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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진 진실

 

지난 3월 말, 전국에 총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서울 강북을에 문제가 터졌다. 정봉주 후보 사퇴 이후, 다시 당내 경선을 치르며 두 번째 민주당 후보가 되었던 조수진 변호사가 후보에서 사퇴했다.

 

이유는? 

 

과거 성범죄 가해자 변호를 맡았던 조수진 변호사의 이력을 문제 삼으며 국민의힘과 언론 및 여성단체 등에서 비난 폭격을 퍼부었다. 민주당 내 당직자 50여 명도 이런 비난 폭격에 동참했다. 조수진 변호사는 결국 버티지 못했다. 

 

비난의 취지는 이러했다. 

 

‘조수진 변호사는 아동 성폭행범을 변호하면서 “피고가 아닌 피해자 아버지가 가해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변호했다. 어떻게 인륜을 저버린 패륜적 변호를 할 수 있느냐? 사악한 2차 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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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9시 뉴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반전이 벌어졌다. 이런 보도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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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투데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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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쿠키뉴스> 링크

 

할 말이 없다... 

 

조수진 변호사에게 허위 보도와 인격 모독을 저지른 정치권과 언론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으로서 상상도 못 할 고통을 겪은 조수진 변호사도 힘을 내서 다시 일어서길 부탁드릴 뿐이다. 

 

 

한국과 미국이 ‘2차 가해’를 취급하는 차이

 

필자가 조수진 변호사의 사퇴 직후 썼던 기사(링크)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기사에서 조수진 변호사의 ‘2차 가해’를 주장하는 댓글을 보며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2차 가해? 다 좋다! 그런데 변호사 한 사람 두들겨 패면 2차 가해가 없어지나요?”

 

더욱 구체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변호사 개개인에 맡기지 말고, 아예 ‘2차 가해 금지’라고 법으로 규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한국 사회를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1. 2차 가해의 의미가 너무 주관적으로 쓰이고 있다.

2. 다른 한쪽의 목소리를 봉쇄하는 장치(혹은 명분)로서 쓰인다. 그리고 이 장치는 절대 반지 수준의 사회적 힘을 갖고 있다. 

3.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쓸 때가 많다.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2차 가해’라는 개념으로 인한 폐해가 많다. 그럴 거면 차라리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2차 가해’란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걸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걸 제안하고 싶다. 직설적으로 말해, 허구한 날 ‘2차 가해’에 대해 떠들면서 정작 그에 대한 정의와 법적 장치 마련에 대해서는 관심있게 추진하지 않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는, 그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2차 가해에 대한 정의도 정리했다. 물론 모든 미국민이 이를 이해하고, 이에 따라 사고하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이에 따라 사건이 논의되고 처리된다는 것이다. 

 

그 시스템을 구축한 법이 ‘2차 가해 방지법’이다. 법조문 조항을 따서 Rule 412(링크)라고도 불리는 이 법의 이름은 ‘레이프 쉴드 룰’(Rape Shield Statute). 말 그대로 성범죄 피해자를 ‘쉴드쳐주는’ 법이다. 당연히 법정에서 다툴 때도 이 법에 의거하여 다툰다.

 

그렇다면 미국법은 성범죄 피해자를 도대체 어떻게 ‘쉴드’쳐줄까? 연방 증거법Federal Rules of Evidence, Rule412는 다음과 같은 증거/주장을 법정에서 펼치지 못하게 하고 있다.

 

1. 성범죄 피해자의 과거 성생활

2. 성범죄 피해자의 성적 경향과 행동

 

이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약간만 더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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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미드 '슈츠'>

 

1. 성범죄 피해자의 과거 성생활

 

이 조항에 따라 변호인은 ‘피해자의 과거 성생활’을 공격하는 주장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동네 사람 들어보소. 저 여자는 원래 헤픈 여자에요!”

 

“저 여자는 성매매에 종사했기 때문에 당해도 싸요!”

 

“술집에서 일했다며? 그럼 그렇고 그런 거 야냐?”

 

“저 여자가 원래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생활했다던데?”

 

“10년을 결혼 안 하고 남자를 여럿 바꿨다면서? 그럼 뻔할 뻔 자네.”

 

“몇 월 며칠날 누구누구랑 잤잖아. 그럼 사건 당일도 마찬가지 아냐?”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과거사를 까발려 공격하는 주장을 법정에서 펼칠 수 없게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2. 성범죄 피해자의 성적 경향과 행동

 

이 조항은 성관계뿐만 아니라 그 밖의 성적 취향, 경향, 행동. 예를 들어 피해자의 옷차림, 말투, 라이프 스타일까지 폭넓게 적용한다. 

 

예를 들어,

 

“사건 당일 여자가 입은 옷이 너무 섹시한 거 아냐? 노출이 심하네.”

 

“여자가 평소에 야한 농담 많이 하고 다녔다면서? 그럼 밝히는 여자 아냐?”

 

“여자가 남자랑 호텔까지 왔으면 동의한 거 아냐?”

