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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목요일


뚱딴지


 


된장과 똥에는 어김없이 쉬파리가 꼬이며 구더기가 생긴다.


똥색 딴지에도 진리경찰이나 좌빨 운운하는 파리들이 꼬였고 구더기가 끓었었다.


 



무지개 똥칼라 파워!!



지금 퍼렁 딴지에도 있나?


있다면 똥색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여기까지 묻어온, 졸라 질긴 구더기겠다. 이 파리와 구더기들은, 권력이란 똥에도 어김없이 꼬여 들끓는다.



우리가 해바라기라고도, 또는 궁물이라고도 부르는 족속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면 불안하고 높은 누군가에게 귀여움 받지 못하면 존재 의의를 찾지 못해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 높은 그분에게 인정받는 걸 수단으로, 그 인정을 자신의 권력으로 치환하는 걸 목표로 살아가는, 그렇게 자기 몫의 권력을 만들어 휘둘러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권력의 똥파리들.


 


하지만 실은, 그 똥파리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것이라 믿고 휘두르는 모든 권력의 이면에는 예외 없이 컴플렉스, 열등감이 들어있다.


똥파리의 열등감이랄까.



이건 그런 얘기다.



춘추시대에 맹꽁이가, 아니 공, 맹이 있었고, 전국시대에 그 학맥을 이은 인물 중 하나로 순자(荀子)가 있었다. 성은 순이오 이름은 황(況), 순경(荀卿) 또는 손황(孫況)이라고도 불렀다.


 



순자


 


다들 알다시피 공부자의 철학과 사상에는 오만가지가 다 들어있었다. 예(禮), 도덕, 법, 수신, 제가, 치세, 치국 기타 등등.


 


그 오만가지 중에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인자도 들어 있었는데, 그중 성선설을 전공과목으로 택해 더욱 심도 있게 연구해 들어간 인물은 맹자였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 시대에 공부한 말하자면 공자의 제자뻘 되겠지만 뭐 어차피 백가쟁명의 시대, 선후배 상관없이 나름대로 과제 하나 잡으면 거기서 뽕을 뺄 때까지 물고 늘어지곤 하던 때였다. 아무튼 맹자의 텍스트는 성선설이었고.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 많은 후학들 중에 그와는 반대로 성악설을 전공한 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순자였다. 이름엔 순이 들어가지만, 주장한 건 전혀 순하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때문에 공부를 통해 그것을 다스려야 하고,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인간들은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법이니 그 땐 벌로 다스려야 한다.’ 고 설파해 법가사상의 토대를 구축하는 인물, 그가 순자였다.



순자는 조나라에서 태어나 제나라에서 큰 선생으로 대접받고 잘 나가다가, 인생 말년에는 초나라의 난릉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조촐하게 후학을 기르다, 갔다. 뭐 이시대의 인물들 들척거리다 보면 예외 없이 다 재미지긴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순자가 아니므로 대충 넘기자. 


 


암튼 이 난릉에서 가르친 제자 중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 둘 있다.


하나는 진나라 시황제의 재상으로 유명한 이사(李斯). 또 하나는 춘추전국시대의 비스마르크라고 일컬어지는 한비자(韓非子). (이런 거 쓸 때마다 비스마르크를 현대의 한비자라고 해야 맞는데 이런 식으로 역전시켜 비유해야 통한다는 게 늘 쫌 거시기하다. 씨바)



암튼, 먼저 이사부터 거들떠보자.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지금의 하남성 상채(上蔡)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겨우 굶지나 않을 만큼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별 볼일 없는 서민집안이었다. 이사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았다. 동네어른들은 이사를 보며 ‘재는 크면 반드시 뭔가 한자리 하겠다’고 칭찬하곤 했는데, 이사는 그 동네 어른들의 예언을 저버리지 않았다. 상채의 관청에 특채되어 관리가 됨으로서, ‘크면 반드시 뭔가 한자리’를 진짜로 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아니 그때니까 더욱, 더구나 뇌물 먹일 것도 없는 후진 농투성이의 아들로는 더더욱, 농사를 짓지 않고도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졸라 뽀대나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웃들 모두 부러워했고 부모들에게도 큰 자랑이었으며, 이사 본인 역시 내심 뿌듯한바 있었다. 일단 나름대로 출세는 한 거니까.



