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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소: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 공연일자: 2019년 6월 9일 15시

 

전부터 한 번 보고 싶었던 가수의 콘서트 중 하나가 나훈아 콘서트였다. 이는 올초 포항에서 이미자가 공연할 때 가야 할지 고민했던 일이 떠오른 점도 크다. 이미자와 나훈아. 두 사람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가수로, 나이와 상관없이 전성기 시절 역량을 유지 중이기도 하다. 갈지 말지 고민하다 이미자 콘서트는 포기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자가 은퇴 선언을 했다(데뷔 60주년 인터뷰에서 "이젠 너무 힘들어서 노래 못하겠다"고 했지만, 타이밍으로는 탈세하다 걸리는 바람에 은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기회가 된다면 공연은 무조건 보기로 했다. 공식적으로는 어버이날 선물을 미리 드린다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살면서 나훈아 공연을 한 번쯤 보긴 봐야겠다는 내 욕망이 있었다. 그도 올 해 70대더라.

 

나훈아 콘서트는 서울, 부산, 대구, 청주, 울산 다섯 개 도시에서 개최된다. 콘서트 자체를 많이 못 가 본 내 탓도 있지만, 나훈아 콘서트는 예매가 특히 힘들었다. 오랜 기간 아이돌 콘서트 예매에 단련된 자들이 효도 전쟁을 벌이기 때문일까. 우리 훈아쓰 정말... 큰 무대만 고집하지 말고 대구 프린스 호텔 연회장에서 공연하신 남진 선생님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장소도 가리지 않고 노래 불러주심 좀 좋나. 스타디움, 오디토리움 등등 각종 '움' 자 들어가는 곳 아니면 성에 안 차시는 듯 하고, 그마저도 경쟁률이... 아아 세상에 그 괴로움이란. 평소에 예매 연습이라도 좀 해 둘걸. 남들이 그렇게 할 때 나는 고작 <천지를 먹다 2>를 하면서 관우에게 고기 뜯게 해 준다고 조이스틱이나 연타하고 있었지. 실전은 조이스틱이 아니라 마우스인데 말이다.

 

티켓 판매 당일, 나는 좌석들이 핑거 스냅 당한 것 마냥 눈 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분명 눈 앞에 빈 좌석이 보이는데 선택할 수가 없었다. 자리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만 보며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다. 티켓팅은 실패였다. 밤 12시마다 풀리는 취소 티켓를 잡으려고 대구와 부산 지역 예매 페이지에서 잠복했고, 뒤늦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나훈아 콘서트는 좌석별 위치와 가격을 고려하는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다. 좌석 예매 페이지에서 빈 자리 있다, 그러면 그냥 빨리 그거 차지하고 만족해야 한다. 티켓 가격 자체가 비쌌기 때문에 그게 먼저 생각나야 하는데 나훈아 콘서트는 성취감부터 먼저 느껴진 셈이다. 물론 후폭풍은 빨리 왔다. 백수인 나는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가. 물론 문화는 쓰는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살고는 있다. 아까워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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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올림픽 공원 콘서트 피날레 

 

나훈아는 언제부턴가 라이브 콘서트의 스케일을 부각하는 사진 때문 젊은 층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부모를 동반해 <드림 어게인> 콘서트를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도 한몫했지만, 그 글을 포함해서 젊은 층에게 나훈아는 바지 풀고 단상 위에 올라선 사진 등의 캠피하고 키치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 웃음의 소재가 되어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는 나훈아가 자초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요컨대 2005년에 노들섬에서 공연한 <나훈아의 아리수>로 설명한다면, 고구려 장군의 용맹함을 계승한다는, 말만 들어도 웅장한 도입부를 보여 주었다. 그 무대에서 엑스트라들은 조선시대 포졸 복장을 입고 있었다. 이건 바보 아니면 천재적인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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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노들섬 콘서트 오프닝

고구려와 조선의 아찔(하게 망)한 콜라보레이션

 

