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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내부 개혁을 시작한 루즈벨트

 

1930년대 대공황으로 파탄 난 미국경제. 경제를 망친 공화당 심판을 내세우며 집권한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 법안 등 각종 개혁진보법안을 내세운다. 하지만, 뜻밖에도 여당(민주당) 내 보수파들의 ‘내부 총질’에 부딪힌다. 분노한 루즈벨트는 1938년 노변담화 연설을 통해 폭탄 선언을 한다. <자세한 사정이 궁금하신 분은 이전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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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 이미지>

 

“너네 내부 총질러들. 선거 때는 민주당 공천 받고 내 이름 팔고, 당선되고 나서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개혁에 밍기적거려? 오는 1938년 총선에서는 내 이름 팔기만 해봐라. 내가 경선에서 떨어뜨려서 공천 못 받게 해주마.”

 

루즈벨트는 먼저 민주당 내 낙선시켜야 할 ‘탑 텐 리스트’를 뽑았다. 물론 ‘탑 텐’ 리스트’의 ‘넘버원’은, 민주당임에도 불구하고 뉴딜 법안 통과를 사사건건 방해한 존 J 오코너 법사위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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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 뒷줄 왼쪽 4번째가 존 J 오코너

출처-<게티 이미지> 

 

오코너는 루즈벨트와 같은 뉴욕 출신 후배로, 위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친루(즈벨트)파’를 자처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오코너는 하원 법사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안면을 싹 바꾸고 ‘뉴딜 법안’과 ‘사법 행정 개혁안’ 통과에 반대하고 나섰다. 루즈벨트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오코너, 같은 고향 후배라서 그동안 잘 봐줬는데, ‘친루파’라며 아부하던 네가 날 배신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은 경선에서 떨어뜨려 주마.” (실제로 이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루즈벨트는 내부 총질러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직접 행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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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탄 루즈벨트 대통령 

출처-<게티이미지>

 

루즈벨트는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신세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전국을 돌며 진보개혁 후보들을 응원하는 한편, ‘내부 총질러 탑 텐’들 지역구를 직접 찾아가서 ‘디스’한 것이다.

 

루즈벨트가 오코너를 ‘탑 텐 리스트 넘버원’에 올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를 민주당 법사위원장에서 떨어뜨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코너가 법사위원장으로 버티고 있는 한 모든 개혁법안은 1차 관문에서 막히고, 뉴딜 정책은 힘을 잃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4.10 한국 총선과 닮은, 뉴욕 하원의원 민주당 경선

 

그러면 오코너의 선거구인 뉴욕 하원의원 16 선거구 경선과 총선은 어떻게 돌아갔을까?

 

자아, 지금부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당내 경선판이 펼쳐질 테니 잘 지켜보시라. 

 

1. 루즈벨트의 ‘낙선 타겟 넘버원’인 오코너는 뉴욕 16지구 선거구 현역 의원이었다. 이 양반은 1923년부터 한 곳에서만 무려 16년(8선, 미국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을 해먹은 ‘터줏대감’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재선이 유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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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J 오코너 민주당 하원 법사위원장 

출처-<게티이미지>

 

“민주당이 무슨 루즈벨트 당입니까, 여러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루즈벨트 독재부터 막아야 합니다!”

 

2. 현역 오코너에 도전하는 경선 후보는 39세의 정치신인 제임스 페이(James Fay)였다. 그는 1934년 민주당 경선에서 오코너를 상대로 불과 수백 표 차이로 아깝게 패배한 적이 있어, 이번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다. 진보적 가치를 내세운 페이는 오코너를 ‘양다리’라고 무섭게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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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 후보 제임스 페이 

출처-<US Historic Archive>

 

“여러분, 정치인이 두 정당에 양다리를 걸치면 되겠습니까? 오코너의 목적은 뉴딜 정책과 진보적 과제에 상처를 내는 것뿐입니다.”

 

3. 여기에 ‘오코너 떨어뜨리기’에 나선 루즈벨트도 오코너 지역구인 뉴욕으로 달려갔다. 비행기도 발달하지 않았고 고속전철도 없던 시절, 대통령이 전국을 돌려면 수십 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 했다. 몸이 불편함에도 루즈벨트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탑 텐 리스트’에 속한 정치인들의 지역구를 간 장면만 봐도 그가 굉장히 ‘열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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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 이미지>

 

“오코너는 매주 뉴딜 정책을 죽이고 있습니다. 민주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저는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사람을 몰아냅시다!”

 

4. 그런데 경선 과정에서 공산당 등 ‘눈치 없는’ 극좌파 세력이 노동운동가 출신의 페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오코너는 옳다쿠나 하고 이를 놓치지 않았다.

 

“페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색깔이 빨간색인 자들입니다. 빨갱이들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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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정책은 공산당이나 나치당 같은 정부 독재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건 자유시장경제라는

전국제조업연합(NAM)의 선전물 

출처-<Public Domain>

 

5. 공화당도 오코너를 지지하고 나섰다. 공화당은 공화당원들에게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오코너를 찍으라고 했다.

