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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강당 뒤편 으슥한 곳에 끌려가 머리에 털나고 처음인 그런 무서운 린치를 당했다. 끽소리 한 번 못한 채 고스란히 당해야만 했다. 설사 소리를 내질렀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쫓아와 그 공포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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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의 작품인 <우상의 눈물> 중 한 대목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주인공인 유대는 '재수파'라 불리는 패거리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게 된다. 사실 재수파는 꽤나 악질적인 그룹이다. 아이들에게 체육복을 뜯고, 그들에게 어떤 실수를 하는 순간 한 아이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이들이 바로 재수파다. 그 날도 재수파는 유대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데, 이유는 이렇다.



---메시껍게 놀지 마!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이 내게 린치를 가한 이유란 단지 그것이었다. 2학년 재수파들이 나를 첫 표적으로 삼은 것은 내가 그들 눈에 메스껍게 보였기 때문이다.



무언가 거대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재수파가 유대에게 남긴 린치의 이유는 단지 ‘메시껍게 놀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집단 린치의 속성이란게, 원래 자기네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으르렁 컹컹대며 밟아버리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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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메갈리아와 메갈리안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 하나의 원고를 썼지만, 데스크로부터 거절당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내 스스로가 글을 올리기를 거부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결국 먼저 썼던 원고는, 해당 공간에 싣지 않는 것으로 결정났다.


메갈리아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메갈리아라는 집단이, 아직까지는 납득할만한 경계 위에서 메갈리안들과 함께 서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위태위태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들 스스로가 크게 엇나가지 않으며 단순한 ‘미러링’을 통해 ‘여성 혐오를 혐오하겠다’는 그들의 기치를 애써 지키고 있다 판단했다.


나머지 하나는 메갈리아에 대한 담론을 개방된 수준으로 받아들일 정도의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메갈리아가, 사실 상당수가 그리도 혐오하는 일베의 경우 이제는 일베에 대한 일반적 담론을 풀어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메갈리아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담론이 올라올 경우 좌표를 설정하고 좌표를 ‘때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갈리아를 비판해봐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선봉장에서 얻어맞는 역할을 하기에는, 내 간이 너무 작았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뭔가 해야할 얘기를 해야할 것만 같아서다.


메갈리아는 분명 특이한 존재다. 언젠가 한 번은 터졌어야 할 고름이 꽤나 농익어 지금에서야 터졌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여성 혐오에 지친 여성들이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며 기치를 올리고 나오던 순간에도 그들을 욕할 수 없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조심한다고 했지만 사회적 통념과 분위기 속에서 무의식중에 여성 혐오적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참다 참다 터져나온 그들의 울분과 외침을, 사실 약간의 응원도 해가며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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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몰카 근절 캠페인 스티커

출처 - <메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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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약물 박멸 프로젝트

출처 -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다만, 지금 내가 목도하고 있는 상황은 처음의 내가 지지를 보내던 상황과는 조금 멀어진 듯하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현재도, 그리고 향후에도 광범위한 ‘대중적 페미니즘을 전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금도 메갈리아의 게시물이나 활동들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제 3자적(남자건 여자건!)이 충분히 존재하며, 그들 자신이 ‘미러링’을 통해 즐기던 ‘여혐혐’이란 개념이 어느새 ‘미러링’을 벗어나 ‘남혐’을 위한 수단으로 즐기는 사례들이 서서히 목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 3자인 내가 보는 입장에서, 메갈리아의 세계관은 ‘모든 남성은 그럴 것이다’라는 성급한 일반화에서 비롯된다. 웬만한 남성은 위협적이며 여성들에게 적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남성은 언제고 여성 혐오에 따른 범죄, 그것이 중하던 경하던 그런 범죄들을 행할 수 있는 범죄자가 될 수 있다라는 피해의식에서 출발한다. 사실 메갈리아라는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이런 일반화는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일반화를 통해 메갈리아와 메갈리안은 그들 스스로에 대한 그 어떤 연대보다도 강력한 연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으며 지금도 이는 지속되고 있으니까.


