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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자리 비밀번호와 검찰개혁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로를 향해 ‘극단적’이라는 공격을 주고받았다. 

 

물론 선빵은 한 위원장이 날렸다. 

 

조 대표가 ‘검찰개혁’, ‘검찰독재 종식’을 내세운 비례정당을 만들어 돌풍을 일으키자 한 위원장이 조 대표를 향해 10년 전 해산된 ‘통합진보당 후예’들까지 들먹이며 호기롭게 공격을 가했다. 한 위원장이 정확히 뭐라 했는지 그의 ‘워딩’을 살펴보자. 

 

“여러분은 종북 통진당 후예들만 극단주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조국당이야말로 역시 마찬가지의 극단주의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죄를 저지르고, 그리고 그것이 단순 의혹이 아니라 사법 시스템에 의해서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정치의 목적을 사법시스템에 복수하는 것이라고 대놓고 천명하고 있는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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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뭐 이랬더랬다. 평소 윤 정권 인사들이 극단의 언어를 자주 사용하는 건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바 그냥 무시하려 했으나, 무려 집권여당 수장이 아닌가. 그의 발언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리하여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참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료 시민’이 되고자 했던 ‘그냥 시민’들도 돌아설 판이다.

 

현시점에서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은 30%p 정도로 상승세를 보이며, 정당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여론조사도 있을 정도이다. 관성처럼 기존에 지지하던 정당을 계속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 창당한 정당이 이렇게나 많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데 ‘극단주의’라고 공격하니, 이에 대해 조 대표는 이렇게 답하며 돌려줬다. 

 

“그 말을 한 한동훈 비대위원장부터 극단이란 말에서 제가 역으로 묻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국민 여러분 중에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27개. 극단적으로 긴, 극단적으로 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갖고 계신 분 몇 분 계세요? 27개? 대부분 4개, 보통 한 6개 정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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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본 기자도 극단주의에 대해 ‘살짝 전문가’라고 자부하는바, 한 위원장에게 ‘극단주의’라는 게 정확인 무엇인지 알려줘야 할 것 같다. 

 

무엇이 ‘극단’인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얼핏 알고 있다. 

 

‘조금 쎈 발언, 누군가를 향한 강한 비난 또는 욕설 더 나아가서 혐오 발언, 증오 발언’ 정도를 극단주의라고. 

 

아니다. 이런 발언들은 그냥 분풀이 또는 신경질적인 발언, 혐오 표현, 욕설, 증오 표현이라고 해야 맞다.  

 

그렇다면 ‘극단주의(Extremism)’ 또는 ‘극단주의적 발언(Extremism speech)’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일까?

 

‘극단주의’라든가 ‘극단주의적 발언’이라 함은 사인들 간의 비유적 표현으로 쓰는 ‘극단적’이라는 수사와는 다르다. ‘극단주의’는 사회에서 허용되는 정치적 스펙트럼 안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성향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가시적으로 펼치면서 허용되지 않는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을 말한다. 

 

현대의 국가들은 대개 민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니, 

 

-민주제 안에서 허용되는 자유의 영역을 넘는 독재

-민주주의에 모순되는 권위주의적 행태

 

를 주장하는 걸 ‘극단주의적 발언’이라고 하고, 이들을 ‘극단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와 반민주의 경계를 넘나든다. 

 

누가 약자를 재물로 삼는가

 

그래서 극단주의자들은 대개 신념이 강한 양극단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소수 세력, 내지 광신적인 지지자들과 쉽게 결합한다. 또 이들은 자신들만 옳고, 자신들만이 선이고, 자신들만이 피해를 보고 있는 진짜 약자들을 대변하는 ‘최선’이고 ‘안전한 세력’이라고 주장한다(이 정도면 ‘세뇌’ 내지는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자신들만이 옳기 때문에 자신들과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의 구성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상과 가치들은 반드시 없애야 할 ‘악’으로 규정짓는다. 