그렇게 해피 명랑하게 지내던 어느 날.


 


관청의 측소(側所), 말하자면 똥간에 가 똥을 싸던 이사는, 엉덩이를 내린 채 괄약근 조여 똥을 끊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한 지점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것은, 한 마리 쥐새끼였다. 오줌인지 똥물인지에 젖어 초라하게 쪼그라든 몸으로 그 쥐새끼는, 똥을 먹고 있었다. 쥐새끼는 똥을 먹다가, 누군가가 들어오면 화들짝 놀라 오줌과 똥물이 흘러나가는 구멍으로 잽싸게 도망갔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기어들어와 똥을 먹었다.


이사는 그 쥐새끼를 보며, 어제 본 다른 쥐가 떠올랐다.


 



 


어제 곳간에 들어갔다가 브아걸의 엉덩이마냥, 매우 시건방진 쥐새끼를 보았던 것이다.


일단 그놈은 너무 많이 처먹어 쥐가 아니라, 무슨 쥐의 형태를 한 소형 돼지종류의 새로운 동물로 보일 정도로 살이 쪄있었다. 그래서 놈은, 쥐새끼라고 부르면 불경이 되고, 쥐님이라 불러야 될 거 같았다.


 


그 쥐님은 이사를 보고도 도망가실 생각은 않고, 깨작거리며 햅쌀을 맛나게 처 잡수시고 계셨다. 단지 몸이 무거워 그러시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잡히지 않을 거라는 오만과 배포, 위기가 닥쳐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쥐님에게서는 느껴졌다.


 


실제로 이사는 그 쥐님을 잡을 듯이 위협하며 발을 굴러 보았었다. 그러자 쥐님은 조금 놀라는 척 하더니, 매우 귀찮다는 듯 천천히 곳간 벽 아래에 뚫린 굴을 향해 움직여갔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건방져 보이기도 해 이사는 정말 때려잡고 싶었으나, 쥐님은 이미 굴 안으로 사라지신 뒤였다.


아무튼 참으로 건방진 쥐님이었다.


 


하지만 건방진 만큼이나 배운 점도 많았다.


쥐님에게서는 웬만한 사람에게서보다 더 만만한 여유와 무게가 느껴졌다. 그때 이사는 문득, 어쩌면 그 쥐가 자기보다 나은 삶을 사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비록 주위의 선망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그 쥐님과 같은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촌구석의 관리에 불과했고, 매일 관청에 나가 주어진 일을 해야만 겨우 굶지 않고 산다.


 


그런데 그 쥐님은, 이 먹을 것 풍성한 곳간을 집 삼아 살며 인간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매일 출근할 필요도 없고 일 안해도 되고. 부러운 쥐님.



그리고 지금은, 뒷간에서 똥을 먹는 쥐새끼를 본다.


 


비쩍 마르고, 똥물과 오줌에 젖어, 털이 몸에 잔뜩 달라붙어 드문드문 살이 보이는, 좋은 곡식도 아닌 똥을 먹는, 그나마도 마음 놓고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소리가 나도 놀라 오줌구멍으로 튀어 달아났다가, 조용해지면 핼금핼금 눈치를 보며 기어 나와 다시 똥을 먹는, 그 쥐새끼를 보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던 이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제의 쥐님과 저 쥐새끼 중 난 어느 쪽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쥐님은 아니고, 똥을 먹는 쥐새끼에 가까웠다.


 


똥을 싸다 똥 먹는 쥐새끼를 보고 대오각성한 이사는, 바로 다음날 사표를 내던지고 고향을 떠났다. 신분상승이라는 필생의 목표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려면, 똥을 먹는 쥐새끼 꼴이 되지 않으려면, 일단 이 작고 초라한 촌구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뒤 그는 곳곳을 떠돌며 자신이 설 자리를 찾았다.


그의 원칙은 단순했다. 똥간은 절대 안 감. 다른 곳 아닌 곳간이어야 함. 곡식이 많이 차있을 수록 좋음.


