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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2. 수요일

카인


 


우리는 10여 년 전,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만났다.


 


게시판은 랩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당연히 우리 또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게시판 공간의 숙명인 오프라인 모임이 몇 번 지나갔고 10여 명의 10대/20대 남정네들은 급속도로 친해져 한 무리가 되었다. 제각각 사는 곳도 사는 모습도 주변 환경도 다른 일군의 무리들.


 


힙합에서 이렇게 소속감을 느끼는 무리를 크루(crew)라고 부른다. 우리는 보편적인 크루의 특징과는 달리 특정한 이름을 오랫동안 짓지 않았다. 그냥 '우리'로 충분했다. 우리는 우리인 게 너무 좋았다. 다들 같은 음악을, 랩을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뮤지션의 경력은 데뷔 앨범 혹은 데뷔 곡부터 서술되기 마련이다. 그 이전 시간은 '무명' 혹은 '준비 기간'이라는 식으로 퉁쳐지기 마련이다. 모여서 더불어 어울려 노는 시간은 매우 소중했지만, 이내 몇몇에게는 그 시간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서술해야 할 상황이 도래했다. 그만큼 시간이 꽤 흘렀다. 진학을 하거나 군대를 가거나 이민을 가거나 취직을 하거나 하면서 무리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때쯤부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앙드레빌', 짧게 ADV라 부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우리가 우리로만은 있을 수 없었다. 꿈이 구체화되었으니까.


 


우리 중에는 '음유시인'이라는 이름을 쓰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는 다른 크루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그의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로 이뤄진 TRF라는 곳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TRF와도 종종 함께 놀았다. 함께 모여 공연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름을 만들기 직전, 그는 군대를 갔고 연락이 뜸해졌다. 나머지 TRF의 멤버들 또한.


 


 



TRF의 멤버였던 '음유시인' 정대건. 작명에 실패하면 평생을 쪽팔릴 수도 있기에 작명소란 업종이 존재한다.


 


 


본디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다. 길거리, 노래방, 스튜디오, 술집, 음식점 등을 전전하며 놀고 싸우고 취했던 두 무리의 청년들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게도 가물가물해져 갔다. 우리 각자는 먹고 살아야 했고 자기 커리어를 급히 쌓아야 했다. 예전처럼의 끈끈함이 퇴색되어 갔다. 참 흔한 일이다.


 


간간이 소식을 전해들으며 지내는 몇 년이 지났다. ADV에서는 두세 명이 데뷔를 하여 전업 뮤지션의 길로 들어갔다. TRF에서는 아직 그런 소식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세상 어느 곳에나 있다. 독자들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하나쯤은 자신만의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빛나는 젊은 시절의 유쾌한 이야기. 이제 이런 이야기들은 추억으로 접어들고 가끔 꺼내 매만지는 용도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나 만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가끔 옛날의 우리를 보기도 한다. 그게 사는 거 아닌가.


 




 


2010년이 되었다. 나는 결국 음악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지만, 그게 인간 관계를 리셋한다는 의미는 아니기에, 한 공연장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음유시인'을 다시 만났다.


 


이제 자기가 지은 이름을 버리고 본명인 '정대건'으로 나타난 그 녀석의 손엔 육중한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저것보다 더 큰 카메라를 몇 시간이고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깨달았다. 이제 함부로 장난걸다가는 내가 형이어도 맞으면 많이 아프겠구나.


 


 


그때부터 대건이는 자주 공연장과 뒷풀이 술자리에 나타났다. 예의 카메라를 늘 들고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고 했다. '우리'들을 화면 안에 담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대건이는 우리를 하나하나 인터뷰했다. 오랜 친구에게서 인터뷰 받는 기분은 매우 묘했다. (그래서 나는 도망갔다. 덕분에 나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위해 정말 잘한 일이다.)


 


1년이 넘는 작업이 이어졌다. 대건이는 그 1년 동안 ADV와 TRF의 친구/형/동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이 섹시했다. 'To Old Hiphop Kid' 우리가 벌써 늙었던가.


 


영화제에 출품된 첫 상영은 놓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영화가 상을 받았다. 37회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건이의 영화는 우수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출품하더니 여기서도 관객상을 받았다. 관객상이라니. 재미있어야 받는 상을 받다니. 그때 깨달았다. 이제 '야 대건아' 혹은 '음유 이 녀석'이라고 부르는 대신 '정 감독'이라고 불러야 하겠구나.


