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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7.화요일


딴지독투 Architect


 


루저의 난.. 난 이번 미수다의 종합적 발언사태에 대한 나를 포함 루저들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부르고 싶다.


뭐 그냥 이 말이 입에 붙는다.


 


뭐 전에쓴, 마녀사냥 드립에서 밝혔듯이, 난 미수다에 나와서 개념은 없었지만, 한국이란 사회의 단편을 처절할 정도로 까발린 차세대 골빈당 부녀회 회장 후보들 에겐 관심도 없다.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루저의 난이 자꾸 눈에 밟히는건, 아마 이 사건이 한국사회 전반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참 재미 있는 일이 있다. 한국 사회는 다수의 비판이 소수를 향해 몰아 칠때, 소수를 감싸주는 알흠다운 전통이 만들어 진거 같다. 아! 물론 소수를 존중 하고 보호하지 말자 라는 말이 아니다. 소수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단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특정한 사건들에 대해. 이 다수가 어느덧 떼거리로 묘사되고, 다시 좀비 무뇌 폭도가 된다. 문제의 본질은 어느덧 저기 안드로메다로 넘어가 죄새끼 삽질에 묻혀버린다. 이것이 이상할 뿐이다.


 



 


한국사람 들이 이렇게 용서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 이었나,


뭐 교회가 넘치는 환경에 살고들 계시니 신의 은총과 성령이 가는 곳 마다 꽉 차서 그런걸까?


아니면 단순히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들 이었나,,


아니면 사건의본질이 흐려지길 원하는 불특정 소수 내지는 다수의 물타기 내지는, 본질흐려서 사건 묻어버리기에 모두들 너무나 익숙해 져 버렸나?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이나 1984를 읽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복되는 망각속에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그 사건이 어떤것 이었는 지 조차 잊어버리고, 부정확하고 옳바르지 않은 단어들의 유혹에 빠져, 망각하는.. 오로지 모두에게 공평한 물질적 평등이라는 신기루를 좇으며..


 


그러다 퍼득, 머리속에 떠오른 의문,, 진정한 한국사회의 소수자들..


보호해야 할, 그리고 존중받아야할 소수자 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



미수다 에서 떠들어댄 그친구들 에 대한 변론에서 사용되는 소수의 의미는 두가지 이다.


 


첫째. 비난 과 열폭질에 개인 신상정보까지 까발리길 주저하지 않는 네티즌 이라는 무식한 루저 폭도들의 폭력에 노출된 가녀린 여대생 몇명 으로써의 소수...


 


둘째. 스펙과 자동차의 종류와, 아파트의 평수와 직업과 부모님의 지위와 통장의 잔고 등등에 연연하지 않는, 올곧고 굳건한 사회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 절대 대다수의 여성분들중, 어쩌다 피디 나 기획사와의 연줄로 미수다 라는 방송에 운좋게 나가서 자신들의 개인적 의견을 당차고도 솔직하고도 쿨하게 설파하신 극 소수의 된장 여인네들.. (여자들을 까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니 부디 글을 끝까지 읽어봐 주시길..영 기분이 나쁘시면 남 녀를 치환하셔도 상관 없음..)


 


이걸 파고들기 전에, 소수 와 다수 의 정의에 대해서 논해보자.


 


질 들루즈가 Mille Plateau 에서 되기 Devenir 라는 장에서 소수와 다수에 대해서 이바구를 푼 구절이 있다. 뭐 요점정리를 하자면..


 


소수와 다수의 진정한 정의는 통계학적 그리고 양적 의미로만 접근을 하게되면, 많은 혼란을 만들어 비뚤어진 인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위험한 단어들 이라는 것 이다.


 


소수란 무엇이며 누구인가? 앞에서의 사진과 같은 용산참사의 피해자?


가정형편이 힘든 극빈층 아이들? 등등


 


맞다.. 이들은 소수자 들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것은, 이들이 소수자 인것은 그 양적 희귀성이 아닌, 권력의 부족 내지는 부재 이다.


