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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기사를 길게 쓰고 싶지 않다. 


재미를 위해서 각종 개그성 수식을 섞고 싶지도 않다. 


이건 안전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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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AP


여느 때의 지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지진은 일본 동부에 지어진 핵발전소에 영향을 줬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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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어디까지 확산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후쿠시마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 


일본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옆나라인 우리 대한민국에까지 불안함을 안겼다. 후쿠시마 농산물을 먹어서 응원한다는 말도 안 되는 캠페인을 벌였던 것 때문에 조롱을 받는 것을 넘어,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냈다는 얘기 때문에 국제민폐국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산 농산물 수입 문제로 우리나라와 WTO를 오가며 다투고 있기도 하다. 


외교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느껴지는 불안은 여행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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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관광국의 지면 광고


관광객 장려를 위한 일본의 저가 정책, 엔화 약세 등에 힘입어 사고 이후 급감했던 관광객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늘어났다. 굳이 일본 문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싸다는 이유로 일본에 간다.


통계는 감출 수 없으므로 아직 일본에 가길 꺼리는 사람들도 대한민국에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여행에 대한 경계를 느슨히 했다는 정보를 접한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싸다는 이유로 안전을 무시한다.'


'국내 관광지의 바가지와 상술에 따른 당연한 선택이다.'


'일본 방사능 오염의 심각성을 모른다.'


'어차피 후쿠시마 건축 폐기물 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있으니 똑같다.'


온라인 상에서 갑론을박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냥 일본 갔다온 사람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는지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방사능 오염/피폭을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공릉동에 있는 원자력 병원이 우리나라 유일의 민간 대상 검사를 예약할 수 있는 곳임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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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두 사람을 섭외했다. 


K씨 (30대, 남) 

사고 이후 일본 여행 횟수는 2~3회에 불과하지만 일본산 제품(유노하나 입욕제, 오이오차)을 매일 애용.


H씨 (30대, 여)

과거 일본 유학 경험 때문에 1년에 2~3회 꾸준히 방문. 식도락 여행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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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씨(왼쪽)와 K씨(오른쪽)


공릉 원자력 병원에 전화하니 방사선 영향 클리닉의 직통 번호를 알려줬다. 


그런데 전화로 예약을 하려하니 다소 검사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행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저희도 학회 때문에 도쿄에 갔다왔는데 아무 문제 없었거든요." 


"전세계서 (관련 단체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에 문제가 있으면 그 쪽에서 얘기가 나오고요..."


"도쿄까지 여행하는 정도로는 불안해하실 필요 없으신데 그래도 검사를 원하시면 예약은 잡아드릴게요." 


그저 수동적으로 예약만 받는 게 아니라 검사 사유 등을 물어보고 상담하는 기능까지 겸하는 듯 했다. 하지만 검사를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검사 예약을 밀어부칠 수 있었다. 


조사하기로는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이 있다고 하는데 너무 비용이 많이 들지만 않으면 모든 검사를 다 받아보기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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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를 작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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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받아보게 되었다. 


진료라기 보다는 강의에 가까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첫째, 방사선과 방사능의 차이. 방사선은 X-ray처럼 사람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고 방사능은 그런 방사선을 내뿜는 물질이라는 것. 


둘째, 피폭과 오염의 차이. 피폭은 방사선에 의해 DNA가 파괴된 거고 오염은 방사능 물질이 묻거나 몸 속에 들어간 것. 


셋째, 피폭 검사는 방사선을 매일 다루는 업계 종사자들이 피폭 수치를 넘었을 때 DNA 파괴 정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매우 비싸고 오염 검사는 몸 속에서 특정 방사선이 나오는지를 계측만 하면 되므로 비교적 저가라는 것. 


훨씬 긴 설명이었지만 이 정도만 요약해드려도 될 것 같다. 어쨌든 며칠 일본 다녀온 정도로 검사를 받는 거라면 매일 피폭 당한 사람들이 받는 검사까지는 필요 없다고 했다. (만약 심하게 피폭 당해서 DNA가 상당수 파괴되었다면 이미 몸에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났을 거라고) 


이런 식으로 설명 후 검사 항목을 결정하게 해준다. 설명을 들은 후에도 굳이 120만 원 넘는 피폭 검사를 돈 내고 받겠다는 사람은 검사해주기도 한다고. 


K씨와 H씨는 오염된 것을 먹었는지가 가장 큰 불안 요소이므로 계측기 검사만 받아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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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기계에 들어가 5분 동안 나오는 방사선들을 측정한다. 


후쿠시마에서 문제가 되는 방사능 물질(세슘, 요오드) 등이 계측되면 오염 판정. 


기다림 끝에 H씨(여)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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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색 피크가 K40을 나타내는 부분


방사성 물질은 하나만 계측되었다. 포타슘(칼륨40). 우리가 흔히 자연 방사선이라 부르는 게 이것에 의한 피폭이 대부분이라고. 


한마디로 자연 방사능 물질 외에는 계측된 게 없다는 것이다. 


K씨(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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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씨와 동일한 피크가 나온 K씨.


예상과 다른 결과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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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예상했지만 건강한 걸 확인하니 좋다는 반응이었고 H씨는 검사해보자는 얘기듣고 불안해서 인터넷도 검색해보고 했었는데 다행이라고 했다.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나는 두 사람이 먹은 것 중 오염된 음식이 정말로 없었다. 두번째 경우는 약간의 오염은 있었으나 일본에 다녀오고 생활하는 동안 다 배출되어 버렸다는 것. 어느 쪽이라도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일본 여행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은 세간의 우려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긴 진료-상담 시간동안 나온 진술 중 하나가 있다. 


"일본 여행 후 불안해서 검사 예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까지 오염된 케이스는 없었다."


물론, 일본 여행객들을 전수조사한 건 아니므로 100% 오염이 없었다 말할 수는 없다 한다. 그래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본 여행객들을 비난하던 사람들은 이제 그 수위를 낮춰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일본 여행을 권장하려는 건 아니다. K씨와 H씨의 검사 결과를 눈으로 확인한 자신에게 일본 여행, 안심하고 갈 거냐 자문해봐도 선뜻 긍정은 못 하겠다. 


안전에 과한 것은 없다. 인류가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역사 또한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다. 조심 또 조심한다고 해서 여행 후보국가가 하나 줄어든 거 외에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일본 여행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 문제다. 조심할 사람은 조심하고 안전하다 판단되는 사람은 다녀오면 되겠다. 만약 다른 사람들도 조심하기 바란다면? 


무턱대고 일본으로 여행가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출처 모를 오염지도를 퍼나르는 것보다 객관적인 사실과 통계, 실험 결과를 통해 방사능 오염 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렇게 일본 여행시 조심할 점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완성시켜 나가는 쪽이 일본 여행 자체를 막으려는 시도보다 휠씬 현실적인 안전을 가져다 줄 것이다. 


P.S. 


이번 취재 결과를 널리 공유하고자 가벼운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봤다. 

아래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다. 





딴지일보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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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