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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라는 드라마가 끝난 지 한참이다. 그럼에도 당시 인물을, 그것도 (서울에서 가장 큰 표 차이로 패배한) 낙선자를 인터뷰하자고 나선 것은, 지나간 총선을 복기해보자는 의미가 아니다. 반대로, 앞으로 어쩔 거냐는 문제 제기의 의미가 크다.

 

나는 총선 과정에서 유독 강남권에 관심이 있었다.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 때문이다. 구청 직원들에게 포상금 등으로 지급돼야 할 9,300여만 원이 신연희 개인의 미용실비, 화장품 구입비로 쓰였다. 모 의료재단에 자신의 제부를 특혜 취업시켜 횡령과 직권남용 등으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내가 신연희에게 관심을 가진 건 이런 비리가 터지기 몇 년 전이다. 볼 일이 있어 강남을 돌아다닐 때 이전엔 보지 못했던 기괴한 풍경이 눈에 자주 띄었다. 건물 공사장을 둘러싸고 있는 가림막엔 어김없이 태극기 그림이 나붙어 있었고, 그 아래엔 ‘대한민국 안보 1번지 강남구’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민통선이나 연천마을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 그것도 금융과 IT 벤처기업의 중심지라는 강남구에 ‘안보 1번지’란 구호는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신연희의 비리가 터져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고서 깨달았다. 신연희라는 인물과 그의 서사야말로 대한민국 보수의 ‘민낯’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라는 것을. ‘안보’라는 이슈를 내세워 자신의 무능과 비리를 가리는, 유권자를 철저히 개돼지로 인식해야만 가능한 지극히 후진적인 정치행태.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레 그런 인물들을 용납하고 직접 뽑아주기까지 하는 강남구민들의 개돼지적 멘털리티로까지 이어졌다. 쟤들은 왜 저럴까.

 

멀쩡한 4년제 대학을 다니면서 “우리 아빠는 해외를 상대로 무역을 해 돈을 버는데 왜 대한민국 정부에까지 세금을 내야 하냐”고 술자리에서 내게 의문(?)을 제기했던 강남 사는 어느 아이를 ‘대한민국 공교육 실패의 결과물’ 또는 ‘대한민국 입시교육의 피해자’로 규정했던 나에게, 저들의 투표 행태는 단지 ‘공교육의 실패’를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명품을 휘감고 살면서 키운 미감으로 볼 때, 동네방네 붙어 있던 태극기와 안 보 1번지라는 구호가 얼마나 후져 보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 터인데 말이다.

 

그런 지역적 기괴함과 함께 이 인물에 주목했던 건 서울대-하버드 로스쿨이라는 학벌과 한국-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몹시도 강남(?)스러운 스펙의 소유자라서가 아니다. 만약 그가 미통당의 후보로 나섰다면 난 관심이 1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그리고 현재 우리 정치계가 목말라하는 ‘청년’(내일모레 오십인데 청년이라는 딱지가 지극히 대한민국스럽지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고담대구보다 더 기괴한 강남에서, 지극히 강남스러운 스펙의 청년(?)이, 심지어 민주당 간판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대충 쓰윽 봐도 이 인물을 통해 이야기할 거리가 참으로 많지 않겠는가.

 

김한규가 궁금하다. 만나서 얘기를 좀 들어봐야겠다. 인터뷰는 대치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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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색머리 사법연수생

 

마사오(이하 마): 워크맨? 그 캐치프레이즈는 누가 지었나.

 

김한규(이하 김): 젊은 친구들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저는 해당 유튜브 콘텐츠를 본 적이 없는데, 개그맨이 진행하는 ‘워크맨’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나 보더라고요. 실제 일을 한다는 의미로 내건 “일하러 왔습니다”라는 제 캐치프레이즈와 ‘워크맨’이 잘 맞는다고 해서 이름을 빌려 썼죠. 그런데 뭐 그걸로 화제가 되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닌 거 같아요.

 

: 담배는 안 태우나.

