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고, 뭐든 하긴 해야 할 텐데 잘 모르겠으니, 그동안 머릿속 가상 세계에서 그려왔던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한 것 같다.

 

그들은 지금 국가권력을 이용해 국정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국가권력이라는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행정부는 배우들로 채워졌다. 그나마 대본이라도 있으면 뭘 하려는 지 예측이라도 하는데, 쪽 대본조차도 없는 즉흥극이다. 연기라도 잘 하면 그나마 덜 짜증 날 터인데, 이제 중학교 연극 동아리에도 못 들어갈 수준이다.

 

그런 인간들이 그냥 본인들 상상 속에만 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즉, 국정을 연기하는 가짜만 있고 실제로 국정을 수행하는 진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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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재밌기라도 하지...

 

애초부터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보수 엘리트들이, 자기 상상에만 존재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즉흥 연기를 한다. 메시지의 내용이야 뭐가 됐든 상관없고, 노래를 불러도 상관없다. 뭐가 어찌 됐든 비슷한 그림만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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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 엘리트의 가상 세계속 정치인의 이미지와 실제 만들어진 그림

 

가상 세계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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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엘리트의 가상 세계 속 정치인은, 시장에서 뭘 자꾸 먹는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어묵을 먹는 모습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한다.

 

정치인은 선거철이든 아니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집마다 방문해서 초인종 누르는 것은 불법이고, 아파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어려우니, 사람이 많은 지하철역이나 시장을 간다.

 

시장에 가면 같이 다니는 당직자나 언론사 직원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영업을 방해할 수 있으니, 점포에서 인사하고 뭐라도 사야 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길거리 음식을 마주치고, 그중에 서서 간단히 먹고 지나갈 수 있는 어묵을 먹는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을 모른 채, ‘정치인들은 선거철에 어묵을 먹는다’고만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오직 언론매체에서 보여주는 어묵 먹는 사진 한 장만 달랑 보고 정치인이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장에 가는 게 아니라, 단순히 먹는 사진을 찍으러 가서 정치인 흉내를 낸다.

 

폼 나는 '병풍'이 있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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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그들이 최근에 보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가상 세계 속 정치인과 서민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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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은 연탄을 얼굴에 바르고, 생닭을 손을 만지며, 스타벅스는 못 간다

 

‘선거철이 되면 여야 할 것 없이 현실성 없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다’는 내용의 기사는 수십 년 전부터 계속 있었다. 과거에는 진짜 현실성 없는 계획이 많았다.

 

80년 전두환의 국보위는 전국 주택 수가 530만 호였던 시절에 '500만 호 건설'을 내세웠다. 87년 대선 때 노태우는 ‘주택 200만 호 건설’ 공약을 내세웠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선거 때문에 쏟아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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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가 어중간해서 낙착된 노태우의 200만호 공약

 

그런데 그런 걸 지금 다시 들고나왔다. 어차피 정치를 하려고 나온 게 아니라, 그냥 상상 속의 정치인 흉내를 내는 거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실성 없는 무리한 공약도 오랜만이지만, 여당을 지원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까지 나서서 급조된 정책을 마구 던지는 ‘관권선거’라는 용어도 참 오랜만이다. 물론, 과거의 다른 정부에서도 그런 측면이 있는 정책이 일부 있었지만, 적어도 원래 준비해 왔던 계획을 발표하는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예산이나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없이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은 전두환 이후로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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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의 공약 남발

 

프레임 씌우고 싶은 것을 포털과 언론에 흘려주면, 관권선거에 대한 비판 대신에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속보], 또는 [단독]이라며 퍼 나르는 건 특수부 스타일인지 모르겠다. 행정부가 던지는 공약이 지켜질 수 있는지 언론이 다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는다.

