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의 흐름상 이전 글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프랑스 전역에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테러가 발생하여 129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으며, 많은 사람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며, 그에 따라 프랑스 곳곳에서 '위험 인물'로 등록된 이들에 대한 영장 없는 무조건 수색이 진행되고 있다. 대상을 정해 놓지 않고 보다 많은 인명 피해를 입히고자 실시한 무차별 테러라는 점이 <샤를리 엡도> 때나 유대인 슈퍼 인질테러극과는 차이점을 보이지만,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범인들의 국적이 프랑스인이라는 점은 같다. 즉, 프랑스 사회의 모순이 프랑스 혹은 프랑스어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무슬림 이민자 2~3세로 하여금 자신이 나고 자란 국가보다 저 먼 곳에 있는 광기 어린 종교 집단에 더욱 큰 유대감을 느끼게끔 했다는 점에서는 사건의 배경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의 범인 쿠아시 형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물론 이 현상의 원인이 프랑스 이민정책, 프랑스 사회의 차별적 모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밝힌 바와 같이 현재 프랑스에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별도의 감시 및 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만 11,500명인 현 상황에서, 또한 역사상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이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현 정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는 테러가 발생한 날의 긴급 담화, 그 다음 날 오전의 담화, 또한 이틀 후 월요일에 베르사이유 궁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의 연설을 통하여 일단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테러에 맞서 어느 때보다 강경한 방침을 취할 것을 밝혔다.
프랑스 정부의 가이드 라인
프랑스 정부가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올랑드 대통령의 세 번에 걸친 연설을 통하여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우선 올랑드 대통령은 13일 23시 53분경, 그러니까 인질극이 한창인 그때, 긴급 담화를 발표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국가 비상사태는 통행금지, 행정당국의 결정에 따른 (영장 없는) 조사, 공공기관 및 상업공간 폐쇄, 집회 금지, 언론에 대한 통제 등을 가능케 하는 조치로, 긴급하고 중대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국가의 공권력이 대중 시민의 자유를 상당 부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현 프랑스 법에 의하면 최대 12일 동안 지속되며, 그 기간 이상 비상사태를 연장하려면 의회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11월 18일 수요일, 비상사태 3개월 연장이라는 정부의 제안을 국회가 받아들였으며, 이로써 프랑스 사회는 적어도 3개월간 시민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안전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또한 긴급 담화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국경의 폐쇄를 발표하였다. 이는 완전 폐쇄는 아니고, 이슬람 급진주의자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한 국경의 출입 폐쇄를 뜻하는 것으로, 실제로 이후 프랑스 국경의 검문이 훨씬 강화되었다.
한편, 사건 다음날인 11월 14일 오전에 발표한 대통령 담화에서 프랑스 정부는 파리와 생 드니에서 일어난 일련의 테러를 이슬람 지하디스트의 대 프랑스 '전쟁 행위'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 비상사태에 있는 프랑스는 IS와 전쟁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11월 15일 저녁, 시리아 북부의 락까(Raqqa)에 프랑스 공군의 공습이 있었다. 10대의 전투폭격기가 20개의 폭탄을 IS 주둔지에 투하하였다. 프랑스 국방부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IS 사령부와 훈련소, 무기고 등이 파괴되었다고. 이번에 실시된 프랑스 공군의 공격은 이전에 비하면 보다 큰 규모로, IS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프랑스의 시리아 내 IS에 대한 공격은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11월 16~17일 밤, 프랑스 공군은 시리아 락까에 다시 한 번 공습을 실시하였다.
