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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인이 쓴 90년 전 한 문장 

 

"불관용과 편협함, 그리고 방향이 잘못되었더라고 하더라도 정력적인 행동은 그것 자체가 존경할 만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반논제다."1)

 

버트런드 러셀은 1970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지적은 2024년의 한국 사회에 여전히 뼈아프다. 유례없이 편협하며 타인을 향해서만 불관용적인 대통령이, 능력은 부족하지만, 무의미하게 설치고 다니는 점과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만은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이승만과 지극히 닮았기 때문이다.2) 대저 2024년에도 여전히 민초들 사이에 이승만 찬양이 남아있어 개인 일상 속에서 무의미한 아귀다툼을 해야 한다는 점도 놀랍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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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TV>

 

충격인 것은 그다음에 있다. "따라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현대 사회에 필요한 것은 도그마엔 언제든 의문을 제기하는 마음 자세와 모든 다양한 관점들에 공정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차분하게 숙고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연이어 적혀있다. 깔끔한 지적과 온전한 대답이 한 호흡에 이어진다. 이 글이 쓰인 게 1935년이니 문장은 90년을 지나 유효하고, 우리는 이미 제안된 해답을 여즉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과 국가나 기관의 입장에서 올바로 행동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2. 시간이 흘렀지만

 

러셀이 글을 쓰던 당시보다 복잡함이 지수적으로 증대한 현대사회에서는 정부의 역할도 더 복잡하고 다단해졌다. 오래된 골목길의 수령 높은 전봇대도 하나하나 번호 매겨 관리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와 국제정세에 따른 세계 각국의 생산 동향을 반영하여 국내 농산물 생산 계획과 지원 정책, 외교관계를 수립, 실행한다. 러셀이라 해도 온라인으로 세금 납부 및 각종 민원서류를 집에서 뽑는 것까지 예상하진 못했을 테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변화를 이루기 위해 각 기관이 내부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났음도 쉬이 예측 가능하다.

 

그럼, 정부의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나 관계 법령도 변하는 세상에 맞춰 온전히 동작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모두를 슬퍼지게 만든다. 앨빈 토플러가 미국 정부에 대해 지적했듯이4) 비단 한국 정부만이 아니라 많은 정부가 근현대 내내 변화에 뒤처져 있다. 이는 행정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정부에서 일하거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평균 성향만 보더라도 납득이 된다, 한국에서는. 가려는 방향으로 흐르는 물이 아닌 고이고 끈적한 늪에 배를 띄우는 격이니, 표면적인 이유는 무엇이 되었든 계기가 될 뿐 본연적으로 늦어질 상황에 놓여 있다. 불성실한 점원이 언젠가는 가게 전체에 문제가 될 상황을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로.

 

3. 한국의 대통령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의 가치는 여기에서 빛이 난다. 의지를 가지고 책임을 정치적, 실질적으로 져주는 존재. 법률 제정보다 간단한 대통령령의 발의 방식은 정부의 실시간 대응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집중된 권력은 각 부처의 이해관계나 공무원들의 보수성을 넘어 방향성을 만들어 주는 기능을 한다. 한국이 세계사에 남을 만한 발전 속도를 보여준 것에는 여러 내·외부적 이유가 있겠지만, 필요한 때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기에 최적화된 정치체계도 한몫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5) 문제는 국가가 발전한다고 체감되는 순간의 대통령들이 불관용과 편협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력적인 행동을 하는 성향을 보였었다는 점에 있다.

 

윤석열 어퍼컷_출처 연합뉴스.jpg

출처-<연합뉴스>

 

그러한 점은 그들이 권력을 차지한 방식과 연관성이 높은 행동이라 보는 것이 맞는데도, 다수는 원인과 과정 결과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결과주의적, 자기 편의적인 해석에 익숙하다.6) 역이 성립하지 않는 결론에 다다른다. 잘 살려면 불관용적이고, 고집이 센 행동력 좋은 리더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

 

복잡함은 무기력하고 자율적이지 않은 행정부처를 가진 상황에서는 저 말이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데에 있다. 모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의지 없는 이에게 일의 집행을 모두 맡기는 거다.7) 행동력이 대단한 이가 리더로 있으면 빠르게 해결 가능하다는 경험적 결론을 많은 맹신자가 품고 있어, 경험도 없고 무도한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이른다.8) 하나 행동력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어디로든 가게 하는 것이 행동력이라면, 그 방향은 바를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답답함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그냥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박한 바람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선택을 하는 것보다 나쁜 선택이다. 윷놀이에서는 최소한 뒤로 5칸이라는 선택은 없으니까.

 

대통령은 사실 가장 무지해지는 자리다. 어린아이가 처음 젓가락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도 이보다는 낫다. 집중된 권력구조 탓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많은데, 재임이 안 되는 자리여서 모두가 바르게 이해하는 것 없이 직무를 시작한다. 경험해 본 것으로 익숙해진 것이 없는 상태. 아이는 최소 젓가락을 음식 집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는 데 비해 대통령은 각 기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 존재 자체를 처음 안 경우도 많을 터이다.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자가 아니어야 하고, 해당 분야에 해박하거나 경험이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상대에 대한 존중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리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더더욱.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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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 도중 졸업생 신민기 씨가 "알앤디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했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시대인지도(출처-<대전충남사진공동취재단>).

