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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7. 금요일

딴지 전임오부리 파토


 


 


 










신(新) 기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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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미녀. 사나이의 영원한 로망.


 


 


오랫동안 연재한 기타스토리, 이걸 어디까지 얼마나 해야 하는지 좀 헷갈리는 데다가 그간 외국도 나다니고 해서 한동안 중단해 왔다. 허나 기왕 하던 거 흐지부지 없애긴 그렇고 독자제현들의 요청도 있어 다시 슬슬 시작해 볼까 싶다.


 


일전에 테크닉 이야기하다 말았는데 벌써 2년전이고 하니 일단은 좀 편한 칼럼으로 간다. 기타 이야기이자 음악 칼럼, 와중에 간혹 세상사는 이야기나 코메디도 곁들여서.


 


그 전에 한 가지. 독자 열분덜은 우원이 오래 기타 쳤고 외국 유학도 다녀왔고 이런 것도 쓰고 있으니 기타의 국제적 실력자일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헌데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진짜 그렇다면 얼른 기타 들고 세계로 뻗어나갈 일이지 왜 이 글 쓰고 앉아있겠냐는 거다.


 


자기개발서 쓴 사람 중에 크게 성공한 사람 별로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은 결국 구라빨이며, 그 그럴듯함의 정도가 성패를 좌우한다. 다만 구라빨이 서는 사람의 경우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성취와 한계 등등을 남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는 있다. 마 기타스토리는 그런 의미에서 써온 글 이다. 기타는 여전히 내게 너무 어려운 악기고, 근데 그렇게 어려워하지는 말자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쓴다고 보면 된다.


 


왜 갑자기 이런 소리냐고? 요즘 기타도 넘 안치고 좀 찔려서.


 


그럼 오늘의 이야기. 말 나온 김에 기타 잘 치는게 뭔지에 대해.


 


 



 


 


얼마 전 본지 왕고참 필자 사무엘 모씨가 '레드 제플린 치려면 얼마나 연습해야 되냐' 고 물은 적이 있었다. 머 레드 제플린 곡도 천차만별이지만, 여하튼 이런 식의 질문은 대답하기 열라 어려운 것이다. ‘친다’라는 것의 정의가 뭔지, 대충 음만 따라가면 치는 건지 아니면 원곡에 준하는 충분한 표현력을 보여야 하는 것인지, 솔로까지 그대로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곡의 틀만 잡아 치면 되는 건지 등등 여러 다른 관점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들은 결국 어떤 곡을 친다는 말의 뜻, 나아가 잘 치는 건 뭐냐 하는 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고 하겠다. 사실 우원은 얼마나 잘 쳐야 잘 치는 거냐는 질문을 지금도 꽤 자주 받는다. 그런데 그 답이 위의 경우처럼 모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결국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 그리고 이 악기가 다루는 쟝르의 특성 때문이다.


 


피아노를 예로 들자. 그쪽 세계에서는 바이엘 치면 초보고 소나티네 치면 좀 더 친 거고 체르니 40번 치면 많이 친 거다. 이런 식으로 그레이드가 단계적으로 올라가는데 참 객관적이고 명약관화하다. 물론 와중에 얼마나 깔끔하게 치고 터치가 어쩌고 감정이 어쩌고 하는 것들이 있겠지만 여하튼 기본적인 판단의 틀은 딱 잡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기타란 넘은 당최 이런 게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치면 쌩초보고 - 머 이건 대략 진리 - 더스트 인더 윈드 치면 좀 치는 거고 스테어웨이 투 헤븐 치면 좀 하는 거고 호텔 캘리포니아 솔로까지 치면 잘 하는 거고. 나아가 잉베이 맘스틴이나 스티브 바이 치면 머 엄청나다. 이런 식으로 말들을 많이 해 오긴 했다.


 


근데 이게 실은 별 의미 없는 소리다. 기타를 잘 치는 것은 테크닉을 기준으로 평가할 문제가 좀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의 <하이웨이 스타> 중 싱글 스트링 속주 파트.

80년대 중반에는 이걸 제대로 할 수 있냐가

일렉기타 실력의 절대적 척도였다. 지금의 테크닉

기준으로 보면 좀 귀엽기도 한데, 웃긴 건 실은 이 솔로는

벤딩이 많은 다른 파트가 더 어렵다는 사실..


 


 


왜 그럴까. 첫째로 기타는 노래 반주용 악기로 등장했고 지금까지도 그 역할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예전에 서대문파와 백마파 이야기를 한 적도 있지만 섬세하고 가는 손가락으로 지판 위를 굴러다니는 연주와 둔탁하고 굵은 손가락으로 코드를 안정되게 짚는 연주는 근본부터 좀 다르다. 이건 그 연주자의 성격, 좋아하는 음악, 심지어 신체적인 구조 등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큼직한 통기타 하나 들고 쉬운 코드 갖고 노래반주만 해도 자기 주장이 있는 연주는 잘 하는 연주다. 반면 억지로 빠른 솔로 한답시고 리듬과 틀이 흐트러지는 연주는 아무리 손가락이 잘 돌아간다 한들 들어줄 가치가 없다.