그러기위해 이사는, 일단 공부를 더하기로 결심한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역시 공부가 가장 쉬우니까. 그리고 이것저것 알아본 뒤 택한 스승이, 초나라 난릉의 순자였다.


 



 


그는 입문한지 그리 오래지 않아 곧 두각을 나타냈다. 타고난 머리에다 똥쥐가 되지 않겠다는 살벌한 집념이 더해져 학문의 성취가 눈부시게 빨랐던 것이다.


그는 쾌재를 불렀다.


됐다! 이 정도면 절대 똥간을 맴도는 똥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하에 새로 들어온 신삥 한 놈 때문에 그 희열이 무참하게 아작나 버린다. 생긴 건 멀쩡하지만 말을 더듬어 반벙어리처럼 보이는 신삥 놈.



한비. 


 




한비는 한나라의 수많은 왕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초(楚)나라의 대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굴원(屈原)이 멱라(汨羅)에 몸을 던진 그해에 낙양에서 태어났다. 한비는 말더듬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한비는 ‘언변은 능하지 못하나 저술은 뛰어났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에 이빨을 잘 못 깐다는 건 엄청난 핸디캡이었다.


소위 유세란 말이 생긴 것도 그 시대였듯 당시의 학자는 어디서든 한자리 차지하려면 글은 물론 이빨로도 왕이나 제후들을 구워삶아야 하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한비는, 말은 아예 아이템으로 쓰지도 못한 채 오직 글만으로 어필해야 했다. 그럼에도 역사에 남았으니 글빨이 어지간했던 건 분명하다. 그건 후대에 한비의 저술이 법가 계열의 고전이 된 것,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더구나 뒤에 나오지만, 한비는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고종명하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아무튼 한비는, 말더듬이지만 똑똑했다. 더불어 한비는, 비록 힘없는 약소국이었지만 한(韓)나라의 왕손이었다. 글빨에 출신성분의 후광까지 더해져 한비는 곧 순황문하의 괄목상대가 되었다. 


그런 한비를 보며 사형인 이사는, 졸라 긴장 탔다. 똥쥐의 열등감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이제 똥간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 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영원히 곳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곳간에 다른 쥐님이, 더듬거리며 들어오셨다.


아 씨바, 그럼 난 또 똥간으로...?!



미칠 것 같아 진 이사는, 미치지 않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이사는 다시 이를 악물고 똥간에 들어앉아 똥쥐를 보며, 염두를 굴렸다.


 


어쩌지? 어떡해야 저 꼴을 벗어날 수 있냐?


 


마침내 이사는 다시 그곳을 떠나리라 결심한다. 공부만으로는 안 된다. 아예 곳간을 찾아 그곳에 들어가 먼저 자리 잡고 앉아야 한다. 그 외엔 방법이 없다.


이사는 싸부와 동문들, 말더듬이 신삥놈에게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이사가 찾아간 곳은, 진나라였다.


 


당시 진나라는 이웃나라들을 자근자근 밟으며 전국통일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던 중이었다.


따라서 강호의 글줄이나 쓰고 이빨 좀 깐다는 인물들은 모두 진나라에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하거나 브리핑 할 기회를 얻어 블라블라블라 이빨을 까며 어필하곤 했다. 그랬던 인물 중에는 이사의 스승인 순자도 있었고, 신삥 한비의 최종목표도 진나라였다.


 


순자야 물론 자신의 연구결과를 강대국에서 펼치는 게 목적이었고, 한비는 그와 더불어 자신의 모국인 한나라를 진나라의 통일전략에서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는 프리미엄까지 있으니 더욱 절박한 목표였다.


 


그러나 진시황 앞은, 아무나 나서서 블라블라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선 먼저 그 전 단계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아야 했는데, 그 전 단계인 인재양성기관을 맡아 관리하는 인물이 진시황의 생부라고 소문난 여불위였다.



