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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추천58 비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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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가진 돈이 없어 많은 금액을 투자하진 못했지만, 여러 가지 투자기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나름대로 찾아가며 훑어봤다. 가치투자, 기술적 투자, 차트를 읽는 법, 파동이론, 수많은 보조지표와 이론들, 심지어 언론 보도를 기계학습 모델로 분석하여 주가를 예측한다거나, 주가 차트 자체를 기계학습 모델로 예측하는 방법론 등등. 딴지에도 주식이라면 나도 방귀 좀 뀐다 하시는 분덜이 많으시겠지만, 이쪽 세계가 파고들어 보면 끝이 없고 아마도 무한할 것만 같은 이론과 주장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런 방법론들을 시도해서 단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테슬라 차가 너무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사니 주식이나 사자. 아이폰 신모델과 맥북프로 신제품을 갖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주식이나 사자. 그렇게 산 주식이 곤두박질칠 때는 내가 이 돈 손절해서 맛난 거 사 먹고 만족할 가능성보다, 테슬라와 애플이 주가를 회복하고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그냥 내버려두자는 마음으로 존버했다. 여기엔 어떤 논리도 이론도 기술도 없었다. 헌데 오히려 이것이 내 평생 유일하게 주식으로 돈을 번 경험이었다. 안타깝게도 애초에 투자금이 적었으니, 수익액의 규모는 테슬라는커녕 아이폰 사기도 빠듯한 정도였지만 수익률은 수십 퍼센트가 아닌 수백 퍼센트 수준이었다.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때로는 섬세한 분석보다 단순한 직관이 더 적절할 때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느끼기에, 2024년 3월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에는 전통 언론의 이런 접근보다는 단순한 직관이 더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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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표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이 정치판에 역사적인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유시민 작가께서 명료하게 정리해 주셨으니 굳이 덧붙일 말이 없겠다. 사실 수많은 다른 자·타칭 정치평론가들께서 이러쿵저러쿵 다양한 이론과 해석을 갖다 붙이는 모습은 보기에 거북하다. 전통 언론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에서 실상은 동네 복덕방 투전판 수준의 인사들이 모여, 어지간히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 인물 한명 한명의 영향과 상호관계를 들먹인다 든가, 여론조사 결과의 소수점 이하 숫자를 거창하게 분석한답시고 하나 마나 한 말을 얹는 모습들 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전통 언론들의 이런 정치평론은 참으로 쓰잘머리 없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인물들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라며 뽐을 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중요한 인물들이라면 언론에서 다뤘어야 할 터이고, 그렇다면 언론이 제 역할을 안 했거나 그 인물이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여론조사꽃>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자기들 맘대로 취사선택해서 왜곡된 결과를 보이는 여론조사 숫자를 활용했던 이들이 그 숫자를 파고들어 분석을 해봤자, 상한 식재료에서 건강식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꼴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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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조국혁신당은 창당을 한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불과 20일 사이에 조국혁신당은 200억 원을 모금하고, 비례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1위를 달성했다. 온갖 사이다 연설로 조국 대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호감이 날로 커져만 간다. 2월 중순에 조국 대표가 신당 창당을 선언하고서 그 사이 시간 동안 그 어느 전통 언론도 조국혁신당의 이러한 파란을 예측하기는커녕 가능성을 언급하지도 못했다. 실제로 2월 초중순경의 전통 언론 기사들을 찾아보면 대체로 더불어민주당과의 내부균열 및 갈등 가능성을 언급(하는 척 하면서 사실상 그렇게 되길 기원)하거나, 정치 문외한의 무리수 정도의 뉘앙스로 보도했다. 그랬던 그들이 더 이상 그런 스탠스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조국 돌풍, 왜?’라는 식으로 분석을 참칭한, 자기들의 무능함에 대한 고해성사와 같은 기사를 싸지르는 상황이다.

