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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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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창비>

 

 

1995년 북한의 대기근과 ‘고난의 행군’

 

1995년, 대홍수가 북한을 덮쳤다. 그리고 곧이어 전염병이 창궐했다. 북한의 빈약한 보건 의료 체계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1995년의 이 자연재해는 시작에 불과했다. 홍수는 다음 해에도 이어졌고 1997년에는 해일과 가뭄이, 1998년에는 태풍이 북한 땅 전역을 휩쓸었으며 대기근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맞물린 대기근 앞에서 북한은 속수무책이었다. 뜬구름 같은 ‘지상낙원’은 사라지고, 냉혹한 현실의 ‘지옥’이 찾아왔다.

 

그곳은, 정말 지옥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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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은 성장이 멈췄고, 노동자들은 공장의 기계를 분해하여 중국의 값싼 곡물과 물물 교환을 해야 했다. 굶주림 끝에 도둑이 된 아이들은 곡식을 훔쳐 먹다 체포되면서도 악착같이 손을 뻗어 한 움큼이라도 더 먹으려 했다. 북한의 정보 미공개로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이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최대 300만 명 정도가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최영애’는 아들 ‘로기완’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그녀의 남편은 로기완이 다섯 살 때 탄광에서 작업 중 사망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중국 ‘연길’이었다. 그들처럼 강을 건넌 북한 주민들은 대략 40만여 명 정도로, 이들의 목적은 모두 같았다. 

 

그것은 오직 하나. 

 

살아남는 것이었다.  

 

 

로기완을 찾아 브뤼셀로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이 문장 하나가 익숙했던 세계를 떠나 나를 브뤼셀로 가게 만들었다. 방송 작가인 내게 시사잡지를 읽고 관심 가는 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은 일의 연장이었다. 그날 내가 읽은 시사잡지 ‘H’의 특별기사는 벨기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탈북인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니셜 ‘L’이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고백한 이 한 문장이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맡은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연민을 최대한 불러일으켜 그들이 한 통에 천 원씩 기부되는 ARS에 전화를 걸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었다. 화면은 출연자의 불행을 극적으로 조명해야 했고, 내레이션은 과장된 감상에 젖어야 했다. 나는 철저히 타인의 불행을 대상화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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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일보>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열일곱 살의 여고생 ‘윤주’, 반지하방의 그 아이는 머리칼로 얼굴의 오른쪽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그 머리칼은 얼굴의 거대한 종양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떠났다는 그 아이는 머리칼로 종양을 감추고도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었고 그것이 욕심을 부리게 했다. 

 

내가 나서서 수술 날짜를 석 달 뒤로 미뤘다. 추석 연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추석 연휴는 평일보다 시청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많이 모일 것이니 더 많은 ARS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더 많은 기부를 이끌어 내려는 나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그 석 달이 윤주의 종양을 악성으로 바꿨다. 신경섬유종이 암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나무둥치에 주저앉은 날개가 젖은 새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병실 문틈으로 자학적인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윤주를 발견했을 때 나는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나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속에 갇혀버린 소녀로부터, 나는 도망쳐야 했다. 나는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었고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나는 날지도, 떨어지지도 못하는 새처럼 살고 있는 이니셜 ‘L’을 찾아서 브뤼셀로 떠났다.

 

 

로기완이 유럽을 떠돌게 된 이유 

 

그의 성은 로, 이름은 기완. 스무 살, 159센티미터의 단신, 47킬로그램의 마른 몸. 영어뿐 아니라 벨기에의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나 네덜란드어도 습득하지 못한 채 멀고 먼 가난한 나라를 혼자 떠나온 사람.

 

브뤼셀에 거주하고 있는 ‘H’지의 객원기자를 통해 ‘박’을 만나 ‘L’의 일기를 받아 든 후부터 이니셜 ‘L’은 ‘로기완’이 되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박’은 로에게 있어서 평생의 은인인 사람이었다. 유럽에서 북한 출신은 정치적 망명이 인정되어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간혹 중국인이나 조선족이 탈북민으로 가장하여 이 점을 이용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벨기에 시민권을 가진 퇴직 의사 ‘박’은 평양 출신이었기에 진짜 북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에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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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로기완'>

 

연길에서 로기완의 어머니는 하루 종일 모질게 일해야 했다. 공안의 눈에 쉽게 띄는 젊은 남자가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겨울 내내 솜이 거의 빠진 군용 점퍼를 입고 낮에는 목욕탕을 청소, 밤에는 노래방으로 출근해 잔심부름을 하거나 취객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로는 연길 친척이 어렵게 마련해 준 그늘진 골방에서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로의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은 그렇게 소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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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1일 그날, 노래방으로 출근한 로의 어머니는 돌아오지 못했다. 새벽까지 줄담배를 피우며 초조하게 어머니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든 로를 깨운 것은 친척의 다급한 손길이었다. 로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자정 무렵, 노래방을 나오던 로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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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수색 기간이었고, 로는 병원에 가볼 수도 없었다. 로는 울부짖었다.