 

‘악’은 없어져야 하고 비방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극단주의자에게 혐오란 감정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다. 별의별 사안에서 쉽게 혐오 발언으로 이어지고 이 혐오 발언은 종종 지지자들에게 폭력과 테러를 유발하게 된다.

 

이들의 첫 번째 희생양은 그 사회의 진정한 소수, 즉 약자들이다. 어린이, 노인, 여성, 하층 노동자 계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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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가까운 예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는 성별, 인종, 국가,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상대를 악마화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 이민자들을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주범으로 규정하며 악마화한 후에 이들을 막겠다며 국경에 벽을 설치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반이민 행정명령’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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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현재의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된 이후 ‘노조 혐오’를 부추기고,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등 각종 분야에 대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혐오를 부추긴다. 그 방법이 합당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많은 전문건설업체가 건설노동자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탄원서까지 작성해서 냈음에도 건설노동자들을 ‘건폭’이라고 규정하고 악마화하며 결국, 한 노동자가 분신자살하는 지경까지 내몰았다. 

 

또한 실제 조사 결과는 무시한 채, 젊은 청년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청년들이 ‘실업 급여로 샤넬 선글라스 사서 해외여행이나 다니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손봐야 한다며 악마화했다. ‘시럽급여(달달한 급여라는 뜻)’라고 혐오를 부추기는 용어까지 생산해 내면서 말이다. 그런 발언이 극단적 발언인 것이고, 그런 발언과 공약, 정책의 최고 결단자가 ‘극단주의자’인 것이다. 

 

이런 정치적 극단주의 세력이나 극단주의자들은 대개 포퓰리즘 정당 또는 포퓰리스트이다.  

 

포퓰리즘 정당이나 포퓰리스트들은 일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주장을 하지만, 실상 그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위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자신들만을 위한 주장을 펼치고, 이를 제외한 다수 사람들을 소수로 만들며 진실을 왜곡한다. 대표적으로 종부세 이슈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전제 인구에 2%도 안 되는 상위 계층에만 해당하는 이슈인데, 마치 전 국민에게 무지막지한 세금을 물리는 양 진실을 왜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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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윤석열 국민캠프>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적 극단주의’가 횡행하는 것을 우려하고 이러한 정치적 극단주의가 힘을 확장하는 것을 경계한다. 

 

포퓰리스트가 집권에 성공하면 어떤 불행한 상황이 펼쳐지는지 ‘히틀러(역사상 가장 성공한 포퓰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를 통해 또 수많은 ‘스트롱맨’들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서운 점은 이런 ‘극단주의’의 생명력은 굉장히 끈질기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나치가 아예 없어진 줄 알았으나 나치를 추종하면서 그들이 했던 구호를 공개적으로 외치는 세력이 생겼다. 나치에 대해 그렇게나 철저히 교육하고, 강력한 법을 만든 독일에서조차 말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그것이다. 현재 독일 일부 주에서는 이 당에 대한 해산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도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집권한 이후 헌법재판소 구성원을 바꿔버리고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제도와 장치들을 훼손시켜 민주주의 후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폴란드도 비슷하다. (우리가 걱정할 처지는 못 되는 것 같다만)

 

한동훈의 극단적 발언 

 

한 위원장이 조 대표와 조국혁신당을 향해 ‘극단주의’라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극단주의’의 면모는 사실 한 위원장의 발언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발언이 있는지 왜 그것이 극단주의적 발언인지 짚어주겠다.

 

1. 개딸전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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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한 위원장은 지난 대선 이후 열정적인 이재명 지지를 천명하고 자신들을 ‘개딸’이라고 희화화한 이재명 지지자들을 향해 ‘개딸전체주의’라고 하였다.

 

일단 개념부터가 틀렸다. 전체주의는 국가나 공동체, 특정 사상의 발전을 우위에 두고 개인은 그 전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을 말한다. 오랫동안 정치학계에서 개념 정의되어 온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체주의에 그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 합성어를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틀린 말이다. 마치 ‘동료 시민’이나 ‘공산전체주의’처럼.

