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2월 22일, 한 척의 배가 많은 이들의 눈물의 환송을 받으며 제물포항을 떠났다. 121명의 조선인을 태운 일본상선 겐카이 호였다. 그렇게 조국을 떠난 이들은 일본의 고베 항에 도착해서 일부를 제외하고 다시 갤릭 호로 갈아타고 마침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했다. 그들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이민자들이다. 이후 1905년까지 7,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쇠락해가는 조국을 떠나는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조국 땅을 바라보며 그들은 바다에 회한의 눈물을 뿌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는 조국에서의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할 희망과 기대로 가슴이 설레지 않았을까? 그들 이민자들을 부른 곳은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곳에서 힘든 노동을 하며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 했다.

그들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그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그들은 다시 한 번 억누를 수 없는 회한에 사로잡혀 하와이의 거친 사탕수수 농장에 눈물을 뿌렸을지 모른다. 이제 그들은 나라 없는 유랑민이 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이산의 고통에 망국의 설움까지 짊어져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독립운동에 헌신적이었는지 모른다.

초기 이민자들은 대부분 독신남자들로서 결혼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하와이라는 낯설고 물선 땅에서 결혼할 여자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사진결혼이었다.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으로 선을 보고 신부가 될 사람이 낯설고 먼 하와이로 찾아가 낯선 사내와 신혼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그렇게 하와이로 찾아간 여자들이 이름하여 ‘사진신부’들이었다.

앞서 이민을 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달랑 사진 한 장 들고 그들을 뒤따라간 여자들도 모두 가난한 집안의 딸들로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싶은 당찬 꿈을 지녔다. 그러나 하와이에 도착한 신부들을 기다린 것은 달콤한 신혼의 꿈이 아니었다. 사진 속의 잘 생긴 젊은 남자는 온데 간 데 없고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은 늙수그레한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이 오래 전의 사진을 보낸 것이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렇다고 돌아올 수도 없는 일, 그들은 낯선 나라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며 서로 정을 붙이고 살았다.

캐시 송이라는 하와이 시인이 있다. 그 성(姓)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녀의 할머니가 바로 사진신부였다. 그녀는 <사진신부>(Picture Bride)라는 시에서 자기 할머니의 결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을 떠날 때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스물세 살이었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의 집 문을 닫고

걸어갔는가. 그리고

부산의 양복점들을 지나

부두로 가는 길은

먼 길이었나. 그곳에선

최근에야 그 이름을 겨우 알게 된

한 섬으로 그녀를 데려다줄

배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섬의 해안에선

한 사내가 기다리며

와이아루아 사탕수수 공장의

야영지 밖에 켜진 등불에

그녀의 사진을

비춰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방 안은

사탕수수 대들에서 이주해온

나방들의 날개로

밝게 빛났다.

나의 할머니는

무엇을 가져왔나? 그리고

그녀가 도착해 남편인

열세 살 연상의

낯선 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비단 저고리 끈을,

사내들이 사탕수수를 태우고 있는

주위의 들판에서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에

부풀어 오른 텐트 모양의 치마를,

다소곳이 풀었나?

재미있는 한 편의 시로 넘기기에는 구한말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깊이 묻어난다. 흔히 디아스포라라고 불리는 근대 우리 민족대이동의 한 단면을 우리는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미국에서 거의 4,000km나 떨어진 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섬들이 언제 어떻게 ‘미국 땅’이 되었을까? 하와이 강탈은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신호탄이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경제는 남북전쟁 후 북부를 중심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속도는 아마 오늘날의 중국에 버금가거나 능가할 것이다. 그 결과 19세기 말에 미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으며 미국제라면 오늘날의 중국제만큼이나 짝퉁과 불량품의 대명사였다. 그런 급속히 팽창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해외에서 팽창주의 정책을 폈다. 처음에는 ‘안마당’인 중남미에서 유럽 세력을 견제하면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스페인과의 전쟁이다.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정복 이래 오랫동안 중남미에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19세기 초에 대부분의 식민지들이 독립해 남은 곳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정도였다. 쿠바 섬은 미국의 플로리다 바로 아래 있는 섬으로 오랫동안 미국의 팽창주의자들이 탐내고 있었다. 그 섬이 19세기 중엽부터 독립투쟁을 벌였는데 1895년에 쿠바인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자 스페인 정부가 잔인하게 진압하였다. 이에 미국은 스페인의 ‘반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규탄하였다. 그런 가운데 1898년 아바나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미국 군함 메인 호가 공교롭게도 폭발하여 260명 이상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미국은 즉각 그것을 스페인의 소행으로 의심했으며 미국 해군 재판소는 스페인의 잠수함 기뢰가 폭발시킨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어떤 명확한 증거도 없는 결론이었다. 나중에 나온 증거들은 오히려 기관실 내부의 우연한 폭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인들에게 스페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연일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메인 호를 기억하라’라는 노래는 대중의 감정을 부추겼다. 이런 여론을 등에 업은 미국은 마침내 4월 25일에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리고 전쟁은 뜻밖에도 싱겁게 끝났다. 쿠바 반란자들의 지원을 받은 미국은 7월에 쿠바를 완전히 점령하고 8월에는 푸에르토리코를 차지했다.