 

: 끊었어요. 와이프한테 얘기하기로는 좀 일찍 끊었고, 그 뒤에 조금 더 피긴 했는데 몇 번 걸렸죠. 그런데 선거 때문에 정치하면서는, 안 피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사람을 만나다 보니까 싫어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 언제 처음 피웠나.

 

: 대학교 때부터 피웠죠.

 

: 술은 언제부터.

 

: 술은 못 합니다.

 

: 마약은?

 

: 마약은 한 번도,

 

: 해본 적 없으시고.

 

: 눈으로 본 적이 없어가지고...

 

: 하버드에서 석사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사이버대학처럼 국내에서 인터넷 강좌를 등록한 게 아니라...

 

: 가서 한 거죠.

 

: 그러면 미국 애들 마약 파티 이런 거 막... (집요)

 

: 전혀 없고, 길거리에서 흑인들이 마약 있는데 사볼래? 이런 얘기들은 하죠. 그렇긴 한데. 유학 자체를 결혼하고 나서 와이프랑 같이 간 거기 때문에 수업도 계속 같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일탈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 군대는?

 

: 군대는 법무관으로 3년, 해군 대위로 전역했죠.

 

: 성인이 되어서 담배 피웠고, 술은 못하고, 마약도 해본 적 없고, 큰일이다. 딴지 독자들은 대부분 미천한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반듯한 범생 스타일을 싫어하는데. 뭐라도 좀 내놨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침 좀 뱉고 다리 좀 떨어봤다거나 하는..

 

: (웃음) 제 이미지랑 안 맞아서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데..

 

: 좀 더럽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사법연수원 다닐 때 머리를 하얗게 탈색했어요. 그때 유지태 탈색이 유행할 때였거든요. 물론 여유 있는 시기에 눈치껏 하긴 했지만. ‘공무원이 저래도 되나?’하는 시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민주당으로 출마한다니까 되게 놀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기억 속에 저는 뭔가 약간 압구정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법연수생이었고, 또 그런 성향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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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 유지태 시절, 뒷줄 센타

 

: 흰색으로 염색하고 다니면 어느 당에 출마해야 어울리나. 녹색당?

 

: 그러니까 아주 개인적이고, 딱히 정치 성향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거겠죠.

 

: 아~ 민주당뿐만이 아니라 정치인이 되리라고는..?

 

: 그렇죠. 사회문제 전혀 관심이 없고, 개인적인 것만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되게 많을 거예요. 또 그런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 연수원에서 염색한 게 여태껏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큰 일탈이었나?

 

: 네. 그게 생각하시는 것만큼 공무원이 그러고 다닌다는 게, 되게 특이한 거였죠.

 

강남으로 간 제주소년

 

: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가.

 

: 아버님은 개인병원 하세요. 어머님은 가정주부시고요. 원래 아버님이 제주도 분이신데, 대학이랑 직장 생활을 서울에서 하실 때 제가 태어났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신 거죠. 그냥 뭐 시골 의사죠. 시골 의사.

 

: 제주도에서 몇 살까지 살았나. 고등학교?

 

: 네. 초, 중, 고를 다 제주도에서 다녔죠.

 

: 제주도 사투리 잘 하시나.

 

: 리스닝은 되는데 스피킹이 잘 안되는? 뭐 그런 거죠.

 

: 나름 유복하셨겠다.

 

: 그렇긴 한데 아버님이 돈은 별로 없으세요. 투자를 잘못해 두어 번 날리셔가지고.

 

: 주식? 땅? 종목이 뭔가.

 

: 땅 쪽으로 가야겠죠. 한 번은 보증 잘못 서가지고 날렸고. 한 번은 땅으로 날리고. 지금도 재산이 별로 없으세요.

 

: 형제는 어떻게 되나?

 

: 여동생이랑 남동생, 삼 남매. 제가 첫째고요.

 

: 동생들은 지금 뭐 하시나?

 

: 여동생은 의사, 남동생은 대기업 다니고 있습니다.

 

: 삼 남매가 공부를 다 잘했나 보다.