정치적이던, 경재적이던,,,


 


그럼, 정치인들, 친일파들, 대기업의 이사진들, 부동산 투기 졸부들 하다못해 조폭들.. 이들은? 양적인 소수이다, 하지만 권력적 다수이다..


흔히들 이들을 기득권 이라 부르며, 특권층 화 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 특권층에 진입하기를 꿈꾸는, 또는 이런 기득권층 으로의 진입을 성공이라 정의해버리는 미디어 와 사회분위기 자체의 소비자들 이 있는 것을 볼때, 이들은 사실 양적으로도 잠정적인 다수자 들 이다.


마치 정치인 들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 상황하에 국민들의 권한을 이행받았다는 대의로써 권력적 절대 다수가 되듯이.


 




(300, 개인적으로 비호감 작품 다섯손가락 안 에 드는 졸작 이라 생각 되는 작품. 여기서 300의 주인공 스파르타인 들은 페르시아 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소수자의 이미지를 이용해, 그 저변에 숨어있는 역사적 왜곡을 통한 백인우월주의적 오리엔탈리즘에 다수의 관객들을, 심지어는 동양인들 마져도. 몰입시켜버리는 전형적인 헐리웃식 최면 구조를 보여준다.)


 


자 그럼, 다수란 무엇인가?


 


여기 보여지는 수많은 잠정적 싱하횽아 들인가? 마치 중공군들이 인해전술로 휩쓸듯 지나가 듯이?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가? 이들이 다수자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까?




이경우 오히려 이들은 권력적 소수자들 이다.. 수꼴들은 이들을  촛불좀비떼 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덧 우리에게 다수의 정치적 사회적 표현이 떼로 몰려다니는 불만 세력이 되버린 건가?


 


한국사회의 인식론적(?) 기저에는 다수 = 떼, 떼거리 라는 공식이존재하는 것 같다. 다구리, 떼씹, 떼강도,,촛불좀비떼.. 오히려 소수 특공단위로 날뛰는 수꼴 까스통 들에겐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법도 관대하고, 정치인들도 관대하고, 경찰들도 관대하고,, 시민들 까지도 관대하다.


에이.. 좀있다 뒈질것 들인데,,뭘..우리가 좀 참지.. 뭐 이용당하는 불쌍한 사람들 인데..등등


 


다수가 관련된 일에서 발생하는 모든일들은, 그중 아주 극소수의 실수 ( 그것이 의도 되었던 의도되지 않았 던 간에)이라 하더라도, 어느덧 다수전체를 떼로 규정해 버린다. 그리곤 어느덧 이 다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적 소수성 마져도 철저히 밟고 망가트린다. 소수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관계는 무시 되거나, 감지 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 물리적 폭력이 앞서는 동물적 세상에서는, 양적으로는 다수가 소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복잡한 현실사회에선, 양적 소수 다수에 관계 없이, 권력적 다수 에서 권력적 소수로 폭력의 방향이 정해진다.


 


재미있는 일이다. 동시에 끔찍하기도 하다. 때리는 남자보다, 키작은 남자가 용서가 않된다니... 언제부터 한국 사회가, 폭력적 그리고 권력적 가해자들을 동경하고, 오로지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를 주저하지 않기에.


키가 작아 그러한 능력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은 찌질이가 되어버리고 루저가 되고 약자가 되어버렸을까?


효도르 횽아 한테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대씩 처맞는 것이 이상적인 삶일까?


 




이러니, 사대강 이니 세종시 수정 이니, 복지예산 감축이니 등등, 마치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나서 바꿔버릴듯 하지만, 결국은 쥐새끼가 하고 싶은데로 다 하고 있는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쥐새끼는 겉으로 보기에 혼자인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 폭력성에도 전혀 상관없이 아무러치 않게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있는한,,


또 그렇게 힘있고 잘나신 사람이 되는 것, 내지는 그런 사람과 동반하는 것이 어느덧 당연시여기게 된 사회로 볼때, 결국 다수인 것이다.


