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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07.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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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974년 11월 11일, 미국 LA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와 독일 혼혈의 전직 만화가였으며, 어머니는 독일과 러시아 혼혈이었다. 어릴 때부터 연기에 재능을 보인 소년은 일찍부터 에이전시와 계약한 뒤 TV광고와 교육 방송, 그리고 몇 편의 TV시리즈에서 단역을 거쳤다. 소년이 17세가 되던 91년, 저예산 공포영화 <크리터스 3>로 영화계에 본격적인 데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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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93년, 소년은 이제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로 더 잘 알려진 배우 조니 뎁과 함께 <길버트 그레이프>에 출연한다. 주인공 길버트의 동생이자 정신박약을 지닌 소년 어니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 그는 뭇 관객들에게 그 영화에 조니 뎁이 출연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작품은 소년에게 10대 후반이란 어린 나이에 생애 첫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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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눈치 빠른 독자 여러분들, 누구 얘기를 하는지 감 딱 오셨으리라. 20세기 이후엔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더 유명하다는 농담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한 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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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잘 생겨따!

 

 

지난 3월 3일,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매년 찾아오는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축제이자 전 세계 영화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시상식은 여느 해처럼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모든 부문이 영화팬들의 관심사지만, 유독 올해는 남우주연상을 누가 수상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였다.

 

 

그 이유인즉, 이번 아카데미는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상 네 번째(남우조연상 포함) 도전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번째 노미네이트 무대에서도 디카프리오는 고배를 마셨다.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를 축하하며 박수를 치는 디카프리오의 눈빛에선 찰나의 슬픔과 아쉬움이 지나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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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터넷에선 마치 그의 수상실패(?)를 기다렸다는 듯 온갖 움짤과 개그짤이 나돌기 시작했다.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노예 12년>의 제목에 빗대어, 그가 처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2004년을 기준으로 ‘후보 12년’이라는 농담마저 나왔다. 그의 수상 실패를 축하(?)하는 짤들부터 구경 좀 하고 가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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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오스카)상을 들고 있는 배우들 사이에서 혼자 오열하는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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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상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거부당하고 있는 디카프리오.

이번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한 장면을 패러디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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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상을 향해 기어가는 레오.

역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한 장면인 듯.

이쯤 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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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런 짤도.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하러 나가던 중 드레스를 밟고 넘어진 제니퍼 로렌스의 모습을

마치 디카프리오가 그녀의 오스카상을 빼앗아 달아나는 것처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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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중간, 진행을 담당하던 엘렌 드제네러스가

뜬금없이 배우들을 모아서 셀카를 찍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때 찍힌 배우들의 셀카 밑에 오열하는 디카프리오의 사진을 놓고

“나는 심지어 셀카에도 없어”라는 쓸쓸한 대사를 집어넣었다.

 

 


이렇게 디카프리오의 네 번째 아카데미 도전 실패에 각종 유머짤이 올라오긴 하지만, 사람들이 꼭 그를 조롱하기 위해 이런 짤들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다들 그가 한 번쯤은 수상하길 기대했기 때문에 허탈함을 채우기 위해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건 아닐까?

 

 

사실 ‘레오’의 팬이시라면 이번 아카데미 후보 지목에 대해 ‘고작 네 번이라고?’하는 의문을 품으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96년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97년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덕분이겠지만, 이전부터 그는 <길버트 그레이프>부터 마약에 빠진 소년의 모습을 연기한 <바스켓볼 다이어리>, 시인이자 동성애자였던 랭보의 삶을 그린 <토탈 이클립스>등을 통해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며 이미 많은 팬들을 거느린 주목받는 배우였다.

 

 

뛰어난 연기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미모의 청춘스타 이미지로 더 강하게 자리매김한 것이 그에게는 부담이었을까. <타이타닉>의 대성공을 마지막으로 그에게도 슬럼프가 온 듯했다.

 

 

루이 14세와 ‘철가면’ 뒤에 숨겨진 그의 쌍둥이 왕자를 1인 2역으로 연기한 시대극 <아이언 마스크>와 미지의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극 <비치>는 연이어 혹평을 받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타이타닉> 이후 그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대부분 로맨스 영화였다고 한다. 그는 그 작품들을 모두 거절하며 본의 아니게 휴식기를 갖게 된다.