 

네가 살아남는 것, 그것이 네 어머니도 사는 길이다. 친척은 로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패 하나를 던졌다. 로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끔찍한 제안 앞에서 로는 화를 내지도 못했다. 로는 그저 이틀 동안 곡기를 끊어 수척해진 모습으로, 자학적인 살의로 번득이는 눈빛만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시신을 판 돈 4,000달러, 그것이 로가 살아남기 위해 유럽으로 갈 자금이 되었다. 로는 브로커에게 2,800달러를 지불하고 남한 국적의 위조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받았다. 이러저러한 비용들을 모두 제하고 남은 돈 650유로, 이것이 로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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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방수포를 구해와 그 돈을 싸고 또 쌌다. 비에도, 땀에도, 눈물에도 젖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가슴에 품은 그 방수포는 브로커와 함께 베를린 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단 한 번도 풀지 않았다. 로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시신을 내준 대가로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얼마나 큰 후회와 고통을 견뎌내야 할지를.

 

살아남으시오.

 

브로커는 이어 말한다.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보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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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공항 근처 유로라인 사무실에서 브뤼셀행 버스 티켓을 끊어주며 한 브로커의 그 말, 그것은 로에게 각인된 유일한 삶의 이유였고, 어머니의 말 없는 유언이었다. 

 

 

한국 대사관의 문전박대와 로기완의 통곡

 

눈앞의 모든 것들이 공포의 대상이었고 자기 앞에 닥친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스무 살의 어린 남자에게 어쨌든 그 미지의 선율은 잠시나마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브뤼셀 북역에서 조금 걸어 나오니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초로의 사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로도 나처럼 이곳에서 이 연주를 들었다. ‘박’은 나에게 로가 런던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런던으로 떠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받은 로의 일기를 따라 그의 흔적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내 발걸음은 지하철역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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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에 거리 32번지의 ‘굿 슬립(Good Sleep)’, 로가 묵었던 호스텔이다. 방수포에 싼 650유로는 돈이 아니라 로의 어머니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로의 유일한 생존 도구였다. 일기장에는 이곳에 머물며 최대한 빨리 남쪽 대사관을 찾아갈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콕시넬 역, 한국 대사관’, 조선족 브로커가 적어준 메모지를 로는 방수포만큼이나 소중히 간직했다. 호스텔에서 열흘을 보내면서 로는 브뤼셀 거리의 이름들을 적으며 공부했고, 점점 줄어드는 방수포의 돈을 세었으며, 어머니를 향한 죄의식을 다스려야 했다. 드디어 로는 94번 전차에 몸을 실었다. 한국 대사관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을 동시에 느끼면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로의 불운은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은 채 예정된 지점에서 침착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사관 직원은 로에게 사무적인 표정으로 난민 신청을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로가 북한에서 온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 당국이 발행한 공민증과 출생증, 로의 학교 입학증 등 모든 것은 강을 건너며 어머니가 모두 버렸다. 공안에게 걸리면 오히려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 로가 아무리 절박하게 온 힘을 다해 사정을 설명해도 대사관 직원들은 냉정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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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진짜입니다!!

 

틈날 때마다 좌절하는 법을 연습했던 그였지만 로는 그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에야 로는 어느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허리를 앞으로 깊이 숙여 끄억끄억 울었다.

 

나는 지금 골목 끝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토해내는 한 사람의 자세를 힘없이, 그러나 실은 온몸에 힘을 주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로가 한참을 기대어 울다 간 담벼락을 보며, 나는 윤주를 생각했다. 그때 윤주도 혼자 울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는 윤주를 보며 병실 문을 열지 못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윤주는 좀처럼 눈물을 그치지 않았었다.

 

로에게 대사관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윤주가 희망과 절망이 결합된 대상이었다.

 

 

로기완의 흔적, 브뤼셀의 고난

 

‘굿 슬립’의 공용 화장실, 이곳은 로가 호스텔이 제공하는 아침 식사 때 몰래 숨겨온 빵을 먹던 곳이며, 몸살에 걸려 덜덜 떨리는 상태에서 술 취한 여행객들에게 쫓겨나 몸을 피한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곳에서 변기 위에 앉아 방수포에 쌓인 돈을 세던 로를 떠올렸다. 6유로 52센트. 이것이 로가 한국 대사관을 다녀온 뒤 일주일 후, ‘굿 슬립’을 나갈 때 그에게 남은 돈 전부였다. 그리고 이것은 로가 그 일주일간 숙박비 외에는 단 1센트의 돈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로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걸을 했다. 트론 지하철역의 예술의 길 방향 계단에서였다. 로는 모자를 벗은 후 무릎을 꿇고 앉아 상체를 구부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자세를 취하였다.