 

“이 여자 몸짓이나 말투가 그렇고 그렇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서로 끌어안고 뽀뽀했으면 100%지. 갈 데까지 간 거 아냐?”

 

이런 식의 ‘강간 통념’을 법정에서 펼칠 수 없게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Rule 412의 취지는 명확하다. 재판과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피해자의 과거 사생활 및 ‘강간 통념’이 법정에서 드러나는 것을 막음으로써 ‘2차 가해’를 막자는 것이다. (영어를 읽기 싫은 독자분은 뉴욕 검찰청이 이 법률의 뉴욕 버전 한국어 번역본을 제공하고 있으니 참조하시라 (링크))

 

그렇다면 Rule 412는 실제 사건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까? 여러분이 잘 아는 사건 몇 가지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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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타이슨 성폭력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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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혐의로 체포, 수감되는 마이크 타이슨

출처-<게티 이미지> 

 

1994년 6월 13일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인디애나주에서 성폭력 혐의로 체포됐다. 미스 블랙 아메리카 참가자를 호텔방으로 데려가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이에 대해 타이슨은 이렇게 주장했다.

 

“성관계는 상호 합의하에 이뤄졌다.”

 

그러나 1심 배심원은 타이슨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고, 타이슨은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타이슨은 항소했다. 타이슨의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타이슨과 여성이 사건 직전 서로 껴안고 손을 꼭 잡고 들어가는 호텔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증인 3명이 있다. 타이슨과 여성이 합의된 성관계를 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들이 재판에서 증언하려고 했는데 판사가 막았다. 판결이 잘못됐으니 파기해달라!”

 

항소심 재판부는 Rule 412를 적용하지는 않았으나, 1심 재판부가 3명의 증언을 배제한 것은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사건 이전에 벌어진 과거사(껴안거나 손잡음)는 재판에 증거로 제시해도 결과가 결코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다(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담당 판사 이름도 ‘쉴드’였다). (해당 판결 Tyson v. State, 619 N.E.2d 276 (Ind. App. 2 Dist. 1993) 링크

 

타이슨은 꼼짝없이 감옥에서 썩었고, 다시는 예전 같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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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 이미지>

 

이와 대비되는 또 다른 사건도 보자.

 

 

코비 브라이언트 성폭력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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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는 코비 브라이언트 

출처-<게티 이미지>

 

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2003년 6월 30일 콜로라도주 호텔에서 19세 여성을 성폭력 한 혐의로 체포됐다. 브라이언트는 당연히 “성관계는 합의하에 이뤄졌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쟁점은 피해 여성 몸에 남겨진 정액이었다. 여성은 성폭력 경찰 신고 직후 1차 검진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정액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몇 시간 후 2차 정밀 검진에서 정액과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정액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정액이 아닌 제3자의 것이었다. 머리카락도 금발이었다. DNA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피해 여성이 브라이언트와 같이 있은 지 불과 몇 시간 후,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

 

검찰과 변호인은 정액 문제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Rule 412를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사건과 관련 없는 피해 여성과 제3자의 성관계는 재판에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반면,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시간적으로 볼 때 코비 브라이언트가 아닌 제3자가 피해 여성의 몸에 정액 및 상처를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 증거는 재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에 대해 재판부와 항소심, 대법원 모두 코비 브라이언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3자와의 성관계가 과거 사건이라면 재판과 관련이 없다. 하지만 제3자와의 성관계가 사건 이전이 아닌, 사건 직후 몇 시간 내에 벌어졌으므로, Rule 412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 조항을 적용해 정액 및 상처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라도, DNA와 머리카락을 증거로 채택해 재판부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검사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기소를 취하했고, 그는 불기소로 풀려났다. (People v. Bryant, 94 P. 3d 624 (2004) (링크)

 

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레이프 쉴드 룰’은 사건과 관련 없는 피해 여성의 과거 사생활 노출 및 ‘강간 통념’을 막음으로써 ‘2차 가해’를 막고 피해 여성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억울한 기소를 막기 위해 다양한 판례법과 예외 조항으로 사실을 검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한국의 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한국은 어떠할까. 형사소송법,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뒤져보았다. 필자는 한국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국법 조문을 보면 법정 내 피해자 보호에 대해서 ‘두루뭉슬, 얼렁뚱땅’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관련 법조문은, 

 

‘신중하게 고려하여’ 

 

‘최소한으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이런 식으로 적혀 있다. ‘좋은 게 좋은 것’ 식으로 두루뭉실하다. 한마디로 ‘두루뭉슬, 애매모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이런 추상적인 법조문으로 정말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기나 한 건지 궁금하다.