권력적 양적 다수. 어디에서든 당신을 보고 싶은 믿음직스럽고 닮고 싶은 얼굴의 Big Brother 처럼..


 





 



 


과연 이걸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사회에서?



모두들, 미디어 악법 반대를 외치며 들고 일어날 때가 엇 그제 인거 같은데, 그 모든 걸 잊은듯 해보이는 지금,,,


그당시 미디어 법이 왜 악법인지도 잊어버린거 아닐까?


미디어 라는 그 일방향성 매체의 성격에서 오는 조절되지 않을때 터져나올수 있는 근본적인 폭력성 에 대해서 다 잊어버린걸까?



새벽에 일어나 씻고 조깅하고, 출근전에 훑어 보는 한국의 신문과 웹싸이트들,, 모두들 난리가 나고, 당장 내일이라도 바꿔야 할듯 말하지만, 결국은 조용조용히 쥐들에 의해 계획되었던 데로 향해가는 한국 사회. 내가 한국사회를 잘 모르고 있던 걸까?


 


자. 다시 골빈녀들로 돌아가 보자.


 


첫번째의 소수자 로써의 골빈녀들.. 뭔가 이상하다..많이..


 


이들의 개인신상이 까발려지고, 사람들의 비난이 몰리고 있다고 이사람들은 불쌍한 소수자라 하는데? 그리고 모든 네티즌 들을 폭도에 떼거리 찌질이라고 말하는데..


 


우선. 골빈녀들의 신상을 까발린것,, 이건 신상이 까발려진 사람과 신상을 까발린 사람, 그리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은 사람들에 대해 철저하게 사법적 처리가 우선되야 하고, 또한 거기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되고, 이런식의 무개념한 행동이 지양 되야 하는건 사회정의적 측면에서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설사 이것이, 몇몇 무개념 개자식들에 의해,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저지른 일이라, 그 정체를 알수 없는 경우 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가 모든 넷 유저들을 네티즌 이라는 공동어로 묶어서 떼를 지어 찌질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인간들 이라 한번에 규정하고, 마치 이것이 바로 이 네티즌 들의 문제인양 호도하여 버리는건,, 요즘들어 부쩍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시고 있는...


마녀사냥이란 단어의 역전적 이용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즉, 사회의 잘못된 구조에 의해 터진 문제를, 어느 개인의 불법적 개인정보 유출 행위를 이용해서 네티즌 이라는 불특정 한 단어로 싸잡아 매도하고, 본질을 넘겨버리는 것...


 


교회권력(사회구조) 의 통제가 불가능하거나 힘든 역병(개인정보 유출)을 이용해서 권력적 소수자 (넷유저, 루저, 찌질이 등등) 를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마녀(네티즌)로 만들어 규탄하고, 불태워버리고 사건을 묻는다..


 


오히려 정당한 이유로 비판을 하는 이시대의 루저들이 네티즌이란


이름으로 마녀사냥 당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하나의 문제는, 마치 몇몇 여자애 들의 실수,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여럿이 우르르 몰려들어 비난과 비판을 하는것은 찌질이 떼 들이나 몰려다니며 하는 짓 이다,, 라고 말 하는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여기 딴지일보, 다음 아고라, 한겨레, 경향...등등 수많은 인터넷 싸이트에 하루에도 수만명이 쥐새끼의 정치에 대해 불만과 비판과 비난을 표현하는데? 그럼 이건 뭔가? 이거 역시 떼로 몰려다니며 쥐새끼 하나 놓고 떼거리로 폭도짓을 하는것 인가?


 


아! 쥐새끼가 하는건 한나라의 살림이고, 저 가녀린 아녀자들의 말은 그저 개인적 생각이다? 그래서 다르다?


 


별로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또하나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루저들이 열폭을 하는 대상에 대한 것 이다.


 


이 골빈아이들을 말실수한 소수로 놓고, 변호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가장 큰것이, 마치 모든 루저가 미수다에 나온 그 골빈대생들을 상대로 열폭을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 이다.