또한 16일 월요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는 577명의 상원의원과 348명의 상원의원 모두가 소집되었다. 이는 상당히 예외적인 일로, 여기서는 국가 보안, IS 공격, 헌법에 대한 재검토 등이 논의되었다. 상하원 모두가 소집된 마지막 사례는 지난 2009년 사르코지 정권에서 경제 위기에 대한 담화를 위해서였음. 합동회의 연설에서 올랑드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국가 비상사태의 3개월 연장
- 시리아의 IS에 대한 공격 강화
- 프랑스의 대 테러 공격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유엔안보이사회 소집 요청
- IS에 대응한 러시아와의 연합
- 테러와의 전쟁을 실현하기 위한 헌법 개헌
- 경찰과 군 병력 5천 명 증원
- 이중국적 획득률 감소
이로써 프랑스는 러시아와 IS 소탕작전에서 동맹을 맺게 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17일, 푸틴 대통령은 동지중해에 주둔한 러시아 해군에 프랑스와 직접 연락을 취할 것을 명령하였다. 러시아의 해군 함정은 프랑스의 항공모함 샤를 드골 호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1월 26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러시아로 가서 푸틴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올랑드가 제안한 헌법 개헌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헌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16조와 36조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 두 조항이 2015년 현재, 테러 위협 앞에 선 프랑스에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16조는 무장봉기 및 외국의 침략 위험 등으로 인하여 공화국 제도와 국가의 독립 및 영토가 심각하고 즉각적인 위협에 처하여 헌법에 의한 공권력의 정상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시, 공화국 대통령이 국무총리, 국회의장 및 헌법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특별히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대통령에 예외적인 권력을 허락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논란이 되는 헌법 조항 중 하나이기도 하다. 헌법 제16조에 따르면 위에 언급한 상황에서 처한 조치는 30일이 지나면 그 적법성을 국회의장, 상원의장, 상하원에 의해 심사받게 되어 있다. 올랑드 정부는 이 16조를 국가 보안을 위해 엄정히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대중의 자유에 관련된 조치까지 취할 수 있도록 수정을 가하고자 한다.
한편, 36조는 계엄령에 대한 조항이다. 여기서 계엄령은 프랑스가 무력에 의한 공격을 받았을 시, 군에 일정 부분의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는 영토의 일부분에만 해당하며, 경찰의 대 시민 업무 권한을 군에 이양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계엄령의 기간은 12일이 경과할 시 국회의 승인이 있어야만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36조에 대해 프랑스 정부가 제안하는 수정 내용은 국가 비상사태를 계엄령과 같은 위치에 놓으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재 프랑스에 발효된 비상사태는 헌법에는 명기되어 있지 않은 조치이며, 그 기간을 12일 이상 연장하기 위한 별도의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상태. 또한 국가 비상사태는 오랜 기간 지속되는 위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조치이다. 바로 앞에 닥친 심각한 위기에 대한 임시조치이기 때문이다. 올랑드 정부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합당한 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특정 기간동안 계엄령을 거치지 않고, 또한 대중의 자유를 심각하게 해치지 않는' 국가 비상사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현재 법에서 정해 놓은 국가 비상사태보다 그 강도는 약화시키되 기간에 대해서는 연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리즘에 효율적으로 싸우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면서 "공공질서에 위협이 되는 외국인을 신속하게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귀국비자 발급 제도에 대한 검토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올랑드 정부가 제안하는 개헌은 지난 2007년 사르코지 정권에서 제안했던 사항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13개 그룹의 전문가들이 77개 수정안을 제시했으며, 당시 사르코지는 '보다 민주적인' 프랑스 공화국을 위하여 이와 같은 헌법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 당시 올랑드를 비롯한 사회당은 그 제안에 적극 반대한 바 있다. 또한 올랑드 대통령이 월요일 연설에서 발표한 조치들은 <샤를리 엡도>를 전후하여 야당, 즉 우파 공화당과 극우 국민전선 측에서 계속해서 요구해 온 사항이기도 하다. 지금껏 사회당 정부가 국가 운영에 있어 시민의 자유 및 관용, 인권 등에 보다 가치를 두어(이 부분은 분명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야당의 입장에 반대 입장을 취하느라 내세운 핑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필자는 무책임하지만 판단을 유보한다) 야당 쪽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한 공권력 강화 및 보다 엄정한 태도를 기피해 온 데에 반하여 이번 파리 연쇄 테러를 기점으로 야당의 요구를 대폭 받아들인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일단 언론들은 전날 베르사유 궁에서 진행된 상하원 합동회의의 대통령 연설에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리베라시옹>과 <르 피가로> 사이의 논조 차이는 놀랍지 않다. <리베라시옹>의 편집장 로랑 조프랭(Laurent Joffrin)은 올랑드 대통령이 이 역사적인 사건에 있어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며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우위를 점유했다고 보았다. <르 피가로>의 이브 트레아르(Yves Thréard) 부편집장은 일단은 일련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IS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르몽드>는 회의론적인 입장을 밝힌다(이 부분이 명시된 기사는 유료 기사라 열람해보지 못 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독자 여러분께 송구함을 전한다).