 

문제는 위 상황과 별개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최고위 권력직이라는 점이, 행동력만 좋으면 나머지는 어떻든 좋다는 맹신하는 지지층을 만났을 때 벌어진다. 권력이 집중되어 합리적인 조언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따르지 않아도 되는 제도적 공백이 발생하는 대통령제의 약점을 증폭시킨다. 권력자 스스로가 지지자의 감정적 부분에 호소하고, 그 호소로 얻어진 지지를 자기합리화에 사용하는 개인으로 따지면 망상장애적 행위가 선거제도에 기반한 근거(믿음으로 인한)로 자행된다. 이 점이 일반 국민들은 알 수 없는 국가 전체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잘 발휘되었을 때는 극복할 수 없으리라 착각했던 한계를 넘는 의지로 발현되지만, 대게는 개인적 망상장애와 같은 비참한 자아비대적 (중2병적) 실패를 낳는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보다, 제대로 모른 채로 하는 것이 나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우린 국가 운영 시스템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10)

 

4. 격변하는 세상

 

남의 모범답안을 따라 하기만 해도 발전을 이룰 수 있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났다. 우리나라식 독재들이 나름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돈을 잘 벌고자 해야 하는 일이 여타 선진국들의 다양한 사례에서 명백히 드러나 있었던 탓과,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국민적 열망이 더해진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절대 그 독재를 행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불관용·편협함·압제·학살 등이 발전의 원인이지 않다. 그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우리는 이성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탓으로 직접 체험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물결과 반도체라는 미래산업의 핵심 되는 분야에 발 빠르게 진입한 덕에 우리는 다른 국가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경제부흥을 이루었다. 다시 4차 산업혁명과 거대 AI의 등장으로 인해 경제구조 변화가 예기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답 또한 이전의 어떤 나라를 따라 한다거나 무지막지한 행동력만으로 밀어붙여서 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미신은 더더욱 안 되겠지).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정보기술 분야 기업들 메그니피센트7_출처 로이터.jpg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테크 기업들 '메그니피센트7'

(애플·MS·아마존·엔비디아·알파벳·테슬라·메타)

출처-<로이터>

 

모든 절차적인 방식들이나 관행들에는 각자의 이유가 존재한다. 법제화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충분한 숙의와 이유가 붙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변함에 따라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생기지만, 전체적인 상황고려 없이 내 눈앞의 불편 하나 때문에 부정당해도 될 만큼 어리숙하게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리란 믿음은 단순하고 순진하다. 모든 것들이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스템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절차를 따르는 것은 이전 판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자, 경거망동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요리 초보의 경거망동은 어지러움이나, 작은 상처로 끝나지만 국가의 경거망동은 사람의 죽음이나, 경제의 파탄, 외교관계의 악화같이 비가역적인 일들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우리가 그것으로 이루어 온 것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동시에 시스템에 가장 부족한 가치를 열정과 행동력으로 실행하고 시스템화 해나가는 사람이 정치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둘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싶다. 그는 시간을 들여 구축해 온 시스템에 담긴 가치를 하루아침에 무로 되돌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 모습은 아마 처음에 언급한 "도그마엔 언제든 의문을 제기하는 마음 자세와 모든 다양한 관점들에 공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차분하게 숙고하는" 모습을 닮았을 것이다. 현대의 정부 시스템은 녹록지 않은 복잡도와 크기, 세밀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사회평론, 송은경 옮김 (1997)의 서문에서 발췌

2) 이런 나쁜 말을 하는 나지만 적당한 연옥에서 불타기를. 대저 2024년에 학살자 이승만, 무능력자 이승만을 부활시켜 기념관을 짓겠다는 인간들의 머리에 망치가 내려쳐지기를. 가급적 이성의 망치가.

3) 이 부분이 무의미하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논리적 논박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채워지지 못한 인정욕구를 채워주는 집단에 소속되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그 집단의 '스피커'에 해당하는 이들은 빨갱이들과 논쟁하는 것은 세뇌당하는 일이라는 말로 '어, 그것은 저 사람 말이 맞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상황 자체를 경직시켜 그 세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부의미래>, 앨빈 토플러. 참고.

5) 국가 차원에서의 행동양식에 있어 기민함과, 필요한 일을 했다는 부분이 그 사회구성원에게 가한 일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개인 인권에 대한 부분을 희석하여 말한 듯한 뉘앙스가 있는 것은 논의하는 scale에 의한 문제이긴 하지만 몹시도 유감이다. 미안하다.

