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작년 우리 학교는 불량급식 문제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이 사태는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과 닮았다. 지독한 무능과 무책임이 사고를 대참사로 이어지게 했듯, 우리 학교의 불량 급식 사태도 얼마든지 사전예방과 조치가 가능한 일이었으나, 일을 키우고야 말았다.


학교와 학부모는 이 문제로 큰 갈등을 겪었다. 나는 학교의 교직원이지만, 진상조사를 위해 노력해온 학부모들과도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눠봤다. 그러나 나는 두 입장을 온건하고 균형 있게 대변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기보다 5년간 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같은 밥을 먹어 온 교사이자, 평범한 시민, 또 관료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개인의 관점으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불량급식이 어떻게 시작됐고, 전개됐는지보다 이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학교구조를 찾고자 한다. 내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급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온갖 모습들을 공유하는 것이 '큰 사회'에도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 보겠다.



학생과 떨어진 관리자와 교사

 

grid-2111444_960_720.jpg


급식실에서 영양교사를 볼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영양교사는 조리실 내부에 따로 있는 전용 사무실에서 혼자 식사를 한 후, 작은 미닫이문을 열어 빈 식판을 던져 놓았고 조리종사원들은 그 식판을 가져다가 설거지를 했다. 학생들의 대기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급식실은 귀가 얼얼할 만큼 늘 소란스러웠다. 시간을 조금만 못 맞춰도 음식이 모자라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이 학교로 전근을 온 후 급식을 보며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이전 학교의 영양교사는 점심시간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지 점검하고, 모자란 음식이 없는지, 어느 반이 식사를 했는지 늘 확인했다. 밥이 모자라 수십 명의 학생이 5교시 후 라면을 먹는 사고 같은 건 이전 학교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학교의 교장과 교감은 그 사실을 몰랐거나 실제로 그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었는지, 아무런 관리와 조치가 따르지 않았다. 보통 저학년은 11 20분부터, 중고학년들은 12 10분부터 밥을 먹고, 관리자들은 11시 50분에서 12시 10분 사이 비는 시간에 밥을 먹었다. 어쩌다 평소보다 일찍 급식실에 가보면 그들은 딴 세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평상시 급식실은 너무 시끄러워 옆 사람과도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그 시간대는 굉장히 조용했다. 그들의 식판 옆에는 소소하게나마 식단에 없는 반찬, , 즙 같은 것들이 종종 놓여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왜 관리자들에게만 특별한 대우를 했느냐는 볼멘소리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학교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급식을 먹는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물리적 환경을 스스로 조성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2013년 후반 즈음부터 교사 전용 자율배식대가 생기자 일부 담임교사들은 교사들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학생들과 다른 식탁에 앉더라도 아이들이 바로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서 아이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반찬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급식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컸다. 또 학생들과 같은 식탁에 함께 앉는 것과 다른 식탁에 앉는 것은 상호작용 양상에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급식실 내의 미묘한 분산화가 남긴 보이지 않는 벽은 관리자와 교사들이 급식의 문제를 인식하기까지의 시간을 늦춰 상황을 장기화했다. 이는 후에 문제가 본격화되었을 때 학교 측과 학부모, 학생들의 진술이 엇갈리며 소모적인 논쟁을 발생시킨 원인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폐쇄적인 부서조직


폐쇄적인 학교의 조직구성 방식 역시 문제였다. 2013년 어느 날, 배식을 받았는데 음식이 온통 빨간색이었다. 김칫국, 오이노각무침, 깍두기, 닭볶음탕. 맛이 없거나, 음식 간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더운 여름 날 체육 수업을 끝내고 왔기 때문인지 유난히 짜증스러웠다. 한 동료 교사가 말했다. 



 "아까 1학년 애들이 밥 먹는 걸 봤는데 하~하~하면서 물만 들이켜더라고." 



