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2. 09. 10. 월요일

논설우원 파토


 


 



 


 



스핑크스와 카프레 피라미드. 우원 직찍


 


 


형태, 즉 디자인은 피라미드와 관련되어 가장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부분 중 하나인데도 연구나 논의 과정에서는 중요성에 별로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을 연구하는 학자나 연구자들의 성향상 아무래도 형태나 디자인 보다는 건축술이나 규모 등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관심을 갖던 아니던 디자인이 가진 문명사적 의미는 다른 어떤 요소들 못지 않게 중차대한 것이다. 디자인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당대의 시대상, 사고방식, 철학, 예술관 등 다양한 면들을 시각적으로 직접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기자 피라미드의 디자인을 한번 살펴보자. 그 동안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는 피라미드 모양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버리고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 보시라.


 



 


…이 거대한 사각뿔 건물들이 4,500년 전에 지어졌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여겨지시는가? 현대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극단적으로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 지난 시간에도 말했다시피 지금과는 달리 700여년 전까지는 그야말로 매끈한 외관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인류역사상, 신구를 막론하고 세계 어디에도 여기에 비할 형태와 규모의 건물은 존재한 적이 없다(이 형태를 따라 지은 현대의 건물들은 있지만 이 논의에서는 무의미하며 일부 여타 고대 피라미드들은 나중에 따로 언급). 다시 말해 고대와 현대를 통틀어 이렇듯 오직 기하학적 단순미만을 가진 형태가 이처럼 거대한 건물로 만들어진 경우는 달리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사각뿔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천 년 전의 과거가 아닌 현대나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배운 역사의 타임라인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원래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위와 같이 매끈한

석회암 패널로 빈틈없이 포장되어 있었다.

우측 위의 사각형 안에서 보듯 현재의 계단식 구조는

마감된 외장이 아니며, 1301년 대지진으로

카이로 시내의 건물들이 무너지자 개축을 위해

외장 석회암을 벗겨간 것이 지금의 결과다.


 


…지구상의 모든 문명들은 자신들의 업적이나 발전상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문자와 그림, 심볼 등을 사용해 왔다. 그리고 발달된 문명일 수록 복잡한 선을 사용한 도형이나 고급스러운 기법의 회화, 조각 등 한 눈에도 세련미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각적 수단이 동원되는데, 이는 고대 수메르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법칙이며 예외가 없다고 봐도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저 단순무비한 기하학적 디자인을 저렇듯 거창한 스케일에 적용할 정도라면 그 문명의 고급함은 ‘일반적인’ 차원을 넘어선다고 봐야지 싶다. 자칫 엉성해 질 수도 있는 화려하고 복잡한 형상과 치장을 통해 스스로를 포장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히 전위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누가 알아보던 말던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어법을 통한 내재적 세련미와 숨은 의미의 표출. 그것이 바로 이집트 피라미드의 디자인 철학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부분이 생긴다. 이 디자인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하던 3, 4왕조 전후 청동기시대 이집트인들의 갑작스러운 발명품인 걸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알려진 역사 이전의 시대, 즉 신화의 영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형적인 이집트 회화와 디자인의 모습

피라미드 같은 기하학적 단순미가 아닌

화려하고 세련된 도안과 색채를 추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집트 신화에는 '벤벤'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피라미드 텍스트에 따르면 - 이 텍스트는 기자 피라미드가 아닌 5,6 왕조 시대 사카라 피라미드의 내벽에 기록된 것이다 - 벤벤은 태초의 물 누 Nu 에서 솟아오른 언덕을 뜻한다. 최고신 아툼 Atum 이 그 위에 앉아 있었다고 하고 아툼 자체와 동격으로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이 벤벤과 관련된 신화는 카이로 근처 핼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이집트 각지에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제 벤벤석(石)이라는 게 있다. 이건 저 벤벤에서 이름을 따 온 것으로 보이는 성스러운 바위인데 태초에 태양빛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이라는 헬리오폴리스의 태양 신전에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벤벤, 그리고 벤벤석의 형태가 바로 우리 눈에 익숙한 사각뿔로서, 기자의 것들을 위시한 다른 피라미드들의 원형이 됨은 물론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올려진 돌의 모양이기도 하다.


 



레드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던 벤벤석.

배경으로 굴절 피라미드가 보인다.


 



카르낙 신전의 오벨리스크. 필자 직찍


 


이런 사용처에서 보듯 고대 이집트에 있어서 이 벤벤과 그 형태가 가진 의미는 컸다. 그럼 이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커다란 언덕이었다는 벤벤과 바위 덩어리 벤벤석은 같은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비록 오벨리스크 꼭대기 각도의 경우 일반적인 피라미드 벽면보다 더 급한 경사를 이루긴 하지만, 이런 정도는 제작 기술과 용도의 차이에 따른 실용적인 변화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사카라의 굴절 피라미드에서 볼 수 있듯이 피라미드 같은 거대 건축물을 지나치게 예리한 각도로 세우는 데는 무리가 있다).