 

로는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져 누군가가 먹다 버린 음식을 먹었다. 브뤼셀 남역의 간이 벤치에서 잠을 청했으나 다른 노숙자들에게 쫓겨나야 했다. 이 왜소한 체격의 동양 남자를 무시하지 않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로는 50센트 동전을 넣고 화장실에 들어가 잠을 잤다. 가장 안쪽 칸의 화장실에서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목도리로 머리를 감싼 채. 몸살로 몸을 덜덜 떨면서도 방수포를 손으로 더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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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걸음은 부르스 광장 쪽으로 향했다. 일기 속 로의 걸음이 멈춘 곳도 이곳이었다. 로는 화려한 붉은 나방들을 따라 이곳으로 왔다. 그 붉은 나방 떼는 브뤼셀의 밤을 밝히는 가로수에 걸린 장식용 전구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로처럼 전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이 벤치 위에서 로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어머니를 떠 올렸다. 그리고 로의 의식은 점점 마비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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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이 벤치 위에서 자신의 여행을 그만두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로는 다음 날 아침 경찰서에서 깨어났다. 

 

 

난민 지위를 획득한 로기완 

 

나는 브뤼셀 외곽에 있는 고아원으로 갔다. 이곳은 늙은 백인 경찰이 로를 맡긴 곳이다. 이 초로의 경찰은 로가 경찰서에서 깨어났을 때 로를 담당했었다. 그는 대화도 되지 않는 왜소한 로를 어린애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고아원에 로를 데려다주었다. 로는 이곳에서 브뤼셀에 온 이후 처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나는 낯선 땅의 고아원에서 아이들 속에 섞여 음식을 얻어먹는 스무 살의 로를 상상했다. 그리고 윤주를 떠올렸다. 윤주야, 너처럼 외로운 로의 이야기를 해 줄게. 나는 휴대폰을 꺼내 천천히 윤주의 번호를 눌렀다. 윤주의 수술은 잘 됐으나 귀까지 잘라야 했다는 소식을 떠 올렸다. 오른쪽 귀 없이 곧 열여덟 살이 되는 여자아이 윤주. 그러나 윤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엘렌은 흠칫 놀랐다. 엘렌은 정말이냐고 묻는 대신 바로 그 자리에서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했고, 대사관의 소극적인 태도에 분노를 터뜨렸다가 이내 벨기에 내무부에 연락을 취했다.

 

고아원 원장 ‘엘렌’은 어린애 취급을 받는 스무 살 로의 첫 번째 은인이 되어 주었다. 10여 년 전 한국 입양기관과 연계하여 벨기에 양부모들을 소개해 주는 일을 잠깐 했었던 엘렌은 로가 설거지를 도와주며 부른 노래가 한국어임을 알 수 있었다. ‘꼬레앙?’이라 묻는 엘렌에게 로는 용기를 내었다. ‘노스, 노스코리아’라 말했고 손가락으로 자신이 스무 살임을 표현했다. 그리고 로는 다음날 찾아온 벨기에 내무부 직원들과 함께 외국인 사무국에서 난민 신청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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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절차를 거친 후, 로는 생피에르에 있는 수용소에 머물면서 나흘 후 벨기에 난민 신청국 심문실에서 첫 번째 면담, ‘오디시옹(audition)’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은인인 통역으로 온 ‘박’을 만나게 되었다. 

 

박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좋은 결과가 있도록 노력할 거요. 그 말을 듣고 로는 웃었다고 했다. 브뤼셀에 온 이후 처음으로 웃게 된 이 장면을 일기에 적어나가는 동안에도 로는 계속 웃고 있었을까. 

 

꼭, 그랬으면 좋겠다.

 

로는 북한 주민일 가능성을 인정받아 매달 연장이 가능한 1개월짜리 임시 체류허가증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50유로 정도의 체제비와 무료 프랑스어 교육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구세군 단체에서 설립한 ‘푸아예 셀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6개월을 거주한 로는 스물한 살이 되었고, 드디어 벨기에 내무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얻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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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의 사랑과 선택

 

이 세상에서 그들은 언제나 단 둘뿐이었다. 거인족의 후손 같은 브뤼셀 사람들 사이에서 키 작은 그 두 사람이 손을 꼭 맞잡고 걸어갈 때면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세계는 지워졌고 사라졌다.