 

‘왜?’라는 말은 조국혁신당의 높은 지지율에 댈 게 아니라, 전통 언론 스스로에게 대야 할 의문부사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알 권리를 책임진다고 자처하고 대중 여론을 비추는 창이라 주장하는 전통 언론 자신들이 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언론이라고 해서 이런 지형변화를 어떻게 예상할 수 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 반박은 미리 반박한다. 왜냐하면 이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항간에서는 조국혁신당의 파죽지세를 과거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선 시절과 비교하곤 한다. 경선을 통해 민주당 후보에 오르고 당선에 이르는 인간 노무현의 그 과정이 지닌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서사, 이것이 조국이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틱한 최근 상황과 비교할 만하다는 점에 일부 공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용상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개월 가까운 경선 과정과 반년을 넘긴 대선 과정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반면 조국혁신당이 가져온 시간, 정치인 조국이 가진 시간은 20여 일에 불과하다. 과연 20일 동안 급격하게 대중의 지지를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을까.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치인으로 등장하자마자 개인의 인기가 아니라 공식적인 정당으로서 이러한 지지율을 바닥부터 끌어올리는 게 가능할까. 처음부터 그에 상응하는 지지를 받고 있었던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시각이 아닐까. 즉, 지금의 지지는 ‘변화’가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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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1이 있다. 이 가설은 전통 언론과 꽤 많은 주류 정치인, 주로 지금 여당에 소속돼있거나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정치인들이 지지하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조국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 가족들의 여러 가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대중들의 노여움을 샀고, 그 노여움은 너무도 커서 당시 문재인 정부 및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도 리스크로 작용했다. 이 가설의 극단적 신봉자들은 심지어 조국 일가 수사 국면이 이어진 대선에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적잖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가설을 바탕으로 현 여당인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더불어민주당이 민심을 잃었다며 조국 일가 수사 및 재판의 과정을 무기로써 활용했다. 또한 민주당 내에서도 이 가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당차원에서 조국에 대한 옹호나, 이례적인 폭압 수사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전통 언론들은 이러한 가설이 마치 타당한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는 듯한 태도로 수많은 논평과 기사를 쏟아내 왔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들은 조국이라는 이름이 여당엔 유리한 무기, 야당엔 불리한 약점이라 여겨왔다.

 

가설 1을 따른다면 조국 대표는 창당 직전까지 다수의 대중, 특히 중도층의 대다수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조국 대표는 바닥에 있던 지지를 불과 20여 일 만에  정국을 뒤흔드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된다. 이는 가설 1 신봉자들에게 커다란 인지부조화를 만든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런 그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구태의연한 분석뿐이다.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감이 조국혁신당 지지로 몰렸다는 둥, 민주당 공천 과정의 잡음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 지지층이 조국혁신당으로 몰렸다는 둥 하는 식이다. 이종섭 사태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감을 만들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반감이 민주당도, 이준석도, 이낙연도, 심상정도 아닌 하필 조국에게 몰린 것에 대한 이유를 대지 않고서, 이종섭 사태가 조국 돌풍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걸 과연 분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치면 대파, 디올 백, 나아가 가발, 하이힐도 조국 돌풍의 원인일까. 또, 전통 언론지들이 ‘잡음’, ‘사천’, ‘친명’이라는 키워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건만, 막상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공정하고 체계적인 혁신이라고 평가받는 이번 민주당 공천이 조국 돌풍의 원인이 됐다는 말을 어지간한 두께의 안면 표피층을 지니지 않고서야 입에 담을 수 있을까.

 