 


루저들은 이 여자들을 직접적 대상으로 놓고 열폭을 하는 것 이 아니다.


만약 그런경우라면, 해당 대학교에 가서 잠복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여기저기서 현피떳다는 소식들이 무궁무진 하게 나와야 한다.


몇몇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단정하는 것 처럼, 루저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광기의 마초 폭력배 들이 아니란 것 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상인가?


 


그건 바로, 티비라는 일방적이며 권력적 매체에 출현해 인간과 사회를 재정의 해버리는 무서운 말들을 서슴치 않고 쏘쿨하게 내뱉은 이 여자아이들의 이미지 이다. 이 이미지들 자체가 미디어를 통해 투영되고 있는 사회의 이미지 와 겹쳐진 것 이며,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에 기분 나빠하고 설마 하며, 믿고있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모습이 확인사살 된 것 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큰것이다.



저 골빈녀들이 명동한복판에 모여서 명품과 키와 조건에 대해 떠들었다면..어떤일이 일어났을까? 뭐 .. 열받아서 따귀한대 때릴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미친년들~ 욕한마디 침한번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이 그냥 속으로...


 


이 상황에서 이사람들은 매체적 생산자들의 일부로써의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냥 꽃꼿은 썪은 된장정도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뭐 실제로도 꽤많은 사람들이 별다방 콩다방에서 오손도손 모여앉아 이러한 주제로 일상다반사 이바구를 까고 계신 한국사회에서,, 뭐 별다방 콩다방에서 살인사건 이니 폭행사건 일어 났다, 라는 말은 금시초문 이다.


 


그러나 티비라는 매체에서 이들이 이러한 발언을 아주 당당하게 선언하듯이 입 밖으로 내 뱉은 순간, 이것은 하나의 선언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또한 한 사회의 현위치에 대한 확인이 되는 것 이다.


 


이 방송을 편집한 피디의 변론에도 써있듯이, 이들은 당당하게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 들을 대표하기 위해 나온것 이고, 아마도 피디 역시 이 정도 내용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편집없이 방송에 내보냈을 것 이다.


아니면 더 복잡한 의도가 있을 수도 있고.


 


여하튼, 루저들은 아무생각 없이 한국말 하는 서양녀들 얼굴 구경하다가,당신을 루저 라는 판정을 받아버린 것 이다. 마치, 옆모습을 따라 만든 판떼기 하나 얼굴에 맞추어 보고, 너는 유태인 이라 까스실 행~ 하는 것 처럼.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 인가?



다음은 두번째,, 이런 아해들은 지극히 소수 일 뿐이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 드립이다..


 


뭐 맞는 말일 것 이다.


 


중요한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주도해 가는 권력적 다수자 이냐? 라는 문제이다. 이건 전적으로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뭐 별로 할말도 없다... 그림을 보시라..


 




김진홍.. 자신이 뉴라이트를 만들어 쥐새끼 대똥 만들어 줬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인간말종이다. 이넘 말고도 많다.


목사니 전도사니 권사니.. 성폭행에 금품갈취에.. 살인에 간통에..


 


문제에 대해, 수도 없이 성토하고 비판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건, 소수일뿐 이다. 기독교를 싸잡아 욕하지 말아라. 너희야 말로 피해망상에 정신이상 아니냐? 지옥가라~! 드립 일 뿐이다.


 


문제는, 저사람들의 수가 아니다. 저사람들의 수가 양적 소수자 일지는 판단할 방법이 없지만. 중요한건 이들은 어째튼, 한국 사회에 있어서 사회적 분위기 (그것이 나쁜쪽이던 좋은쪽이던) 를 만들고 조정하는 권력적 다수자 들이다. 저들의 손짓 한번에 뒤로 넘어가는 신도들이 주말마다 교회에 꽉꽉 들어찬다. 이들은 여전히 소수인가?


 




자 다시한번 묻게된다. 우린 여전히 저 골빈녀들이 이 사회의 극소수자 이다! 라고 아무 숙고없이 말할 수 있을까?