 


그리고 나서 한참 후에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공유했던 즐거웠던 과거의 기억은 없었다. 대신 '우리'의 현재가 있었다. 같이 꿈꾸고 놀던 '키드'들이 나이든 후의 모습들. 그들이 말하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 우리 각자의 삶이기에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던 모습들이 새롭게 담겨있었다.


 


'우리'를 묶어주는 공통점인 '힙합'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힙합을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모습이었다. 뮤지션이든 다른 직업을 갖고 있든 찬란했던 성장기를 공유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생활인이 되어 나이들어가고 있는 모습.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그 모습을 정대건은 유쾌하게 담아내었다. 추억이 된 과거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건 우리들에게만 각별한 이야기다. 현재는 추억의 연장선에 존재하니, 우리의 현재가 다르게 담긴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아름다웠다.


 


[투 올드 힙합 키드]의 덕목은 여기에 있다. 과거를 말하지 않고 현재를 말한다. 우리들 자신에게나 의미있는 옛날 얘기를 했더라면 영화는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감독은 ADV와 TRF의 멤버들 전부를 담아내진 않았다. 이게 두 번째 덕목이다. 모든 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감독 자신의 질문에 맞는 이야기만 풀어냈다. 감독은 이렇게 질문한다.


 


 



감독 정대건의 질문.


 


 


너무도 흔한 질문이고 그만큼 중요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해보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힙합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청춘 다큐멘터리다. 힙합을 모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멀게 느낄 필요는 없다. 저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으면 된다.


 




 


가끔 사람들이 헷갈리지만, 젊음은 패기와 동의어가 아니다. 젊음은 오히려 시행착오와 머뭇거림의 총합에 가깝다. 정대건은 그래서 저 질문을 '진로 고민'이라는 딱딱한 틀에 놓지 않는다.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놓는다. 이미 음악을 꿈꿨다가 포기한 전력 때문에 그는 더욱 조심해서 고민한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잡은 정대건에게 그의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정신차려라 아들아!"


 


정대건 감독의 어머님 이은구 씨는 영화의 반 이상을 홀로 책임진다. 그녀가 아들인 감독에게 던지는 충고는 '어른'의 시각, 안티테제를 대변하는 동시에 영화의 가장 주된 웃음 요소로 기능한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아들과 정신 좀 차리라는 어머니가 주고 받는 만담은 영화가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매우 돋보인다.


 


 



말 안 듣는 아들은 만고불변의 캐릭터


 


 


꿈을 쫓고 싶다는 정대건의 테제를 둘러싼 인물들은 ADV나 TRF 출신들이다. 같은 꿈을 꿨고 같은 테제를 공유했던 그 사람들은 지금 제각각의 위치에 있다.


 


고정현은 JJK라는 이름을 쓰며 현재도 ADV 소속이다. 홍대에 거주하며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운다. 정규 앨범 세 장과 비정규 앨범 한 장을 냈고 이제 슬슬 중견급으로 접어들어가는 중이다.


박상혁은 허클베리 피(Huckleberry P)라는 이름을 쓰며 ADV였다. JJK와 더불어 즉흥 랩을 특기로 한다. 듀오 피노다인(Pinodyne)에서 랩을 하고 솔로 앨범도 내면서 정상급의 위치에 근접해 있다. 친구와 함께 홍대에 살며 집세 걱정을 안 하는 척 한다.


민주홍은 지조(Zizo)라는 이름을 쓰며 TRF 출신이다. 천부적인 끼와 재능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데뷔를 하지 못했다가 프리스타일 랩 대회에서 1등을 하며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 BK Block과 투게더 브라더스(Together Brothers)라는 듀오를 만들어 첫 앨범을 냈다. 자신들의 첫 앨범, 사인반에 끝없이 사인을 하면서도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광석은 자신의 본명에서 이름을 만들어 DJ 샤이닝스톤(Shining Stone)이 되었다. 지조의 동료로 정대건과 만난 이 사람은 음악하며 사는 게 즐겁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 소박한 사람이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만 나오지 않는다. 감독과 동일하게 꿈을 포기했거나 유보시켜둔 사람들도 있다.


