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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 서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격이 꽤 괄괄했던(이라고 쓰고 지랄맞았던이라고 읽는다) 그는 영화 <기생충>의 젊은 부자 이선균처럼 ‘선을 넘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온양온천에 갔다가 인근 고을 신창을 지나는데 아전 하나와 마주친다. 그런데 이 아전이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자 서달은 화딱지가 머리 끝까지 났다. “저 새끼 잡아 오너라.”

 

서달의 하인들이 달려갔으나 길이 엇갈렸는지 문제의 아전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또 다른 아전이 나타나자 하인들은 그 아전의 멱살을 잡았다. “이러저러허게 생긴 아전 집이 어디냐?” 웬 왈패들이 남의 고을 아전 집을 찾는지 이유도 모르고 아전은 닦달을 당했다. 그런데 이 모양을 본 표운평이라는 아전이 소매를 걷어부쳤다. “당신들 왜 남의 고을에 와서 행패요? 뭐하는 사람들이요?” 

 

서달은 또 한 번 ‘선을 넘어’ 자신을 건드리는 아전 나부랭이가 있다는 것에 격노했다. “저놈을 매우 쳐라.” 표운평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표운평은 그예 맞아 죽고 말았다. 고을 아전이 맞아죽었으니 범상한 일은 아니었다. 

 

표운평의 집안은 충청감사에게 직소했고 조사 결과 서달과 그 하인들이 무고한 백성을 잡은 정황이 명백했다. 서달은 살인죄로 체포돼 사형 아니면 그에 준하는 처벌을 받으면 됐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명백하네. 서달이라는 놈의 죄상이 더 이상 명백할 수가 없어. 장계 올리고 처벌하면 되는 거 아니오.”

 

“글쎄.그게 좀. ” 

 

“어허 법을 집행하신다는 분이 어찌 이리 무를 수가 있소. 어서 서달이라는 놈에게 하늘을 대신하여 벌을 내려야 할 것이오오.”

 

“어허 글쎄 그게 좀.....” 

 

“대관절 무슨 말씀이오.”

 

“서달이라는 놈. 그 분의 사위요.”

 

그러자 모든 사람의 어조와 입장이 바뀐다. “어허 어떻게 방면할 길이 없겠소이까.” 

 

형조의 관원들은 서달의 아버지가 형조판서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그 아버지가 올 때까지 보고서를 깔고 앉아 뭉갰고 조선 왕조 제일의 청백리로 이름 높은 맹사성까지 움직인다. 맹사성의 고향 동네였다.

 

“거기 지 앞마당이유. 지가 알아서 혀 볼께유. 어떡혀유. 그 분 사윈디”

 

맹사성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하는 표운평의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표운평의 동생을 매수했고, 서달을 면책시키고 그 종 하나가 과잉 충성하다가 표운평을 때려죽인 것으로 말을 맞췄다. 간혹 이게 말이 되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형조 관원도 있었지만 한 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어쩌라고. 그분 사윈데.” 

 

그래서 허위 보고서가 착착 만들어졌고 임금에게까지 보고됐는데 세종은 이미 소문을 듣고 있었다. 이거 보고서가 왜 이래. 서달이 냄새가 나는데? 세종은 의금부를 호출한다.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도록.”

 

내막은 곧 밝혀졌다. 세종은 노기충천하여 맹사성과 서달의 장인이었던 ‘그분’을 파직하고 관련자들을 엄히 처벌하라 명령하고 서달 역시 곤장을 때리고 3천리 밖으로 유배하라 했지만 그 명령은 며칠도 가지 않는다. 세종도 자기 팔다리같은 신하들을 내칠 수 없었던 것이다. 서달의 장인어른의 이름은 바로 황희. 황희 정승 그분이다.

 

조선의 명재상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황희는 ‘수신제가’에는 그리 성공한 인물이 못되었다. 본인도 조금 흠결이 있었지만 자식들은 나쁜 쪽으로 청출어람을 구현한 인물들이었다. 과거 급제할 실력들이 못돼 죄다 음서, 즉 아버지 빽으로 벼슬길에 올랐던 건 얘깃거리도 못됐다. 음서를 통해 내리는 관직도 심사가 있었을 것인데, 그 회의 분위기는 대충 짐작이 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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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구MBC

 

“이 사람은 전반적으로 너무 떨어지는데 사람이?”