지방지의 경우도 올랑드 정부의 결단에 비교적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프랑스 북부 알자스 지역의 지방지 <랄자스>는 '올랑드 대통령의 연설 수위는 위협에 견주어 알맞는 것'이었다며, '발표된 정책들을 이전에 실시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편집장 레몽 쿠로(Raymond Couraud)는 또한 '우리는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샤를리 때부터도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디 피레네 지역의 지방지 <라 데페슈 뒤 미디>는 '올랑드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군수 책임자 다운 냉정하고 단호한 결단을 보여 주었다'며 이번 결정을 올랑드 정권 수립 이후 가장 잘 한 결정이라고 칭찬했다. 프랑스 중서부의 샤렁트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지 <샤렁트 리브르>는 '올랑드 대통령이 자신의 결정에 대한 그 어떤 의혹도 허락하지 않고 있으며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야당의 논지마저 받아들였다'며 이번 일로 야당은 한 방 먹었음을 밝혔다. 피카르디 지역의 지방지 <르 쿠리에 피카르> 역시 올랑드 대통령이 '야당의 프레임 안에 있는 정책을 적극 취함으로써 야권을 이번 사태 해결의 객체로 만들어 버렸다'고 평했다.
또한 <르 파리지앵>의 의뢰로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73%의 프랑스인이 현재 올랑드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기사 원문 - BFMTV
각 정당의 반응
일단 프랑스의 정당들은 오는 12월에 있을 지역선거 운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앞으로의 사건 해결 과정이 바로 더욱 임팩트 있는 선거 캠페인이 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앞서서 올랑드 대통령의 담화를 언급했으니 사회당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도록 한다. 단, 마뉘엘 발스 국무총리는 현 사태의 해결을 위해 초당파적 정부(Gouvernement d'unité nationale)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였음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초당파적 정부란 기존의 야당과 여당으로 나뉘는 시스템을 초월한 정부를 말한다. 즉, 각 정당의 정치적 견해 및 종교적 신념 차이로 인한 갈등은 우선 접어 두고 정당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1. 공화당
공화당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서는 동감하면서도 현 사태를 올랑드 정부의 정책 실패로 보고 있다. 특히 사르코지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선 사회당 정부의 초당파적 정부 구성 제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국가 사회적 연대에는 적극 동참할 것이나 초당파적 정부 구성은 거부한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공식 입장이 현 정부의 반대편에 서 있으며, 또한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현 상황에서 굳이 사회당과 연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얼마 전 마뉘엘 발스 국무총리가 이번 12월 선거에서 국민전선에게 한 지역도 내어 주지 않기 위해서 마린 르펜이 출마한 노르 파 드 칼래 피카르디 지역의 후보를 단일화할 것을 제안하였을 때, 공화당은 코웃음을 쳤을 뿐이다. 또한 사르코지는 쉔겐 조약을 파기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쉔겐 조약은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시스템을 최소화함으로써 국가 간 통행에 제한이 없도록 하는 조약이다. 사르코지에게 있어 국경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가장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하나인 알랭 쥐페(Alain Juppé)는 지금 현재는 모든 곳에서의 연대가 필요한 시기라며, 공화당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사회당 정부와 초당파적 정부를 구성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사르코지의 태도가 반 공화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알랭 쥐페의 제안에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로 등록된 모든 이에 대한 조사 및 감시 강화, 전자팔찌 강제 착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제안은 얼마 전 <TF1>과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가 현 상황에서 시급히 실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내용과 동일하다. 따라서 공화당이 앞으로 밀 전략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현재 프랑스에 이슬람 급진주의자로 등록된 이는 11,500여 명에 달한다. 또한 알랭 쥐페는 올랑드 대통령에게 국내 보안 정책에 대한 강화 조치와 시리아 IS 공격에 있어 러시아와의 협력 및 보다 유연한 대외 정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사르코지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프랑수아 필롱(François Fillon)은 <유럽1>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폭탄도 전쟁을 이기게 할 수는 없다"며 올랑드 정부는 IS에 대한 어떤 전략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프랑수아 필롱은 또한 "시리아의 IS에 대한 공격에 있어 러시아와의 연합을 거절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밝혔다. 사회당 정부의 초당파적 정부 구성 제안에 대해서는 "그것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우리와 함께하고자 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라며 조건부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2. 극우정당 국민전선
