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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를 추억하다

2009-12-0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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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악기 잘 다루시는 분들께 여쭤보고 싶은게 있다. 참고로 난 악기는 영 문외한이라서 전부 다 상상의 영역이다만, 그... 뭐랄까. 사람들이 가끔 밴드 같은걸 하지 않나. 기타랑 베이스랑 드럼이랑 키보드랑 보컬이랑. 그때, 술 한 잔 마시고 무대 올라가면 흥이 올라서 연주가 더 잘된다거나 뭐 그런거 있나? 뭐, 개인마다 주량이 다르고 관객들 앞에서 얼마나 긴장을 하고 그런 요소들은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혹시 정확한 연주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스테이지 올라가기 전엔 금주하는게 전 세계적인 불문율이거나 그런가? 아님 거꾸로 맥주 한 잔 마시고 연주를 하면 합주가 더 잘된다는 연구결과 같은 거라도 있을려나...(중고등학생 밴드 여러분! 실험해 보고 싶으시더라도 몇 년만 더 참으세요^^)


 


왜 이런 되먹잖은 설레발을 치냐고? 지금 난생 첨으로 술먹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뭐, 술먹고 리포트를 쓰거나 논문 교정을 본 적은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라면 끄적여 본 적은 있다만, (교수님을 제외한) 사람들 읽으라고 쓰는 글을 술먹고 깨작대는 건 난생 처음이다. 만약에 퍼져서 자기 전에 이거 탈고 하면 송고하고 내일 볼 일 보러 아침일찍 나서야 하는데, 술 깨고 방에 돌아와서 이 글 읽으면 얼마나 쪽팔릴까... 뭐, 세상 사는게 다 그렇긴 하다만. 혹시 아는가. 맨 정신에 쓴 글 보다 술먹고 쓴 글이 더 나을지도.



1. 카이스트


 


여러분은 '카이스트'하면 뭐가 떠오르시나. 대전에서 태권V 제작중이신 그분들 말고. 얼마전에 케이블에서 무슨 버라이어티 비슷한 프로그램이 방송된 걸로 아는데, 이젠 다들 그 '카이스트'를 생각하실려나.


 



 


적어도 나에게 '카이스트'란 10년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카이스트'를 의미한다(죄송하다. 2부는 안봤다). 내가 정말 미친듯이 열심히 본 한국 드라마를 두 개 꼽으라면 '카이스트' 와 '용의 눈물'인데, 그 가운데서도 카이스트는 정말 내 생애 최고의 드라마 가운데 하나이다.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그들이 대사로나마 벌여놓는 이공계열 지식의 향연에 막연한 동경과 부러움과 질시와 기타등등 여러가지가 믹스된 희한한 감정을 느꼈었고, 막연히 '나도 저렇게 미친듯이 공부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야, 우리 어제는 좀 잤냐?' '어제가 언제냐? 기억도 안난다' 뭐 이런 대사들이 어린 내겐 그렇게 폼나보일 수가 없었다.


 


... 실제로 해 보니 폼은 개뿔 죽을 맛이었지만, 그리고 그나마 취향 맞는 문과 공부니 꾹 참고 했지 미친척 공대를 들어갔으면 수학 알러지가 있는 나는 지금쯤 여러사람 괴롭게하며 지금보다 더욱 빌빌대고 있었겠지만, 어쨌든 당시엔 그랬단 말이다. 수학을 못하는 관계로 공교육 12년 동안 웬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내 컴플렉스를 자극하면서 빗나간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이 드라마에 빠져든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다. 카이스트는 당시의 청춘드라마(?) 치곤 좀 많이 '무거웠다'. 미사일 개발에 인생을 걸었다 국가에게 버림받고 쓸쓸히 죽어간 과학자 이야기도 나오고, 죽자고 연구했는데 돈 안되는 연구라고 지원이 삭감되서 살 길이 막막해진 연구원들 이야기도 나온다. 등장인물들의 사랑이야기도 마이클과 석학의 집 서빙아가씨 사랑이야기 같은 걸 빼면 거의 다 위태위태 하다. 짝사랑만 죽자고 하거나, 애인한테 '머리 좋은데 사시나 하지 왜 이런데 있냐'는 소리 듣는 박사과정 아저씨 이야기도 나오고, 뭐 한 두 커플 결국 연결이 되긴 한다만 그것도 드라마 거의 끝날때 쯤 이야기고.


 


인생이 팍팍해서 대리만족 느낄려고 티비를 켜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던 그 시절에, 지도교수가 제자에게 '이 길은 별 볼일없어. 하기 싫으면 그만둬'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는거 자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살아야지'라는 그 너무 당연한 메시지가, 그 시절을 살던 우리들에겐 참 소중했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드라마는 내 마음 한 구석에 보석처럼 남아있다. SBS!! DVD는 바라지도 않아요. VCD로 만들어서 파세요. 원고료 바둥바둥 모아서라도 전편 다 살게요. 수지가 안 맞아요? 두 개씩 살게요.


