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우연이 여러 개 겹치면 운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 하필 일요일 아침(주말에도 7시 반이면 일어나는 놀라운 아이)

2. 눈 뜨자마자 본 별자리운세(산X도인이 용함)에서 '사람 많은 데에 나가야 재물이 꼬인다'고 함(통장이 늘 앵꼬이기 때문에 이런 정보에 민감)

3. 행운의 장소로 '종교단체'를 점지

 

여기까지만 해도 운명일 텐데, 포털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교회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홈피.jpg

 

'사랑제일교회'

 

산수X인 별자리운세에서 종교단체에 가라고 했는데 가장 먼저 본 게 교회의 이름이라니. 창조론에 입각해 공룡을 백악기의 동물이 아닌 아담의 애완동물이라 여겼던 어린 시절(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에만 교회에 가던 나이롱 신자였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와 함께 아무래도 이건 운명이고, 나는 오늘을 계기로 종교인으로 대성해 돈을 많이 벌 것 같다는 예감이(아님) 드는 것이었다. 

 

macho_tatto_1.jpg

 

안타깝게도 나는 양팔에 문신이 네 개 쯤 있어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노래만 부르고 다니면 남의 지갑을 탐할 수 있는 애였다. 하나님의 얌전한 양이 되러 가는 길에 거친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릴 순 없었다(약간 일본 양아치 같음). 옷이라도 얌전하게 가자는 마음에 문신을 가리기 위한 긴팔과 발목까지 오는 치마를 입었더니 글쎄 3년은 다닌 신도 같았다. 이러다 빤쓰 벗으라고 하는 건 아닐까 할 정도로 세상 순종적인 신도 같았다. (소지한 속옷 중 가장 비싼 캘X클라인 빤쓰까지 입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그 만족감에 사랑제일교회의 이름을 포털뉴스 사회면에서 봤다는 걸 가벼이 넘기는 실수를 저지름)

 

금괴신이 내려와 머리 위에 하얀 관을 씌워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엔 훌륭한 목자가 된 뒤 나만의 주지육림을 만들어 정해인과 엑소 첸을 얼굴신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교회로 가는 길

 

예배시간.jpg

 

일요일 아침 예배는 7시/9시/11시에 있다. 아무리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라고 해도(눈 뜬다와 일어난다는 동의어가 아니다) 주말 7시 예배는 너무하니 2, 3부 예배를 듣기로 했다. 

 

표지판.jpg

 

사랑제일교회는 6호선 돌곶이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린다. 혹시 더 적게 걸린다면 건강하다는 증거이니 자랑으로 삼으면 되겠고, 더 오래 걸린다면 운동을 좀 해야겠다 반성하면 되겠다. 다시 말해 얼마가 걸리든 나는 잘못이 없단 얘기다. 자본주의에서 신의같은 건 찾지 않기로 한다.

 

0지도.jpg

 

약간의 오르막길과 멍멍이 똥이라는 난관을 헤치면 교회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동네에 하얀 교회 건물만 우뚝 서있어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0교회.jpg

 

사실 주차장 입구로 들어갔지만 새 나라의 어른은 굴하지 않는다. 당당(한 척)하면 된다.

 

1층.jpg

1층 도면(미술 8등급이었음)

 

1층은 이런 느낌이다. 예배당은 2층에 있고, 1층 계단 앞에서 주보선생님들이 주보를 나눠준다.

 

주보선생님.jpg

 

서너 분 계셨는데 다 같이 빨간 자켓에 어깨띠를 맞춰입은 걸 보고 놀랐다. 19 S/S 패션 키워드 중 하나인 루즈 핏 자켓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 난 교회답게 트렌드에 민감했다.

 

2층-노신도.jpg

2층 도면(?)

 

계단을 올라가면 예배당이 있다. 이전 예배가 안 끝나면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어야 하는 게 좀 짜증나긴 하지만,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고 한편에는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의자 갯수가 많지 않고 정작 엘레베이터 하나 없어서 노소 모두 계단을 걸어올라와야 한다는 단점은 있다. 힘들게 한 다음 여기 앉아서 쉬라고 하는 게 조삼모사를 현실로 표현한 것 같았다.

 

허금.png

 

예배당 문 앞에는 책상과 헌금함이 있다. 주보를 줄 때 헌금봉투를 같이 주는데, 주보 받는 걸 잊었거나 다른 사유로 헌금을 내고 싶다면 여기서 봉투를 마련해도 된다. 다만 문제는 내가 신용카드로 연명하는 애라 습관처럼 카드 한 장 덜렁 들고 왔단 것이다. 