 

물론 한국 법조계에서도 미국식 ‘레이프 쉴드 룰’을 도입하여 피해자의 법정 내 ‘2차 가해’를 막자는 논의가 있었다. 가장 최근의 움직임은 2022년 법무부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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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링크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링크)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출범해 ‘레이프 쉴드 룰’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등 11차례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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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머니투데이> 링크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전문위원회는 ‘검찰 내 성추행 현실’을 용기 있게 폭로했던 서지현 검사를 비롯해 변영주 감독 등 다양한 여성들을 위원으로 초빙했다. 서지현 검사를 중심으로 한 위원회는 현행 형사소송법에 미국식 ‘레이프 쉴드 룰’을 적극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경우는 연방 및 모든 주에서 성폭력 피해자 증인의 과거 성경험에 대한 신문 및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강간피해자보호법(Rape Shield Law)’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사생활 관련 신문 및 증거신청을 제한할 수 있도록 재판장의 소송지휘권 및 증거능력 제한 근거를 형사소송법에 규정하여 소송절차의 일반 원칙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원회는 출범 후 불과 9개월 만인 2022년 와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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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링크

 

윤석열 정부가 막 출범하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기 바로 전날,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 짐 쌀 틈도 주지 않고 갑작스레 법무부에서 서지현 검사를 수원지검 성남지청으로 발령 냈는데, 이에 항의하며 서지현 검사가 사표를 낸 것이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TF(태스크포스) 전문·자문위원회 위원 22명 중 17명이 TF 팀장인 서지현 검사의 사직에 항의해 18일 집단 사퇴했다. 이들은 “검찰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범죄자뿐이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 검사를 두려워할 만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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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링크

 

위원회 해체와 함께 ‘레이프 쉴드 룰’ 등이 국회에서 좌초한 것은 물론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변호사 한두 명을 두들겨 팬다고 정말 2차 가해가 없어집니까? 정말 ‘2차 가해’를 막고 싶다면, 국회에서 ‘2차 가해를 막는 법’을 통과시키도록 관심 가져주십시오.”

 

 

성범죄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이 겪는 일

 

물론 여기까지 읽고도 조수진 변호사를 탓할 분들이 여전히 계실 것이다.

 

“그러길래 애초부터 미성년자 성폭행범 변호를 맡은 게 잘못이었다. 인간쓰레기는 변호 받을 가치도 없다.”

 

“성폭행범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정치나 공직을 맡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실제로 성범죄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모욕과 비난을 받고, 심지어 두들겨 맞는다.

 

1980년대 캘리포니아주에서 ‘맥마틴 어린이집 성추행 재판’이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과 아들이 어린이 수십 명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엽기적 사건이었다. 당시 피고인의 변호를 맡은 대니 데이비스(Danny Davis) 변호사는 LA타임스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 집에 화재가 두 번 발생했고, 다섯 번 이사해야 했습니다. 나는 재판 중 법원 주차장에서 두들겨 맞은 적도 있어요.”

 

맥마틴 어린이집 성추행 재판에서 5년간의 재판 끝에 피고는 전원 무죄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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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갖는 피고와 대니 데이비스 변호사 

출처-<게티 이미지>

 

하버드 로스쿨 교수 앨런 더쇼비츠는 위에 소개한 마이크 타이슨 성폭력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결국 자신이 가르치던 하버드대 로스쿨 여학생들이 수업 중 시위를 벌이는 봉변을 겪어야 했다. 이에 대해 더쇼비츠 교수는 “하버드 로스쿨 학생들조차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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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 이미지>

 

“모든 사람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검찰은 피고의 유죄를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넘어서 증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혐의로 유죄 판결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혐의가 비록 성범죄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변호인들은 이렇게 욕을 먹고 두들겨 맞으면서까지 성범죄 변호를 맡는가. 

 

 

변호사들이 성범죄 변호를 맡는 이유

 

LA타임스(링크)에 소개된 한 여성 변호사의 사례를 소개하며 설명을 대신해 보자.

 

크리스티나 아게다스(Cristina Arguedas)라는 변호사는 백인 여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흑인 남성을 변호했다. 남성은 성범죄 전과 3범이었고, 피해 여성이 남성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아게다스 변호사는 재판에서 피해 여성이 남성을 지목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남성은 무죄로 풀려났다.

 

그런데 4개월 후, 아게다스 변호사에게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아게다스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 남성이 또다시 성폭력으로 체포됐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를 ‘성폭력 변호사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이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제가 변호사로서 한 일이 결국 다른 여성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였습니다.”

 

몇 주간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다시금 연락이 한 통 왔다. 그 남성이 범행 시각에 범행 장소가 아닌 은행에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아게다스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 순간 깨달았죠. 피고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변호사가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선을 다해 변호하는 변호인이 존재할 때 이 나라의 사법제도가 성립합니다.”

 

<끝>

 

 

<각주>

 

1. 본인은 한국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무엇보다 한자를 못 읽는다). 그래서 혹시 한국법에 대한 해석에 오류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달라.

 

2. 서지현 검사를 주축으로 한 위원회는 해체 직전에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TF·전문위원회 활동과 성과’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것도 한국어와 영어로!) 정말로 ‘2차 가해’ 문제에 관심 있으신 분은 부디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글판 링크영어판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