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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할머니가 구토와 소화불량을 주소로 외래를 방문 하였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빈혈 소견도 동반되어 위내시경을 시행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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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상에서는 위의 전정부 전체가 암으로 보이는 종괴로 뒤덮혀 있고 십이지장으로 가는 길이 심하게 좁아진 상태였습니다. 조직 검사 상에서도 위암으로 진단 되었습니다. 복부 CT를 찍었는데 이미 복막 전이까지 동반된 4기로 진단 되었습니다. 80세까지 사셨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좀더 병원에 일찍 왔다면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타까웠던 건 할머니가 위 검사를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매년 마다 위 검사를 해왔고 작년 이맘 때에도 위 검사를 해서 이상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시행했다는 위검사가 위내시경이 아닌 위조영술 이었습니다.


먼저 조영술이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조영술은 조영제를 사용해 촬영하는 영상진단법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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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엑스레이의 원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엑스레이 튜브에서 방출된 엑스레이 광자들이 물체의 단단한 정도(밀도)에 따라 통과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하는데, 단단한 뼈는 광자가 잘 통과하지 못해서 적은 광자가 도착하고 근육은 광자가 잘 통과해서 많은 광자가 도착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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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 엑스레이를 보면 갈비뼈, 척추 등은 하얗게 보이고 폐와 장의 공기는 검게 보입니다. (물론 부위에 따라 세팅을 달리합니다)


이처럼 밀도차가 큰 장기를 볼 때는 단순 엑스레이도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복부, 심장 같은 물렁물렁한 장기는 비슷하게 보입니다. 심장 근육과 관상동맥을 구분할 수 없고 간과 비장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밀도가 비슷한 장기들을 관찰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조영제입니다.


조영제는 주로 액체로 된 물질로, 엑스레이의 투과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MRI 등에 사용되는 조영제는 자기장과 관련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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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동맥조영술(CAG) 영상입니다. 혈관에 조영제를 넣고 엑스레이를 찍으면 저렇게 조영제가 혈관의 위치, 모양, 굵기 등을 상세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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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영술(UGI) 영상입니다.


바륨이나 가스트로그라핀 같은 조영제를 마시면 식도부터 소장까지 영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반 엑스레이에서는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위의 구조를 알 수 있고 점막의 주름까지도 관찰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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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40세부터 2년마다 위암 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 위장조영촬영술(위장조영술)과 위내시경 입니다. 위조영술과 위내시경 둘 중 환자가 원하는 것을 하나 선택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조영술과 위내시경은 환자의 취향에 따라 아무거나 받아도 될 만큼 (정확도가) 비슷한 검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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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내시경은 초소형 카메라를 위로 내려보내서 직접 병변의 모양이나 색 등을 관찰하고 필요하면 조직검사를 시행하는 반면, 위조영술은 병변에 의해 조영제가 분포하는 모양을 보고 간접적으로 유추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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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진행성 위암이나 위궤양, 점막하 종양 같이 주변 조직에 비해 움푹 들어가 있어나 볼록 나와 있다면 관찰이 가능하지만, 평평한 형태의 조기위암이나 넓게 분포하는 미만형 진행성 위암은 진단이 쉽지 않습니다. 이는 직접 보는 것이 아닌 조영제의 굴곡을 이용해서 형태를 유추하는 조영술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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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면 사람 세 명이지만 그림자는 광우병 걸린 소 한 마리로 보입니다. 좀 과장하자면 위내시경과 조영술의 차이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환자도 전정부 전체가 암으로 덮혀 있어서 조영제가 균일하게 깔리는 바람에 진단이 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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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체부 소만부에서 조직검사를 시행해서 signet ring cell 조기위암이 진단되었던 케이스 입니다. 서울 메이저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 수술을 받게 했고 교수님이 조직검사를 아주 잘했다고 해서 그 환자에게는 명의가 되었습니다.ㅎ


위내시경으로도 아주 애매한 저런 병변은 위조영술로는 절대 발견 못 한다고 보면 됩니다. 위내시경이 위조영술에 비해 훨씬 정확하다는 건 많은 내과의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이를 뒷받침 해주는 연구 논문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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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Gastroenterology에 실린 한 논문이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국립암센터와 연세대학교 연구팀이 2002년부터 약 10년간 40세 이상 성인 1658만 4283명을 대상으로 위암 검진사업의 효과를 약 10년간 장기 추적, 관찰과 연구를 진행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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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 위내시경은 위암 사망 위험을 47% 감소시킨 반면 위장조영술은 위암 사망율 감소 효과가 없었습니다. (2%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준) 이는 위장조영술의 정확도가 위내시경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2012년 국립암센터 연구에서 1000명 검진에서 위조영술은 0.68명, 위내시경은 2.61명이 진단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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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위조영술은 방사선 노출양이 2.6mSv로 흉부 엑스레이를 100장 찍는 것 이상으로 저선량 폐 CT 보다 많고, 허용 연간 인공방사선 노출량을 두배 이상 초과하는 수치입니다. 정확도가 떨어지고 방사선 노출양도 상당한 위조영술을 매년 무려 백만명 이상이 받고 있습니다.


위내시경 대신 위조영술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내시경에 비해 편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위조영술은 일반 엑스레이 처럼 간편하게 찍을 수 있는 검사가 아닙니다. 위내시경과 똑같이 금식을 해야하고 조영제와 발포제를 먹고 기계 위에 올라가서 이리 저리 움직여야 합니다. 게다가 바륨 같은 조영제는 변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위조영술이 아주 몹쓸 검사는 아니지만 실제보다 효과를 과장하는 일부 의료기관들 또한 문제 입니다. 일부에서는 위내시경이나 위조영술이나 위암 진단하는 건 비슷하다고 얘기를 합니다. 하루에 시행할 수 있는 위내시경 건수가 정해져 있으니 나머지는 위조영술을 하도록 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수당을 많이 줘야 하는 의사와 달리 방사선사가 위조영술을 하게 해서 이득을 남기려는 것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위내시경과 달리 위조영술은 차량을 통해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에 시골 마을회관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아 놓고 검사를 해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물론 고령, 심폐질환, 식도협착 같은 질환 등의 이유로 내시경을 받기 힘든 경우라면 위조영술이 차선책이 될 수 있겠지만 잘못된 정보로 위조영술을 유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위조영술에서 정상 소견이 나와도 크게 안심할 수 없고 위조영술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어차피 위내시경을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 부터 위내시경을 받는 게 나은 선택입니다. 내과의들이 내시경을 할 때 신경 써서 하는 이유중 하나는, 내가 내린 '이상 없음'이라는 진단이 환자들에게는 다음 검사 받을 때까지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부적과 같은 의미가 되기 때문인데 위조영술에서 정상 소견은 받은 수많은 위암 환자들이 오늘도 안심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을 생각을 하면 좀 안타깝죠.




세 줄 요약 

(1) 위암은 한국인에게 매우 흔한 암이다 (2014년 기준 29,854명으로 발생율 2위)

(2) 위조영술은 위암 진단 정확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3) 정기 검진은 가급적 위내시경으로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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