 

굳이 이 용어의 목적과 개념을 파악하자면, 이재명 지지세력,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혐오집단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술수(이 또한 실패!)에서 비롯된 혐오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주의는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해도 민주제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허용될 수 없고, 민주주의라는 스펙트럼 안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이런 전체주의를 정치인 팬덤인 이재명 지지자들 ‘개딸’에 갖다 붙인 건 없애야 할,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극단주의자들, 포퓰리스트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2. 운동권 청산 

 

한 위원장은 실상 따져보면 민주당에 몇 남아 있지도 않은 86운동권 인사들이 마치 민주당 주류인 양, 이들이 사회 적폐인 양 ‘운동권 청산론’을 수 차례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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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청산론을 외치며

운동권을 공천한 한 위원장

 

하지만, 운동권을 적폐와 동일 선상에 놓으며 청산론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적폐는 그 사회에서 오랫동안 제도적으로 또 관습적으로 누적되어 구조적인 문제를 유발하는 구습 내지는 악습을 말한다. 상당히 시스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적폐 청산’은 캠페인처럼 쓸 수 있다. 또 이를 실천하기 위해 법과 제도의 수정을 총칭하는 ‘적폐 청산’이라는 용어는 어감이 다소 강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극단주의자들이나 할법한 극단적인 발언은 아니다. 

 

반면에 ‘운동권 청산’은 대상이 특정되어 있다. 

 

더구나 그 운동권 청산은 과거 독재정권 타도에 앞장섰고 그 공로를 시민들에게 인정받아 합법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은 야당 소속 정치인인데. 이를 집권여당의 당대표가 ‘청산’과 ‘타도’의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천명했다는 것은 이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반민주적, 반다원적인 언사라는 평가를 하는 데 있어 어디 한 군데 빠지는 데가 없는 발언이다.

 

3. 민주당 해산청구

 

가장 문제가 되는 협박성 발언이자 민주주의에 ‘회칼 테러급’ 발언이라 할 수 있는 발언으로는 ‘민주당 해산청구’ 발언이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후 하도 얼척없는 발언을 남발하면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바람에 한 위원장이 불과 몇 달 전까지 법무부장관을 역임하면서 국회의원보다도 더 자주 카메라 앞에 서서 쏟아냈던 그의 발언을 잊은 듯  싶지만. 이 발언만큼은 상기해 보도록 하자.

 

국회에서 권한을 남용한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자,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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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법무부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에 위헌정당심판을 청구하면 어떨 거 같으냐… 더불어민주당이 말한 이원석 검찰총장 탄핵이나 저에 대한 탄핵보다 과연 민주당에 대한 위헌정당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더 낮다고 보느냐.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민주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를 들먹인 것이다. 한 위원장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이 사람을 과연 법조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발언이 많은데, 이 발언도 그중 하나다. 법조문도 제대로 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떠든 발언 수준이다.

 

정당해산심판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8조 제4항을 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 될 때에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 위원장이 말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가 위배될 때 정당해산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 둘의 개념 차이를 설명하자면 한참 길어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만, 엄연히 다른 이 두 개념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당해산은 정당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자칫하면 정치적 반대파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핵심을 정면으로 파괴할 수 있어, 보통의 민주국가에서는 제도를 두고 있더라도 극도로 자제하는 게 정당해산이라는 헌법적 수단이다.   

 

그런데 권한을 남용하거나 불법을 저지르고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검사에 대해 ‘민주적 기본질서’를 통해 인사처분 절차(탄핵은 인사절차이지 형사처벌이 아니다)에 돌입했다고, ‘일국’의 국무위원이자 대통령 최측근인 사람이 제1야당을 향해 정당해산을 언급한 것이다. 이런 것을 ‘극단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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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최근에 발언한 ‘비례대표 승계 금지’도 우리 헌법에서 보장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한 극단주의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새삼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 위원장이 본 기사를 볼 일은 없겠으나, 허구헌 날 극단주의를 입에 올리는 한 위원장이 오히려 ‘극단주의자’라 할 수 있는 면모가 많다는 것을 독자들께만이라도 알려야 했기에 떠들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