 

교회소식1.jpg

 

담임목사님과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를 위해 헌금을 해야 했으나 정작 돈이 없었다. 다급하게 1층으로 내려가 주보 나눠주는 분들에게 ATM의 위치를 물었다. 3층에 있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못 찾았다. 안 찾은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겠지만 그냥 튀는 행동하기가 싫었다는 아름다운 변명이 있다. 

 

방송.jpg

이거 듣는 사람도 헌금 안 하는 거 아니냐구

 

조용히 2층으로 내려가 예배 기다리는 무리에 섞여들었다.

 

대기중.jpg

 

기다리다 보면 이전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한 번 쭉 물갈이가 된다. 예배당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치는 것 같았지만 이는 다 하나님이 교회에 현금을 안 들고 온 죄인을 시험에 들게 하시는 것이니 받아들이기로 한다.

 

2층-신도.jpg

사람이 이렇게 많을지라도...

 

 

예배가 시작되었다

 

자리.jpg

 

중간쯤 되는 줄의 벽 옆, 그러니까 가장 구석에 앉았다(이게 패인이었음을).

 

순서.jpg

 

설교 이전 순서까진 여느 교회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요즘은 성경책도 필요 없다. 대문짝만 한 스크린에 찬송가도, 성경도 다 띄워준다. 그걸 따라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설교시간이다.

 

숨바꼭질.jpg

사진에만 안 나왔을 뿐이지 있음. 암튼 있음

 

담임목사이자 한기총의 대표인 전광훈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주제는 '성령의 폭발'로, 이전부터 몇 주에 걸쳐 성령의 폭발에 대해 말씀하시었다.

 

원래는 11시 예배가 주요예배라 실시간 방송되고 영어통역사도 붙는데 이 날만은 크게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2부, 3부 가리지 않고 한 번에 정리하겠다 이거다. 

 

- 성령의 중요성

 

내용을 짧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에 나오는 비극적인 단어에 고아, 과부, 포로가 있는데 성령을 모르면 이것과 다름 없다. 영적인 고아, 과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선 성령 받는 길 밖에 없다.

 

'성령 받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얼마나 중요하냐면 예배 내내 성령에 대해 강조 또 강조하시었다.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는 사람을 성경에서 '영적인 고아'라고 해요. 해결책은 성령 받으면 돼."

 

영적인 과부와 포로에서 벗어나는 길도 성령이다.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비록 주사파에 안 걸린다 할 지라도 그게 다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 안 받으면 성경 읽어도 성령이 잘 안 보여요."

 

목사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다. 다른 말이 입에서 나온다면 믿음이 부족한 자신을 탓해야 함이다. 

 

나아가 예수의 제자들이 3년 반하고도 40일이 걸린 것을 3-4개월 교회 다니면 끝낼 수 있다고 하시었다. 빨리빨리 민족을 위한 속성 코스까지 준비해주는 섬세함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답다 생각했다. 

 

푸처.png

 

"(사람들이 성령 받기를) 중간에 그만둬버려요. 그러니까 목사님 같은 현상이 아닌 거야. 나 같이 폭발하는 현상이 아닌 거야. 여러분들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아무튼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나를 잘 만난 거야. 우리는 다 성령세례를 받으니까."

 

목사님 만난 덕 받아 성령도 받을 수 있다. 

 

"사랑제일교회를 다닌 걸 감사히 생각해요. 감사해요? 목사님 잘 만난 거 감사해? 진짜요? 감사한 사람 아멘 해봐. 두 손 들고 아멘."

 

감사한 사람, 무조건 아멘이다. 

 

 

목사님은 건국정신과 주사파에 감염된 놈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주옥같은 말씀이 너무 많아서 보기 쉽게 정리하기로 한다.

 

뭉뚱그려서 대충 넘어가려는 게 아니다. 이게 다 마귀 때문이다. 마귀가 두 시간 정도의 설교가 지겨웠는지 내 오줌보를 시험에 들게했던 것이다. 구석 끝에 앉아 나가지도 못하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슬쩍슬쩍 화장실로 향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야만 했다. 이 나이에 '조금씩 싸서 말리기'를 현실화할 뻔했다는 것에 순간 말 좀 그만했음 좋겠다고 불충한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이게 다 마귀 때문이다. 

 

 

- 주사파에 걸린 놈들

 

목사님은 주사파에 제대로 감염된 언론과 면면들에 대해서 지탄하시었다.

 

"내 설교를 통하여 MBC 정체가 자꾸 드러나니까 저렇게 발광을 떠는 거야. MBC 많은 기자들이 주사파 출신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주사파가 뭡니까? 김일성 수령님을 자기들의 교주로 섬기는 사람인 거야."