 


카이스트 예찬론을 쓰려면 한도끝도 없지만, 오늘 주제는 이게 아니니 이쯤에서 넘어가자. 혹여 이 드라마 기억하시는 분들 계시면 댓글 좀 주시라. 게임라인때 처럼 동창회 한 번 하자.


 


2. 구지원


 


그리고 난 이 드라마를 통해 이은주씨를, 아니 구지원 누나를 만났다.


 



 


우리 가족은 구지원을 '얼음공주'라고 불렀다. 초반엔 딱 그런 캐릭터였다. 남들에게 상처 받기 싫고, 내 아픈 부분 보여주기도 싫고. 고슴도치가 따로 없지. 드라마를 보면서 그렇게까지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한 건 아마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까지 이은주씨의 70% 정도는 내 마음속에 '구지원'으로 남아있으니.


 


'넌 왜 그렇게 아둥바둥 사니'


 


내가 그녀를, 그녀가 연기한 구지원을 보면서 늘 품어왔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김정현씨가 연기한 김정태와 구지원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내가 그렇게나 기뻐했던 건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거의 내 연애가 성공한 것 만큼 기뻤다. 그 날 이후로 몇 번을 술먹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카이스트 사랑의 테마를 흥얼거렸던가.


 


이게 또 명곡이다. 박상욱씨가 부른 '기다림으로'. 이게 왜 노래방에 안 들어가있나 몰라.


 


가끔은 이은주씨가 아닌 구지원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박사는 땄겠지. 취직은 잘 됐을려나. 아버지 술은 끊으셨을까.


 



3. 1999년에 묻다


 


내가 오늘 술먹고 이런 삽질을 벌이는 이유를 이제 슬슬 설명할 때가 된 거 같군. 카이스트는 1999년에 첫 방송을 타고 2000년에 종영했는데, 1999년 마지막 화 제목이 '1999년에 묻다'였다.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자면(기억에 의존한 거라 좀 뒤죽박죽일 수도 있다만) 대충 이런거다.



연말에 집에도 못가고 연구니 시험이니 고생들 하고 있는 카이스트 사람들. 만수는 지도교수인 이교수의 과목에서 D를 먹고는 그의 방식대로 절망(?)에 빠졌다가 그의 방식대로 팔팔하게 부활한다. 그때, 기계과인지 공작을 하는지 뭐 잘 기억은 안난다만 여튼 기말고사로 작품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는 과를 다니던(나 문과라고. 이해하세요)  4학년 강대욱이 작품 기획 잘 하고 모형 잘 만들어 놓고는 좀 빨리 말려보겠다고 건조 돌리다가 작품을 홀라당 태워먹는 대참사를 맞이한다. 이거... 학위논문 쓰다가 파일이랑 참고문헌 리스트 다 지워먹은거에 비교하면 되는건가? 여튼, 그에게 닥쳐온 지나친(?) 시련에 빌빌대는 강대욱을 위로하기 위해, 만수는 그가 카이스트에 입학한 해에 '10년 후 개봉'을 서원하고 뒷동산에 묻어둔 (자칭) '보물'을 파내서 개봉한다. 그 보물이라는게 철제 상자에 들어가 있던 만수의 학부 첫 학기 성적표. CDF의 향연이었다고 한다.


 


결국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버텨봐'로 정리할 수 있는 만수의 교훈에 강대욱은 맘을 다잡아 먹고...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늘 퐝당한 일들만 벌이고 다니는 민경진은 이번엔 '밀레니엄을 맞이할 특급 이벤트'로 '타입 캡슐'을 제안한다(그렇다!! 당시엔 밀레니엄이란 말이 참 유행했었다. 한 10년 가까이 지나보니 21세기든 새 천년이든 뭐 별 거 있는 건 아니다만, 여튼 당시만해도 온 인류가 새로운 밀레니엄이 어쩌고 하며 들떠있었지. 지금 생각해 보니 카이스트는 당시로선 최첨단 과학기술을 보여준 드라마 였는데, 액정모니터가 등장한건 드라마 중반 이후였던 거 같다. 휴대폰은 아예 후반부에 등장하고. 듀얼 폴더가 발매되기 이전이었지 아마). 10년후 다들 모여서 개봉하는 걸 목표로, 각자 '지금의 자기 자신'을 추억할 만한 물건들을 하나씩 넣은 타임캡슐을 만들어 묻어두자는 거였다.


 




내용물들이 참 가관이었는데, 아마 이민재는 대학원 떨어질 때 수험표(반 쯤 찢어진 거)였을거고, 추자현은 부러뜨린 자동차 모형, 강대욱은 태워먹은 작품... 뭐 거의 쓰레기통 수준이었다. 김정태의 시집이 가장 준수했지. 그리고, 민경진이 찍은 비디오테잎. 민경진이 이거 찍을때 김정태가 '야, 10년후면 테잎이 상하지 않을까?'라고 하니 민경진이 '그땐 이런거 복원하는 기술도 발전해 있을거야'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업계 관계자 여러분. 진짜 그런거 복원하는 기술이 발전됐습니까?