그 말을 듣고는 화가 나서 핸드폰으로 내 배식판을 사진으로 남겼다. 


q1.png

2013년, 내가 찍은 교사용 식판 사진


q2.jpg

2016년, 학부모가 찍은 학생용 식판 사진




어른인 저한테도 맵습니다. 병설유치원에는 5살짜리 아이들도 있는데 이렇게 빨갛고 매운 음식만 나오면 아이들이 어떻게 먹겠습니까. 식단 균형과 학생들의 나이를 꼭 신경 써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



영양교사에게 요청했다말이야 쉽지 혼자 찾아가 직접 말을 하려니 정말로 힘들고 어색했다. 나는 조리, , 메뉴 구성 등의 전문가가 아니다. 급식실 내부 사정도 전혀 모른다. 하다못해 영양교사와 같은 부서 소속도 아니다. 혹여 맛없다고 투덜대는 아이처럼 구는 게 아닐까, 영양교사 입장에서 월권으로 느끼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영양교사에게 부탁하려고 어쩔 수 없이 조리실로 들어갈 때는 문득 외부 침입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이런 민망하고 불편한 상황은 학교 조직의 구성 방식에서 비롯된다. 교무부, 연구부, 정보부, 환경부 등 학교의 분업체계는 교육활동이 아닌 행정업무 중심으로 짜여있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나와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맡은 업무가 아닌 일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학교에서는 급식도 교육이다. 그렇게 배웠고, 다들 그렇게 말은 하는데 학교는 교사들이 교육자로서 서로 협력하도록 만들어진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협력에 대한 인식과 역량에 관해서라면 원시적인 수준이며, 단절된 분업 체계와 불통으로 말미암아 곳곳이 사각지대다.

 

질리언 테트가 쓴 사일로 이펙트(The Silo Effect)’ 라는 책이 있다. '사일로'란 부서 이기주의를 의미하며 생각과 행동을 가로막는 편협한 사고의 틀을 지칭하기도 한다. 질리언 테트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폐쇄적인 부서 이기주의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the-silo-effect-1024x661.jpg


우리 학교공동체를 이루는 교사와 학부모 간에도 사일로(silo)가 존재했다. 나와 같이 매일 학교에서 밥을 먹는 교사들은 급식의 질이 낮고, 급식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무질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학부모들은 급식 운영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식단표에 적힌 메뉴만으로는 실제 조리된 음식의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조리실의 위생문제 및 영양교사와 조리종사원들 간 갈등에 대해서는 교사들보다도 먼저 알고 있었다. 2015년경부터 학부모들이 급식실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기준치 보다 수십 배 높은 세균이 검출되고, 조리기구와 시설이 심각할 정도로 노후화되었다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는 사일로에 갇혀 드러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거나 협력하지 못했다.


많은 학부모는 아이가 급식이 맛이 없다고 말하면 반찬 투정을 한다고 생각했고, 대부분의 교사는 작년에 방송과 기사를 보고 나서야 조리실의 위생 문제와 인권침해 문제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교사들은 학부모나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보다 뒤늦게 일부 사실을 알았다. 학교 내 구성원 간, 교사와 학부모 간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이 잘 됐더라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고, 종합적으로 급식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할 수 있었다. 질리언 테트의 표현대로 우리는 '점을 선으로 잇지 못했다.'



부당한 대우에 시달린 막말 조리종사원들


질 낮은 급식, 비위생 문제와 더불어 학생들에게 불친절한 행동과 막말을 한 조리종사원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영양교사와 조리종사원들 간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일부 조리종사원의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초등학생들에게 막말을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들의 일탈행위로 보기에는 간단치 않은 측면들이 있다.


다음 내용은 내가 조리종사원들로부터 들은 말들을 가능한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영양교사에게 확인한 말은 아니기에 부분적인 오류나 과장이 있을 수도 있음을 감안해서 보기 바란다. 급식 문제 이후 인사이동이 있었으므로 현재의 영양교사, 행정실 직원, 관리자들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밝혀둔다.



 

“예전에 한번은 사골국을 끓였는데 기름이 둥둥 떴다고 △△영양교사가 ○○교감한테 혼이 좀 났나봐. 그 다음 날이 주말이었는데 영양교사가 우리 조리종사원 전부한테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서 이년, 저년 쌍욕을 했어. 내가 네년들 때문에 교감한테 욕이나 먹어야겠냐고 그러더라고.”