 

: 뭐 일반적으로 잘하는 편이죠. 아우~ 뭐 재미난 걸 찾아야 되는데, 인생에 특이한 게 없어가지고. (웃음)

 

: 제주도니까 해 떨어지면 전기도 안 들어올 테고, 버스도 안 다니는데 딱히 공부밖에 할 게 없었겠다. (웃음)

 

: 초등학교 다닐 때 여동생이 펜팔을 하는데 서울에 있는 친구가 넌 제주도여서 좋겠다. 맨날 바닷가에 수영하러 다니고, 조랑말 타고 다니고, 서울에는 에스컬레이터라는 게 있는데 그걸 타고 올라가면 쭉 이렇게 걷지 않고도 계단을 올라가고 그런다고. 제가 그 말 전해 듣고 되게 분개했어요. ‘제주도가 어때서?!!’

 

그런데 나중에 보니 진짜 제주도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서울 친척 집에 갔을 때나 에스컬레이터라는 걸 타 본 거죠. 제주도에 지금도 백화점이 없어요. 그나마 이마트가 제일 크고.

 

: 뭐 스펙타클한 얘기 없나? 감귤 따고, 전복 따고 이런 거 빼고.

 

: 그런 거 밖에 없네요. 진짜로. 학창 시절엔 수업 끝나고 애들이랑 바닷가 가서 놀고, 주말에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은 밭에 있는 잡풀 제거해야 된다고 그러고. 저는 그나마 제주시 출신이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한테 단체로 맞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반장이었는데 “시골에서 온 애들은 내일까지 뭐 뭐를 해오래”라고 선생님 지시사항을 전달했죠. 제 기준으로는, 제주시 밖에서 온 친구들은 시골에서 온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서 “야! 시골에서 온 얘들아"이랬던 거죠. 그런데 대학 딱 들어와 보니, 부산도 시골이더라고요 서울 애들한테는. 제주도는 아예 논외.

 

: 그냥 귤.

 

: 네. 논의의 대상에서 아예 빠진. 그래서 제주도는 지역감정이 없어요. 사람들이 불쌍하게 생각하니까. 본인들하고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죠. 대학교 들어와서 소개팅을 하는데 여성분이 저를 되게 맘에 들어 했어요. 저도 뭐 분위기 좋고 그랬는데, 제주도 출신이라고 했더니 이후로 표정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나중에 집에 갈 때 “아니 그래도 어떻게 제주도에서 살았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도 제주 출신이라고 하면 되게 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강남 8학군 출신이 아니고 제주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약간, 뭐라고 해야 되나. 덜 얄미워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 스펙이나 외모나 핏 같은 걸로 볼 때는 강남 8학군 이미지가 강한데 제주 출신이라고 하면...

 

: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서 명함을 돌리는데, 영어 쓰는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고등학교 어딜 나왔냐고 묻더라고요. 제주도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아~ 이 동네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8학군 나와야지, 이 동네에서는 된다고. 그런데, 상대방 후보도 부산에서 나왔거든요? 하여튼 이 사람들이 인정을 못하더라고요. ‘도곡동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강남에서 학교를 나와야 우리 강남지역 정서를 안다’라는 게 있었죠. 제가 선거기간 동안 정말 많이 들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대학엔 무슨 과를 들어갔나.

 

: 정치학과요.

 

: 너무 밑도 끝도 없다. 하다못해 행정학과라던가 또는 회계학과라면 내가 나름 수긍을 하겠는데.

 

: 서울대학교에 두 개다 없어요. 행정학과와 회계학과.

 

: 하필이면 그게 왜 없지? 여튼 알겠다. 그러니까 일테면 경영대라든지 아니면 공대도 좋다. 제주소년이 감귤 따고 전복 따다가 정치를 지망했다. 대체 왜?

 

: 학창 시절 여러 활동들이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흥사단 고등학생 아카데미 활동을 통해서 토론회도 많이 참석하고 사물놀이, 풍물놀이도 배우고...

