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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거 그리고 배신의 정치

 

배신의 정치. 이는 달리 말하면 철새 정치라 불러도 무방하다. 총선이 다가오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철새정치인들을 '솔찬히' 만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국회부의장이다. 지난 2월 19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김영주 부의장은 서울 영등포에서 4선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중진 의원이다. 그녀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 주요 요직을 경험한 정치인이 선거를 채 2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어쩜 이리 쉽게 정당을 바꿀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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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4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김영주 국회 부의장에게 국민의힘 입당식에서 당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출처-<서울신문>)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 김영주 부의장과 같은 인물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피닉스' 이인제다. 그러나 그는 현재 정치 1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현재 성남 분당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안철수 의원을 살펴보자.

 

2011년 무렵 한국 정치는 물론 한국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숨에 유력 정치인으로 발돋움한 안철수. 불과 약 10년 사이에 그는 3번 연속(19, 20, 21대)으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3선 의원이 되는 동안의 당적 변동 기록을 그의 지지자들 중에서조차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2013년 노원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안철수, 그 이후 그의 정치 행보는 화려하다. 2013년 무소속 →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 국민의당 창당(2016년) → 바른정당과 통합(2017년) → 국민의당 창당(2020년) → 국민의힘 입당까지. 이러한 안철수에게 정치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그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연 영국, 독일,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정당정치에서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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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적이 너무 많이 바뀐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1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상민 무소속 의원을 만나고 있다(출처-<연합뉴스>)

 

2. 어느 사적인 인간의 초상

 

돌이켜보면 줄곧 의사였던 안철수 의원만큼이나 단숨에 유력 정치인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평생 검사만 했던 현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는 1994년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 2021년 검찰총장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검찰 공무원이었다. 즉, 2022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정당 활동을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한국 정치에 등장한 것은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했던 두 발언이 결정적이다.

 

"검사가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이지 검사입니까?"

 

"전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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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당시 윤석열 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명언을 남긴다

출처-<SBS>

 

이 두 발언으로 일약 스타 검사가 된 윤석열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급기야 2019년 6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에까지 이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정치 고관여층의 독자들은 이후 윤석열 행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이었던 공직자가 불과 1년 만에 자신을 임명했던 대통령과 정당을 공격하며 국민의힘 당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유시민 전 장관의 표현을 빌리고 싶다.

 

"어느 사적인 인간의 초상"

 

2022년 발간된 <이해찬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의 발문에서 유시민 전 장관은 이해찬이란 개인을 '어느 공적인 인간의 초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해찬은 예나 지금이나 공적(公的, public)인 사람이다. 스무 살의 꿈조차 사적(私的, private) 욕망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에 들어간 1971년부터 6월항쟁이 일어난 1987년까지의 꿈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였다."

 

윤석열이라는 개인은 철저하게 이와 대비되는 '어느 사적인 인간의 초상'이다. 물론 그가 1994년 처음 검사로 발령받았을 때는 어떠한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자리할 때부터 그의 꿈은 '사적인 욕망' 그 자체였던 듯하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등장하는 얼마 전 조국 당 대표의 인터뷰가 흥미롭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은 자신의 검찰총장 인사와 관련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조국 당시 민정수석을 두고 대통령실 비서관들에게 '조국은 한국의 케네디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특정 권한(예. 검찰총장)을 수단으로 특정 목적(예. 검찰개혁)을 달성하고자 하는 '공적인 자세'가 아닌 절대적으로 '검찰총장'이라는 자신의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윤석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정당정치는 왜 최근 김영주 국회부의장, 안철수 의원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윤석열과 같은 괴물을 낳았는가?

 

3. 인재 영입에 혈안이 된 한국 정당정치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에서 한국의 거대 정당들은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한다. 이 인재 영입 과정이 어느새 유권자들에게는 하나의 정치적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유권자에겐 과연 이번에는 정당들이 어떤 스타를 영입하는지를 보는 것 자체가 총선에서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과연 정치는 무엇이며, 정당은 무엇인가. 정당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다. 이처럼 정당의 제1목적은 '정권 창출'이다. 이를 위해 정치적인 주의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그 정치적 정체성은 자신의 사적 욕망이 아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공적인 목표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당정치는 선거할 때만 되면 그러한 정치적 정체성보다는 그저 유명하고 인지도가 있는 사람을 데리고 오는 인재 영입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러한 인재 영입이 일반 시민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와 정당 차원에서의 투입(인풋) 대비 산출(아웃풋)을 고려하면 경제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정치적 정체성이 결여된,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 정치를 도구로 인식하는 영입된 인재들이 결국엔 그 정당에 비수를 꽂는 일이 한국 정치에서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2016년 더불어민주당으로 인재 영입된 양향자 씨는 이번 22대 국회에서 개혁신당의 옷을 입고 경기 용인시갑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조정훈 씨는 21대 국회에서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했다. 그런 그가 이번 22대 선거 직전에 국민의힘 인재 영입 1호가 되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마포구갑 국회의원 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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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 개혁신당 양향자 후보가 국회에서 이준석 대표 등과 함께 용인 처인구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출처-<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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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국민의힘과 합당을 선언한

