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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어떤 하루가 있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범해서, 이대로 며칠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참을 더듬어야 하는 그런 어느 날. 정적을 깨고 스산한 전화벨이 울린다. 오늘 아침 구두에 발을 구겨 넣으며 잘 다녀오겠노라 나갔던 아버지가, 늦었다며 교복만 겨우 입고 아침밥을 거르고 나간 딸이 사고를 당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당신은 이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이 누워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그 시간 동안, 당신이 여전히 환자의 보호자이길 빌어야 한다. 그 순간에 자신의 신분이 보호자와 유족 사이에서 위태롭게 오가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은 때때로 쉽게 죽는다. 엄습한 운명은 매우 가혹하다.


2009년 어느 겨울 날 아침. 나는 119 구급차 안에 있었다. 나는 의무소방으로 군복무 중인 구급대원이었다. 뒤 칸에는 나와 응급 구조사 그리고 숨이 멎어가는 남자가 실려 있었다. 외곽도로 출근길 교통사고였다. 지령을 받고 도착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구조대가 물에 젖은 상자처럼 우그러진 차 속에서 피범벅이 된 남자를 꺼냈다. 젊었다. 박살이 난 차 안에는 용케 깨지지 않은 아이 사진이 백미러에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쇳덩이에서 빠져나온 요구조자의 몸은 처참했다. 줄이 엉켜버린 마리오네트처럼 사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사람의 몸이 그렇게 약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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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현장에서 전문의가 응급조치를 하고 적절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내가 군복무를 하는 동안 현장에서 의사를 만난 적은 없었다. 중증외상센터 개념도 없을 때였다. 엉망진창인 다중 추돌사고현장에서 환자별로 이송계획을 세울 여력은 없다. 더 다친 사람을 가능한 큰 병원으로. 그것이 최선이다. 그 날만 해도 그 남자와 같이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눈에 걸리는 것만 서넛이었다.


그래도 그는 운이 좋은 남자였다. 경험 많은 응급구조사가 내가 귀에 대주는 핸드폰으로 응급실 의사와 통화를 하며 환자의 숨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에 길을 열어주는 차들 사이로 구급차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병원에 도착하자 응급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료진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얼른 들것에 올라타 심폐소생을 이어갔다. 다른 스탭들은 그 상태로 베드를 밀고 응급실 자동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남자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구조지식도 의학지식도 미천한 내가 바로 전의 이송과정이 그 남자의 회생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숨이 멎기 전에 의사들의 품에 안겼으니 그저 잘 되겠지, 살아나겠지. 그런 안도감이 필요했다.


그런데 짬밥이 늘어날수록 그는 정말 운이 좋았던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의 구급출동들은 더 안 좋은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밤이 깊어지고 날이 궂어지면, 병원으로 내달리는 길은 초조하게 막히고, 응급실은 사고현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의사들이 마중 나올 수 있는 한가한 때는 많지 않았다. 환자를 실은 침대를 응급실 안으로 끌고 들어가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분주히 뛰어다니는 병원 스텝들, 신음하는 환자들, 넋이 나간 가족들, 왜 환자를 처치 없이 방치하느냐며 절규하는 사람들. 그 와중에도 다른 119구급대와 사설 구급차가 사방에서 환자를 밀고 들어온다. 그런 포화상태를 병원사람들은 ‘환자가 깔려있다’라는 은어를 썼었다. 그보다는 떠 다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일상은 한없이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지만 실은 위태로운 바다 위에 떠 다니는 얇은 빙판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그 적막함에 쩍 하고 균열이 오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운명의 바다 위에 표류한다. 그것은 순간이다.



