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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월요일


김지룡



회사에서 상사에게 문제를 털어놓은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모든 일에 ‘허허’ 웃는 상사가 아니라면, 자기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상사에게 보고를 하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다.



회사에 다닐 때 함께 일하는 여직원이 회사 돈 30만원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20년 전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여직원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돈을 물어내라고 하기도 딱한 처지였다. 그렇다고 나 혼자 물기에는 너무 부담되었다.



할 수 없이 과장에게 보고를 했다.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둥, 정신을 어디 팔아먹고 다닌다는 둥, 무지하게 깨졌다. 한 30분은 야단맞은 것 같다. 야단을 다 맞고 나서 과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과장은 회전의자를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


“알아서 해.”



이런 썩을 놈. 결국 그 돈은 내가 다 물었다. 그 뒤로 문제가 생겨도 과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큰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랬다. 6천만 원을 융자해주면서 담보를 잘못 받았다. 당시 6천만 원이면 웬만한 중형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상대는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사업이 어렵다보니 사기 비슷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 사람의 사업이 잘못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일이었다.


 




빨리 수습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과장에게 일체 보고하지 않았다. 혹시 문제가 발생하면 과장과 같이 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처리를 잘못한 서류에 과장의 결재 도장이 있는지 없는지 모두 확인했다. 다행히도 모두 결재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마 빠진 것이 있었다면 몰래 과장의 도장을 훔쳐서 찍었을까? 분노가 끓어오르던 당시의 심적 상태로는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항상 일을 이런 식으로 한 것은 아니다. 좋은 상사와 일을 할 때는 실수가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상사가 나 때문에 무엇인가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누가 될 것 같으면 미리미리 상의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다.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잘리더라도 저 인간하고 같이 잘려야지’라고 생각하는 부하직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이런 일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하직원의 문제를 잘 해결해주는 것은 상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세상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말썽을 부리지 않는 아이도 없다. 우리 아이들도 별 일을 다 저지른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거의 야단을 치지 않는다. 일 년에 한두 번 칠까말까 정도다. 아이를 야단치지 말라고 말하는 아동심리학자들이 많지만, 야단을 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엄마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 아내도 아이들을 무척 많이 야단친다. 내가 야단을 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엄마에게 야단을 충분히 많이 맞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한 것을 엄마보다 아빠인 내가 먼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부주의로 물건을 망가뜨렸다거나, 물이나 음식을 엎질러놓았다거나, 다른 아이를 때렸다는 말을 들었거나.


 


이럴 때 꽤나 난감했다. 야단은 치기 싫다. 아이의 잘못을 알고도 없었던 일로 넘어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알려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빠인 내가 고자질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아빠인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내가 알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 놓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을 쏟았다면 걸레로 닦으면 되고, 음식물을 쏟았다면 주워 담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걸레로 닦으면 된다. 아이가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집안 물건을 망가뜨렸을 때 새로 사는 비용의 일부를 용돈으로 물게 할 수도 있다. 다른 아이를 때렸다면 함께 사과를 하러 가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다. 아이가 음식을 엎질러 놓은 것을 보고 “누가 이랬어?” “왜 그랬어?”라고 묻는 것은 다그치는 일이다. 내가 물어봐야할 것은 “어떻게 된 일이니?”라는 말이다.


 




물기 묻은 손으로 그릇을 잡다가 미끄러진 것인지, 그릇이 뜨거운 것을 모르고 잡았다가 떨어뜨렸는지, 식탁 옆에서 뛰다가 그릇을 팔꿈치로 친 것인지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이유를 한 번 짚어보아야 아이도 생각하고 반성할 거리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종종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가 대답을 듣다보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이유라도 야단을 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진실을 이야기했을 때 야단을 치면 다음번에는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빠가 해야 할 일은 잘잘못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인격 수양하는 셈치고 화를 누르며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랬구나. 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거니?”



머리가 좋다는 것은 단순히 이른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아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머리가 좋다는 것은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정의한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아빠가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만 아빠가 대신 나서주어야 한다. 살다보면 항상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대개의 문제는 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성숙해지고 성장을 한다. 아빠가 해야 할 일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함께 의논하는 일일 것이다.


 


 


애 키우는일에 미쳐서


문화평론에서 자녀교육으로 직업을 바꾼
김지룡 (http://blog.naver.com/edu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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