조정훈 전 시대전환 대표

출처-<한겨레>

 

4. 인재를 육성하는 유럽의 정당정치

 

유럽의 정당들은 인재 영입을 하기보다 인재 육성을 한다. 지난 2021년 한국정당학회가 발표한 연구보고서 <정당의 청년 정치인 교육 및 충원 시스템 연구:해외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과 같은 국가들의 주요 정당들은 청년 조직 가입연령이 법정 투표 연령보다 낮았다고 분석했다. 즉, 이 국가들에서 법적으로 투표를 할 수 있는 연령은 18세지만, 주요 정당들에 가입할 수 있는 나이는 평균 15세다. 이에 대해 보고서에선 "제도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부터 청년들에게 충분한 기간 동안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라며 "학습을 통해서 준비된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해 투표와 다른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2014년도에 스웨덴의 휴양지인 고틀란드에서 7박 8일간 진행된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 참석하면서 이러한 보고서의 분석을 피부로 느낀 경험이 있다. 모든 시민이 누구나 특정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다는 점, 스웨덴의 모든 정치인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어떠한 대본도 없이 당 대표가 토론하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등 이 정치박람회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그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14-5세 정도 되는 청소년들이 박람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각자 자신의 주제를 담은 신문을 만들어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그 장면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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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39살과 43살에 국가 지도자가 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1977년생)과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는 총리(1971년생)

(출처-<AP·뉴시스>)

 

이를 두고 함께 스웨덴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교수는 이 같은 장면은 스웨덴 정당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일러주었다. 예를 들어, 정당들은 여름 또는 겨울 방학 기간에 청년 당원을 대상으로 캠프를 진행하고, 이 캠프에서 국가, 미래, 정당 등과 같은 주제를 두고 심도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렇게 지속되는 정당의 인재 육성을 통해 미래 그 정당을 이끌어 갈 리더가 탄생한다고 귀띔 해주었다. 이런 인재 육성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바로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사민당)의 '봄메쉬빅(Bommersvik)', 즉 청년정치학교다. 인재 육성을 통해 기존 당원들과 교류하며 그 당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다.

 

5. 인재 영입의 정치가 낳은 괴물, 윤석열

 

슬프지만, 다시 한국의 정당정치로 돌아오자.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인재를 영입했다. 기존의 거대 양당에서 공천받지 못한 자들이 '새로운' 또는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신당을 창당해 선거에 임하고 있다. 너무 익숙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정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정치다. 그 이유는 그렇게 정치적 정체성이 결여된 후보들이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 정당이라는 공적 도구를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한다. 불과 4개월 전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불과 3개월이 지난 11월 5일, 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결정된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기에 정치를 배우고, 정치적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 당시 국민의힘은 당내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론에 호응할 만한 정치인이 보이지 않자, 전혀 검증이 되지 않는 그러나 국민들에게 호응받을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한 것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 사민당(좌파) 출신의 각료가 탈당을 해서 4개월 만에 기독민주당(우파)에 입당하고 3개월 만에 당수가 되어 총선을 치른다는 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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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아 대파값을 점검하고 있다(출처-<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은 인재 영입의 정치가 낳은 괴물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토론이 불가능한 대통령, 시민들의 삶을 모르기에 875원짜리 대파를 두고 합리적이라고 평하는 대통령, 정치는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임에도 아직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는 대통령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상도 중요하지만 현실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인재 영입을 해야만 하는 현재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어떤 정당이 인재를 육성하는지 유권자들이 지켜봐야 한다. 더불어 단기적으로는 영입된 인재가 어떤 후보인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총선 이후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서 윤석열과 같은 괴물을 '솔찬히' 만나게 될 것이다.

Profile
이름은 박민중입니다.
생일은 3.1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