 

“이번 선거는 미국 자유주의와 소련 공산당의 전쟁입니다. 오코너가 법사위원장으로 버티고 있어야 (공화당에게) 더욱 큰 힘이 됩니다.”

 

6. 하지만 끝끝내 페이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바퀴벌레급 생명력을 지닌 오코너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오코너는 ‘민주당 탈당’ 스킬을 시전했다.

 

7. 오코너는 즉시 공화당에 입당하여 공화당 경선에 참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경선에 승리해 공화당 후보가 됐다. 

 

8. 말을 바꿔탄 오코너는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며 이렇게 외쳤다.

 

민주당원들을 향해서는

 

“여러분, 진정한 민주당원이야말로 공화당에 투표해 ‘뉴딜 독재’를 몰아내야 합니다.”

 

공화당원들을 향해서는

 

“여러분, 진정한 공화당원은 민주당원과 손잡고 ‘극좌파’를 몰아내야 합니다.”

 

9. 오코너의 양다리는 11월 총선 본선거까지 계속됐다. 유권자들에게 계속 “저는 민주당원입니다”라고 계속 연설했다. 열받은 ‘진짜’ 민주당 후보 페이가 “오코너는 더 이상 민주당원이라고 거짓말 말라”며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할 정도였다.

 

10. 언론은 놀랍게도 오코너의 승리를 점쳤다. 그중에는 유명한 ‘뉴욕타임스’도 있었는데, 심지어 이렇게까지 예상했다.

 

“선거에 승리한 오코너가 민주당 내 반(反)루즈벨트 세력과 손잡고 법사위원장 자리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11. 마침내 11월 총선 본선거 날이 됐다. 최종 결과는... 

 

두구 두구 두구~~~

 

민주당 페이의 승리! 

 

이렇게 ‘혼파망’ 선거는 마침내 막을 내렸다.

 

12. 오코너의 정치생명은 여기서 끝났다. 이후 그는 공직에 다시는 오르지 못했다. 

 

13. 오코너가 결국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루즈벨트는 속이 시원했다.

 

“내 생에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한 소식을 들은 적이 없소. 이 한 번의 승리만으로 그동안 노력한 가치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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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FDR AMERICAN BAD ASS(2012)의 포스터>

 

루즈벨트는 이런 식으로 ‘민주당 내 내부 총질러’들을 시원하게 쓸어버리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움이 남은 선거 결과

 

눈엣가시 같은 오코너를 날렸으니, 루즈벨트는 행복했을까? 

 

안타깝지만 독자 여러분이 기대하던 ‘사이다 결말’은 없었다.

 

1938년 총선 결과가 문제였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8석, 하원에서 무려 72석을 공화당에 뺏겼다. 그로 인해, 민주당은 이전 총선에서 얻었던 ‘절대 과반(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의 지위를 2년 만에 잃었다. 

 

그렇다면 루즈벨트를 저격하던 내부총질러 ‘낙선 탑 텐’들은 어땠을까? 

 

오코너 1명은 날아갔지만, 나머지 민주당 의원 9명(특히 남부 민주당원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들이 더욱 가열차게 내부 총질을 하며 루즈벨트 ‘디스’에 나선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루즈벨트가 대놓고 밀어줬던 민주당 내 젊은 개혁파 후보들 10여 명 가운데 4명만 생환했다. 나머지는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1938년 총선으로 루즈벨트가 망신을 당하고 민주당이 많은 의석을 잃자, 언론과 정치권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루즈벨트 민주당은 사실상 패배했다. 2년 후 대선과 총선은 공화당이 승리하고 민주당이 패배할 것”

 

이렇게 예측한 사람 가운데 유명 언론인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도 있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고의 언론인이었던 그는, ‘뉴욕 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1940년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는 공화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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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터 리프만

출처-<Public Domain>

 

월터 리프만은 1932년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이렇게 악평하기도 했던 언론인이다.

 

“보이스카우트에 불과하며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리프만이 상상도 못 할 미래가 몇십 년 후에 펼쳐졌다.

 

(참고로, 리프만은 루즈벨트가 뉴딜과 2차대전 승리라는 업적을 거둔 후에도 “루즈벨트에 대한 내 평가는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고집했다) 

 

 

긴 역사 속에서 루즈벨트는 승리했다

 

루즈벨트의 ‘내부 총질러 날리기 프로젝트’가 1936년 총선 직후 웃음거리가 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몇십 년 후 전혀 다른 결과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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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3번째로 대통령에 취임하는 루즈벨트

출처-<File Photo courtesy FDR Presidential Library>

 

1. 월터 리프만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루즈벨트는 1940년 대선에서도 승리해 3선 대통령이 됐다. 뿐만 아니라 1944년 대선까지 승리해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이 됐다.

 

2. 1938년 총선에서 루즈벨트와 민주당은 공화당에 상당수 의석을 빼앗겨 ‘절대 과반’을 상실하는 망신을 당했다. 그러나, 상·하원 모두에서 ‘과반’은 여전히 유지했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선거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다.