 


굳이 이 둘을 구분 짓는다면 명확한 차이는 크기에 있다. 언덕이라는 개념은 작은 산에 가까운 것이니 피라미드의 원형이, 신전에 안치되었다는 바위는 그리 클 리 없으니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놓여진 벤벤석의 원형이 되는 셈이다. 그와 관련해서 물에서 솟아오르고 태양에서 왔다는 서로 다른 기원이 있지만, 한편으로 둘 다 ‘태초’와 연관된 무엇이라는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결국 이 둘은 원래 같은 것이거나 공통의 무엇을 상징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이 사각뿔 형태는 이집트 문명의 시원(始原), 나아가 인류 문명의 시작점과 관련되어 있는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원은 이제 영화 <스타게이트>에 등장하듯이 초고대에 이런 사각뿔 형태의 외계 우주선이 찾아왔고 그들이 이집트, 중동, 혹은 전체 인류 문명을 일으켰으며, 피라미드와 벤벤석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돌로 그 모양을 흉내 내 만든 거라고 주장하는 걸까?


 


그런 건 아니다. 얼핏 인상과 달리 우원은 그런 류의 접근을 좀 불편해 하는 편이고, 같은 이유로 에리히 폰 다니켄 류의 주장들 - 조금 그럴듯한 것은 모두 고대 외계인과 관련시키는 - 이나 제카리아 시친이 <지구연대기>와 기타 저작들에서 제기한 관점들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무엇은 아닐 거라고 본다는 말씀.


그렇다고 이게 아예 불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띵 이즈 임파서블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럼 뭐냐고? 자자, 좀 더 가보시자.


 


사실, 앞의 사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사각뿔 형태는 이집트의 나머지 디자인들, 즉 히에로글리프(상형문자)를 위시한 다양한 문양과 도안들, 왕가의 계곡에 남겨진 벽화들, 룩소르나 아부심벨 등에 있는 신전들의 화려함과 비교해 기이할 정도로 이질적이다. 이런 점은 벤벤의 선(先) 이집트적 존재감을 더욱 뒷받침하는 요인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기자와 사카라 등 많은 피라미드들이 이미 초기 왕조 시절에 존재했음에도 - 현재까지 크고 작은 약 150여개의 피라미드가 발견 - 이집트 전역에 남아 있는 수많은 벽화나 그림에 이 피라미드들이 도무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거대하고도 엄청난 것을 만들어 놓고 그 형상을 이후 2천년이 넘도록 회화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안 그러냐.


 



오시리스와 이시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집트 회화에는 신화의 주요 인물들, 오시리스와 이시스, 호루스 등의 스타들은 물론이고 창조신 아툼도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유독 벤벤만이 그려지지 않는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쉽지 않다.


 


일단 한 가지 참고로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신화 시대라고 해도 벤벤/아툼 시대의 배경과 이시스/오시리스의 배경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말 나온 김에 이 부분에 대해 좀 읊어 보자.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 유일신관에 젖어 있어서, 이집트/그리스/로마적 다신교 신화 속에서의 신들의 관계나 그들의 배경에 대해서는 감각이 부족하다. 이들 신화 속에서는 신들 사이에도 위계질서와 서열이 있고 가족 관계도 존재하며 다치거나 심지어 죽기도 한다는 사실, 스토리를 통해 다들 접하긴 했지만 그것이 가진 의미를 통찰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씀이다.


 


다신교에서 영어 소문자로 표기되는 신(god) 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서의 무엇일 뿐, 유태교적 무소불위/무소부지의 대문자 절대신(God) 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다신교의 신들은 인간보다는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자기의 특수한 분야가 있고, 그 외의 영역에서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갖고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로 갈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신으로 추앙 받을 것이다. 1개 대대 정도의 무장만 갖춘다면 한 나라의 실제적인 정복과 지배는 물론, 위대한 군신으로 숭배 받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시리스 이시스 아폴로 디오니서스 등등의 신은 '이를테면' 이런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창조신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나머지 신들을 포함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만든, 그 원인이 되는 자다. 따라서 비록 유일신은 아니라 한들 그가 가진 힘은 나머지 신들을 다 합쳐 놓은 만큼 강력하고도 절대적이다.



창조신 아툼. 아톤 Aton 이라고도 불리고

태양신 레 Re 와 합쳐져 아툼-레 가 되는 등

그 이름과 성격이 계속 변화하는 존재다.