칼 하나, 장갑 하나, 앞치마 하나도 제대로 사주지를 않았어. 장화에 물이 들어오고, 앞치마가 찢어져도 안 사주더라고. 그래서 그냥 테이프 붙여서 썼어. 뭐 좀 사달라고 하면 학교에 돈 없다고, 다 안 된다고 했어. 우리는 맨날 돈 없다는 소리만 들어서 학교가 부도나서 망하는 줄 알았다니까?”


“조리도구가 너무 낡아서 바꿔 달라고 말을 해도 영양교사가 들어주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행정실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왜 영양교사 거쳐서 말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어.


된장국을 끓여야 하는데 된장이 부족했어. 영양교사한테 말했더니 어제 급식에서 수육을 먹고 남은 쌈장을 넣으라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애들 된장국에 쌈장을 넣을 수는 없어서 우리가 그냥 몰래 쌈장을 버렸어.”

 

무채 만드는...음식재료를 채 써는 기구가 있어. 그게 고장이 났는데 영양교사가 행정실에 가서 우리 조리원들이 거기에 모래를 뿌렸다고 했어.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지. 우리도 집에서 밥하는 사람들이야. 애들 키운 사람들이고. 우리도 똑같은 학교 밥을 먹는데, 애들 음식 만드는 기계에다 모래를 뿌렸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한번은 조리원 중에 한 명이 연가를 내고 가족들이랑 중국여행을 갔어. 다녀와서 교장, 교감한테는 인사를 했지. 근데 이전 행정실장이랑 ○○계장이 조리실로 쳐들어오더니 왜 여행을 갔다 와놓고 자기들한테 찾아와서 인사를 안 하냐고 호통을 치더라고. 그리고는 우리가 조리실에서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고 막 뭐라고 하는 거야. 에어커튼 좀 틀어놨다고... 우리보고 전기요금을 6등분 해내라고 했어.”

 

지난번에 우리 종사원들이 쉬는 휴게실에 누가 락스를 뿌려놔서 경찰이 온 적 있었잖아. 우리는 그거 누가 했는지 알아. 그냥 증거가 확실치 않으니까 말 못하는 것뿐이지. 그 락스 사건 이전에도 그 사람이 옷에 구멍을 내놓거나 그런 적도 있었어.”

 

(다른 영양교사나 행정실 사람들은 좀 덜했었나요?)

영양교사 보다는 나았었지. 그래도 그 전 사람들도 우리한테 갑질 했어. 이전 영양교사가 학교 돈으로 섬유유연제를 샀어. 자기는 집에 있는 속옷까지 다 들고 와서 학교에서 세탁기를 돌렸어. 근데 우리가 조리복이랑 앞치마 같은 걸 빨 때 그걸 좀 쓰면 얼마나 난리를 폈는지 몰라. 때맞춰 뭐 안 챙겨주면 막 갈구고.”

 

(갈궈요? 어떻게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 치웠는데 또 치우라고 하고. 잠깐만 쉬고 있어도 막 뭐라 그러고 눈치 주고. 갈구는 방법이야 많지.”

 

(밥은 도대체 왜 그렇게 맛이 없었던 거예요? 조리원분들 드시기에도 맛없지 않았나요?)

아이고, 당연히 맛이 없지. 음식은 재료랑 양념이 좋아야 되잖아. 맛을 낼 수가 없었어. 갈비탕을 끓이려고 보면 갈비가 10kg이 들어왔다고 되어는 있는데, 받아보면 갈비는 한 3kg밖에 안 되고, 나머지 7kg은 다 퍽퍽살인 거야. 그러니까 국물이 맛이 없지. 사골국도 끓이라고 해서 보면 잡뼈만 잔뜩 있고. 그러니 아무리 끓여도 국물이 안 나와. 기름이니 고춧가루니 양념이 부족한 적도 많았어. 나물을 무쳐야 하는데 참기름이 없어서 그냥 한 적도 많았고. 맛이 없는 게 당연하지 그럼.”

