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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의  개혁은 역대 정부와는  결을 달리했다.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정권들의 목표는 ‘ 지휘구조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김대중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지휘구조 개편보다  시급한  부대구조 개편이다. 머리도 문제지만, 몸도 문제가 많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50 넘게 방치한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 군대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 방안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놀랍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중인  개혁의 방향성과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원래 김대중 정부  해야 했던  20여년이 흐른 지금 완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 방향을  마디로 정의하자면,

 

효율

 

이라고 말할  있을  같다. IMF라는 시대정신 때문일까? 다른 의미로 개혁을 바라볼 수도 있을 거다.  동안 방만하게 운용되던 군을 용납했던 집권세력. 그들에게 군은 ‘같은 식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군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군은 통제해야  대상도 아니고, 극복해야  대상도 아니다. 군은, 국가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자의 입장이다. 우리는  수호자가 훨씬  효율적으로  나라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섰을 때 가장 궁금했던   번째 군인사. 그러니까 수방사 사령관 자리에 누굴 앉힐까였다. 호남 출신 인사들 중에서 중장보직에 올라 있던 이가 있었을까? 결국 찾아낸  반쪽 군단이라 불리던 8군단의 이남신 중장이었다. 전북 출신의 이남신 중장은 이후 대장을 달았다. 또 하나, 김대중 정부 시절 가장 주목해서 바라봤던 인사는 초대 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 자리였다. 김대중 정부  개혁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자리가 바로 항공작전사령부 창설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육군의 입체 고속 기동전을 추진했는데,  핵심이 항공작전사령부 창설이었다. 초대 사령관 자리에 앉은 이가 바로 김판규 대장이다. 전형적인 야전군인이었던 김판규 대장은  당시 험난한 정치상황에서도 계속 승진할 수 있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거다. 결국 대장까지 승진했고, 육군 참모총장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 방향을 말할  들여다  인물  하나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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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의  개혁? 아니, 개편 과정은 파격  자체였다. 굵직굵직한 것들만   추려 보면,

 

육군의 1군과 3 야전사령부를 해체하고, 새롭게 지상작전사령부를 창설한다!” (이건 문재인 정부가 실행에 옮긴 일이다)

 

지상작전사령부 창설과 동시에 후방에 배치돼 있는 2개의 군단 사령부를 해체하고, 2 사령부의 기능을 보완해서 새롭게 후방작전사령부를 창설한다.”

 

기계화 보병사단  일부를 여단으로 재편성한다. 시대의 대세는 여단 규모로 편제를 줄이는 거다. 우리도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특전사와 항공사령부를 개편한다! 입체 고속 기동전을 위해서는 군살을 빼고, 기동력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개혁의 틀을 잡아야 한다!”

 

향후 5  대장 1, 중장 2명을 포함해서 장성 25, 영관장교 565명을 감축한다. 병력도 1 2천명 줄인다. 전반적인 다이어트다!”

 

계획만 봐도 심장이 요동친다. 김대중 정부는 여기서    나아가 통합군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군사령부의 기능이 필요할까? 싸우기 위해서는 군단 중심으로 지휘역량을 집중시키는  낫다. 일선부대의 지휘는 군단에 집중시켜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생각대로만 개혁이 이루어졌다면, 한국군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을 거다. 그러나  개혁 플랜은 제대로 실행도 해보지 못하고 백지화가 됐다.  내부의 반발? 보수층의 반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색깔론? 여러 추측이 나올  있겠지만, 반대는 전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바로 미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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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럴리(John H. Tilelli, Jr) 주한미군 사령관이다. 최근에도 전작권 환수에 관한 소신발언 때문에 언론 관계자들에게는  익숙하다(혹은 주요한 인터뷰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서비스라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론 그가 뼛속까지 야전군인이기에, 그것도 주특기가 기갑이라는  생각한다면 ...

 

(틸럴리의 이력을 보면 한마디로... ‘탱크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직을 받은  유럽의 기갑연대였고, 이후 대부분의 보직을 ‘기갑으로 받았다. 월남전에 잠깐 발을 담궜을  군수사령부에 있었던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유럽의 기갑부대에 있었다. 냉전의  가운데, 바르샤바 연합군의 탱크 웨이브를  몸으로 막아낼 궁리만 하면서 보냈고, 냉전이 끝난   본토에서 잠깐 근무한  바로 냉전의 마지막 현장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로 건너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이게 그의  생활 마지막 보직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틸럴리는 한반도 최고의 위기상황에서  행정부가 꺼내 최고의 카드였다. 1996년에 한반도에 부임한 그는 1999년에 한반도를 떠났다. 주한미군 사령관으로서는 역대 최장기간인 3 5개월을 한반도에 머물러 있었다. 이 시기 한반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당시 틸럴리가 어떤 ‘위협 직면했는지   있다. 틸럴리 부임 직전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핵 위기를 조성. 한반도는 전쟁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영변을 포함한 북핵시설에 대한 군사작전이 실행 직전까지 갔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전화설득과 뒤이은 카터  대통령의 방북으로 봉합 됐던   즈음이었다. 북핵과 미사일은 여전히 진행중인 위협이었고, 틸럴리는  엄중한 상황에서 한반도에 부임했다. 부임 직후에도 일은 계속 터졌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북한의 도발... 잠수함 침투와 JSA에서의 충돌이 이어졌다.