 

: 아...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의식화를 당한 건가? (웃음)

 

: (웃음) 일종의 그런 거죠. 그때 친구들이랑 같이 노래패를 만들어서 민중가요 공연도 했었고요. 무엇보다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1 때였어요. 철학 에세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충격이었죠. 사회문제에 고민을 전혀 안 하고 공부만 하던 저에게, ‘정치라는 게 정말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새로운 눈을 뜬 거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민주화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노태우가 대통령이었으니까.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나름 고민하던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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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뒷줄 오른쪽 두 번째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는 특이하게 지원율이 높아요. 커트라인이 법대나 경영대보다는 낮지만 정치학과를 가겠다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3수 이상이 절반이었죠. 그중 상당수는 정치학과만 계속 쓴 사람도 있었고. 제 대학 동기 중에 저보다 9살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지자체장이 되었죠.

 

: 현직인가?

 

: 네. 지금 부천 시장이에요. 대학 동기가 38명밖에 없는데, 그중에 현실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꽤 되죠. 돈을 못 버는 정치학과를 가겠다고 열심히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꽤 많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비합리적인 사람들인 거죠. 저도 그런 사람인데, 별난 삶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는데, 오늘 말씀하시니까 그렇게 이상한 선택이었나 싶네요.

 

: 이상한 선택 같다. 어떻게 보면 서울대 정치학과가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기관이라는 ‘그랑제꼴’과 비슷한 통로 역할을 하는 걸 수도 있겠다.

 

: 글쎄요. 그랑제꼴은 주로 행정관료로 많이 가는 거 같은데. 정치학과 출신들이 예전에는 행시를 되게 많이 보기는 했었어요. 요즘은 사법시험을 더 많이 보기는 하지만. 정치학도는 감성들이 조금 다른 거 같아요. 머릿속에 결국은 언젠가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야겠다. 기회만 생기면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죠.

 

: 그럼 스무 살부터 이미 계획이 있었나.

 

: 계획은 없었고, 대학에 와보니 정치학과 나온다고 정치인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정치에 대한 욕구는 계속 있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니까 현실감이 생긴 거죠. 뭔가 직업이 있어야겠구나. ‘전문성이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거죠. 방황했어요. 처음에는 기자가 되고 싶었고, 외교관이 될까, 교수가 될까 이런 생각도 좀 하다가 뒤늦게 4학년 들어서 고시공부를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제일 쉬운 선택이었어요. 고시 공부는 노력만으로 승부 볼 수 있지만, 다른 것들은 뭔가 인맥이랄지 다른 것들이 필요해 보였거든요. 저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은 제가 곱게 자라서 좋은 자리에 갔다고 생각하지만, 제 주변에 권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이 있어서 저를 위해서 힘을 써준 적, 한 번도 없어요. 지금도 제가 정치를 하는데 뒷배가 돼 줄 만한 분은 아무도 없어요. 민주당 내든 어디든. 대학교 4학년 어린 나이에는, 시험을 보는 게 가장 공정하고, 성공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였던 거죠. 노력만 하면 되니까.

 

: 지금 발언은 정치 초년병을 강남 병이라는 험지에 꽂은 민주당 지도부를 질타하는?

 

: (웃음)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강남 병에도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물론이다.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들 보면, 출마 자체가 영광인 분들인데..

 

: 네. 저는 오히려 민주당이 저를 선택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민주당 입장에선 253석 다 냈잖아요. 정말 안될게 뻔한 지역이라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럼에도, 배경도 없고 파벌도 없는 김한규를 ‘객관적으로 적합한 사람이다’라는 이유로 기회를 준 것이니까요. 정말 신기한 일이었고, 개인적으로도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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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이라는 사람

 

: 대학 진학 후 앞으로 뭘 할까. 전문성도 있어야 되겠고, 먹고도 살아야겠고, 그래서 사법시험을 봤다?

 

: 네, 그렇게 된 거죠.

 

: 그래서 한 번에?

 

: 아뇨. 여러 번 떨어졌어요. 고시 공부가 어려웠어요. 제가 법학과가 아니라서. 그래서 대학원을 법대로 갔어요. 그러다 보니 두 번 정도 떨어지고 합격을 했죠. 아무래도 고시 공부는 법대 친구들이 조금 더 잘하는 거 같아요.

 

: 합격했을 때가 대학 졸업 후?

 

: 네. 그렇죠. 사법시험을 스물여섯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2년 다니고 나서 법무관을 했죠.