푸에르토리코는 콜럼버스의 정복 이후 일찍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그 식민지를 이때 미국이 차지했다. 그러나 완전 독립을 원했던 푸에르토리코 인들은 미국의 점령에 저항하였으며 이에 미국은 1917년에 제한된 자치를 허용하고 그곳 주민들을 미국 시민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1952년에는 미국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하는 푸에르토리코 연방을 수립했다. 즉,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속국이 되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페드로 피에트리(Pedro Pietri)라는 시인은 미국에 사는 푸에르토리코 인들의 고단한 삶을 <푸에르토리코 인의 사망기사>라는 시(부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들은 일했다

그들은 항상 시간을 지켰다

그들은 결코 지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욕을 받으면

결코 대어들지 않았다

그들은 일했다

그들은 달력에 있는 날 외에는

결코 일을 쉬지 않았으며

그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는

결코 파업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주일에 열흘 간 일하고

임금은 닷새 분만 받았다

그들은 일을 했고

그들은 일을 했고

그들은 일을 했고

그리고 그들은 죽었다

한편 스페인과 전쟁이 벌어지자 해군 차관보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태평양 함대의 사령관 조지 듀이에게 필리핀으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고, 그 명령에 따라 미군은 5월 1일에 마닐라 만에서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고 필리핀을 점령했다. 그리고 12월에 파리조약에 따라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끝내고 2000만 달러를 스페인에 주고서 필리핀을 차지했다. 필리핀인들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미국은 필리핀을 두고 스페인과 흥정한 것이었다.

미국의 점령 후 필리핀인들은 에밀리오 아귀날도(Emilio Aguinaldo)라는 반군 지도자를 중심으로 미국을 상대로 1898년부터 1902년까지 만 4년간에 걸쳐 독립투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는 20만 명의 미군이 참전하였으며 4만 3000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미군보다 훨씬 더 많은 필리핀인들이 죽었다. 이 전쟁은 미국의 부도덕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 전쟁이었다. 당시 필리핀 주둔 미군 사령관은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버지인 아써 맥아더(Arthur MacArthur)였다. 앨런 브링클리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군사적 노력은 체계적이고 악랄하고 잔혹했다. 포로로 잡힌 필리핀 게릴라들은 전쟁 포로가 아니라 살인자로 취급되어 대부분 즉결처분되었다.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야만성이 증대되어 필리핀인들을 거의 인간 이하로 보게 되었고, 때로는 거의 마음대로 죽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필리핀인들의 저항은 아귀날도가 1902년에 체포되면서 사실상 끝났으며 필리핀은 그 후 1946년에 독립할 때까지 미국의 식민지로 있었다.

미국이 19세기 말에 이렇게 제국주의적인 팽창정책을 편 것은 미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미국은 과잉생산품들을 처분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으며, 그 돌파구를 중남미와 아시아에서 찾았다. 그런데 태평양이 보통 넓은 바다인가? 미국이 잠재적인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넓은 태평양에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은 하와이 제도와 미드웨이 제도와 웨이크 섬과 괌 섬을 차례로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아 식민지로 삼았다.