 

이제 이런 거 그만하자고, 수십 년을 떠들고 싸워서 개선했는데, 수십 년 전으로 순식간에 돌아갔다. 미적분을 풀던 학생이 말을 겨우 하는 수준으로 퇴행했다. 그건 분명히 큰 사고를 당했거나 큰 병에 걸린 경우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때 멋있던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떤 사고를 당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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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 엘리트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공약

 

키치(Kitsch)

 

미학 개념 중에, 고급문화를 흉내 내려는 저급문화를 일컫는 ‘키치(kitsch)’라는 것이 있다. 명화를 흉내 내 그림, 유럽의 성을 본떠서 만든 결혼식장이나 모텔의 외부 장식처럼, 겉모양이 얼핏 비슷하게 보이지만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이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베껴낸 싸구려를 ‘키치’라고 한다. 박구용 교수의 철학적 해석으로 보면, 이렇게 거칠게 요악할 수 있다.

 

'똥 쌌으면서 똥 안 싼 척하는 것'

 

하여간 그런 게 있다(자세한 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월말김어준 밀란 쿤데라 편)>에서 확인). 부잣집이 부러워, 그들의 원목 가구를 흉내 내서 합판으로 똑같이 만들고, 기와집을 흉내 내서 양철판으로 똑같이 만들고, 멋진 현판을 종이에 복사해서 붙여 놓는 수준의 저급한 것을 키치라고 한다.

 

그것의 저급함을 인정하고 만족을 얻는다면 그 나름의 예술적 의미가 있으니, 그것이 하나의 예술 장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합판이 아닌 척하거나 양철판이 아닌 척하면서 대단히 고귀한 척한다면, 그것은 그냥 구역질 나는 ‘싸구려’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이 취임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18개월 동안, 그들이 해 온 것들은 국정이 아니라, 그들이 상상했던 정치인의 모습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흉내라도 잘 냈으면 그나마 못 본 척하며 견디겠지만, 흉내조차도 너무 어설프고 후진데, 정작 자신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무능해서 봐줄 수가 없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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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는 다른 것에서 공통점을 찾는 것

한쪽은 그냥 기념사 말고 노래나 한 곡 하는 게 나을 뻔했다

 

진짜는 가짜가 아무리 흉내 내도 따라갈 수 없는 진짜만의 느낌이 있다. 가짜가 진짜를 아무리 열심히 흉내 내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얼핏 비슷하더라도 가짜라는 걸 들키는 순간, '싸구려의 저열함'으로 인해 우습게 되는 거다.

 

그런데 무려 대한민국이라는, 한때 부분적이나마 선진국이었던 나라의 시스템이 키치로 뒤덮여 퇴행하고 있다. 고작 이따위 싸구려를 보자고 그동안 우리 국민이 남의 나라에서 간호사로, 광부로, 군인으로, 노동자로, 사회운동가로, 정치가로 자신의 청춘을 희생하고 그 억압을 견뎌낸 건가 하는 좌절감이 든다.

 

진짜를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다. 진짜를 원하는 사람은 진짜를 가질 자격이 있어야 한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가짜를 갖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로 인한 결과는 고스란히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책임이다.

 

우리는 잠깐이나마 민주주의라는 명품을 가졌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명품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명품이었다는 걸 알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디서 비슷하지도 않은 걸 들고 와서 들이밀면서 사라는 장사꾼이 있으면, 그딴 거 말고 똑바로 된 걸 가져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가게로 갈 것인지, 단골이라며 그 쓰레기를 돈 주고 사고 제대로 작동했으면 좋겠다고 기도나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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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찰한 바로는, 이 나라에서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짜를 알아보는 능력이 없거나, 그동안 가짜에 익숙했거나, 또는 스스로가 천박한 가짜여서, 진짜를 가질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마 그들은 진짜를 알아보고 선택하는 데 실패할 거라고 본다.

 

아마도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그 이전보다 높을 것 같다. 동시에, 어쩌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는지, 비교적 정확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명품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명품과 짝퉁의 차이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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