 

: 사법연수원 성적은 어땠나.

 

: 그냥 아주 좋지는 않고, 그냥 판검사를 할 수 있는 정도.

 

: 왜 판검사를 안 했나?

 

: 그 당시에 법무관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군 검찰관을 했었는데, 군대 내에 불합리한 일들이 좀 있더라고요. 인사라든지 아니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업무 지휘라든지. 군 검찰 내에서도 이런데 내가 공무원 사회에 가서 견딜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렇다고 해서 제 스스로에 대해, 그 조직을 바꿀 정도의 어떤 능력이나 배짱이 있을까라는 의심도 들었고요. 공직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법무관 할 때 기억나는 분이 최강욱씨에요. 저는 군사 법원에 있었고, 이 분은 검찰단에 있어서 같은 건물에서 근무했거든요. 엄청 날렸어요. 최강욱이라는 사람은. 법무관인데 장성들을 막 구속시키고 그랬어요. 정말 멋있었어요. 소령 계급인 최강욱이 장성들을 구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노무현 정부의 의지가 있었죠. 청와대에서 딱 지켜주고 있으니까 군대 내에서 그동안 쌓여있던 적폐를 청산하는..

 

: 날개를 달아준 거다?

 

: 네. 그렇죠. 최강욱이 인물을 그때 근무했던 법무관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저는 친하진 않고 혼자 좋아했었고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 정도 기백이 있어야 조직에 가서 다 휘젓고 다니면서 할 수가 있지 웬만한 사람은 못하겠다’라는, 저는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변호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김앤장이 이렇게 욕먹기 전이었어요. 김앤장이 제일 처음 욕을 먹은 게 2006년 론스타 사건이었는데, 저는 2005년도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때 김앤장은 아주 예외적인 사람들이 가는 로펌이었습니다. 뭔가 도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죠. 판검사를 할 수 있음에도, 뭔가 이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법조인들 말이에요. 저는 IMF 이후에 M&A 같은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뭔가 멋있어 보이고 했고요. (웃음) 망해가는 기업들을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와서 구조조정을 해서 살려내고, 이런 게 사회에 더 기여한다고 생각했죠.

 

: 그 와중에 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하고, 피눈물을 흘리고. (웃음)

 

: 그런 것들을 제대로 못 봤던 거죠. 당시만 해도 긍정적인 측면만 생각했었어요. 좋은 면을 더 강조해서 봤던 거죠. 제가 기여할 부분이 그런 게 아닐까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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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망언타임

 

: 김앤장 다니다가 하버드로 간 건가.

 

: 다른 나라도 비슷한데, 우리나라 로폄 시스템이 변호사를 몇 년 하다 파트너가 되기 전에 한번 거르고 퇴직금 대신 유학을 보내줘요.

 

: 그럼 몇 년 동안 김앤장에서 M&A 실무를 하다가 하버드로 간?

 

: 그렇죠. 2011년에 갔고. 일단 외국에서 견문을 넓히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고객 자체가 외국 고객들이 많다 보니까 일단 미국 변호사 자격, 미국법을 공부하는 게 제가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결과적으로도 그랬고요.

 

: 아내와 결혼 후 유학을 갔다고 했는데, 아내도 변호사인가.

 

: 네 법조계로는 제가 4년 선배인데 군대를 3년 마치고 가다 보니까 1년 차이가 났죠. 그래서 제가 김앤장에 2005년에 입사하고 와이프는 2006년도에 입사하고. 1년 차 직속 선배였던 거죠.

 

: 이번 총선에서 후보에게 따라붙었던 꼬리표 중에 1번이 하버드였고, 두 번째가 외모였다. 아내의 평가는 어떤가. 또 본인이 잘 생겼다는 걸 언제부터 알았나?

