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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금요일


허기자


 



 


쿠엔틴 타란티노가 이번엔 소설을 썼다. 사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세계2차 대전 당시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미국의 악명 높은 나치 암살단 '개떼들'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과거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는 쇼사나(멜라니 로랑)의 히틀러 이하 나치 주요 인사들의 암살 작전을 다룬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 타란티노가 다루는 최초의 전쟁물이자 역사물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다만 그 누구도 이 천하의 악동이 <바스터즈>를 진지하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로버트 알드리치의 <특공 대작전 The Dirty Dozen>(1967)에서 영감을 얻어 구성하게 된 <바스터즈>(원제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 Inglourious Basterds'는 1978년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는 브라이언 싱어의 <작전명 발키리>와 정확히 대척점에 서있는 작품으로, 나 원 농담도 이런 농담이 다 있나, 히틀러 암살 작전이 성공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좋게 말하면 대체역사전쟁물, 나쁘게 말하면 역사왜곡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바스터즈>에 대해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건 단순히 왜곡의 대상이 나치이고, 히틀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를 일종의 놀이로 대하는 타란티노의 성격상 그냥 한 번 웃자고 만든 작품임을 우리 모두 인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늘 타란티노가 선보이는 상상력은 과장됐고 허풍이 셌으며, 우리는 종종 이를 근거로 그에게 '이야기꾼'이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타란티노 영화에 깊게 새겨진 소설의 영향


 




그렇다. 나는 지금 타란티노의 이야기꾼적인 기질에 대해 말할 생각이다.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2)에서부터 전작 <데쓰 프루프>(2007)까지, 그의 영화광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활발하게 논의가 됐지만 이야기꾼적인 측면에서는 얘기된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를 소설가적인 특징으로 바꿔 말해도 좋을 성 싶다. 실제로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소설의 요소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펄프 픽션>(1994)은 제목 그 자체로 '싸구려 가판 소설'을 의미하며 <재키 브라운>(1997)은 엘모어 레너드의 범죄소설 『마지막 모험 Rum Punch』(1992)를 원작 삼았고 <킬빌>(2003)에서는 챕터별로 이야기를 진행함으로써 소설적인 구성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 그의 영화에서 보이는 영화적인 인용만큼이나 소설, 그중에서도 범죄소설에서 가져온 인용 역시 무수히 많다.


 


<바스터즈>는 특별히 소설적인 요소가 유난히 눈에 띠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글의 시작 '쿠엔틴 타란티노가 이번엔 소설을 썼다'는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우선적으로 주요인물이 대규모로 등장할 뿐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유대인 사냥꾼'으로 불리는 나치 장교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왈츠), 미군 특수부대 개떼들의 리더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 야구 방망이로 나치의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하는 '곰 유대인' 도니 도노위츠(일라이 로스), 독일에 잠입해 배우 생활을 하는 영국 스파이 브리지트 폰 하머스마르크(다이앤 크루거) 등등. 이는 타란티노의 필모그래프를 관통하는 공통점이기도 한데 이런 구성은 사실 소설에 더 적합한 것으로 나중에야 영화가 도입해 재미를 본 형식이라 할만하다. (이런 서브 장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로버트 알트만의 <숏 컷>(1993)이 미국 최고의 단편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동명소설을 원작 삼았음을 상기하라!)


 