사건이 터지고 10여 분이 지난 시각, 그러니까 10여 명의 프랑스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오던 그때, 극우 국민전선(FN)의 사무국장 니콜라 배이(Nicolas Bay)는 "올랑드와 발스가 국민전선에 맞서 싸우고 있을 때,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들은 테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부끄러움을!"이라며 프랑스 정부를 비판했다. 국민전선 당수 마린 르펜의 남자친구 루이 알리오(Louis Aliot)는 발스 총리에게 "진짜 위험이 어디 있는지 이제 알겠소? 무책임한 사람같으니!"라는 멘션을 날린다. 아마도 발스 총리가 12월 선거에서 국민전선이 한 지역에서도 승리를 거두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던 것에 대한 응수로 읽힌다. 이 둘 말고도 국민전선의 지도부 정치인들은 상황의 심각성과 관계없이 '무참히 내버려진 프랑스'니 '이게 다 정부 잘못'이니 하다가 많은 이의 지탄을 받았다. 현재 대부분의 트윗은 삭제된 상태. 이제는 상황이 어떻더라도 자기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그 욕망을 한치도 숨기지 않는 이들 국민전선의 반응이 정겹기까지 하다. 아마도 전략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런,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태도 때문에 적지 않은 프랑스인이 국민전선을 지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국민전선의 대표 마린 르펜은 "프랑스와 프랑스인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며 격앙되고 굳은 어조로 프랑스의 재무장을 촉구했다. 마린 르펜은 국경의 완전 폐쇄와 군 및 경찰 병력 강화, 이슬람 급진주의자 추방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테러 이후 마린 르펜은 논란이 될 수 있는 일체의 언행을 하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 캠페인에서 반이슬람 및 반이민자 정서를 유발하는 연설을 했던 것과는 상당히 차이를 보이는 행보라 하겠다. 2012년 3월, 프랑스 남부의 툴루즈에서는 알제리계 프랑스인 지하디스트 모하메드 메라에 의한 테러로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마린 르펜은 "오늘도 얼마나 많은 모하메드 메라가 배로, 비행기로 지금도 이민자로 가득찬 프랑스에 도착하고 있습니까!"라는 연설로 많은 이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12월 지역선거를 3주 앞둔 이 시점, 또한 2017년 대선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마린 르펜은 자제라는 현명한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12월 선거에서 국민전선이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르펜 자신이 후보로 출마한 북부의 노르 파 드 칼래 피카르디 지역과 남부의 프로방스 알프 코트 다쥐르 지역이다.
재미난 것은 지난 1월 <샤를리 엡도> 사태 직후와는 달라진 프랑스 정부의 국민전선에 대한 태도이다. 지난 1월, 국민전선은 올랑드 정부가 주최한 국가 규모의 행진에 초청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초당파적 정부 구성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일요일, 같은 당의 사무국장 니콜라 배이, 당 부대표 플로리앙 필리포와 함께 대통령의 초청으로 엘리제 궁에서 5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이는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국민전선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마린 르펜은 급진적 이슬람 이맘 추방, 몇몇 이슬람 사원 폐쇄, 이중국적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국적 취소, 쉔겐 조약 파기 및 국경시스템 재설치, IS에 대한 보다 단호한 태도 등을 제안하였다. 마린 르펜은 또한 난민 및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테러리스트의 유입에 대한 국민전선의 우려를 표했다. 이는 이번 파리 테러범 중 한 명이 난민 행렬에 끼어들어 프랑스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현 상황에 대한 입장이다. 마린 르펜은 프랑스의 난민 수용을 즉각 중단할 것과 현재 들어와 있는 난민들이 프랑스인이 살고 있는 마을로 유입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국민전선은 군과 경찰 병력 증축, 세관 인력 확대를 요구하며, 이들이 사르코지 정권 때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음을 분명히 지적하였다. 초당파적 정부 구성 제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완강히 반대하지도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사회당 정부가 자기네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테러에 맞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이자, 결국 17일 화요일 8시, 현 정부를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프랑스2TV> 저녁 뉴스에 등장한 마린 르펜은 "우리는 메라 사건 이후에, 샤를리 엡도 사건 이후에 계속 실로 진실한 연대를 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올랑드 정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희생자들은 허무하게 죽어 갔습니다. 이제는 이런 죽음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라며 사르코지 정부와 올랑드 정부의 실패를 주장하였다.