 

그냥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도 꼭 이상하게 메뉴를 짜놓으니까 맛도 이상하고, 우리가 더 고생만 했지. 계란말이 할 때도 꼭 참치를 넣으래. 참치 넣으니까 잘 말아지지도 않아. 비리기만 하고. 우리도 하면서 비려서 못 먹겠다고 했다니까. 스파게티에도 엉뚱하게 꼭 참치랑 김치 같은 걸 넣으라고 하고. 우리도 만들면서 먹기가 싫더라고. 그래도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떻게 해. 레시피대로 안 했다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조리법 주는 대로 해야지 뭐.”

 

구절판 같은 걸 하려면 손이 많이 간단 말이야. 그런 날은 다른 반찬은 좀 쉬운 걸 해줘야 하잖아? 그런데 꼭 그런 날 더 정신없게 튀김 같은 걸 하라고 하는 거야. 돈가스 하는 날은 아주 죽어났어. 빵가루도 그냥 빵가루가 아니라 꽝꽝 얼어있는 걸 줘. 일부러 그러는 건지 뭔지. 우리는 그걸 또 녹이느라 발을 동동 구르고.”

 

(급식문제 터졌을 때 왜 이런 사례들을 밝히지 않으셨어요? 불친절한 막말 조리원들로 낙인찍혀서 하루아침에 다른 학교로 쫓겨나셨잖아요.)

그냥 그때는 너무 당황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영양교사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지만, 우리 종사원 중에도 이상한 사람이 하나 있었어. 제정신 아닌 사람한테 똑같이 대응을 하니까 일만 더 커지고. 아주 골치 아팠지. 일 터지고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지 몰랐어. 창피하기도 하고. 선생님이랑 이렇게 말하다 보니까 이 생각 저 생각나면서 후회되네.”

 

우리 남편은 노조라면 아주 치를 떨어. 근데 몇 년 전부터 영양교사한테 하도 당하니까 노조가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가입했어. 노조가 도움이 됐지. 근데 나는 원래 노조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 노조 한다고 욕도 먹었고. 우리는 원래 노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6명의 조리종사원 중 학생들에게 막말을 하고, 불친절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은 1~2명이었다. 막말을 시인한 조리종사원은 없었지만 학생들은 일관되게 특정 조리종사원을 지목했다. 급식 사태가 언론에 공개되고 사태가 확산되자 영양교사는 물론, 조리종사원 전원이 돌연 다른 학교로 뿔뿔이 배치되었다. 심지어 조사 과정에서 그간 근무상태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평가받고, 10년 이상 이 학교 급식실에서 성실히 일했던 분들마저 직원들에게 짧은 인사조차 없이 쫓겨나듯 학교를 떠났다. 영양교사와 조리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학부모들조차 교육청의 조치에 곤혹스러워했다. 학부모들이 문제제기를 했던 조리원들은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던 조리원들은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학교로 배치되어 통근에 어려움을 겪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 새로이 배치된 조리종사원들은 이전 분들과 달리 굉장히 성실하고, 아이들에게 친절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분들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학교였고, 학교와 학부모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분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웃으며 맛있게 먹어라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데 대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물리적 노동 강도가 만만치 않은 분들에게 엄청난 감정노동까지 부과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이전 조리종사원들이 내게 얘기했던 내용이 세세한 부분까지 모조리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예전 조리종사원들이 오랫동안 구조적 폭력 아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막말에 시달린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한 상황이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은 급식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이들이 그간 겪은 인권침해와 구조적 폭력이 더 약한 존재를 향한 폭력으로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는지 반드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등학생들을 향한 그들의 불친절하고 거친 언행까지 감싸주어야 한다는 의도는 아님을 전제하고서 말이다. 

 

개인들의 일탈행위, 구성원간의 갈등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상수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처하고 해결하는 구조적인 관리와 문제해결능력이다. 급식 문제를 특정 영양교사와 조리종사원의 근무태도, 성품, 인격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방적이고 실질적인 조처가 될 수는 없다. 학교와 사회 곳곳의 사각지대에 불을 밝혀 세세히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기사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권력에 취한 교사들

교권추락은 교사 스스로 만든 역사

보통 사람들

교사는 신이 아니다

관성의 법칙

교사의 적은 학부모?

결국 교사가 답이다

교대는 바보를 길러낸다

전교조, 분열 아닌 확장으로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上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下






169517626.jpg



스스로 고민하지 않는 교사를 말한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SickAlien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