그런 가운데, 구지원은 민경진의 타입캡슐 제안을 거절한다.


 


'난 싫어'


 


'왜'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내 모습을 10년후 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런걸 한다면, 나 혼자 할 거야'.


 


 


4. 2005년에 묻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입대를 얼마 앞둔 2005년 2월 22일에 들었다. 솔직히, 믿고싶지 않았다.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한다. 이너넷 포털 사이트의 '속보'가 '톱뉴스'로 전환되던 그 날을. 누가 거짓말이라고 해 준다면 뭐든 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결혼 말고 뭐든.



자살이라고 했다.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녀는 왜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려 한 걸까.



난 카이스트 이후의 그녀를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한다.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아니오, 작품이나 연기를 비평하거나 할 수 있는 재간도 없다. 다만, 그녀가 카이스트를 '졸업'한 이후, 난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배우 한 명을 얻었다는 기쁨에 참 행복했다. 가끔 '왕년의 스타'라는 원로배우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 티비에 나오면 어른들이 '저 사람도 젊었을땐 참 고왔는데'라는 말들을 하시는 걸 보며, '나도 같이 늙어갈(?)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맨 아래에 바이올린을 들고 환하게 웃고있는 그녀가 이은주


 


굳이 내가 스마트 학생복에서 교복을 사 입었던 관계로 그녀의 교복모델 사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만, 어딘가 어색한 초보 연기자에서 점점 영향력 있는 중견 연기자 혹은 그 이상으로 성장해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내가 마흔을 넘기고 환갑을 넘겨도, 그리고 저 분도 나이를 먹어서 혹은 지금보다 세 배 정도 살이 쪄도, 브라운관 넘어 스크린 넘어로 그녀를 볼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50살이 넘어 어느 날 길을 걷다 그녀가 나온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하면, 그것이 그녀가 주연을 한 영화도 아니오 아름다운 아가씨가 아닌 깐깐한 노파 역으로 나온 것이라 해도, 난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달려갈텐데.


 


 그녀는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5. 2009년의 마지막 달


 


카이스트의 아해들이 타입 캡슐을 묻은지, 이제 딱 10년이 지났다. 그들은 그 타임캡슐 개봉을 핑계로 대전의 어느 술집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할려나. 올해의 달력을 보면서 늘 나를 미소짓게 했던 상상이었다. 벌써 10년이 지났단 말이지.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하던 한 여자를 그들도 추억할까.


 


 올 해 여름 즈음엔, '그 분이 살아 계셨다면 용기를 내서 팬레터라도 한 장 썼을 텐데. 10년이 지났는데 타입캡슐 여는거 라도 같이 참석하시라고, 농담 삼아' 라는 생각을 하며 아쉬워했다. 그러다 가을 즈음에, 난 참 씁슬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은주씨가 살아 계셨어도, 난 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추억했을까.


 


그 팬레터, 진짜 썼을까.


 


글쎄다... 솔직히 뭐라 명확히 대답할 말이 없다.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혹은 그렇게 가신 분이니 그분에 대한 추억도 아름답게 보여지는 거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고. 다만, 그분이 가고 난 다음에 이렇게나 아쉬워 할 거 였으면, 살아계실때 좀 팬 답게 잘 해둘걸이란 생각이 어마어마하게 들기는 했다. 개봉관도 좀 찾아가고, DVD나오면 군말없이 사고(다운 좀 그만 받고!!), 이너넷에서 흰소리 하는 아해들 있으면 조용히 관리자한테 고자질해서 삭제도 좀 하고. 아님 예찬론을 길게 써서 팬레터랍시고 좀 보내보던가. 떠나고 나신 다음에, 이런 글을 쓴들 무얼 하나(그래도 한 잔 마시니 키보드 두드릴 기력은 생기는군. 술이 좋긴 좋다).



6. 평화를 평화를 평화를


 


오늘 글은 사실 오래 기다려온 글이다. 언젠가 2009년의 마지막 달이 찾아오면, 나 혼자 읽고 지울 일기장에라도 이런 글을 쓰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때마침 딴지에서 블로그라는 공간을 확보해 주신 덕분에, 아마도 두자릿 수 이상의 분들이 읽으실 글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이제 팬레터는 영원히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이렇게라도 고마웠다는 말을 하는게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은주님께 꼭 전해드리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정작 쓸려고 하니 몇 마디 밖에 기억이 안 나는군.


 



 


당신은 비록 스스로를 잊고 싶어 했을지 몰라도, 당신이 떠난 뒤에도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줬던 당신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 말이 들리는 곳에 계셨으면 좋겠다.



이제 겨울이 왔으니, 지난 가을에 내가 느낀 의문점에 슬슬 해답을 내 놓을 시간이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지. 그게 가족이던, 좋아하는 연기자던, 학교 후배던 간에. 후회하면서 사는건 참 힘든 일이니 말이다.


 


2009년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독자제위도 모두 건강하시길.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