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투표 3일 전인 4월 7일 오전. 강원도에서 급히 상경한 국민의힘 권성동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재명, 조국은 헌정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극단주의세력”이며 “이들이 국회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한다면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극단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오후, 국민의힘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도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 여러분이 정부여당을 질책하고 싶은 심정, 나도 이해한다”며 “하지만 야당이 180석, 200석을 가지고 간다면 정부가 식물정부를 넘어 국회는 탄핵을 운운하는 난장이 되고 말 것이기에 국민 여러분이 최소한의 균형, 최소한의 저지선만은 제발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4선 중진인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의회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구조가 반복돼선 안된다”며 “일하는 국회,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국회를 위해선 여야 균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날인 4월 8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공동선대위원장은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여러분이 일 잘하라고 때리시는 회초리는 달게 받겠지만 회초리가 쇠몽둥이가 돼 소를 쓰러뜨려선 안된다”며 국민을 향해 “개헌과 탄핵 저지선을 달라. 의회 독재를 저지할 수 있는 대통령의 거부권만이라도 남겨달라”고 요청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연일 쏟아내는 메시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조 심판과 더불어민주당의 200석을 저지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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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때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 방 한가운데에 뭔가 시커먼 물건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며칠 전 친구에게 빌린 비디오테잎이 박살 나 있었다. 그 옆엔 섬뜩하게도 쇠망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뭔가 몇 초 정도 사태를 살피다가 이내 사건(?)의 전후 사정을 꿰어 맞출 수 있었다. 내가 친구에게 빌린 비디오는 당시 유행하던 양자경 주연의 홍콩 액션영화 <예스마담>이었다. 이걸 내 책상서랍에서 발견한 아부지가 제목만 보고는 음란물인 줄 오해하고 망치로 때려부순 후, 나와 내 동생놈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방 한가운데에 일종의 효수(?)를 한 것이었다.
일단 친구놈한테 물어줘야 할 테잎 값도 짜증이 났지만,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책상을 뒤지고 물건까지 부쉈는지 화가 벌컥 났다. 나는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오신 아부지한테 바락바락 대들며 항의했다. 그 비디오테잎이 음란물이 아니었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아부지는 급히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주시며 나에게 입틀막을 시도했다.
그랬던 아부지는 세월이 흘러 7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나이 오십이 된 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부지. 사실 포르노테잎은 책상 서랍이 아닌 책꽂이 한 편에 <EBS 고교 학습>이란 제목으로 꽂혀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울아부지의 성급한 오해와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진짜 ‘위기’를 용케 피할 수 있었던 나는 그 후 무럭무럭 자라 딴지일보에서 ‘부끄러움’을 담당하게 되었고 ‘아부나이 니홍고’ 같은 음란저질, 아니, 백년교육 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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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대학생 때 아부지한테 고무호스로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30여 년 전 울 아부지가 정확하게 물증을 잡아 나를 야무지게 훈육했다면, 나는 잘하면 이 나라의 대통령, 못해도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 아부지는 회초리 대신 망치로 비디오테잎을 부수고 효수하는 나름 점잖은(?) 방식을 택했고 나는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난 그 때 망치로 맞았어야 했다.
진정한 반성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명징한 객관화에서 나온다. 당 지도부가 입을 모아 범야권 200석 운운하는 지금, 왜 국민의힘은 끝까지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가.
그나마 윤상현이 찔끔 “기회를 주시면 앞으로 수평적 당정관계를 만들겠다”고 할 뿐이고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부가 저지른 실정에 대해 그저 “소통이 부족했다”거나 “질책하시는 심정 이해가 간다”정도로 퉁치려 들 뿐이지, 어느 누구 하나 명확하게 무슨 잘못을 어떻게 저질렀다는 자기고백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고치겠다’는 구체적인 재발방지책 또한 있을 리 없잖은가.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의 주장을 보라. “대통령의 거부권만이라도 남겨 달라”잖은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해서 그 모양 그 꼴이 되었는데 거부권만은 남겨달라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않은가. 진단이 엉터리기에 결론이 달나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현 집권세력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로 미뤄 보건대,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 동안 이 나라 구석구석을 나락으로 처박은 것에 대해 유권자들이 어설프게 경고하고 만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최악의 정권으로 역사에 이름 한줄을 박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혹독한 대가는 유권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고등학생 마사오에게 쇠망치가 필요했던 것처럼, 현재 윤석열 정권에겐 쇠몽둥이가 필요하다. 내가 부끄러운 남자로 큰 건 누가 뭐래도 울 아부지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남은 임기를 윤석열 정권이 어떤 모습으로 채울는지는 백프로 유권자들의 손에 달렸다.
4월 10일. 본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심판은 확실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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