 

: 사람들이 저보고 잘 생겼다 그러는 걸 아내는 지금도 이해를 못 해요. (정적) 저도 진짜로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좀 더 긴 정적) 총선 중에 의정부 갑 오영환 후보, 고양 을 한준호 후보를 직접 만나봤는데 이 사람들이 진짜 잘생긴 얼굴들이에요. 저는 나이가 많고 변호사라는 걸 감안하고 봐주는 거 같아요. 선거 때 사진 찍어주시는 분이 정말 골라 골라서 예쁜 사진을 써주셔서 그럴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제 외모가 불만이어서 저희 어머니한테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낳아줬어? 그랬더니 이렇게 쓱 보더니 “그래도 이상한 데는 없잖아”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지금 학창 시절보다 살이 한 10KG 이상 쪘어요. 예전보다 조금 인상이 나아졌나 봐요. 학교 다닐 때는 엄청 마르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외모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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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좀 후덕해졌다?

 

: 네. 의도적으로 웃으려고 되게 노력을 해요. 예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 외모가 어떤 느낌이냐면, 드라마로 치면 오영환 당선자 같은 경우에는 포차 하다가 망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온갖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 캐릭터인데 그 주인공 옆에, 재벌 집 아들인데 인성이 착해. 사람이 선해. 그래서 묵묵히 주인공을 도와주는데 하필이면 둘 다 한 여인을 사랑해. 그래서 애끓다가 친구에게 양보하고 두 사람을 축복해. 그래서 시청자들이 막 주인공보다 더 좋아하는 그런 조연 캐릭터 느낌?

 

: 더 좋네요 뭐. (웃음) 저는 진짜로 외모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잘 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다만 항상 깔끔하고 단정하게 하고 다니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이상하게 파란색 선거 운동복이 되게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지금 보면 검은색 양복이나 이런 거 입으면 그 느낌이 안 나오는데 제가 봐도 선거용 파란색 재킷을 입으면 그때가 제일 괜찮았던 것 같아요. 파란색 양복을 입고 다닐 수도 없고, 고민이에요.

 

나는 왜 민주당으로 갔나

 

: 보수 야당에서 두 번의 영입 제의가 왔다고 들었다. 보수 야당은 미통당인가?

 

: 한 번은 바른미래당이었고, 한 번은 자유한국당.

 

: 어느 쪽이 먼저였나?

 

: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으로 합당할 때였어요. 대변인 자리도 언급되었고, 그때 어딘가 보궐선거가 있었는데, 거기에 제의가 들어왔죠.

 

: 왜 안 갔나.

 

: 나름 중도고, 민주당 출신들도 많았고, 뭔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그러니깐 순간 혹했죠. 고민을 며칠 했습니다. 논의가 꽤 진전이 있었어요.

 

: 제안한 측이 국민의당 라인인가, 바른정당 라인인가?

 

: 국민의당 라인이었어요. 원래 민주당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복수의 사람들을 만났고.

 

: 본인을 어떻게 알고?

 

: 제가 그 당시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주변에 좀 얘기를 했는데 누가 추천을 한 거 같아요. 여기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라고 해서. 그런데 제가 바른미래당 입당식에서 발표할 기자회견문을 쓰다가 실패했어요. 한 장을 못 쓰겠더라고요. 내가 정치를 해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쓰겠는데, 그것을 바른미래당에서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거죠. 밤새도록. 그냥 자기 합리화를 해볼까도 생각했어요. 당시 민주당 강령도 찾아보고 자유한국당 강령도 보고 바른정당, 국민의당 것도 다 보면서 고민했어요.

 

그 결과, ‘아. 원래부터 내 성향이 민주당이 맞구나. 여기서는 내가 할 수가 없겠구나’라고 결론 내렸죠. 주변에서 “제일 좋은 당은 공천 주는 당이다”같은 조언을 많이 했지만, 제가 그만큼 자리에 절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갔으면 지금 미래통합당까지 흘러갔을 거 아니에요? 그 당시 며칠의 고민이 저한테는 크고 중요한 결정이 되었죠.

 

: 그래서 ‘죄송하다, 못 하겠다’ 했나?

 

: 네. 그러고 나서는 그분들과 연락도 안 하고 사는 사이가 된 거죠. 그쪽에서 예정된 당일 영입인사 발표를 못 했거든요. 저라고는 안 했지만 영입인사 발표를 한다 그랬는데 못했고, 저 이외에 영입인사가 따로 없었고.

 

: 그 후에 미통당은?