여불위는 정작 진시황만 모를 뿐 공공연한 그의 생부였으며, 왕후와는 여전히 빠구리를 트는 정부였으며, 자신이 지치면 물건 큰 놈을 넣어주는 왕후의 채홍사이기도 했으며, 진나라의 승상이었으며,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여씨춘추라는 백과사전을 만들기도 하는 중원 최대의 스폰서였으며, 그 식객들을 관공서로 채용하고 관리하는 스카우터 겸 에이전트였으며, 입법, 사법, 행정 모든 분야에서 왕을 대행하는, 한마디로 졸라 쎈 인물이었다.


 



여불위


 


암튼 진나라로 온 이사는 여불위의 식객으로 들어앉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게 된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온다.


 


어마어마한 섹스스캔들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진시황은 어떤 듣보잡 놈이 자신의 애비라고 큰소리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이어 그 수사결과보고서를 받아든 진시황은, 분기탱천, 노기충천에 살기까지 충만해져버렸다.


 


그 ‘진나라섹스스캔들보고서’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그런 헛소릴 지껄인 건 노애라는 놈인데, 이 노애라는 놈은 물건이 워낙 커서 물건에 수레바퀴를 끼어 돌릴 정도라고 하는 놈인데, 왕후, 그러니까 진시황의 모친이 그놈의 물건에 뻑이 가 밤마다 그놈을 들였는데, 그러다보니 그놈이 간덩이가 부어 자신이 왕후의 남편이며 나아가 왕의 애비라고 뻥을 친다, 는 것인데, 알고 보니 그놈을 왕후에게 붙여준 것이 바로 승상인 여불위인데, 여승상이 그런 짓을 한 이유는 자신이 힘에 부쳐서 그랬다는 건데, 그럼 언제부터 여승상이 왕후와 붕가붕가를 했느냐는 건데, 사실 이게 엄청 오래된 건데, 말하자면 왕이 태어나기 전부터였고 그러므로 지금의 진시황도 여불위의 아들이다! 는 내용.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시황이 잔인한 인물이고 어떻고와 상관없이 분기탱천 살기충만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노애는 당연히 죽었고 그와 연루된 수많은 인물들이 죽었으며, 여불위는 자결했고 그 일족 모두 죽었다. 진시황은 그러고도 계속 닥치는 대로 죽이려 했다. 일단 물건 큰놈 모두 죽이고, 여씨도 모두 죽이고,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모두 죽이고, 빠구리란 말 하는 놈도 죽이고, 붕가란 말을 하는 놈도 죽이고, 오오...라는 소리를 내는 놈도 죽이고, 아이잉...이라는 소리를 내는 년도 죽이고, 아무튼 전부 죽여 버려야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미쳐 돌아가는 진시황을 설득해 진정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사였다. 


그리고 이사는 진나라의 승상이 되었으며, 당연히, 곳간의 쥐님이 되시었다.


만세! 



그래서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잘 나갔다. 


이사는 워낙 출중한 반면교사가 있었던 까닭에 승상으로서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여불위같은 뻘짓을 하지도 않았고, 빠구리를 즐기지도 않았으며, 수천의 식객을 거느리고 제왕노릇 하지도 않았고, 황제의 신경을 거스를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영원히 똥간에 가지 않아도 되는, 곳간의 쥐님인 이상.


그런데, 아아 그런데....


 


닝기리 조또.


 


싸부인 순황이 죽자 말더듬이 한비가 진나라로 온 것이다.



이사는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이 나이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이렇게 잘나가는 이 상황에서 곳간을 그 신삥에게 내주고 다시 똥간으로 가야한단 말인가? 똥간의 쥐새끼가 돼야 한단 말인가? 안 돼. 도저히 그럴 순 없다. 방법을 찾자. 반드시 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그 신삥은 말더듬이니 이빨은 상관없다. 글빨만 차단하면 된다.



이사는 머리칼이 휘날리도록 달려 황제를 찾아갔다. 그리고 블라블라블라.


이사가 진시황을 설득한 것은 간단했다. 이사는 먼저 한비의 학술논문에 대해, 그건 엄청 찌질한 내용이며 읽을 가치도 없는 거라 폄하부터 하고, 한번 만나보시면 아실 테니 일단 만나보시라고 간했다. 그리고 진시황은 리포트를 보는 대신 한비를 먼저 면접 봤는데, 역시 이사의 말 대로였다.