 


몇몇의 투자전문가, 내지는 투자에 도가튼 연애인들을 따라잡으려,아파트 투기에 뛰어들었다 빼도박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 만명을 넘는 이사회에서.. 영어가 스펙을 올려주는 지름길 인것 마냥, 조기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설파 하자 마자, 맹목적으로 아이들을 유학보네고.. 연예인들 수술자국 찾으면서 뒷다마 까다가도, 방학만 되면 얼굴이 달라져 오는 누님들이 부지기수인 이 한국사회에서.. 빠리에서 8년을 살았던 나도, 두세번 그저 일때문에 지나가 봤던, 셩젤리제의 루이뷔똥 매장에 바깥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며, 100유로도 서슴없이 꺼내며, 지나가는 한국인 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신 줄서기 알바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한국 사회에서.. 정말 이들이 소수일까?


 


루저의 난으로 말하고 싶은 건, 루저들의 난이 뭐 저런 골빈당 부녀회장 후보 들 개개인에 대한 비판보다 더욱더 사회깊숙히 존재하는 구조적 불안정에 근거한다 라는 것 이다.


 


말로는 다들, 좆같다, 갈아치우자 마고 말들은 하지만, 정작 이런 것에 홀려버린 사회.




권력적 소수자인 다수자 들이 권력적 다수자인 극소수의 삶을 꿈꾸고, 거기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사회.


 


그리고 그들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회.


 


그래서, 바로 그걸 기준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급기야,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해, 그 소수자 들이 사용하는 잘못된 용어들과 변질된 의미를 통한 본질의 호도 방식을, 어느덧 자발적으로따라하게 되는 사회.


 


아마 루저의 난은 바로 이러한 사회, 쥐새끼가 딴나라당이 친일파 들이 개판을 치고, 자신들 마음데로 다 하지만, 그저 속으로, 아니면 인터넷에 모여서 욕한번 하고는, 은밀히 가슴깊숙히 에선 저런 삶을 동경하는 그런 사회에 대한 열폭이 아닐까?


 




이미 이런저런 사건으로 여러번 터졌지만, 이러한 "그들의" 논리에 따라 자체정화되고, 그러면서 쌓인 불만들이, 고용 불안정의 세대. 자식을 만들기 무서워진 사회, 수천만원 빛져서 88만원을 벌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가 불안정한 사회의 공포와 함께, 동시에 터진건 아닐까?


 




과연, 이사건이 진정한 사회적 숙고로 넘어가지 않고, 또 흐지부지 되면 과연 어떤일 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동안 수많은 사회적 부조리에 의한 사건들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터졌는데. 결국은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열폭질이라고 네티즌에 의한 자체적 결론이 지어져, 결국은 일말의 사회적 숙고와 변화에 대한 생각 조차 없이, 그저 개인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할 문제란 식으로 흐지부지되었는데..


 


이제 조만간 본격적인, 우리들이 서로 앞서 만들고 이름지어 버린 "열폭 네티즌 찌질이들"에 대한 단속을 정부에서 외치게 되지 않을까? 국민들이 알아서 단속하고 자체정화 할  정도니, 우린 국민의 의견, 여론에 따라 인터넷 제한법을 상정하겠소이다~~ 라며


 


진정으로 딴나라와 쥐새끼의 집권을 이번으로 종치고 싶은 혁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사회에 대한 깊은 숙고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제대로 깊숙히 파고들어, 어느새, 우리들의 저들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저들의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살았는지,,반성하는 기회이자.


잘못된 언어의 사용과, 의미의 변질을 통한 사회적 반성에 대한 무력화 시도를 철저히 깨버리고, 보다 깊은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거..


 


그것이 네티즌들을 한데 몰아 마녀사냥 해버리고, 루저를 대량생산 하는 이정권에 대한 제대로된 개혁의 시작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뭐 이건 그저 몇몇 된장들에대해, 피해망상이 발동되신, 그야말로 루저들의 떼발광 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지만, 난 적어도 루저의 난을 이렇게 보게된다...


 



<루저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