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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조선여인열전 - 황진이

2004.5.4.화요일
딴지 편집국





 황진이... 소설도 많고 연구도 많네









대충... 황진이...


지난호에 실린 <맹모삼천지교는 없다>에 이어 앞으로 <다시읽는 조선여인열전>이란 고리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제목으로 연재에 나선다. 고심 끝에 첫빠따로 황진이(黃眞伊)를 골랐다. 신장개업인데 그래도 좀 깔쌈한 인물이 나와야 될 거 같아서다. 아마도 끝빠따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 되시겠다.


황진이에 대해선 소설도 허빠 많고 연구도 디따 많다. 먼저 소설을 보면, 이태준의 <황진이> 이래 정한숙·박종화·안수길·유주현·정비석·최인호·김남환·최정환 등이 황진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고, 최근 작품으론 김탁환의 <나, 황진이>가 있다. 글고 홍명희의 손자인 북한작가 홍석중이 지은 <황진이>도 서점에 나왔다(북한소설 치곤 성애묘사가 파격적이란다. 에로물에 닳고닳은 남한독자들에겐 순정소설 수준이겠지만). 암튼 소설 쥔공으론 가장 많이 나온 인물 아닐까 싶다.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리라. 연구도 이루 헤아리기 힘든데... 역사학쪽 보담은 국문학쪽 연구가 훨 많다(그거 소개하다간 날샌다).


어디 소설이나 연구뿐이랴. 오는 6월 17~20일 국립국악원에서 정가극(正歌劇) <황진이>를 무대에 올린단다. 이전에도 이영조의 창작오페라 <황진이> 공연이 2000년엔 북경에서, 2003년엔 모스크바에서 펼쳐졌다. 서라벌국악예술단에서도 2001년 금강산과 2003년 평양에서 여성국극 <황진이>를 무대에 올린 바 있고, 황진이 고향인 개성공연도 앞두고 있단다. 명성황후 시대가 가고 바야흐로 황진이 시대가 올 조짐이다.



<크렘린궁에서 펼쳐진 <황진이> 공연
 


 독자들이여 도와주시라


이미 잘들 아시겠지만 돗자리 실력 뻔하다. 황진이 디빌려면 조선시대 기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하다못해 음주가무라도 달통해야 한다. 그치만 전부 꽝이다. 이것저것 자료와 논문을 디비긴 하지만 어찌 전문가들에 미치겠는가. 또 나중에 <춘향전>도 쫌 나오는데, 이쪽도 띵이다. 알지도 못하는 넘이 왜 손대느냐 하시면 할말 없지만, 이왕 시작한 거 어쩌겠는가. 강호제현들의 아낌없고 거침없는 비판과 조언을 엎드려 바라는 바이다. 특히 국문학 전공자들이여~ 많이들 도와주시라.



 <백과사전> 디비기


여러분은 황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 우선 인터넷 <백과사전>부터 디벼보자. 돗자리나 여러분이나 어떤 인물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다. 얼마나 그 내용이 정확한지 한번 따져보자. 만만한 게 <다음>과 <네이버>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도 비까비까하다).


 다음


조선 중기 시인 / 개성(開城) 출신 / ①본명은 진() / ②기명은 명월(明月) / ③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로 태어나 / ④어머니에게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 ⑤15세 무렵 동네 총각이 그녀를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자 기생이 되었다고 한다 / ⑥뛰어난 시·서()·가창 재능과 출중한 용모로 당대 문인·석유(碩儒)들을 매혹시켰다 / ⑦10년 수도의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고 / ⑧석학 서경덕(徐敬德)을 꾀려다 실패한 뒤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등 많은 일화가 전한다 / ⑨종친(宗親) 벽계수(碧溪守)와 깊이 교제하며 독특한 애정관을 시로 표현하였다 / ⑩서경덕·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 기발한 이미지와 세련된 언어구사 등으로 조선시조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그녀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산은 옛 산이로되> <어져 내일이여> 등 6수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네이버