 

 당시 틸럴리는 상당히 노련하게  모든 위기를 관리했다.

 

개인적으로 틸럴리가 한반도에 끼친 영향  가장  사안을 하나 꼽으라면, 작계 5015라고 말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계 5015 안에 포함돼 있는 작계 5029라고   있다. 작계 5029 간단히 말하자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처방안이라   있다. 내용을 보면, 정권이 교체되거나, 내전이 일어나거나, 주민들의 대량탈북이 있거나, 대량살상무기가 외국에 유출되거나 불안정한 권력승계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인데,  작전계획 5029 틸럴리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비밀리에 준비한 'CONPLAN 5029-99'이다. 아직 작전계획으론 완성되지 못한, 개념계획이었던 거다.  개념계획 5029 작전계획의 모태가 됐고, 결국 작전계획 5015 안에 포함된 거다.

 

틸럴리는 북한이 붕괴될지도 모른단... 아니, 붕괴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던 시절에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있었다. 그렇기에 틸럴리는 한반도의 위기관리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붕괴를 대비했던 거였다. 가장 저돌적일  같이 보였지만, 3 5개월  틸럴리는 한반도 위기상황을 대처했고, 이후 한반도 정책의 기본이 되는 작전계획을 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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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럴리는 김대중 정부의  개혁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것도 대놓고 말이다.

 

지상작전사령부가 8~9 군단을 한꺼번에 통제하기는 부담스럽다. 현행 1, 3 야전사령부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에 전면으로 반대한 거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당시에도 분분했다.

 

만약 지상작전사령부가 만들어지면, 한미연합사의 위상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치적 차원에서 이를 반대한 것일 수도 있다.”

 

  직접적인 주장도 나왔다.

 

결국은 밥그릇 싸움이다. 1, 3군이 통합되면 벌써 대장 자리 하나 날아가는  아닌가? 대장 자리 하나가 날아가면  밑에 있던 보직들도 날아간다. 군단 2 해체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직을 지키기 위해  고위층이 힘을  거다. 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이 대놓고 반대를 하는 ... 과연   사람의 생각일까?”

 

어떤  옳은 걸까?  가지 확실한  명목상의 이유는 당시 국방부 장관인 조성태와 한미연합사령관의 반대의견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제법 그럴싸한데,

 

대통령님 1, 3군을 해체하는  좋죠. 근데, 야전군을 해체해서 지상작전사령부를 만들려면 작계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뜯어고치면 되지 않습니까?”

 

이게 저희끼리 작전하면 뜯어고쳐도 되. 근데, 우리나라의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군이 가지고 있잖아요. 작계 5027 까놓고 말하면 미군이 있어야 돌아가는 건데... 우리 사정 때문에 작계를 고치는 ...”

 

“...그럼 부대 해체하는 건요? 부대를 해체하는  아예 병력을 없애자는  아니라. 사령부 없애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자는 건데...”

 

이번에 나온 국방개혁안의 핵심은 군단 중심으로 작전을 펼치자는 건데...  핵심이 군단 단위의 전술 지휘통제체제(C4I) 구축하는  전제인 건데, 그걸 아직 구축하지 못해서...”

 

결국 못한다는 소리네요?”

 

“... 그렇죠?”

 

군단 단위의 전술 지휘통제체제(C4I) 구축에 관해서는 틸럴리도 들고 나온 문제였다.

 

지금 한국군 수준의 통신 시스템으로는 1 사령부가 전시에 8~9개의 군단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작전을 수행하기 어렵다.”

 

주한미군 사령관의 이례적인 반응에 한국군은 수긍을   밖에 없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당시 국방장관인 천용택과 합참의장인 김진호에게 공개서한을 보내서 반대의사를 표했으니... 이건 대놓고,

 

네들  개혁이란 말 하지 .”

 

라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야심차게 준비 김대중 정부의  개혁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나 된다.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지휘구조가 아니라 부대 개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하나만으로도 유의미한 시도였건만,  끝은 너무도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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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교훈을 하나 얻을  있었다는  불행  다행이라고   있는데,

 

한국군은 온전히 한국의 의지대로 움직일  있는 존재가 아니다. 주한미군과 미국이란 외부변수가 있는  한국군은 독립적으로 움직일  없는 존재다.”

 

너무도 당연했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할  있었던 순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