 


당시에는 누구든 진시황 앞에 서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일단 덜덜 떠는 것이 옵션처럼 되어있었다. 더구나 한비는 말더듬이에 심약한 인물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면접 전 수없이 연습하고 우황청심환까지 먹고, 심호흡 크게 하고 면접 장소에 들어가 진시황 앞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이빨을 깐다고 깐 것이 겨우.


 


“피..페, 폐하...소..소..속하느은 하, 하, 한비라는 위인으로 저, 저, 저기 피, 피, 피해, 아니 폐하를 주, 주, 주우웅원 이, 일통의 여, 여, 영웅이며 화, 황제로....”


“됐다. 나가 있거라.”


 


면접 끝.


이사는 황제를 능멸한 죄로 한비를 옥에 가뒀다.


그리고....


 


“사제, 나도 미치겠네. 나도 사제를 돕고 싶은데 말야. 시황제가 워낙 어지간한 인물이어야 말이지. 사제도 알잖아. 황제는 사람 죽이는 걸 쥐새끼, 아니 파리 죽이는 것보다 더 쉽게 아는 분이셔. 그것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참 내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건데, 죽여도 그냥 곱게 죽이는 게 아니라 인두로 지지고 피를 뽑고 각을 뜨고 뼈를 발리고 어육에 식혜를 만들어 우리한테 처먹일 정도라구. 글쎄 그 고통이 어떠한지는 아직 당해보지 않아 모르지만, 아 진짜 나도 동문수학한 사제를 도와주고 싶은데 말야. 황제는 또 누가 자신의 취미생활 방해하는 걸 엄청 싫어하셔서 말이지. 아 진짜 이런 얘긴 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난 진짜 사제를 도와주고 싶어 미치겠는데....”


 


한비는 옥에서 자결했다.


또는 이사가 사약을 먹였다고도 한다.


 


각설.



진시황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미심쩍었다.


승상 이사가 순황 밑에 있었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고, 그 문하에 한비라는 뛰어난 글장이가 있다는 소문도 들었는데 정작 아직 그의 글은 못 본 거 아닌가.


 


해서 한비의 글을 가져오라 일러 읽었는데....조금 읽다가, 조금 더 읽다가, 결국 끝까지 다 읽고 감탄하며 무릎을 쳤다. 바로 제왕의 통치를 법가의 측면에서 설파한 고분(孤憤), 오두(五?) 등 후에 한비자라 칭하게 된 책으로 구절구절이 모두 진시황의 정치철학과 맞아 떨어지는 희대의 명저였던 것이다.


 


놀란 진시황은 빨리 한비를 데려오라고 했으나, 이미 자결한 뒤였다.


   


이사의 최후 역시 좋을 리 없었다.


그는 진시황이 죽은 후 생식기 없는 늙은 환관 조고한테 놀아나 시황제의 장남 부소와 명장 몽염까지 죽이고 자신 역시 그 조고에 의해 죽임 당했다. 사실 이사는, 진나라의 재상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남긴 업적으로는 말더듬이 사제 한비의 책자에 턱없이 부족하며 인지도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똥쥐가 되지 않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 쳤어도, 그를 끝없이 의식하며 살았던 삶 자체가 열등감에 가득 찬 똥쥐의 일생이었던 것이다.    



콤플렉스, 열등감이란 놈. 
 


이건 잘만 극복하면 인간을 성숙, 완성시키는 좋은 기제가 되며 성공의 밑거름으로도 작용한다. 그러나 혹 성공한다 해도 이사의 경우처럼 이게 왜곡, 굴절되면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그러니까 성장기에 친형에게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벽을 느껴 평생 그 형에게 쥐어 산다던가, 기업에 취직해 회장까지 되더라도 왕회장에겐 맨날 깨진다든가, 잠도 안자고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든가, 정치를 해도 가방끈도 자기보다 짧은 개구리처럼 생긴 놈에게 도저히 미칠 수 없다는 걸 절감한다든가 하면, 똥쥐같은 불안을 느끼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날름거리게 되고,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비상식적인 일들을 벌이게 되고, 나아가 잔인해지게 마련이다.



이사가 한비를 죽였듯이. 


 


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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