 

"도올하고 박원순, 주진우, 김용민 모여서 나를 죽이려고 해. 한기총을 해체하는 신청을 문체부에다가 낸 거에요. 정신 나갔어요. 그렇게 할 짓이 없습니까?"

 

"도올은 극단적인 좌파입니다. 이승만에 대해서 아주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어디라고 이승만한테 지가 열등의식을 느낍니까? 본인도 그 하버드대에서 박사 받았다고 이승만하고 맞먹으려고 들면 되겠어요?"

 

기독교회 원로 목사들이 기자회견에서 "주요 교단의 탈퇴로 한기총의 대표성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한기총은 소수 집단으로 남을 것"(링크)이라고 했지만, 소수와 해체는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이다. 딴지일보도 직원 한 명이던 시절에도 존속은 했다.

 

20190618114235808830_6_710_473.jpg

 

"대한민국 이 주사파에 쓰레기들을 다 청소하리라. 국민들을 사기치는 주사파들을 완전히 청소하리라."

 

주사파 하는 놈들을 어여삐 여기시는 그 마음씀 하나 배울 수 있으니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 이승만의 건국정신

 

뭔 놈의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목사님은 건국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다. 종교인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고 되묻고 싶겠지만 참아야 한다. 다 사탄의 술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끝없이 이승만의 건국정신을 가르치는" 의도에서 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나랍니다. 한미동맹이 세웠다고."

 

"이승만 대통령 베드로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세웠는가 말하면 사람들이 (놀라) 뒤집어져요. 너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학교에서 안 가르쳐요. 대한민국 사람이 나라가 왜 생겼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까지도 (대한민국은) 1919년도 상해독립운동 할 때 세운 나라래. 정신 나간 소리하고 있네."

 

자본만능주의자인 나였다면 '그러니까 건국대통령이승만 영화제작을 위해 많은 기도와 후원을 해라'라고 덧붙였겠지만 목사님은 마귀에 농락 당하는 분이 아니심이다. 역시 세계의 기독청을 짓는데 5조가 들어가는 데도 여러분의 돈 하나도 필요없고, "5조를 100% 빌려서 해도 5년이면 다 갚을 수 있"는 영적 힘의 소유자답다.

 

"대한민국,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리퍼블릭'이라는 것은 공화정. 국민의 대표를 뽑고 그 대표가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거예요. 한 독재자, 한 왕이 끌어가는 게 아니고. 문재인 같은 저런 불량품이 끌어가는 게 아니고."

 

이런 발언을 했다고 정치를 하려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성령 대신 악마가 임한 자신을 탓해야 한다.

 

"이참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저는 절대로 직접적인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 그럴 마음도 없고. 목사가 됐으면 그걸로 다 하지, 무슨 정치. 절대로 오해하지 마세요."

 

“교회,_정치적_목소리_낼_수_있어야”.mp4_000046146.jpg

 

'직접적인' 정치는 안 하신다고 못 박으셨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국민들을 거짓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것입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을 보면 안 된다. 사소한 것은 잊고 성령의 바람에 몸을 맡기라는 깊은 뜻을 몸에 새기기로 한다. 

 

 

큰일하시느라 신자들 방광 생각은 못하시고 줄창 말씀하시다보니 2부(9시) 예배는 11시 좀 넘어서 끝났고, 11시에 시작됐어야 하는 3부 예배는 11시 30분 쯤 시작되어 오후 2시가 좀 못 되어 끝났다.

 

도합 다섯 시간의 성령 수업을 듣다보면 성령이 급속충전된다. 어느 정도냐면 아침 8시 30분부터 한 번도 비우지 못한 방광에 앞뒤 보지 않고 교회를 떠나 지하철 화장실로 가는 중에도 욕을 한 번 안 했다. 문장에 거친 말을 넣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못하는 내가 욕 한마디 안 했던 건 성령이 임하시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돌곶이역 화장실 앞에 쓰여진 '공사중'이란 글자를 보고 'ㅆ'까진 함).

 

훌륭한 목자가 되어 '남자성도는 휴X 보스 빤쓰만 입어야 한다'라고 외칠 날을 꿈꾸며 갔던 교회에서 어느새 말씀에 감화되었다. 목사님의 훌륭한 언변에 감동도 했다.

 

어딘가 경외심이 드는 가운데, 한국인은 삼세번이라고 이번에 두 번의 예배(2, 3부 예배)를 들었으니 다음에 딱 한 번만 더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상태로 보아선 사랑제일교회에 취업해 가이드북을 만드는 직업을 하는 게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암튼 화장실은 잘 갔다. 

 

 

(다음 편에 계속..)

 

 



 

Profile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