당신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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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천한 경험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응급의료시스템의 문제 모두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전부는 훨씬 더 처참하고 비극적일 것이므로. 만약 얄궂은 운명이 당신을 덮친다면 많은 것을 빌어야한다. 누군가 신속하게 신고를 해 주기를, 그 사람이 당신에게 심폐소생술을 해 줄 용기가 있기를, 당신이 다친 곳이 구급차나 닥터헬기가 닿을 수 있는 곳이기를, 이름 모를 당신을 위해 길을 내어주고 헬기의 소음과 바람을 참아주는 이웃이 많기를, 그리고 병원에 당신을 위한 침대와 수술방이 남아 있기를. 응급실에 ‘깔릴’처지라면, 당신의 친 인척, 하다못해 사돈의 팔촌 중에 누구라도 병원장이나 더 높은 사람에게 전화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 있기를, 빌어야 한다. 교통사고, 산업재해, 추락, 흉기 등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는 사람이 한 해 150만 명이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비극적인 사고에 기댈 것은 천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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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국종교수가 오만으로 날아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아덴만의 기적’ 이후 제정된 이른바 ‘이국종법’으로 응급의료시스템 문제가 공론화 되고 개선될 기회를 맞았다. 개정된 법을 근거로 권역별 중증외상센터가 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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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의료센터는 중증환자를 위한 전용차선과 같다. 기존의 혼잡한 응급실 체계에서 끄집어낸 생명이 위급한 중증환자를 위한 전용트랙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고 직후부터 처치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심폐소생은 5~10분 안에 이뤄져야 뇌사를 막을 수 있고, 본격적인 처치를 할 의사를 만나는 시점이 시간단위를 넘어가면 생명이 급격히 위독해진다. 일반적으로 골든타임이라고 잘못 알려진 이시간은 골든아워(golden hour)가 맞다. 그만큼 인간이 인간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기회는 무척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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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중증의료센터는 일반 병원과 달리 수술 전 각종 검사와 준비를 최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사고는 예고가 없으므로 그런 환자들을 위한 침대는 항상 비워둬야 한다. 환자가 있건 없건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10분 내에 처치할 수 있도록 외상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으로 구성된 전문 외상팀이 365일 24시간 상주한다. ‘경영을 위한 효율’과 정반대인 ‘환자를 위한 효율’이 시장에서 곱게 돌아갈 리가 없다.


저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책의 도구입니다. 제가 지금 저희 병원에서 제일 안타까운 게 저한테 학장님이나 그런 분들이 저 데려다 놓고 이거 외상 그만하라고, 우리 기관에 도움이 안 되니까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그날로 그만 뒀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요.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으니까 그렇게 안 한다고요. 나가는 순간까지 여기서 연판장이 돌고 협박장이 돌아도 그냥 놔둔다고요. 가끔 만나면 ‘어, 열심히 잘 지내니?’ 이렇게 한다고요. 클리어하게 아무도 명령을 안 내려요. 저 같은 사람들은 정책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뭐가 없으면, 가이드가 없으면 그냥 사라질 뿐이라고요. 저 같은 사람들은…


외과의사 이국종, 2012년 4월 24일 경기도청 초청강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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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한민국의 예방가능 사망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마저도 사고 현장, 이송 중 사망은 제외된 보수적인 수치다. 이 수치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치료 순서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블루칼라 계층이다. 비극적인 것은 안타까운 목숨 뿐만이 아니다. 남은 사람들은 뭘 해보지도 못하고 가족을 떠나보낸 죄책감과 황망함을 평생 명치에 누르고 살아야한다.


지금 김영란법 때문에 의사에게 청탁할 수 없지만 왜 내 핸드폰에는 문자가 수백통이 깔려 있을까요. 한국사회는 다치거나 했을 때 전화해 가지고 ‘나 누군데’ 해서 ‘누구누구 알지’ 하는 식으로 압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처리가 안 된다는 사회적 불신이 있죠. 비참한 겁니다.