다섯 개의 장(Chapter)으로 이뤄진 <바스터즈>의 구조는 집단 주인공의 효율적인 에피소드 안배를 위한 가장 적절한 구성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클라이맥스에 다가설수록 사건이 단순화된다기보다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타란티노 특유의 이야기 특성상 <바스터즈>의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장을 지지대 삼아 산만해지지 않는 가운데 극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처럼 나아가던 쇼사나와 개떼들의 에피소드가 마지막 장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구성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범죄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같은 구성은 『이와 손톱』(1955), 『연기로 그린 초상』(1950) 등으로 유명한 빌 S. 밸린저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교차 서술 방식으로 유명하다. 타란티노는 일찍이 시나리오 작가 시절이던 토니 스콧 연출의 <트루 로맨스>(1993)부터 교차 서술 방식을 심심찮게 차용해왔다. 감독이 되고나서도 <펄프 픽션>과 <데쓰 프루프>에서 이를 그대로 사용했고 <재키 브라운>에서는 특정 사건에 대한 시간별 구성으로 변주한 전례까지 있을 정도다. 물론 타란티노가 밸린저의 작품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그의 영화에서 숱하게 감지되는 범죄소설의 인용을 감안했을 때, 빌 S. 밸린저가 할리우드에 미친 영향력을 고려해봤을 때, (그는 한동안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타린티노 영화에 드리운 벨린저의 그림자를 무시하긴 힘들다.


 


 


타란티노가 창조한 지알로


 




여기까지가 타란티노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소설적인 특징이었다면 지금부터 언급할 내용은 <바스터즈>에만 유효한 것이다. 난 이 영화에서 기능하고 있는 다국적인 언어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스터즈>에는 총 4개국의 언어가 사용된다. (이는 1978년에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나치군의 언어인 독일어, 개떼들이 사용하는 영어, 극중 주요한 배경이 되는 프랑스 파리의 불어, 그리고 알도 레인이 조직원과 함께 이탈리아 영화업자로 분해 펼치는 이탈리어까지. 타란티노는 이 언어들이 가지고 있는 기호와 관습을 의도적으로 충돌시켜 사건에 기름을 붓는 역할로까지 확장한다. 예컨대, 독일인이 '셋'이라고 말할 때 펼치는 손가락의 모양새 때문에 총격전이 벌어지는 3장의 에피소드는 언어를 가지고 놀 줄 아는 타란티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타란티노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간다. 언어유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한다. 그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영화적 유산을 그대로 <바스터즈>에 이식, 각국의 영화사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그의 영화적 야심은 할리우드의 <특공 대작전>을 출발점 삼아 프랑스 파리의 극장을 주요한 배경으로 지정한 후 (극장 간판에는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까마귀>(1943)가 걸려있기도 하다.) 나치 선전영화 <민족의 자랑>이 상영되는 가운데 마치 이탈리아의 지알로 무비 <데몬스>(1985)의 한 장면처럼 죽음을 피해 극장을 빠져나오려는 관객의 아수라장으로 결말을 맺는 식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 <특공 대작전>은 물론 요제프 괴벨스가 선도한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영화를 <바스터즈>에 끌어들인 방식에 대한 언급이 수도 없었으니, 나는 여기서 극중 발견되는 이탈리아영화에 대해서 첨언할 생각이다. <바스터즈>는 '옛날 옛적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라는 1장의 제목과 함께 흘러나오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배경음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탈리아 스파게티웨스턴에 대한 인용으로 시작해 (위에서 언급한) 지알로에 대한 인용으로 문을 닫는다. 특히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지알로'다. <바스터즈>에는 타란티노의 전작에서 드문드문 발견됐던 지알로의 특징이 총망라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알로는 이탈리아어로 '노랑'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타란티노 영화에서 노란색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영화 제목이 노란색으로 표기된 경우가 잦았고(<펄프 픽션> <재키 브라운>) 포스터의 바탕색으로도 즐겨 사용됐으며(<데쓰 프루프> <킬빌>) <바스터즈>의 경우, 영화가 끝난 후 흘러나오는 크레딧이 바로 그렇다. 그러니까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노란색은 항상 중요한 뭔가 의미를 갖는다. 다시 지알로로 돌아와서, 192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노란색을 표지로 한 저가의 장르소설을 발표하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싸구려 가판소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즉, 지알로는 미국으로 치자면 펄프 픽션인 셈이고 <펄프 픽션>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실제로 타란티노는 <펄프 픽션>을 처음 구상할 때 마리오 바바의 <블랙 사바스>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블랙 사바스>가 3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것처럼 <펄프 픽션>은 범죄소설 3개를 옴니버스처럼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 처음으로 노란색 제목이 등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타란티노는 늘 영화로 싸구려 장르소설을 만들어왔다. 지알로 역시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살인을 다룬 이탈리아 영화를 통칭하는 장르명이 되어 오늘 날에 이르고 있다. 지알로를 대표하는 감독은 마리오 바바와 다리오 아르젠토, 그리고 <데몬스>를 연출한 람베르토 바바다. <바스터즈>에는 <데몬스>를 인용한 장면 외에도 지알로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요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리오 바바가 창조한, 핏빛 스타일이라고 해도 좋을 잔인무도한 살해 장면, 희생자의 고통을 즐기려는 듯한 악취미적 연출, 다리오 아르젠토 식의 인상적인 신체 상해 장면으로 끝을 맺는 엔딩신(아르젠토는 살해 장면을 즐겼지만 타란티노는 이를 변주해 알도 레인이 한스 란다의 이마에 나치 문양을 새기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등, <바스터즈>를 일러 '타란티노가 창조한 지알로 영화'라고 불러도 틀릴 성 싶지 않다.