 

2009년의 스물두 살 로는 스물한 살의 필리핀 여성 라이카를 그가 일하던 중국 식당 ‘진선화’에서 만났다. 라이카는 만료 기간이 지난 여행비자로 불법 취업한 상태였다. 로의 고독과 존재 자체가 불법인 라이카의 불안감. 둘은 서로에게 기대었다. 그 둘은 서로에게 오직 ‘이 사람’이 되었다. 둘은 절박하게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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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과 식당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있던 날, 라이카는 체포되어 외국인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라이카는 수용소를 탈주해 브뤼셀 거리를 가로질러 정신없이 뛰었다. 그녀는 로의 아파트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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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자신이 모은 돈 전부를 그녀에게 주어 영국으로 도피시켰다. 영국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고, 라이카가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관문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깊이 포옹했을지, 얼마나 절실하게 서로의 살아 있음에 감사했을지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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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가 살았던 아파트 앞에서 그들의 포옹을 상상했다. 그날 나무 계단은 오래도록 삐걱거렸을 것이고, 그들의 포옹을 비추던 희미한 조명은 한 번씩 켜졌다 꺼지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남은 로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에게 영국행은 벨기에 정부로부터 받은 난민 지위를 포기한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자신이 또다시 불법 이민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석 달 후, 로는 영국으로 떠났다. 해당 기관에 신고도 하지 않았으며 여행비자도 발급받지 않은 채였다.

 

당연하다. 로가 영국으로 간 건 여행을 하기 위해서도, 지인을 방문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으므로. 살기 위하여, 외롭지 않으려고 그는 떠났으므로.

 

 

런던에서 로기완을 만났다

  

런던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을 때 새 메일 알림음이 들렸다. 메일은 윤주에게서 온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열었다. 첨부 파일에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윤주의 얼굴이었다. 사진 속 윤주는 여전히 머리칼로 오른쪽 뺨을 가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귀가 사라진 것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아팠겠다. 요즘은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겠구나. 거울을 자주 보니? 퇴원은 언제 하게 된대? 먹고 싶은 건 없어? 너의 오른쪽 귀는 지금 나에게 와 있어, 내 안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미안해......

 

나는 윤주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내 신호음이 끊기고 윤주가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요 언니?’, 나는 그 애가 볼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 안, 해.’...... 윤주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니’, 윤주가 나를 부른다. 12월 말 브뤼셀의 아침 햇살은 싱그러웠고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이 도시가 나를 떠나보내는 방식일 것이다.

 

로기완과 라이카가 일하고 있는 중국 식당 ‘티안팅쥐’는 퀸스웨이 42번지에 있었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호텔을 나와 그곳으로 향했다. 한참을 걷던 나는 드디어 그 식당을 찾았다. 통유리 너머로 오리구이가 돌아가는 회전대 옆에서 테이블을 닦고 있는 키 작은 동양인이 보였다. 그가 로기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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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이 나를 발견했다.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로기완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활짝 출입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박’의 이름을 말했다.

 

로기완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체온이 있는, 진짜 두 손으로. 나는 그 손에 이끌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앳된 인상의 여자 하나가 삐죽 고개를 내밀더니 금세 달려와 나를 빈 테이블로 안내했다.

 

라이카는 차를 준비하러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고 지금 내 앞에는 로기완이 앉아 있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군가는 반드시 로또에 당첨되고, 반대로 또 누군가는 이유 없이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자를 바라겠지만, ‘머피의 법칙’은 꼭 나에게만은 중력의 법칙처럼 헤어 나올 수 없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항상 후자입니다. 나뿐만이 아니고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인생도 후자입니다. 울화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 없이 찾아온 불행이 죽을 만큼이나, 아니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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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은 가난한 북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대기근을 겪어야 했고, 그의 어머니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이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로기완은 어머니의 시체를 판 돈과 죄의식 두 가지 모두를 가슴에 품고 살기 위해 유럽을 떠돕니다. 

 

작품 속 여고생 윤주는 얼굴에 암으로 발전하는 거대한 종양을 달고 어둠 속에서 흐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 그들의 선택이 아니고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단지 ‘불행’이 그들을 선택한 것일 뿐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이 이럴진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인생의 의미가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남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인지, 불행이 나를 찾아 오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타인의 불행에 안도하며 살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한마디의 말이나 한가지 특성으로 규명할 수 없는 대단히 복잡한 생명체입니다. 이기심과 이타심,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독립성과 연대성 등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질들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모순된 것들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조금이나마 더 깊이 있게 삶의 이유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로기완의 집념이 만들어낸 ‘난민 지위’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철저히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로기완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타인을 위해, 라이카를 위해 ‘난민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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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즉 공감은 나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이 됩니다. 로기완은 라이카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공감이 사랑이 되고 그것이 ‘연대’로 변화 발전한 것입니다.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 신경림, ‘나목’ 中 -

 

다시 자문해 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로기완의 선택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해답을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타인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공감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다시 연대와 사랑으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때, 그것이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세상을 견뎌내는 힘이 돼주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은 타인에게 내미는 나의 손, 나에게 내미는 타인의 손, 그리고 이 두 손이 서로 맞잡는 것, 이것으로 끝까지 사는 것,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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