외과의사 이국종,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 중 中


중증외상센터는 사회, 경제적 약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회안전망이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동족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김종대와 이국종 그리고 언론


북한 병사가 목숨을 걸고 JSA를 넘어왔다. 심각한 총상을 입은 그를 미군은 신속하게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팀의 수술방으로 옮겼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이국종 교수는 수술 후 브리핑에서 북한병사의 위중한 상태를 설명했다. 과정에서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자극적인 기사제목에 안성맞춤인 단어였다. 북한 병사를 포함한 150명의 중환자를 돌볼 귀한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외상중증센터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려한 이교수의 바람과 달리, 북한 병사 뱃속의 기생충들이 지면을 잠식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이를 지적했다.


15일 기자회견에서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 의사는 “나는 오직 환자를 살리는 사람이다”라며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정략적인 외부 시선에 대해 절규하듯이 저항했습니다. 기자회견 역시 의사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과 병원 측의 압박에 의한 것임을 실토했습니다. 누가 이 기자회견을 하도록 압박을 넣은 것일까요? 처음부터 환자를 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관리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자회견이 끝나고 또 찾아가 괴롭히던 기자들은 다음 날 몸 안의 기생충에 대해 대서특필하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여기서 보호받아야 할 존엄의 경계선이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새로운 자극적인 제목이 나왔다. <정의당 김종대, 이국종 저격>. 언론은 선정적인 보도 책임에 대해 반성이나 반론 없이, 자신들에게 향한 비판을 ‘사명감으로 살신성인하는 의사에게 감히 시비를 거는 종북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으로 반사 시켜버렸다. 김 의원은 강력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이벤트가 아닙니다. 중증외상센터가 더는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여론이 관심을 가지는) 귀순 병사 말고 다른 환자가 여전히 많습니다. 지금도 목숨과 사투를 벌이는 이가 많습니다. 기자 여러분이 '환자가 깨어났나요', '무슨 얘기를 했나요' 이런 데 에너지를 다 쓰지 말고, 지엽적인 것만 보지 말고, 의료 현실의 백그라운드를 들여다 보십시오. … 이 친구(귀순한 북한 병사)가 어디 전화 걸 데가 없고 무슨 고위 관료, 정부 관계자, 아니면 적어도 여러분 같은 언론인, 언론인들 아는 끈이 없어서 병원에 전화 한 통 할 데가 없어서 응급실에 깔려 있다가 허무하게 생명을 잃는다면 이 사람이 여기 왜 넘어왔겠습니까?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저는 그런 방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주셔야 되는 분들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언론인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외과의사 이국종, 22일 브리핑


이국종교수가 추가 브리핑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한 정치인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언론인’ 이라는 그의 간곡한 부탁은 기사에 발췌되지 않았다. 그의 두 번째 브리핑은 자신을 포함한 아주대 중증외상 스텝을 폄하한 정치인 하나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응급의료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고 가십만 뽑아내려는 눈앞의 카메라들에 대한 성토였다. 이 교수는 후에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도 그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 이벤트의 배역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언론은 자신들을 향한 이국종 교수의 성토에 숙연해질 생각이 없었다. 이국종 교수의 절규는 김종대의원에 대한 분노로 편집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이국종 vs 김종대’ 싸움 구도로 확정된 종반부에서 영웅과 악당이 탄생했다. 시민의 알 권리와 의료윤리 중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사안의 본질을 가리는 선정적, 경쟁적 보도행태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서도 그 어떤 생산적인 논의를 해보지 못한 채, 우리는 김종대 의원의 공허한 사과만 지켜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총상으로 사경을 해매는 귀순 병사가 골든아워에 중증외상센터에 도착해 생명을 붙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날조된 싸움 중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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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탄생


