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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 추천0 비추천0


2009.11.16.월요일

허기자






(주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 수 있는 결정적 이야기가 포함돼 있습니다.)


 


<2012>는 예상한 그대로다. <해운대> 앞바다 쓰나미 따위 애들 장난감으로나 줘버리라는 듯 전 지구적인 스케일로 있는 재난, 없는 재난을 모두 끌어들이는 호방함이 놀랍기만 하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 <고질라>(1998) <투모로우>(2004) 등 배경으로 등장했던 미국만으로는 성에 안 찼던지 이번엔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등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아예 지구 전체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진보주의자인양 구는 에머리히


 




고대 마야인이 예언했다던 지구 멸망의 날 2012년 12월 21일. 케이트(아만다 피트)와 이혼 이후 혼자 살던 무명의 SF작가 잭슨 커티스(존 큐잭)는 오랜만에 자녀와 함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놀러간다.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국 비밀기지를 발견한 뒤 잭슨 일행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화산이 폭발하고 거대한 빌딩이 추풍낙엽처럼 연이어 쓰러진다. 이에 맞서 잭슨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가족과 함께 사투를 벌인다.


 


<2012>의 얄팍함을 놀리는 건 쉬운 일이다. 갖은 재난의 발생에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는 잭슨의 활약상은 주인공이 재난을 두려워한다기보다 재난이 주인공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될 정도로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머리보다 본능을, 상상력보다 기술력을, 이야기보다 규모를 선호하는 ‘파괴의 제왕’ 롤랜드 에머리히에게 무얼 더 기대할까. 그의 영화는 볼거리를 위해 최소한의 이야기의 논리를 포기하는 인상이 짙다. 다만 <2012>에서 목격되는 이야기의 허술함은 말도 안 되는 볼거리를 이어붙이기 위한 순간접착제의 기능으로 넘기기엔 그 기저에 깔린 정치적 의도가 불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해 비판할 예정이다. (안다. 이게 촌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다만 그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면 한번쯤 짚고 넘어가는 것도 유의미할 거라 생각한다.) 물론 롤랜드 에머리히는 <인디펜던스 데이> <패트리어트-늪 속의 여우>(2000) 등을 통해 상습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를 노골화한 전력 때문에 지탄을 받기도 했더랬다. 그 여파 때문이었을까. <투모로우>에서는 기상 이변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이 제3세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설정을 집어넣어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혐의를 잠시간 벗기도 했다.


 


<2012>에서도 롤랜드 에머리히는 미국 중심에서 벗어난 진보적인 성향의 세계관을 드러내기 위해 애쓴다. 지구 멸망의 위기에 대처하는 다국적 캐릭터의 모습을 통해 세계의 권력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급진적인 형태의 세계질서를 은유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극중 지구 멸망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이를 주요 국가의 정상에게 알리는 건 미국이다. 하지만 재난에 몸을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도록 노아의 방주처럼 특수한 배를 설계하는 건 중국의 몫이며(이를 본 미국의 국방부 장관은 "중국인들은 역시 대단해. 그 짧은 시간에 이걸 다 완성하다니"라며 감탄한다!) 결국 이들이 향하는 곳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물에 잠기지 않은 아프리카 대륙이다. 특히 지구 한가운데 위치한 아프리카 대륙을 비치며 마침표를 찍는 영화의 의도는 팍스 아메리카나와 무관함을 주장하는 에머리히의 눈물겨운 항변처럼 보일 정도다.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 <2012>


 




과연 그럴까.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보수적 가치가 곳곳에 널렸으며 심지어는 교묘하게 숨겨져 있기까지 하다. 살아남은 자들이 배를 타고 향하는 아프리카, 더 정확히는 남아메리카공화국의 희망봉부터가 그렇다. 극중 미국의 어느 기상학 교수는 재난으로 변한 세계의 지형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지붕은 이제 에베레스트가 아닙니다. 남아공의 'Cobo do Boa Esperanca'(희망의 곶)입니다. 우리는 지금 '희망'을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대략 이런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문장 자체만으로는 별 의도가 없어 보이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로 손색이 없지만 <2012>의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특수 배가 설계되는 중국의 비밀기지는 티베트자치지구(의 초모렁마)다. 실제로 중국과 티베트는 독립을 두고 지금도 대치하는 상황이지만 극중에서 티베트는 중국의 일개 도시로 그려진다. 중국에서의 흥행을 염두에 둔 설정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2012>의 진보적인 성향을 감안할 때 이율배반적이다. 이 영화 자체가 그런 식이다. 겉으론 진보를 앞세우지만 속내에는 보수적인 가치를 계속 유지하고픈, 아니 더욱 강화하려는 욕망이 용암처럼 뜨겁게 지면을 달군다. 용암은 밑으로부터 달궈져 위로 치솟는 속성을 가지는데 <2012>가 보여주는 보수적 가치의 욕망은 가족단위에서 시작해 국가의 권력 단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 같은 욕망은 극중 잭슨 가족의 재결합이 미국 주도의 세계 평화를 강화하는 모양새를 띤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가 늘 그랬듯 <2012> 역시 주인공 잭슨의 가족은 해체 상태다. 소설가인 잭슨은 글만 쓰느라 가족에게 소홀해 이혼 후 혼자 사는 처지고 전(前)부인 케이트는 자식과 함께 새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 그녀의 새 남편 고든(토마스 매카시)은 가슴성형의로 돈도 많이 벌 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 식사도 준비하는 등 모든 면에서 잭슨과 비교된다. 다만 재난에 대처하는 고든의 모습은 잭슨과는 상대적으로 민폐 캐릭터로 기능하니 아니나 달라 결정적인 순간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럼으로써 잭슨과 케이트, 그리고 두 자녀 노아(리암 제임스)와 릴리(모건 릴리)는 극적으로 재결합에 이르는데 고든은 가족의 봉합을 위해 내쳐진 꼴이 된다.