 


 


장난꾼 타란티노의 농담


 


사실 그의 영화는 모두 지알로이고, 펄프 픽션이었다. 다만 그의 영화광적인 면모에 비해 범죄소설 애호가의 측면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된 감이 없지 않다. 이는 한편으론 타란티노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긴 대화 장면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과도 맞닿아있다. 그가 연출한 액션 장면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대화 장면에 있어서만큼은 호오가 엇갈린다. 필요 이상으로 상영시간을 잡아먹을 뿐 아니라 그래서 지루하다는 게 불만의 요지다.


 


그의 영화에서 대화는 소설로 치자면 일종의 지문이다. <바스터즈>에도 매 장마다 긴 대화가 등장한다. 특히 1장은 한스 란다가 유대인을 숨겨둔 농장주와 우유 한 잔을 가운데 두고 매와 쥐 얘기를 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며 4장에서는 독일군으로 변신한 영국군과 이를 눈치 챈 독일군 사이에 엉뚱하게도 이름 맞추기 게임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덫은 보이지 않지만 이에서 벗어나려는 자와 몰아넣으려는 자 사이의 추격전이 말로써 존재하고, 총은 보이지 않지만 상대방의 급소를 겨냥한 총격전이 역시 말로써 이뤄진다.


 


어떻게 보면 타란티노는 행위보다 기호로써의 언어와 말의 어감을 더 중요시하는 듯 보이고 사건보다 그 직전까지 대화로 형성되는 분위기를 더욱 선호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만큼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말은 중요하다. 그 말의 기원은 당연히 소설, 그 가운데서 싸구려 범죄소설이다. 거기에는 말로써, 그리고 인용이라는 타란티노만의 '언어'로써 영화를 놀이화하려는 장난꾼의 기질의 엿보인다. <바스터즈>(를 위시한 그의 모든 영화)는 스크린에 써내려간 소설이고 결국엔 거대한 농담이다.


 


 


(글후기)


 


최근에 본 가장 재미있는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었습니다. 2시간 20분 가까이 되는데 정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봤어요. 하하. 남들은 극중 대화 장면이 너무 긴 것 아니냐며 불만을 드러내던데 전 그 대화 장면 때문에 타란티노의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위 글은 <프레시안>에 송고한 기사고요, 실제로 타란티노는 <펄프 픽션>을 처음 구상할 때 마리오 바바의 <블랙 사바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네요. <블랙 사바스>가 3개의 에피소드로 옴니버스를 이룬 것처럼 <펄프 픽션>은 범죄소설 3개를 옴니버스처럼 구성한 것이라고 하네요.


 


 


허기자(edwoo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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