한편 가설 2가 있다. 가설 2는 조국 일가 수사 국면에 대해 상당수의 대중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가설 2에 따른다면 조국이라는 이름은 이 시대의 부조리함을 상징함으로써 여당과 야당 각각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키워드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가설 2를 지지하는 이들은 대체로 민주당 지지층일 것이고, 만일 가설 2가 옳다면 같은 민주당 내에서 가설 1을 신봉하며 조국을 몰아내려 하는 정치인들이 마땅찮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런 인사들은 지금 대부분 민주당을 떠나있거나, 당내에서 아직도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하며 지지자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가설 2로 조국혁신당의 파란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애초부터 조국을 강하게 지지하던 지지층은 조국혁신당의 등장부터 지지 의사를 강하게 밝혔을 것이다. 이후 조국혁신당의 인재 영입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색채라든가, 조국 대표가 보여준 정치인으로서의 강인한 면모를 지속 발견하면서 그에 대한 지지가 명백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측은함과 부당함을 느꼈던 사람들이 더욱 본격적인 지지 의사로 전환함으로써 최근의 놀라운 지지율을 형성했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 설명은, 별로 어렵지 않다. 딱히 세심하게 분석하거나 억지스러운 논리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전통 언론은 절대로 가설 2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더 상승하더라도, 끝내 총선에서 여론조사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보이더라도, 전통 언론은 여전히 가설 1을 바탕으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신통방통한 논리들을 짊어지고 나올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통 언론들에 있어 조국은 대중들의 외면과 지탄을 받았던 인물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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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은 썩는다. 사람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 얼음처럼 가만히 있으면 불과 하루 이틀 만에 욕창이 생긴다. 인간의 세포는 겨우 1년 만에 거의 모두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이 자명한 원리는 물이나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자연계와 인간 사회 모두에 적용된다. 너무 오랫동안 변화 없이 정체된 조직은 반드시 병폐를 드러낸다. 점진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굳어있는 사회가 존속하려면 스스로 개혁하거나 외부의 힘으로 종말을 맞는다.

 

유구한 한국의 역사 속에서, 많은 조직과 집단이 스스로 개혁하여 길을 찾거나 대중의 목소리에 따라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독재자들은 권력을 내려놓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집단들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사례를 우리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 물론 아직 남아있는 병폐들이 많다. 친일 세력의 잔재, 검찰,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전통 언론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었다는 이유로 전통 언론은 스스로 너무 많은 방어논리를 구축했다. 모든 국민이 갖는 ‘표현의 자유’를 자신들의 권리 기반이라 여기면서도, 막상 대중들을 대할 때는 자신들의 피지배 계층인 것 마냥 으스댄다. 자신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게 아무 말이고 할 수 있는 국민의 대변인이라 주장하면서도, 대중들이 쓰레기 기자라는 표현을 쓰면 경기를 일으킨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대중들의 의사를 모으고, 삼권분립을 통해 대중들의 대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체계에 기반한다. 이 가운데 전통 언론은 다분히 정치적인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권력기관의 견제를 받지 않고, 동시에 대중들의 의사를 수렴하는 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채, ‘논조’라는 허울 속에서 아집을 꽁꽁 싸매두기만 한다.

 

그들에게 있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기형적 권력을 방해하는 존재였고 그런 면에서 검찰과 이해를 같이 한다. 두 정부의 말미에 언론이 검찰과 함께 논두렁 시계를 만들어내고 조국 일가를 몰아넣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조국은 앞서 말했듯 대중들의 외면과 지탄을 받는 인물이어야만 했다. 그들은 그런 ‘논조’로 지난 수년을 일관되게 보내왔다. 그들에게 있어 가설 1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이었을 것이다.

 

조국 돌풍을 예상하지 못한 언론인 한명 한명이나 언론사 하나하나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조국혁신당이 창당했을 때 응원하는 마음은 있었을지언정 이런 지지율을 예상하진 못했으니까. 사람이 미래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언론인이더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가설 2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가설 2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각각의 개개인이 어떤 가설을 지지할지는 각자의 자유일 뿐이다. 제3의 가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가설 1이 사실인 것으로 증명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전통 언론이 하나 같이 똑같은 ‘논조’로 조국이라는 인물을 바닥으로 내팽개쳐놓고 이제 와서 자신들의 가설 1이 커다란 도전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설을 검토해 보지 않고서 오로지 가설 1만을 여전히 손에 꼭 쥔 채 볼썽사나운 억지 논리를 이어가는 모습을 옹호할 마음은 없다.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이번 총선 이후 검찰 다음의 개혁 대상은 전통 언론 당신들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