나는 나훈아의 개그 포인트보다 특유의 카리스마에 압도된 쪽이다. 좋아하는 노래도 몇 곡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이 멋있다고 느껴졌다. 김용철 변호사 책 <삼성을 생각한다> 에 나왔던 일화부터 그렇다. 삼성 측에서 이건희 집안 파티를 위해 여러번 거액을 제시했음에도, 스스로 대중 예술가라 생각하기 때문에 노래를 듣고 싶다면 다른 대중들처럼 표를 사서 직접 공연장에 오라며 거절한 일화. 다른 예시로는 당연히 "5분만 보여드리면 믿겠습니까?"를 거론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훈아가 한국에서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들, 요컨대 삼성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거절하거나 특유의 카리스마로 저질 언론들을 제압해 버리는 모습에 뻑 갔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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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계기는 나훈아가 이혼 소송 건으로 법원 출두했을 때였다. 그 사생활까지 굳이 캐겠다며 달려드는 기레기들을 나훈아는 끝까지 여유롭게 대했다. 권력 앞에서 버텨는 배짱에다 필요하다면 언론을 퍼포먼스의 도구로 활용하는 여유를 가졌다. 정글같은 연예계에서 몇십 년 버틴 셀레브리티답게 동작 하나하나가 내공이 담긴 고수의 초식처럼 보이는 것이다.

 

고수를 알현하러 가는 길은 불편했다. 공연장에서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해서 모든 관객들의 스마트폰에 촬영 금지 스티커를 붙여야 했고, 출입구 하나로 모든 관객을 들이려한 탓에 진입이 어려웠다. 물론 본 공연이 시작되니 이는 좋은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 조건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공지했는데도, 공연 시작 전과 끝난 후에도 간간히 "몇층 몇열 휴대폰 사진 삭제했습니다"라는 진행 요원들의 무전기 소리가 들려왔다. 정녕 인간은 통제당해야 하는가. 나는 1984적 고민에 잠시 사로잡혔다.

 

온라인에는 이미 나훈아 콘서트 관람에 대한 수많은 명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써 봐야 반복이 될 것 같다. 나훈아는 은둔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스케일로 유명했고, 복귀 후에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혀 노쇠하지 않아 관객들을 경악시켰다. 다만 작년 <드림 어게인> 콘서트는 계속 회자될 수 밖에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나훈아의 극적인 복귀 시점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공연 때도 시작과 함께 열 곡 연이어 부르는 동안 일부러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극적인 방식을 취했으니 말이다. 11년만의 복귀, 그리고 당사자도 노래에 굶주렸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할 말이나 보여줄 것들이 차고 넘쳤을 게다. 다음 콘서트인 <청춘 어게인>이 상대적으로 덜 극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나훈아가 바로 얼굴을 보여준 후, 초장부터 도포 자락 화려하게 휘날리며 '땡벌', '잡초' 등으로 기선 제압을 했다. 유명한 곡들을 생각보다 초반에 부르면서 스스로 이만한 히트곡이 몇십 개 더 있음을 드러내는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콘서트 자체는 다행히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애란의 곡인 '백세인생'을 부를 때 꽤 충격적인 무대 연출을 선보여 놀랐다. 콘서트의 주된 연령층을 고려하면 금기가 아닐까 싶었던 저승사자 캐릭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나오는 가사를 크게 불러서 저승 갈 위기에 처한 나훈아를 이승으로 데리고 오는 관객 참여형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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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생' 무대는 보는 동안 거의 이런 상황에서 느꼈을 수준의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청춘 어게인> 콘서트는 이런 부분에서 일순간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음악계 선배인 이미자의 은퇴를 언급하며 다음은 자기 차례라면서 구슬프게 '동백 아가씨'를 부를 때도 그랬다. 이전까지 나훈아는 하이랜더처럼 보였는데, 그가 공연 도중 상당히 인상적인 말을 했다. 매번 몸에서 모든 힘을 짜내어 노래 부르는 중이니, 힘이 빠지는 날 가수 생활도 끝이라는 것이다. 어떤 아티스트는 몸에서 힘이 빠지거나 목소리가 바뀌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스타일이 좀 바뀌는 정도로 여기고 맞춰서 살아가는 경우다. 나훈아는 끝까지 젊은 시절의 느낌을 유지하려는 쪽이었다. 그 날 멘트는 이제 힘이 빠질 수도 있다는 그의 암묵적 인정이자, 자기 생명을 깎으면서 헌신하리라는 선언처럼 보였다.