①일명 진랑(眞娘) / ②기명(妓名) 명월(明月) / 개성(開城) 출생 / ③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 ④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서()·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 ⑤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 ⑥문인(文人)·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 ⑦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 ⑧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 ⑨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 <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 <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 <영초월시(初月詩)> 등이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던 내용과 얼마나 비슷한가. 하지만 위의 내용 대부분이 문제스럽다. <백과사전>의 내용이 황진이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대변한다면, 그건 오류 투성이라 할 정도다. 그거 한번 까발려보자.


근데 <황진이편>은 한번에 못끝낸다. 생각보다 무쟈게 복잡시렵다. 돗자리 새대가리 뽀솨진다. 욕 직싸리 먹을 각오도 만땅이다. 아마 3회 정도는 써야 할 거 같다. 갈 길이 멀지만, 이번에는 황진이의 성명(姓名)과 기명(妓名)만 딴지걸련다.
 


 황진이는 황진이인가?


뭔 개떡같은 질문이냐 하시겠지만... 정말 이 황()이고 이 진이(眞伊)냐... 그 뜻이다. 황진이에 대한 자료는 디륵디륵한데, 대표적인 것들에서 姓名 부분을 추려보면 다음 표와 같다.
























































































번호


자료


저자


생몰연대




1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허 균


1569-1618


 


眞娘/眞


2


어우야담(於于野談)


유몽인


1559-1623


 


眞伊/眞娘


3


송도기이(松都記異)


이덕형


1566-1654


 


眞伊/眞娘


4


죽창야사(竹窓野史)


이덕형


1566-1654


 



5


수촌만록(水村漫錄)


임 방


1640-1724


 



6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


정재륜


1648-1723


 


眞伊


7


조야휘언(朝野彙言)


김시민


1681-1747


 


眞娘


8


이순록(二旬錄)


구수훈


1760 무렵


 


眞伊


9


중경지(中京誌)


김이재


1767-1847




10


금계필담(錦溪筆談)


서유영


1801-1874



眞/眞娘


11


소호당문집(韶濩堂文集)


김택연


1850-1927




요 표를 보면 대충 담과 같은 점이 드러난다.


⑴ 황()이란 은 18세기 이후 자료에 나온다(9/10/11).


은 진이(眞伊)(2/3/6/8), 진낭(眞娘)(1/2/3/7/10), 진() (1/4/5/9/10/11) 등으로 나온다.


⑶ 황진이(黃眞伊)란 姓名이 나오는 자료는 없고, 황진(黃眞)(9/10/11)으로만 나온다.


대충 요런 틀을 갖고 썰을 풀어보자. 글고 표에 나온 것들 말고도 고만고만한 자료들이 있다만 대충 비시무리하다. 위의 자료들 중 특히 중요한 건 허균의 <성옹지소록>, 유몽인의 <어우야담>, 이덕형의 <송도기이>·<죽창야사>다. 허균·유몽인·이덕형은 황진이와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살았고, 특히 허균은 서경덕의 제자였던 아버지 허엽을 통해 그녀에 대해 들었을 거다. 또 이덕형은 자신이 개성에 갔을 때 황진이의 친척인 노인으로부터 직접 그녀에 대해 들었단다. 그러니 <성옹지소록>과 <송도기이>·<죽창야사>의 사료적 가치가 제법 높다.



미스 황진이 선발대회도 있다


우선 부터 따져보자. 진()·진이(眞伊)·진낭(眞娘) 요로콤 3가지로 나온다. 근데 낭()은 아씨란 뜻이니 진낭은 이 아니라 진(이)+아씨라는 애칭이리라. 예컨대 <춘향전>을 보면 춘향(春香)을 향낭(香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 애칭인 진랑은 제껴놓자. 글타면 진이랑 진이가 남는다. 뭐가 맞냐? 잘 몰겠다. 굳이 찍으라면... 진이다. 이유는?