 


사실 다신교에서의 이 '창조신 - 다른 신들' 의 관계는 유태교적 유일신 전통 속에서의 '신 - 천사' 관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신에게 불복해 반란을 일으킨 대천사 루치펠(루시퍼)과 그를 추종하는 타락한 천사(마귀) 집단의 개념은 사실 엄밀한 유일신관 속에서는 뭔가 마뜩치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왜 무소불위의 절대신이 이 마귀들을 한 주먹에 때려잡지 않느냐는 의문이 계속 생겨나고, 여기에 대답하기 위한 다양한, 그러나 석연치 않은 논리들이 등장해 왔다.


 


이런 부분은 유태교를 비롯한 유일신교도 실은 다신교에 그 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신은 오직 아무개 한 분 뿐'이라는 모세적 선언이 순수 신학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권력 이데올로기 차원의 언명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만든다.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라던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들도 실은 다른 신의 존재를 전제하는 다신교적 전통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여하튼, 포인트는 오시리스나 이시스 등은 후대에 아툼의 자손들로 '태어난' 신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도 있지만 시대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등은 창조신 아툼의 증손자 뻘이 되는데, 신화가 가진 특유의 상징성 등을 감안한다면 이것이 우리 인간들처럼 불과 100년 남짓한 정도의 시대를 의미하는 건 아니며 길게는 수천 년의 세월을 격할 수도 있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대천사 루치펠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던 시절에 이미 타락해서 천사 3분의 1과 함께 여호와에게 반기를 들고는 결국 추방된다(근거는 에덴동산의 뱀이 바로 타락한 루치펠의 화신이기 때문).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둘만 살던 시절 이미 천국에서는 루치펠이 태어나고(만들어지고) 대가리 커져서 반란 세력을 이끌고 창조신과 맞장 뜰 정도까지 되었다는 건데, 이 전반적인 이야기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이던 간에 긴 세월을 필요로 하는 과정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신화 세계의 타임 스케일은 우리 일상의 것과는 다르다는 말씀.


 


그래서 신화 시대라는 같은 이름으로 묶이긴 해도 벤벤이 물에서 솟아오른 시대와 오시리스가 죽었다 살았다 하는 시대는 별로 비슷한 때가 아닐 거라는 이야기다. 침을 뱉고 음식을 토해서 슈와 테프누트를 낳았다는 창조신 아툼과, 아들 호루스를 낳기 위해 섹스를 해야 했던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아예 다른 류의 존재로까지 보인다.


 


이제 논의로 돌아오자. 벤벤과 아툼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기억 속에서도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만큼 너무도 멀고 신비하고 위대한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다루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고, 그 신성에 대한 표현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아툼의 경우는 여하튼 인격신이기 때문에 시대가 변하면서 따라 변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름과 캐릭터를 얻게 되었다는 점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18 왕조의 파라오 이크나톤(아케나톤, 아크나톤, 아메노피스) 은


이집트 전통의 다신교를 파기하고 태양신 아톤(아툼)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기나긴 다신교 전통 속에서도


아툼의 창조신적 권위가 남아 있었다는 점, 그러면서도 후대의


인물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인격적 측면이 강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벤벤은 다르다. 벤벤은 태초에 아툼이 앉아있던 언덕으로서, 아툼만큼 오래되거나 심지어 더 오래되어 보이기도 하는 무엇이다. 하지만 아무런 인격이나 별다른 특성도 드러난 바 없이 오직 형태만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이 변하지 않는 형태 자체가 본질을 규정한다고 봐도 무방한 존재다.


 


이집트인들은 왜 이것을 그리지 않았던 걸까…?


 


그것은 벤벤의 형상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래를 보자. 얼핏 뒤에 그려진 평평한 삼각형들이 벤벤 비슷하기도 하지만, 그 형태가 조잡하고 평면적이라서 특성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사실 고대 인류는 조각에서의 뛰어난 표현력과는 달리 3차원의 물체를 2차원 평면에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회화 기법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이집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아래처럼 얼굴은 옆면, 상체는 앞면, 하체는 다시 옆면으로 그리는 이집트 회화의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킨다. 얼핏 대상의 앞면과 옆면 등을 동시에 그려내는20세기 큐비즘을 연상케도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대칭과 각도, 3차원적 입체성이 형태적 특성의 전부라고 할 사각뿔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기하학적 특성을 살릴 수 없는 형태로 대충 그리는 것은 이집트인들에게는 성스러운 벤벤의 의미를 훼손하는 불경스러운 일에 가까웠을 것이다. 헌데 이는 역으로 이 벤벤의 형태와 관련된 의미와 본질이 그들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신화 속에서의 벤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창조신이 앉은 언덕으로 솟아올라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상을 이어주고, 하늘 끝 태양에서 내려와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신화적인 의미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언저리의 수많은 질문들을 풀어줄 수 있는 실제적인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다음 시간에.


 


 


논설우원 파토

 


@pato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