 

 

절치부심한 듯 디카프리오는 2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해 역시 거장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캐치 미 이프 유캔>을 찍었다.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감독들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한 그에게선 어떤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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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은 전혀 다른 내용과 분위기를 지닌 영화지만, 디카프리오 개인에게 있어선 어떠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갱스 오브 뉴욕>의 장발에 수염을 기른 레오의 모습은 마치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미소년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같았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앳된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 시절을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서린 듯 보였다.

 

 

두 편의 영화에서 그는 여전히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였지만 아카데미 후보에 지목되지는 못했다. 그가 <길버트 그레이프>이후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것은 2004년, 다시 한 번 마틴 스콜세지와 만나 실존인물 하워드 휴즈의 삶을 다룬 <에비에이터>를 찍고 나서였다. 그러나 오스카의 행운은 그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맹인 가수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레이>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제이미 폭스가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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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프리오의 수상실패는 아쉽지만, 아무도 그의 수상에 이견을 달지는 않을 것이다.

 

 

2007년에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다시 한 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라스트 킹>의 포레스트 휘태커가 그 영예를 가져갔다. 본인 아직 <라스트 킹>을 보지 못해서 뭐라 말하지 못하겠지만, 디카프리오의 출연작 중에서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크게 두드러지는 영화도 아니며 그의 연기 또한 상대적으로 평범한 편이었다고 생각하기에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리하여 2014년까지 왔다. 본인은 디카프리오의 팬이지만 최근 그의 행보에서 어쩐지 아쉬움이 느껴진다. 최근 그는 마치 로버트 드니로의 뒤를 이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듯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에 이어 <디파티드>와 <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까지 무려 다섯 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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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두 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디카프리오의 연기력이 굳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이어야만 인정을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카데미가 스콜세지 감독에게 81년 <성난 황소>때부터 다섯 번이나 그를 감독상 후보에 올려놓고 고배를 마시게 한 뒤 <디파티드>에 와서야 감독상을 주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미 전성기가 지난 스콜세지 감독과 함께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방법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그가 수상을 위해서 스콜세지 감독을 선택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스콜세지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의 연기가 <갱스 오브 뉴욕> 이전,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등 그가 아직 앳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시기의 연기에 비해서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어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10대와 20대의 레오는 정말이지 누구를 연기해도 마치 접신이라도 한 듯이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가 비행사, 의사, 변호사로 자신의 직업을 바꿔가며 사기를 치듯 말이다.

 

 

최근 그가 보여준 가장 남았던 연기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였다. 이 작품에서 레오는 주연이 아닌 조연, 그것도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악당 캘빈 캔디를 연기했다(그의 아카데미 수상을 저지했던 제이미 폭스와 함께 출연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연기는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하게 연기를 즐기는 듯 보인다. 비록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진 않았지만 근래 그가 연기한 어떤 캐릭터보다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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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란 물론 받으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것 또한 아니다. 특히나 디카프리오쯤 되는 배우라면, 연기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굳이 아카데미상이 필요하진 않다고 본다. 배우로서 가장 큰 성공은 상을 탔느냐 아니냐가 아닌, 얼마나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연기와 캐릭터를 보여주느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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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가 아카데미상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그 욕심을 버리고 지금보다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하기를 바란다. 때때로 <인셉션>처럼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장고>에서처럼 악역을 연기하는 것처럼, 좀 더 자주 그의 색다른 도전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그의 팬으로서 가져본다.

 

 

한 편 한 편 즐겁게 찍다보면 결국엔 그의 손에 오스카를 거머쥐는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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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과 아카데미 수상이 반드시 직결되진 않는다. 톰 크루즈도 여태까지 세 번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으니 수상을 한 적이 없고, 조니 뎁 역시 세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 경력은 없다. 반면 <갱스 오브 뉴욕>에서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했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다섯 번의 노미네이트 중 세 번이나 수상을 했으니, 과연 아카데미는 ‘탈놈탈’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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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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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스카는 어딨어?






햄촤

트위터 : @hamchwa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