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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루저 좋아하네

2009-11-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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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목요일



파토 



 











 



1999,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 연수를 하고 있던 시절이다. 어느 날 수업을 받고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데 학원 앞 길거리가 웅성웅성했다. 영화를 촬영 중이란다.



 



밴쿠버는 미국과 가깝고 분위기도 유사한데 반해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땜에 그때나 지금이나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X-File 과 배틀스타 칼락티카가 여기서 많이 촬영되었는데 한번씩 보다 보면 내가 지나다니던 곳들이 나와 웃음짓곤 한다.



 



어쨌거나, 무슨 영화인가 하고 기웃거리다 보니 요 앞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보였다. 누군가? 하던 순간, 깨달았다. 바로 실베스타 스탤론이었다. 록키와 람보 시리즈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대스타(최소한 그때까지는 그랬다), 저 유명한 배우가 내 코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거다.



 



신기해서 쳐다보는데, 실베스타가 연기를 끝내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아 물론 내게 온 건 아니고 내 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잠시 쉬려는 거다. 그런데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그를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키가 나보다 작았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인가. 헤비급 챔피언 록키 발보아, 인간병기 람보, 저지 드레드이 무시무시한 사람이 어케 된거냐? 당연히 브록 레스너 같은 거인일 것으로 여겼던 이 양반이, 울나라 평균보다 조금 큰 정도인 나보다도 키가 작다니?



 



그 일은 내게 중요한 화두(?)를 던져 줬다. 이거 알고 보면 다 이런 거 아냐…?



 



이후 순전히 재미로 유명 배우들의 키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진짜로 그랬다. 런던의 마담 터소 박물관에서 등신대로 제작된 톰 크루즈의 밀납 인형 앞에 서 봤다. 나보다 작았다. 프렌즈의 챈들러 (매튜 페리)와 조이(맷 르블랑)는 나와 엇비슷하다. 이 리스트는 끝도 없다



 



어쩐지 속은 것 같다. 이런 키라면 우리나라로 따지면 키 작다고 맨날 방송에서 놀림감이 되는 국민 남동생하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잘 해야 정형돈이다. 이래가지고야 세계적인 배우로 간지가 나는 건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언제 실베스타 스탤론이 우리한테 키 크다고 떠벌린 적이 있었던가? 톰 크루즈가 전처 니콜 키드만과 같이 다니는 거 보면 항상 키가 작았지 않았던가. 실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 알 수 있던 건데 그저 우리 맘대로 환상을 가졌을 뿐이다. 그리고는 실물이 밝혀지면 지레 실망하곤 하는 거다.



 



키 안 큰 게 죄도 아닌데 말이다.



 



 





톰 크루즈와 하하. 거의 같은 키.



 



 



요즘 울나라 방송들, 특히 예능프로에서 외모와 키, 나이로 놀려 먹는 것은 완전히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내 자신이 그 중 몇몇과 관련해서 놀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에 더 듣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셋 중 한 둘에는 해당되는 입장일 거다.



 



문제는 이게 사실이 아니고 예능적, 방송적인 관점에서 모두 뒤틀려 있다는 것이다.



 



열분들 개그맨 출신 방송인 김미화가 미인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2007년에 모 방송국 다큐를 하면서 그와 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 처음 보고는 깜짝 놀랐다. 키는 작은 편이지만 그 나이에 백옥 같은 피부하며 최소한 일반인의 수준을 훌쩍 넘어가는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피투게더에서 늘 추녀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신봉선도 실물을 보면 전혀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한편 패떳에서 어르신으로 사실상 구박받는 윤종신이나 무한도전의 아저씨 박명수는 고작 40대 초반으로 이병헌, 송강호, 이영애 등등 톱 배우들과 비슷한 연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항상 못생기고, 키 작고, 늙은 것으로 놀림 당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기본적으로 외모와 나이, 키 등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못된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방송들이 이런 버릇을 확대재생산해서 아예 노골적으로 공식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못 생기도 않은 사람이 천하의 추녀로 둔갑하고, 작지도 않은 사람이 난쟁이 꼬마로 불리며, 늙지도 않은 사람이 거동도 힘든 노인네 취급을 받는 것이 일상화되는 분위기, 물론 방송에서야 어떻게든 웃겨야 하니 더 그러겠지만 연예인들과는 입장이 다른 시청자들조차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물들고 만다.