 


사실 리듬 악기로서의 기타 연주의 최고봉은 정확하고 맛갈나는 리듬 연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70년대 흑인 알앤비/훵크 음악들을 보면 막 화려하게 16비트 리듬을 갈겨대기도 하지만 그냥 밴드 앙상블 속에서 띡띡 한번씩 쳐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을 악보대로 치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 쳐도 그리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다.


 


허나 그래봤자 결과물은 꽝. 왜냐하면 맛갈나는 띡띡 연주 하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알고 경험해야 할게 많기 때문이다. 일단 리듬, 비트의 개념을 이해해야 하고 거기에 맞는 스트로크 법을 알아야 하며 어떤 톤을 써야 적은 수의 음표로 찰진 느낌이 나는지도 깨달아야 한다. 리듬을 몸으로 탈 수 있어야 하고 절제의 미학도 체득해야 한다. 이런 것들의 전반적이고 고급한 성취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연주자와 스티브 바이 중 누가 잘 치냐는 식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코끼리와 고래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짓이다.


 


 



훵크의 황제 제임스 브라운의 <I feel good>. 중간중간 혼 Horn 을 뚫고 나오는 띡 하는 기타 소리를 들어보자. 요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란 말씀.


 


 


두번째, 기타는 아카데미즘의 적용에 한계가 있는 악기다. 이건 예술사, 문화사적인 측면과 관련된다. 옛날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발전해 가던 시절에는 그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는 층이 많지 않았다. 어느 정도 돈과 권력이 있거나, 음악과 관련된 사람들만이 악기에 접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중 소수의 마스터와 그 제자들에 의해 연주법이 형성, 발전, 전수된 거다.


 


그렇게 잡힌 교수법, 연주법, 평가의 틀은 전통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얻게 되고, 지금도 동네 학원에서부터 거대한 국제 콩쿨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 하에서 모든 게 운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잘하는 것의 기준도 그만큼 명확하다.


 


반면 기타는 유럽의 방랑 음유시인과 집시들, 미국의 떠돌이 포크 싱어, 흑인 노예 등이 만들고 발전시킨 악기다. 제작 원리상으로는 나무 상자에 넥 붙이고 줄만 감으면 일단 되는 거고 바이올린의 섬세함이나 피아노의 정교함과 규모가 필요하진 않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들고 다니기 좋으면서도 노래반주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하층 계급에 의해 선호되었던 거다.


 


이렇게 탄생하고 발전한 기타에 무슨 권위있는 교수법이나 아카데미즘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을리 없다. 그런 것들이 시작된 것은 70년대 버클리 음대 등 일부 대학이 대중음악, 기타전공 과목을 만들면서부터인데, 우원도 그런 학교 중 하나를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대중음악과 아카데미즘의 연계는 필연이기도 하지만

본질상 언제나 일정한 한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세번째는 쟝르적 특성이다. 클래식 악기들은 대개 남의 곡을 연주하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바하 등등. 따라서 음표 하나하나까지 이미 잘 알려진 기존의 곡들을 얼마나 잘 연주해 내느냐에 따라 상당히 객관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


 


아래는 10살짜리 아이, 그 밑은 루빈슈타인의 쇼팽 연주다.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는 두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참고삼아 느껴보자. 만약 열살짜리 아이가 기타를 이렇게 친다면 불문곡직하고 다들 환호성을 보내겠지만(정성하의 경우처럼), 거장과 직접 비교해 보면 표현력이나 감성에서 확실한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똑같은 음표를 치고 있기 때문에 비교하기 쉽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는 프로 아티스트들의 경우 자작곡을 연주하기 때문에 '그 곡을 연주하는 다른 누구'라는 비교 대상 자체가 없고, 일반 아마추어들의 경우에도 유명한 원곡과 꼭 똑같이 연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더 높은 평가를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곡을 멋지게 재해석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니 뭘 칠줄 알고 뭘 못치거나, 원곡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능력 따위가 기타를 잘친다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래는 커티스 메이필드의 <people get ready>, 그 아래는 제프 벡의 같은 곡이다. 전혀 스타일이 다른 이 두 연주를 누가 더 잘하냐고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참고로 메이필드가 원작자임.


 


 



 


 



 


 


그러니 기타를 이제 잡고자 하는 분덜, 혹은 좀 치면서 내가 얼마나 치나 고민스러운 분덜은 그런 생각은 좀 덜어내자는 거다. 특히 남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아주 좋지 않다. 또 일부에서는 이정선 기타교본식의 초급, 중급, 고급 등으로 나눠서 자기 수준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거야말로 7,80년대식 사고 방식이다.


 


우원은 초급반 <바위섬>을 깔끔하고 자신있게 반주하는 사람이 고급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나 <far beyond the sun> 을 지저분하게 갈기는 사람보다 훨씬 좋은 연주자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럼 다음 시간에.


 


 


Ps. 반면 못치는 기타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아래의 귀한 영상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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