메갈리아가 어쩌면 일베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놀랍게도-사실 이게 놀랄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국민들(남자건 여자건!)은 일베의 정신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의 뿌리 깊은 ‘전라도 혐오’와 ‘여성 혐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죄악이며 비상식적인 일임을 상당수의 국민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SNS만 돌아보라. 누가 자랑스럽게 ‘일베의 링크’를 따와 게시글을 올리며 ‘일베’와 관련된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가. 심지어는 일베의 구성원들조차, 실명 앞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메갈리아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연대 정신을 바탕으로 페이스북 내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를 행한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시대정신의 발현이며, 뉴웨이브 속으로의 자발적 동참이라 여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흐름이 전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응원하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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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사in>


하지만 만일 메갈리아에 이들과 근본적 가치, 즉 ‘미러링’으로 대표되는 ‘여혐혐’이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신규 유입 인원들이 등장하고, 메갈리아의 문화를 단순한 놀이 문화로만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관해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꽤나 인상적인 코멘트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이 의식적인 계산이야말로 메갈리안의 강점인 동시에 위험 요소가 된다. 미러링이란 여성혐오의 문법에 익숙하고 충분히 갖고 놀 수 있으면서도 과속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능한 외줄타기다. '탄생 정신'을 공유하지 않는 신규 유입이 이어지고 혐오 발화가 자체로 놀이코드로서 매력을 갖게 된다면(일베가 정확히 이렇다), 그때도 섬세하게 지금 궤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질문도 있다. '혐오를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은 습관적으로 여성혐오 언어를 써왔던 남성에게는 충격요법으로 먹혀들기도 했다. 하지만 맥락 없이 접해야 하는 온라인 공간의 다수 구경꾼에게 메갤발 혐오 발화는 그저 '여자 일베의 등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전략은 얼마나 유효할까. 메갈리안에서도 그를 둘러싼 논쟁이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시사IN>, 천관율 기자



인지했는가. 메갈리아의 문화가 경계를 벗어날 경우, 필연적으로 상황이 달라진다. ‘이기야’와 ‘~했노’ 같은 문법이 일상에 스며들어가는 현 상황을 보라. 만일 메갈리아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놀이 문화를 전방위적에 흩뜨린다면 자신들을 일베와 차별화하며 우월감을 드러낼 수 있는 집단이 될 수 있을까.


문제는 이 것뿐만이 아니다. 현재 메갈리아의 운영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대표될 수 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일베의 문법과 문화’를 차용한 ‘미러링’이며 나머지 하나는 ‘좌표’다. ‘미러링’이 문화의 문제라면 ‘좌표’는 일상의 문제로 작용한다. ‘좌표’의 프로세스는 이렇다. 어떤 이가 여혐, 혹은 여성에 대한 비하에 관련된 글을 올린다. 그 즉시 ‘메갈리아’에는 좌표가 올라오게 되고, 회원들은 게시글을 향한 융단폭격을 날리게 된다. 당사자는 얼마 뒤 사과문을 올리고, 회원들은 승리감에 또 한 번 도취되게 된다. 이미 꽤나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이 ‘좌표찍기’에 당했다.


문제는 이 ‘좌표’라는 것이, 지극히 사적이며 주관적인 가치를 통해 결정된다는 부분이다. ‘좌표’에 찍힌 사람들 중 일부는,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일상적인 얘기를 했음에도 융단폭격을 통해 사과글을 올리게 된다. 좌표를 찍고, 그 좌표에 집단 린치를 가하는 방식인 셈이다. 서두에서 말했던 '재수파'의 역겨움은, 메갈리아를 통해 온전히 재현되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부분은 이러한 ‘좌표’ 중 일부는 메갈리아의 운영진이 직접 찍는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커뮤니티도, 회원간의 저격보다 더한 운영진의 저격을 방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메갈리아가 소위 말하는 ‘오유’, ‘엠팍’, ‘일베’ 등 다른 커뮤니티와의 차별성, 혹은 다른 커뮤니티보다 더한 문제성을 가지는 것에는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들어있다.


생각해야 할 부분은 더 있다. 메갈리아의 복수가 보란듯 성공해서 그들을 메스껍게 하는 이들이 사라진다면, 메갈리아가 그런 위치에 오르지 않을 것이란 보장을 할 수 있는가? 우발적인 악이 없어진 세상에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자리에는 악을 그토록 혐오하던 이들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여혐혐’이 ‘남혐’으로 바뀔 수 있는 여지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런 걱정이 단지 기우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고해야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


<우상의 눈물>로 돌아간다. 집단 린치 등을 통해 우발적인 악을 행하던 재수파는, 김선생의 부임 이후 서서히 몰락해간다. 그리고 몰락의 중심에는, 반장인 형우와 김선생이 만든 치밀하고도 교활한 올가미가 있었다. 형우와 김선생은 똑같은 복수가 아닌, 보다 계획적인 덫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편에 두었고 그들이 혐오하던 우발적인 악은 자멸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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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어야 했을 수 있다. 수단의 문제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의 절박함으로 들어줄 수 있었다. 다만, 메갈리아가 사회적 담론으로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국에서 이러한 판단과 실행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위험한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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