 

: 미통당은, 자유한국당은 재작년인가? 거기서 혁신 비대위 같은 거를 설치해 놓고 지역위원장을 싹 바꿨어요. 그때 지역위원장 자리를 제안하면서 얘기가 시작되었어요.

 

: 어느 지역?

 

: 그거까지 구체적으로 안 왔고, 서울지역에.

 

: 서울지역 원하는데 어디든?

 

: 예. 찾아봐 줄 수 있다 해줬고. 그 당시는 고민이 쉬웠던 게, 이미 민주당에 당원 가입을 한 상태였어요. 온라인 당원 가입을 했는데, 그분들이 모르고 제안을 했던 거죠. 아주 초기에 그냥 정리를 했죠.

 

: 민주당 온라인 평당원 입당은 바른미래당 제안이 있은 후에?

 

: 그렇죠. 그전까지는 제가 제대로 고민을 안 하다가.

 

: 바른미래당의 제안이 도화선이 된 건가요?

 

: 맞아요. 내가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까지는 쓸 수 있더라고요. 바른미래당인 이유를 못 쓴 거지. ‘그러면 내가 민주당에,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안양동안 갑에서 당선된 민병덕 당선자한테 요청을 했죠. 대학교 3년 선배거든요. “내가 정치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니 한번 캠프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당시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 캠프에서 첫 일을 하게 되었어요. 두 번은 법률지원단장을 했고, 마지막엔 총무본부장을 했죠. 총무본부라는 게 프린터 빌려오고, 책상 임대하고 뭐 그런 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핵심부서는 아니었고, 아무런 뒷배 없이 들어갔으니까 총무 본부 안에서 그냥 이제..

 

: 뚤레뚤레 다니면서 허드렛일하는...

 

: 허드렛일을 한 거죠. 이번에 박지원을 이긴 목포 김원이 당선자 같은 분들이 들어가는 중요한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어요. 총무본부에서 잡일을 하면서 내가 과연 정치라는 걸 할 수 있는 건지, 성향이 맞는지, 그때 시도를 해본 거예요. 그 시간을 통해 정치와 민주당에 결심이 섰어요. 그러고 나서, 온라인 당원 가입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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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번 총선에 그냥 경선 신청을 한 건가?

 

: 제가 부천 소사에서 경선 준비를 했었어요. 컷오프 됐죠. 이번에 4선 의원이 되신 김상희 의원과 경선을 해보겠다 마음먹었거든요.

 

: 왜 뜬금없이 부천으로 갔나?

 

: 외가댁이 부천 소사예요. 출마의 명분이 있는 곳이 친가, 외가,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 정도잖아요. 연고로만 따지면. 친가는 제주도인데, 떠난 지가 너무 오래된다가 지금 다 제주대학교 학생회장 출신들이 터를 잡고 있었고요. 제가 사는 지역은 2년마다 서울에서 전세로 옮겼기 때문에 갈 수 있는 데가 없었죠.

 

: 그럼 강남구는 어떻게 오게 됐나.

 

: 심사를 하면서 보신 거 같아요. 나중에 뒷얘기를 들어보면, ‘얘는 부천 소사랑 안 맞는다. 강남지역으로 보내야 된다.’라고 했다고 해요.

 

: 소위 말하는 시스템 공천인가?

 

: 시스템 공천은 원래 준비하던 곳에서 경선을 시켜주는 게 시스템 공천인데. 당시에 여성 의원이 너무 적다 보니까 지역구 여성 의원들을 거의 다 경선을 안 시켰어요. 유일하게 성북구 갑 유승희 의원과 중량구 갑 서영교 의원만 경선시켰고. 유승희 의원은 김영배 전 구청장한테 경선에서 졌죠. 나머지는 경선을 아무도 안 시키고. 다 단수 공천을 줬거든요. 물론 제가 경선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긴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하여튼 전략공천위원회에서 저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부천에서 컷오프 되어 괴로워하고 있던 차에 당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쪽에서 해단식 다 했는데 이쪽에서 다시 나오라고 (웃음).

 

-2부(링크)에서 계속-

 

글 : 마사오

사진 : 근육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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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