 


유현우는 ADV였고, 데피가(Defiga)라는 이름의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본업은 회계사다. JJK, 허클베리 피, 그리고 자기 친구인 김낙싸움닭을 끌어들여 D-League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앨범도 하나 냈지만 2집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현재는 회계사로서의 발전을 위해 유학을 떠났다.


장지훈은 TRF의 최고 미남이었고 지금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수험생이다. 감독 정대건에게 '언제까지 자기 생각만 하고 꿈 타령이냐. 나중에 나올 네 처자식도 생각해야지.' 라고 훈계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블루트레인(Blue Train)이라는 이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김기현은 5me5m(오메옴)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쓰던 ADV였다. 허클베리 피와 듀오로 그에 필적하는 프리스타일 래퍼였고, 헠피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김기현을 꼽는다. 현재는 포항에서 공대 대학원생이 되어 자기 교수님을 잘 모시고 있다. 그가 랩을 그만둘 때 내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에선 이런 플로우가 먹히지 않거든요." 지금 그는 래퍼였던 과거에 대한 추궁(?)을 들으면 쑥스러워 하다가도, '그래도 노래방 가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들의 '포기 혹은 유보'는 대부분 안정적인 생활이 이유가 된다. 모든 젊음이 직업과 진로를 선택할 때 듣게 되는 '경제적 문제'다.


 


그리하여 감독 정대건은 고민한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했고 지금은 영화를 하고 싶다. 꿈을 택하면 앞길이 가시밭길 될 것은 뻔하지만, 음악을 포기했을 때를 떠올리면 포기 그 자체가 큰 고통이 된다.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매우 진부하지만 누구나 가져봤던 고민이다.


 


때문에 영화는 심각하고 무거워질 수 있었지만 의외로 밝게 진행된다. 그 대부분의 공은 감독의 어머니에게 빚진다. 어머니의 유쾌한 언변은, 지조가 보여주는 '살짝 넋나간 듯한' 캐릭터 이상으로 웃음을 준다. 웃으면서 보다 보면, 이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힙합이라는 것은 잊혀진다. 다만 꿈과 젊음에 대한 이야기일 뿐. 그 꿈이 힙합이었고 그 젊음이 ADV와 TRF의 무리일 뿐이다.


 


 



영화에 쓰인, 10여 년 전 ADV/TRF의 합동 공연 후의 사진 중 하나. 등장인물 외에는 모두 얼굴을 가렸다. 결코 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투 올드 힙합 키드]는, 그래서 감독의 셀프힐링 프로젝트이며 고민해결 프로젝트다. 이런 게 재밌다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재밌기 때문일 것이다. 내 개인사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재밌는 것은 아닌 거 같다. 두 번의 관객상이 증명해준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파토 우원의 평은 이랬다. '세계 무대에 나가도 통하겠다.'


 


 



제천국제영화제에서는 매진도 됐다.


 




 


왜 갑자기 개인사까지 끌고 나와 긴 얘기를 하면서 이 다큐멘터리 얘기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투 올드 힙합 키드]가 정식 개봉한다. 그것도 전국 개봉이다. 언제부터냐고? 내일, 13일부터다.


 


 



우왕. 나 저 출연진 중 DJ 샤이닝스톤 한 명 빼고 다 안다. 자랑이다.


 


 


배급은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배급했던 '시네마 달'에서 담당한다. 상영관 소식은 여기서 확인하면 된다.


 


독립 영화나 독립 다큐멘터리가 꼭 소수를 위한 예술 작품이지는 않다. 이런 소소한 재미의 작품이야말로 많은 사람이 보면 매우 좋다. 유쾌한 고민의 작품 [투 올드 힙합 키드]를 추천한다. 잘 되면 대건이, 아니 정 감독이 이 가난한 형에게 술은 사겠지.


 


[투 올드 힙합 키드] 블로그


감독 정대건 트위터


 



현재 감독은 자기 반성중.

너의 죄는 영화에 내 10년 전 얼굴이 떡하니 드러난 사진을 몇 번이나 사용했다는 것이다. 너의 과거 이름을 서두에 거론한 것은 그 복수다!


 


 


카인

트위터 : @Kain_Sul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