하와이는 여덟 개의 주요 섬들과 수많은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제도(諸島)로 5세기 무렵부터 폴리네시아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1778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하와이에 발을 디딘 후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이 섬에 몰려들었다.

하와이는 1810년 카메하메하 1세가 제도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 왕조를 이룩하면서 국가체제를 갖추었다. 그리고 1840년에는 카메하메하 3세에 의해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국으로 바뀌었다. 그런 가운데 19세기 중엽에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은 하와이를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그러므로 하와이 왕조는 유럽인들의 간섭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1850년대 호놀룰루 항

하와이를 지배하려는 유럽 열강들의 노력은 집요했다. 1843년에는 영국 해군의 조지 폴레 경이 호놀룰루 항을 점령하고 국왕을 협박해 퇴위시킴으로써 일시적으로 왕정을 붕괴시키기도 했다. 1848년에는 하와이 정부가 유럽계 거주민들의 압력에 굴복해 유럽인들의 토지소유를 허용했다. 1887년에는 백인들의 협박으로 개헌해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외국인이면서도 투표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미국은 진주만에 미군이 주둔할 권리를 획득했다.

유럽 열강의 그런 일련의 경쟁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하와이를 필요로 했으므로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합병에 열성적이었다. 미국은 1875년에 하와이와 호혜조약을 맺어 사탕수수와 쌀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특혜를 베풀었다. 이 조약의 결과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 빠르게 확장되었으며,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인들이 그곳에 노동자로 모여들었다. 구한말 우리의 선조들도 그렇게 건너갔다. 물론 그 농장들은 대부분 미국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본국인들의 항의로 1890년에 미국이 하와이의 사탕수수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철폐하자 하와이의 백인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합병 청원서를 내는 등 하와이를 미국에 합병하려는 음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더욱이 1893년에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개헌을 통해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하려 하자 그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여왕을 폐위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 반란은 미국 공사 존 스티븐슨을 비롯한 외교관들과 미군들이 적극 개입한 사건으로 사실상 미국인들이 하와이의 주권을 탈취한 불법행위였다. 그들의 반란의 명분은 “미국의 공사관과 미국의 영사관을 보호하고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반란 후 그들은 곧 바로 미국과의 합병을 추진했다. 이들의 합방 운동 뒤에는 제국주의자인 미국 국무장관 월터 그레샴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반대하는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의 거부로 좌절되었다. 그는 1893년의 하와이 반란을 불법으로 규정했으며 하와이 합병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하와이 임시정부는 어쩔 수 없이 공화국을 선언하고 다시 때를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1898년에 제국주의자인 맥킨리 대통령이 하와이 합병안을 의회에 제출해 통과되었다. 물론 원주민들의 거센 저항이 있었지만 미국의 우월한 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약 체결 2년 후인 1900년에 하와이는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59년에 50번째 주가 되었다.

오늘날 하와이 원주민들은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원주민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고 주권회복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클린턴 정부시절인 1993년에 미국 의회는 공법103-150(‘사과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의안은 “1893년 1월 17일에 하와이 왕조를 전복하고 하와이 원주민들의 자결권을 박탈한 것에 대해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미국인들을 대신해” 사과하였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독립의 길은 멀기만 하다. 하와이에서 원주민은 소수이고 일본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인구가 절반이 넘는다. 그들이 원주민들에 의한 독립을 원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 기사 [1부] 콜럼버스의 두 얼굴, 미국의 두 얼굴 먹기 위해 찬양하는 백인 정복자 영국신랑과 포카혼타스 신의 나라를 원했던 청교도들 아메리카 드림과 인종청소 흑인, 노예가 되다 마녀를 찾아라 [2부] 차(茶)를 바다에 처넣다 백인과 기득권만의 미국 독립 미국, 헌법을 제정하다 미국, 영국과 다이다이를 뜨다 미국 노예제도를 흔든 '내트 터너의 반란' 서부영화, 팽창야욕의 낭만적(?) 재현 여성, 세네카폴스에 모이다 [3부] 남북전쟁(civil war), 그 시작과 이면 KKK, 출현하다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다 메이데이(May Day)의 탄생 이민의 물결과 게토(ghetto)문화 운디드니(Wounded Knee)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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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