 


고든의 예처럼, <2012>에서 보수적 가치에 반하는 인물은 영락없이 죽음으로 퇴장을 맞는다. 특수 설계된 배를 탈 수 있는 40만 명은 전 세계에서 선별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G8의 주요 정상과 그들을 보좌하는 정치인, 그리고 10만 유로에 달하는 승선 티켓을 구매한 부호들이다. 그렇다고 모두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승선 순서에도 서열이 있어 수뇌부, 대부호, 배의 관리자 순으로 입장이 허락될 뿐 아니라 때마침 들이닥친 재난으로 주요 인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닫힌 입구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때 미국 정부의 과학 자문 에이드리언(치웨텔 에지오포)은 인간의 최우선 가치는 사랑에 있다며 모두의 승선을 호소하고 <2012>는 이게 무슨 대단한 결단이라도 되는 양 장엄한 클라이맥스처럼 구성한다. 하지만 여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겉보기엔 평등주의를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의 승선 조건이 G8의 수뇌부와 대부호인 것을 감안하면 보통 사람들의 안위 따위 관심도 없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의 산물임은 자명하다.



 


노아는 지구의 미래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 권력의 이동은 어떤 전제를 숨긴다. 그러니까 그 이동은 권력이 기능하는 지역의 이동일 뿐이지 권력 그 자체의 이동은 아니다. 현실의 미국 정부가 말하는 긴밀한 공조가 실은 미국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는 것이듯 <2012>에서도 중요한 순간의 선택과 결정의 몫은 모두 미국이 갖는다. 아무리 중국(과 티베트 자치지구)에 지구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있다고 해도 중국이 갖는 지위는 미국의 명령에 따른 하청업자 개념이지 동등한 위치를 점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국민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지휘권을 갖는 이는 타국가의 정상이 아닌 미국의 국방부장관 칼 앤하우저(올리버 플랫)다. 앤하우저는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 등의 정상에게 명령을 하고 동의를 구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향하는 '희망'은 미국의 것, 더 정확히는 미국 백인 것이지 세계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 넓은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 굳이 '백인의 땅' 남아공을 지구 재건을 위한 최종 목적지로 정하는 것도,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의무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미국의 '흑인' 대통령 토마스 윌슨(대니 글로버)이 굳이 고국에 남는 대신 백인 국방부장관이 지휘권을 갖는 것도 미국적 보수주의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적 설정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한 혐의가 아니라는 듯 남아공으로 향하는 특수 배에는 '노아'라는 이름을 가진 잭슨의 아들이 승선하고 있다.


 


<2012>는 누가 보더라도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온통 물에 잠긴 세상, 3년의 준비 기간 동안 만들어진 특수 배, 그리고 선택받은 사람들과 한 쌍씩의 동물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현대판 버전이라 해도 좋을 <2012>에서 노아가 짊어진 운명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아닌 게 아니라, 오락이나 즐길 줄 알았던 평범한 소년에서 소영웅으로 거듭나는 일련의 성장 과정에는 신화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잭슨을 한심하게 생각하던 노아가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활약에 마음이 움직여 그의 행위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에는 예수 탄생 스토리의 헐거운 변형으로써 미래의 지구를 재건할 백인 구원자의 아우라가 은연중 암시되는 것이다. 


 


<2012>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재난은 단순히 볼거리 강화 차원에서 서사의 디테일을 포기한 결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겉으론 진보적인 척 속내는 보수주의적 가치를 강화하는 모순의 충돌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로 이해하는 편이 옳다. 할리우드 특유의 거대한 스펙터클은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원치 않은 정보를 주입한다. 볼거리는 그래서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무기다. <2012>는 이미지로 파괴를 전시하지만 메시지로 파괴를 조장한다. <2012>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전파하기 위한 할리우드의 전략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더욱 교묘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서사의 디테일이 결여된 볼거리만으로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격이라는 교훈만 남길 뿐이다.


 


 


허기자(edwoo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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