 

3. 1938년의 정치권과 언론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그 후 벌어졌다. 민주당 대통령이 20년을 집권하고, 민주당이 상·하원을 50년간 ‘장기 집권’하는 일이 벌어진 거다.

 

민주당은 루즈벨트(1933-1945), 해리 트루만(1945-1953) 대통령을 배출하며 ‘20년 집권 시대’를 열었다. 이 기간에 뉴딜 개혁, 2차대전 승리, 세계 최강대국 등극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국회에서는 더한 일이 벌어졌다.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처음 취임한 1933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50여 년간 민주당이 상, 하원 과반을 지배했다.

 

물론 50년 내내 한 번도 과반을 놓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잠시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 잠깐씩이었다.

 

루즈벨트 이래 62년 동안 1946년과 1952년 ‘딱 두 번’만이 하원에서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던 때였다. 총 4년의 세월. 상원의 경우는 1946, 1952, 1980, 1982, 1985년 이렇게 총 10년의 세월만이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기간이었다. 루즈벨트 이래 62년 동안 말이다.

 

이 사실은 즉 다시 말해, 무려 50년 동안 민주당이 상·하원 과반을 독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를 만들어준 주요 사건이 1938년 당시 루즈벨트의 ‘민주당 내부 개혁’이었던 거다. 내부 총질러 중 살아 돌아온 이들도 꽤 있어 완벽하게 개혁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개혁으로 인해 민주당에 개혁적인 정치인들이 다수 탄생하며 전반적인 민주당의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 이 체질 개선이 이후 약 50년간 국회 의석 장기 집권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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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대통령 뒤에서 웃고 있는

뉴트 깅리치(하얀 머리)

출처-<게티 이미지>

 

(루즈벨트 이래 공화당과 민주당이 현재와 같이 번갈아 가며 과반을 차지하기 시작한 건 1995년이나 되어서였다. ‘빌 클린턴 스캔들’을 적극 이용한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의 활약 때문이었다) 

 

4. 루즈벨트가 1938년 총선에서 기차 타고 돌아다니며 밀어줬던 개혁적인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몇 명은 나중에 거물 정치인이 됐다. 이중 텍사스 출신 ‘초짜’ 의원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국 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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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 이미지>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에 서명하여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흑인 등 유색인종의 인권을 보장했다. 위 사진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는 존슨 대통령의 모습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빈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국민연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와 극빈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를 도입해 사회복지 정책에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리

 

루즈벨트는 1938년 선거에서 ‘내부 총질러 제거’에 직접 나섰다가 체면을 구기고 망신을 당했다. 쿠데타 위협을 당할 뻔도 했다(관련 딴지 기사 링크). 그 후 너무 과로해서 재임 중인 1945년 급사했다.

 

그러나 오늘날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최장기 집권 대통령’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루즈벨트는 죽었어도 ‘민주당 정권’은 20년, ‘민주당 의회 과반’은 50년 동안 계속됐다. 1938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체질 개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4.10 한국 총선

 

4월 10일, 한국의 22대 총선 결과 범민주 세력이 ‘압도적 과반’을 차지했다. 일부에서는 ‘200석 절대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기고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선거’라며 찜찜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범민주 세력이 스스로의 힘으로 12년 연속 의회 1당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범민주 세력은 2016년 총선 1당, 2020년 총선 압도적 과반에 이어, 2024년 총선에서 또다시 압도적 과반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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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21대 총선 결과(지역구)

출처-<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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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결과(지역구)

출처-<세계일보>

 

물론 한국의 범민주 세력이 미국 민주당처럼 ‘50년 의회 장기 집권’을 기록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민주 세력이 스스로의 힘으로 ‘12년 의회 과반’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더욱이 인구 구조가 범민주 세력에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

 

김어준 총수가 뉴스공장에서 아쉬울 게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로 인해 여러 강제 권한이 생기는 200석이 안 되었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수의 말대로 선거는 이번 한 번만 치르고 끝나는 게 아니다. 선거는 계속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선거를 ‘민주 세력의 의회 장기 집권’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아쉬움이 덜하지 않을까. 앞으로의 선거 결과는 지금보다도 더 희망적인 결과가 펼쳐질 테니 말이다. 

 

물론, 이를 충족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정치에 대한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 및 적극적인 투표 그리고 밭갈기일 것이다.

 

이분의 말처럼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 그러니 아쉬움은 이제 그만 뒤로 하고, 다시금 박차고 일어나, 이제 4년을 같이 보낼 새로운 동료들이 힘내서 싸울 수 있도록, 굳건한 산맥이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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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노무현 재단>

 

<끝>

 

 

‘김산이미란’님께 드리는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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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4편)에 달린 댓글

 

루즈벨트의 1938년 총선 ‘숙청’(Purge)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다음 책을 참조하시면 좋다.

 

책 제목 - Roosevelt's Purge: How FDR Fought to Change the Democratic Party, SUSAN DUNN, 2010,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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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