지금까지의 반응에 비추어 보면 국민전선은 이번의 사태를 올랑드 정부의 정책 실패로 보고 있으며,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라는 슬로건에 보다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마린 르펜이 논란을 피하고 자중하고 있지만 국민전선이 12월 선거 필승을 위해 프랑스 사회의 반무슬림 및 반이민자 정서에 불을 붙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껏 국민전선이 적지 않은 수의 프랑스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은 프랑스 내 반이민자 정서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테러가 나기 며칠 전 인터넷에는 국민전선의 정책국 회의 장면이 공개된 적 있다. 이 국민전선의 유럽 하원 도미니크 마르탱(Dominique Martin)의 발표를 담은 이 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몰래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의 캡처 이미지
도미니크 마르탱은 현재 프랑스 사회에 횡횡하는 반 이민자 및 반 난민 정서는 국민전선에게는 탁월한 기회이며 바로 이 시점에 전 국가적인 규모의 프로파간다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전선에 있어 2017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기회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마린 르펜은 적어도 겉으로는 이미지 세탁을 해야 한다. 반면, 이미지 세탁을 하는 동안 기존의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겠다. 대선 필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국민전선에서는 어떤 전략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런데 이전에 비해서 공화당과 국민전선이 좀 많이 조용해졌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공화당 및 국민전선이 취해 왔던 입장은 올랑드 정부의, 좋게 말하면 유연한, 나쁘게 말하면 물렁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비판의 강도나 공공연함의 정도에 따라 이 두 정당이 나뉘어졌을 정도. 그런데 지금껏 공화당과 국민전선이 주장했던 바의 대부분을 올랑드 정부가 이번 테러를 기점으로 실시하려고 한다. 할 말이 없어질 수 밖에. 기껏 하는 것이라곤, 18일 화요일 열린 국회에서 이전보다 강력한 야유를 보내는 정도다.
즉, 야당은 현재의 사태를 올랑드 정부의 책임론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의 거의 10%를 차지하는 무슬림 중 적지 않은 일부가 급진주의로 돌아선 것이 비단 최근 몇 년 사이의 프랑스 사회 정세 때문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프랑스 사회의 차별적 면모로부터 비롯된 면이 분명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 사태를 올랑드 정부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과한 부분이 있다. 게다가 프랑스의 병력 규모가 축소된 것은 현 정권이 아니라 니콜라 사르코지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참고로 이 부분은 마린 르펜도 지적했으며, 사회당 정부도 마찬가지. 게다가 사르코지의 라이벌 공화당의 알랭 쥐페 역시 인정하고 들어가는 부분.
말하자면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번 비극 앞에서도 다음 선거에 보다 효율적인 전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는 이야기는 비단 한국에서만 자주 들리는 것이 아니다. 많은 프랑스 인들이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프랑스 국립 행정학교( ENA) 출신이다. 결국 같은 학교에서 몇 년 동안 얼굴 맞대고 공부하고 여러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정치판에 들어가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정치적 신념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결국 사적 공간에서는 다 친구, 형님, 아우 먹는 사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말이 어디까지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현대 이슬람 사회 전문가 질 케펠(Gilles Kepel)은 <르몽드>의 지면을 빌려 "IS가 목표하는 바는 프랑스 공화국을 흔들어 놓는 것으로, 초당파적 정부 구성은 그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해답이다. 서양 세계에서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커질수록 IS에게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 나라 정치 엘리트들의 몰지각으로 인해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12월 있을 지역 선거까지 몇 주 남지 않았다. 그전까지 프랑스의 각 정당들이 어떻게 선거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 하는지, 그리고 프랑스 사회는 정당들의 캠페인 아닌 캠페인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라 하겠다.
덧붙임
이번 파리 연쇄 테러 사건에 한국 언론이 정말 전에 없이 신속 정확하게 놀라운 능력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러다 밥풀 몇 개 남지 않은 내 밥그릇까지 뺏길 것 같다. 처음에는 같은 날 일어난 한국의 집회 관련 소식을 가리려고 그러나 했다. 그런데 점차 언론에서 한국 역시 IS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이라는 식의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심어 주는 기사들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한다. 혼이 올바른 한국 정부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곳 파리 테러를 핑계 삼아 안 그래도 비정상적인 힘을 누리고 있는 국가의 공권력을 더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불경하게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냥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참고
http://www.leparisien.fr/faits-divers/attentats-a-paris-la-police-va-avoir-des-moyens-comme-jamais-selon-valls-17-11-2015-5284795.php#xtor=AD-1481423552
http://www.lopinion.fr/blog/a-front-renverse/cinquante-minutes-a-l-elysee-responsables-fn-90621
http://www.bfmtv.com/politique/attentats-73percent-des-francais-estiment-que-hollande-est-a-la-hauteur-930980.html
http://www.lesechos.fr/politique-societe/politique/021482276521-suivez-en-direct-le-discours-de-hollande-devant-le-congres-1175627.php
http://www.lemonde.fr/attaques-a-paris/article/2015/11/16/hollande-la-france-intensifiera-ses-operations-en-syrie_4811147_4809495.html
http://www.lemonde.fr/international/article/2015/11/18/pour-poutine-la-france-devient-une-alliee-en-syrie_4812304_32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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