그리하여, 외과의사 이국종은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얻었다. 뉴스는 이제, 그의 숭고함에 흠집을 낸 정치인의 경솔함을 꾸짖으며, 이국종 영웅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가 일 년에 몇 번 집에 가는지, 머리맡에 즉석식품이 쌓인 그의 사무실 간이침대가 얼마나 허름한지, 록 마니아인 그가 기타를 얼마나 잘 치는지, 그가 어떤 의학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었는지가 전시되고 있다. 귀순 병사를 포함한 많은 중증외상환자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북한 병사가 현빈을 닮았다는 것이고, 걸 그룹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후에 귀순 병사가 쾌차를 하고 나면 이국종교수와 찍은 기념사진이 한 번 더 대서특필 될 것이다. 외과의사 이국종이 죽음의 문턱에서 끄집어 올린 북한 청년에게는 진짜 현빈을 닮았는지 아닌지 카메라 앞에서 확인시켜주고, 좋아하는 걸그룹 멤버 이름을 기자들에게 말해주는 신나는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영웅 이국종은 그렇게 뉴스에서 멀어질 것이다. 언론이 만든 수많은 영웅들이 그랬듯이.



이국종에게 필요한 것은 까방권이 아닙니다


의무소방에도 일반 병사처럼 계급이 있다. 병장계급에 해당하는 수방 시절, 새로 부임한 서장님의 관용차 운전병으로 보직이 변동되었다. 그간 출동 열심히 했으니 말년에 좀 쉬라는 지도관의 배려였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서장님은 훌륭한 공무원이었다. 업무 외 관용차를 이용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관내 순찰은 열심히 다니는데 청탁이나 불필요한 자리를 지독하게 피해 다녀서, 지근거리에 있는 내가 어른들의 등쌀에 도리어 애를 먹었다. 기관장회의 같은 공식 만찬이 있지 않으면 출장 중에는 항상 나와 단 둘이 식사를 했다. 덕분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김 군. 예전에 말이야 그런 농담이 있어. 술자리에서 술잔 비었는데 누가 잔을 챙겨서 채워주지 않으면 젓가락으로 탕탕 치면서 그런다고. 내가 소방서장이냐! 우체국장이냐! 하고 말이야. 끗발 없다고 홀대하냐 이거지. 자네도 근무를 해봐서 알겠지만, 소방서라는 데가 그래. 불이 나거나 다치기 전까지는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고.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닦고 기름치고 시동 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 사고가 나면 그 사람들에겐 우리밖에 없으니까. 서운할 일이 아니야. 자네도 나중에 제대하고 사회에 나가면 여기서 배운 거 잊지 말고 신고도 잘 해주고 출동할 때 길도 잘 터주고 그래줘. 그래야 좋은 나라지.”


1975년 내무부 소방국으로 시작한 소방조직이 독립 외청인 소방방재청으로 승격된 건 오래지 않은 2004년의 일이다. 소방은 안타까운 희생들을 자양분 삼아 커 왔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국가적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95년 중앙 119구조대가 창설되었다. 내가 근무했던 의무소방이라는 전환복무제도도 2001년 서울 홍제동 주택화재와 부산 연산동 빌딩화재로 7명의 소방공무원이 순직하고 5명이 부상하는 사고 이후 소방인력부족에 대한 문제인식으로 의무소방대 설치법이 제정되었다. 안전의 진보는 희생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다. 지역뉴스에서 겨우 단신 처리되는 개인의 비극들이어서 보이지 않을 뿐, 오늘도 밤을 내달리는 소방공무원들이나 응급실 사람들에겐 매일매일이 재난이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비극이 전시되어 상품이 되는 보도행태를 조금도 반성하지 못했다. 북한 병사의 귀순과 회생은 응급의료시스템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한다. 본질이 가려지고 자극이 늘어날수록, 그 소중한 배움의 골든아워는 지나갈 것이다.


외과의사 이국종은 더 이상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의 최전선에서 소임을 다하는 한 명의 의사로 살게 두어야 한다. 이국종에게 필요한 것은 까방권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밤샘 후 믿고 교대를 할 수 있는 동료들이며, 그래서 다음 근무까지 충분히 쉴 수 있는 저녁이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골든아워를 사수할 수 있는 더 견고한 시스템이며, 위급한 이웃에게 의사가 빨리 닿을 수 있도록 자기의 시간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해 주는 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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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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