 



그런다 보면 스스로의 현실이 뭔지도 잊게 되고,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도 사라져 버리면서 결국 이런 조건들에 맞지 않는 사람은 다른 모든 장점과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낙인을 찍어 버리는 거다.



 



루저.



 



 





실제로 본 게 아니면 말을 하지 마라.



나와 작업 중 방청객 한 분이



김미화씨에게 와 실제로 보니 정말



미인이세요하고 감탄하며 말을



걸기도 했다.



 



 



문제의 학생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아니면 자기 주장처럼 방송작가가 그런 내용을 써 준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가 공히 심각한 문제다.



 



그 학생이, 혹은 작가가 나는 키 큰 남자가 좋다라는 자기 성적 취향을 언급했다면야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나보다 컸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나보다 커야 한다가 되고, 심지어 어느 수준의 키를 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인 실패자, 즉 루저라는 말로 규정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이건 그 개인의 정신 상태, 혹은 이를 부추긴 사회의 상태가 건강하지 못한 수준을 넘어 정신병에 이르고 있는 증거다.



 



만약 키가 작아서 루저라면, 그것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열등함을 타고났다는 의미가 된다. 165의 유전자를 타고난 이수근이 제 아무리 다리를 잡아 늘여도 결코 186의 이천희가 될 수는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놓고 볼 때 이건 무서운 편견이며 차별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인권과 관련된 문제가 된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선천적으로 기형을 가졌거나 소아마비, 구루병 등으로 키가 작은 사람들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키 작은 유전자를 물려 받아 작은 거나, 어려서 못 먹어 작은 거나, 이 분들이나 다를 게 뭔가. 단지 장애인이기 때문에 루저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이들은 키 작은데 더해 장애마저 갖고 있으니 루저보다도 훨씬 못한 인간 쓰레기냐.



 



서양에서 키, 몸무게, 외모, 피부색 등을 통해 사람을 논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단지 친절해서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 조건이라는 것이 있고,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변할 수 있는 부분들은 따로 있다.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위의 4가지 사항은 주로 전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것은 인종차별과 다름없는, 히틀러가 주창했던 우생학에 가까운 관점이 되고 만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가창 치사하고 비열한 공격이다. 애정이라고는 없이, 상대가 바꾸거나 개선할 수 없는 조건을 무기로 상처와 굴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언제든 변할 수도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유별나게 키 큰 사람은 키다리, 혹은 멀대라는 표현으로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키는 무조건 클수록 좋다라는 쪽으로 관점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이런 것은 앞으로도 어떻게든 변할 수 있고, 거기에 따라 누구든 멸시와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남의 신체적 특징과 나이 따위로 툭하면 능력과 가치를 규정하려 들고, 열등함을 끝없이 확인시키는 사회 속에서라면 그 어떤 것도 언젠가 표적이 될 수 있는 거다.



 



문제의 학생이나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당신이 루저에요. 외모와 키 때문이 아니라 그



유치찬란한 사고방식 때문이에요.



 



 



맨 처음에도 말했지만 인간은 아마도 큰 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대한 사람, 유명한 사람은 키가 클 것으로 아무 근거 없이 은연중에 믿는 경향도 있다. 오래 전에 쓰여진 소설 키다리 아저씨난장이 아저씨가 아닌 것을 보면 여자들의 경우 키 큰 남자에 대한 성적 환상이나 동경이 본능적으로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한들, 이것을 개인 차원에서 느끼고 추구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정답인 것처럼 발언하는 것, 방송이나 언론에서 단발성 웃음을 위해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배려심 없는 집단 개인, 또 이로 인해 상처나 모욕을 받고도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기 때문에 웃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들, 이런 상황들이 모여서 삶의 스트레스가 되고 자괴감과 불신과 차별이 생겨난다는 사실.



 



이제는 좀 알아야 되지 않겠냐.





 



 



딴지 논설위원 파토(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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