6) 사람을 이성의 동물이라 인간 스스로 자평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지극히 다르다. 인간을 다른 동물들 비교했을 때 감성이나 본성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 스스로가 자기 행동을 하면서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인가 하는 부분을 숙고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나약하고, 인과관계를 모두 인식하기 어려워하며, 또한 그런 과정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귀찮아한다. 평균적으로. 하여 인간 한 명의 라이프 사이클을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인간 다수는 다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장기간에 거쳐 천천히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한 행동을 몹시 보수적으로 수용하고 있을 뿐인 경우가 많다. (아닌 경우는 행동의 변화가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을 순간적으로 일으킬 때뿐이다.. 유행처럼) 항상성에 대한 욕구는 '자아'라는 스스로 만든 상에도 존재한다.

7) 일부를 제외하고도 유지되는 사람집단은 활발하고 상호 호의적인 사람들만 다시 뭉침으로써 해결이 가능한 문제이지만, 뽑아 놓으면 퇴직할 때까지 생계를 보장해야만 하는 공무원의 경우는 그 해결 방법의 궤가 다르다.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 열정과 의지를 유지 할 수 있는 인사 발탁, 운용제도, 인사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 있지만 하나같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여 사람들은 빠른 변화를 바라기에 대통령이 행동력 강한 것으로 하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하고, 투표권에 목마른 여타 권력자(대선후보, 국회의원)들도 그에 부응해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 할 뿐 근본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해결책을 고민하고 제안 해나가는 자들은 드물다. (인식이나 하는 것일까?)

8) 사실 여기에는 국민의 힘이라는 국가의 암적인 존재가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어떤 자리인지 제대로 인지 못 하는 국민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도 윤석열과 같이 준비되지 않은 자를 대통령 후보 자리에 올려놨다. 그저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실로 대통령은 마을 이장과 같은 자리가 아니라서, 자기 자신이 준비된 것만으로는 절대로 올바른 직무 수행을 할 수가 없다. 자신도 올바른 판단을 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정보량들을 처리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과 각종 사건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의 구조(사람 모임, 시스템 등)를 갖추어야만 한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처럼 오랜 시간 야권 활동을 하면서 그 동지를 모은 경우나 노무현처럼 그 올바름에 반한 이들이 모여든다거나 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고, 의지를 가지고 장기간에 걸쳐 그 뜻과 이상, 가치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다. 즉 정치를 이해하고, 몸담고, 정치에 뜻이 있고 그 뜻을 맞출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가 아니고서는 직무수행 자체가 불가능한 자리라 보는 게 맞다. 그걸 국민의 힘 수뇌부들도 명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고기를 팔았다. 그러므로 이준석과 같은 자는 다시는 정치에 발 못 붙이게 하는 것이 옳다.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서 알고도 국민들을 속인 인간.

9) 단순한 기계적 존중만이 아니라, 더 존중받아야 하는 의견과 기본적 존중만 필요한 경우를 나누어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낫지만, 기본적인 존중도 없이 의견을 묵살하는 태도는 체감적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양태는 천지 차이가 난다. 이런 것이 행위적으로는 끌려 나감과 같은 일로 벌어지는 것.

10) 이전의 독재들이 일부나마 큰 발전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범답안이라 할 만한 것이 도처에 있었기 때문에 가깝다. 기아와 가난이 도처에 깔린 나라였기에 국민적 발전에 대한 열망과 합의가 존재했고, 전쟁의 패망에서 경제를 일으켜 세운 일본의 사례가 존재했으며, 서양 강대국들이 굶지 않을 '부'를 만들어낸 자본주의적 행동 준칙이 널리 이해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해야 하는 행위가 명백한 상황에서는 망상적 장애 또한 도움이 된다. 날카로운 현실 인식은 문제에 대한 대응력은 올려줄지 몰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진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국은 최소한의 '빵'을 갖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명백한 편이었다. 잘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정하에.

풍덩, 툭.

보던 유튜브에 대한 미련에 화장실까지 끌고간 노트북 모니터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아닐꺼야.

하지만 두 효과음의 시차가 너무 미묘하다.

아닐꺼야.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기준이던 풍만한 엉덩이 보다도 꽉찬 나의 둔부가 분명 거의 모든 곳을 봉쇄하고 있고.(아닐꺼야..)
살짝 다리를 벌리긴 했지만, 내 랩탑(무릎컴퓨터)를 내 무릎에 잘 얹혀 놓았는걸.
물리적으로, 노트북의 아래에 튀었다면 또 모를까 절대,, 모니터 위로.. 떨어 질수는 없는 것이야...

그래 아닐꺼야.

. . . .
나, 더워서 땀 흘리고 있었.. 던거 맞.. 나?
아니 당황해서 지금 흘리고 있는 건가?
아냐...
그러니까 지금 땀 량이... 아 이마만 촉촉한데 그..
아.... 냐.. 아냐 아냐 아냐....

0.3초쯤 만에 나는 새파랗게 변했다.
터치 모니터라 터치모니터 터치 모니터라 아마 더더욱.

감정이 또 이성을 목비틀어 죽여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