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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쇼펜하우어는 재미난 존재다. 그는 세상에 부채의식을 느끼는 동시에 증오했다. 그는 지구를 정복할 기세였던 유럽 문명의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혐오했다. 한편 아버지의 유산에 기대 호의호식하는 그의 생활은 착취적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브루주아의 자식이다.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은 유럽이 세계를 착취하고, 부유층이 빈민을 착취해 고인 설탕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떨치고 독립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 혐오는 결국 자기혐오에서 출발한다.


불교와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에 깊은 감명을 받은 쇼펜하우어에게 자기 자신은 버러지였다. 싯다르타는 먹고 먹히는 세상의 법칙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모든 것을 버리고 왕궁을 떠났다. 그는 부르주아의 자식 정도가 아니라 일국의 왕자였는데도.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웅장하고 장쾌하다. 그러면서도 출발점은 부처님의 그것과 논리적으로 같고, 똑같이 섬세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처처럼 진리를 향해 고행을 감내할 강인함이 없었다.


더욱이, 부처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어디까지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설법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중생을 어여삐 여겼기 때문이다. 거꾸로 쇼펜하우어는 대중의 관심과 존경을 갈구했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였는데, 그러면서도 타인을 의심하고 경멸했다. 여성혐오 역시 할 말이 없다. 그는 평생 어머니, 어머니의 하녀, 자신의 하녀에게 보살핌을 받는 쾌적함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위대하면서도 치졸하고 편협한 뜬금포를 터뜨리곤 하는데, 이는 자신의 모순 - 빛나는 두뇌와 그렇지 못한 성품의 모순에 기인한다.


관심과 존경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백 권도 안 팔렸고, 분노한 쇼펜하우어는 '책을 팔 의지가 없었다'며 출판사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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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 출간 기념 여행을 가야겠으니 인세를 내 놓으시오."


아니 책이 나가야 인세가 발생할 것 아닌가?


"미래의 인세를 미리 내놓으시오."


그런 게 세상에 있을 리가.


"그렇다면 여행을 갈 테니 나중에 경비를 청구하겠소."


이따위 억지를 부리면서 베네치아 유람을 떠난 쇼펜하우어.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의 귀족과 부호들에게 각광받던 여행지였다. 역시 아버지의 유산이란 참 좋다(...)


여기서 쇼펜하우어는 테레사라는 여인과 데이트를 하며 여동생 아델레에게 편지로 자랑을 했다가 답장으로 팩트 폭격을 당했다.


"오빠와 만나는 여자들이 불쌍하다. ... 여자가 무슨 장난감이냐?"


그렇다. 여성을 혐오하는 주제에 침대에서는 여성을 원하면, 그 여자는 무슨 꼴이 되겠는가? 결국 소모품인 것이다. 아델레는 오빠에게 사람을 사랑하려면 똑바로 하라는 뜻으로 이야기했는데,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렇다면 언행일치를 지키기 위해 여혐을 계속하는 한 여자를 멀리해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베네치아 여행이 끝나자 시련(?)이 닥쳐왔다. 아버지의 유산을 전담 관리하면 은행이 갑자기 파산한 것이었다. 어머니 요한나의 살롱도 이에 맞물려 부도 위기에 처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자, 추구하는 모습만 폐륜아지 속으로는 악당이 못 되는 쇼펜하우어가 나섰다.


우리의 쇼펜하우어, 나름 엘리트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 아닌가? 쇼펜하우어는 언제 의절했냐는 듯 등장해 어머니의 재무재표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며 위세를 부렸다.


"역시 여자 둘이 합쳐봐야 남자 하나만 못하군요?"


이왕 도와줄 거 곱게 도와주면 벌어진 사이나 회복할 것을, 쇼펜하우어는 지나치게 의기양양했다. 재산 문제를 해결해준 쇼펜하우어는 다시 어머니와 의절하고 본인의 문제에 직면했다.


그렇다. 이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모교 베를린 대학교의 강사(부교수)에 지원했다. 그리고는 명석한 두뇌로 대번에 덜컥 합격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지성 헤겔에 도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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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헤겔을 거꾸러뜨리고 싶었다. 그에게 헤겔은 사기꾼이었다. 서로의 사상이 상극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는 일부러 헤겔과 강의시간을 맞췄다. 이겨보겠다는 심산이었으나, 상대는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이었다.


헤겔의 강의는 정원 삼백명이 꽉 찬 반면 쇼펜하우어의 강의는 불과 몇 명이었다. 그나마도 나중에는 '포강'을 해서 페강되기에 이르렀다.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강의에 잠입해 본인 생각에는 헤겔이 도저히 해명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을 날렸으나... 헤겔까지 갈 것도 없었다. 동료 교수들에게 진압당했다.


"헤겔 선생님! 이따위 분탕러는 저희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대학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대학이란 건 교수라는 것들이 파벌을 형성해 지들 마피아 보스에게 충성하는 시궁창에 불과하다! 지금 유럽 사상계의 마피아 보스는 헤겔이다! 그렇다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고, 이 고고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님께서 초야에 묻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쇼펜하우어는 남들은 다 부러워하는 환상적인 직장을 스스로 버린다. 그리고는 헤겔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정신병원 원장"

"현대 독일인의 지능을 집단적으로 떨어뜨린 지적 범죄자"

"정신병자의 철학을 늘어놓는 추한 남자"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바람과는 반대로, 헤겔은 발끈하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돈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간단하다. 이때쯤 파산한 은행이 회생하며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이 되살아났다. 참고로 쇼펜하우어가 받은 유산은 아버지의 재산 1/3이었다. 그가 평생 일하지 않고 쓰고도 남은 돈이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에 복수하기 위해 개를 한 마리 샀다. 당시 유럽에 유행하기 시작한 푸들이었다. 그리고는 헤겔이라고 이름지었다. 개가 조금의 실수를 할 때마다 "너 이 멍청한 헤겔 새끼"라고 구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되고 싶은 이상은 소시오패스지만 동물학대자도 못 되는 쇼펜하우어. 주인이 박대해도 꼬리를 흔드는 동물이 개 아니던가? 쇼펜하우어는 푸들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그는 '헤겔'의 이름을 '아트마'로 바꿔준 후 애정을 쏟았다.


쇼펜하우어가 애견의 이름을 바꿀 때쯤. 어머니 요한나는 두 번째 장편 로맨스 소설 <단테>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전 유럽을 석권하며 그녀를 독일어문학의 여왕에 등극시켰다.


쇼펜하우어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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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삶1 : 아버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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