 

신기한 일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자기 생명 깎아가며 일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유독 나훈아에게만 이 정도의 명확한 감흥을 느낀다는 것이. 나훈아가 돈 받는 만큼 값을 해서일까. 무대 장치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비롯해 관객들을 훑는 그의 시선 처리, 어떻게든 제한된 시간 안에 한 곡이라도 더 부르겠다는 집념. 공연 전체가 쇼맨쉽 그 자체로 채워져 있었다. 20여 분간 이어지는 앵콜 공연 동안 나훈아는 쉴새없이 무대를 활보하고, 굳이 뒤로 사라졌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원래 앵콜이 그런 방식이지만 그의 나이와 콘서트 진행 스타일을 생각하면 에너지를 아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공연 끝나고 1시간 반 후에 똑같은 수준으로 한 번 더 해야 하니까. 그런데 나훈아는 끝까지 지치지 않고 초반부의 에너지를 유지했다. 그의 능글능글한 제스쳐나 변함없는 곡 소화 방식, 아무리 봐도 몸매 자랑할 나이가 아닌데(물론 나이에 비하면 좋다) 찢어진 청바지, 망사 옷으로 육체적 매력을 부각하려 드는 태도가 다시 한 번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게 숭고한 느낌마저 주었다.

 

영원히 저 멀리 가버린 청춘을 돌려놓고, 관객들을 젊었을 시절의 고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나훈아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관객의 니즈를 몇십 년간 숙명처럼 충족시켜 왔다. 마지막에 절을 하며 관객석을 향해 아련한 눈빛을 보내는 모습이 스크린에 꽉 채워졌을 때, 공연 도중 그가 농담삼아 했던 말을 떠올렸다. <드림 어게인> 때도 했던 말이었다. '우리 나이' 때는 내년은 커녕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쓰고 싶은 거 다 쓴 다음에 죽어야 한다고. 단, 내년 나훈아 쇼에 올 돈은 남겨두라고 말이다. 그가 있어 나이 든 관객들이 내년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덕분에 요즘 집에는 한창 생기가 돌고 있다. 내년이 있을테니까. 나훈아에게 경의를 표한다. 

 

 

WWE 레슬러를 보는 듯한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 라이브 영상으로 이 글을 끝내겠다.

 

 

 

 

p.s.

 

1) 콘서트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사랑'을 부를 때 해당 곡을 주제가로 썼던 작품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클립이 나오던데(나훈아가 정윤희 배우와 주연을 맡았다), 나훈아가 개봉 등급을 가지고 개그를 하려고 영상에 제목이 뜰 때 밑에다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문구를 삽입해 놓았다. 그런데 벡스코 오디토리움의 무대 중앙의 스크린만 가로로 긴 이 화면을 소화할 수 있고, 무대 양 옆에 놓인 스크린은 화면이 잘려서 '관람불가'라는 글자만 보인다. 뭐, 척하면 척이니까 문구가 잘려도 다 이해할 수 있는데 관객을 위해 스크린 크기에 맞춰 노래 가사 배치도 하는 등 콘서트가 상당히 꼼꼼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일종의 옥의 티로서 얘기하는 것이다.

 

2) 이제 상반기 남은 공연은 6월 29일 청주, 7월 6일 울산이다. 보고 나니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모아뒀다가 기회 되면 나훈아 콘서트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