 

“어허 황희 대감 아드님이오.” 

 

“아니 이런 인재가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이오.”

 

정실의 아들과 사위 뿐 아니었다. 황희의 서자로 황중생이라는 자가 있었다. 역시 아버지 빽으로 동궁전에 들어와 일했는데 그가 입궐한 지 얼마 안돼 궁궐의 물건이 없어지는 일이 잦았다. 내수사와 의금부가 동시에 눈을 부릅떴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본디 황중생은 용의 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그분’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밝혀진 절도범의 정체는 황중생이었다. 그런데 황중생에서 일이 끝나지 않았다. 궁중에서 빼낸 물건을 팔아치운 장물아비는 황희의 아들 황보신이었던 게 들통났던 것이다. “이건 안되겠다. 아무리 황희 아들이라고 해도.....”

 

원래는 더 엄히 처벌받았을 것이나 또 황희 정승 아들이었다. 황보신은 갖고 있던 땅을 벌금으로 내놓는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아들 황치신의 이름이 등장한다. 벌금으로 내야 할 황보신의 기름진 땅은 자신의 이름으로 돌려 두고 자기가 가진 땅 중에 척박하고 농사 안되는 땅을 바꿔치기하여 내놓은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대충 넘어갔다.

 

또 하나의 신자 돌림 황수신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출세하여 정승에 이르렀고 꽤 유능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욕심이 많았다. 그가 죽은 뒤 사관은 이렇게 말한다. “황수신이 죽었다....크게 정사(政事)를 돌본 것이 없고 뇌물을 받아먹어 몇 차례 탄핵을 받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성이 황이니, 마음 또한 황(黃)하다’(姓黃心亦黃)이라 했다(옛 기록에 실제 등장하는표현임을 밝혀 둡니다.)

 

야사에 따르면 그는 성균관을 방문하여 유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유생들의 노고를 위로한 적이 있다.

 

“내가 아는 어떤 형제들은 하나 같이 공부를 못했다네. 사서삼경도 제대로 읽지 않았고, 놀기도 좋아했다네. 하지만 다들 관직에 들어 임금께 봉사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있네. 지금 학문 떨어진다고 실망들 하지 말게나. 어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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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신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공부에 시달리는 성균관 유생들을 다독였고 학생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희망을 가지자고 수군대는 가운데 한 유생이 궁금하여 질문을 던졌다. “그 형제들이 어느 집 자제들이온지” 그러자 황치신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내 형제들일세.”

 

그러자 유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침을 뱉으며 “공이 황씨인 것이 사서삼경 백번 읽은 것보다 낫고 공이 신(身)자 돌림 형제인 것이 두보와 이백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능력이옵니다.” 외치니 황치신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한 명이 떨쳐 일어나 “매제 서달은 죄가 있으나 누구의 사위라 죄를 면했고 형제들은 공의 형제라서 죄가 가벼웠으니 이 어찌 대단한 능력이 아니옵니까. 소인도 그냥 황씨가 되고 싶습니다.” 하니 황치신은 얼굴이 벌개져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한다.

 

그 뒤통수에 대고 “성이 황이니 마음도 황하다.”고 부르짖던 유생 중 하나가 지은 시가 야사에 전한다. 작자는 미상이다.

(언제나 그렇듯 사진은 큰 관련이 없다)

 

吐匿點須黃吝大 토익점수황인대 

숨겨진 죄 드러내고 점검하니 당연히 황씨들 욕심 어마어마하다

 

閑鞫通身甲分偕 한국통신갑분해 

죄인 추궁 가로막아 신(身)자 돌림끼리 통하니 갑의 신분 굳세네

 

咽語憤導奚譜消 열어분도해보소 

목메어 말하고 분하여 충고하되 어찌 족보가 사라지랴

 

考史覽隱乃自啼 고사람은내자제 

역사를 살피고 숨은 것 밝혀본들 이에 마냥 울 따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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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자유한국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