㈀ 위의 표를 보면 눈치 까시겠지만, 진이라고 나오는 자료보다 진이라고 나오는 자료가 쫌 많다. 진랑이라고만 나온 <조야휘언>을 빼면 6(진):4(진이)로 간신히 판정승 되신다. 특히 사료적 가치가 높은 허균의 <성옹지소록>에 진이라 나오고, 이덕형의 <송도기이>에선 진이, <죽창야사>에선 진이라 나와서 2(진):1(진이)로 턱걸이 판정승 되신다.


㈁ 진이보담 진이라고 더 많이 나오는데 왜 황진이 아니라 황진이라고 알려졌을까. 뻔하다. 황진인지 황진이인지 이거 구별하지 쉽지 않아서다. 姓名이 황진이면 당연히 황진이로 불렸을 거고, 황진이라도 발음상 황진이라 불리게 된다. 이게 구전(口傳)되다보면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진이든 진이든 별 문제 아니다. 걍 둘다 고루 알아두시자.


오히려 문제는 이다. 다시 위의 표를 보자. 18세기 이전 자료에는이 나오지 않다가 김이재의 <중경기>에서야 황이란 이 나온다. 김이재는 1823~26년 개성유수로 있으면서 <중경기>를 펴냈으니, 황이란 이 문헌에 나오는 건 19세기에 들어와서다. 김이재는 아마도 개성에서 구전되던 얘기를 듣고 황진이라 한 거 같다.


황진이와 동시대인의 증언을 들었던 허균의 <성옹지소록>과 이덕형의 <송도기이>·<죽창야사>에는 어째서 황이란이 나오지 않을까. 무쟈게 궁금타만 지금으로선 설명할 길이 없다. 그치만 몹시도 수상쩍지 않나.


황진이의 姓名이 뭔지 명쾌하게 풀어내지 못해 죄송시렵다. 하지만 황이란 도 진이란 도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점은 그런대로 드러났다(물론 이 황으로 나오는 18세기 이전 자료가 나오면 돗자리 썰은 완전히 꽝된다).


더불어 또하나 주목할 점이 있다. 위의 표를 보시라. 황진이라 나오는 자료는 하나도 없다. 끽해야 황진이라고만 나올 뿐이다. 요컨대 황진이는 출처불명의 姓名이란 뜻이다.
 


 기명(妓名)이 명월일까?


진이를 이라 한다면 그건 본명(本名)일까 기명(妓名)일까. 진이를 기명이라 보는 이는 없다. 왜냐면 황진이 기명은 명월이라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네이버> 모두 글케 나온다(1②/2-②).


근데 말이다. 황진이 妓名이 명월이란 증거는 없는 거 같다. 적어도 돗자리가 본 자료엔 나오지 않는다. 굳이 꼽는다면 그 유명한 벽계수 얘기뿐이지만, 거기에도 명월이 妓名이란 말은 없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읊어줬다는 그 한시(漢詩)다. 벽계수가 황진이한테 개망신 화사하게 꽃핀 얘기는 구수훈의 <이순록>과 서유영의 <금계필담>에 나온다. 두 책의 내용이 쫌 다르고, 원문도 쫌 틀린다만, 간만에 한번 읽어보자.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명월만공산(明月滿空山) 찾아내기


돗자리는 중고딩 때 "명월이 만공산하니【明月滿空山】" 부분에서 명월이 황진이를 상징한다고 배웠다. 글고 황진이의 妓名이 바로 명월이라고도 말이다. 과연 그럴까? 명월이 황진이를 상징한다고 해서 그게 곧 기명이 될까? 이거 말고 황진이 기명이 명월이란 근거가 있으면 알려주시라. 독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겠다. 그치만 근거가 달랑 이거뿐이라면 황진이의 기명은 아직은 알 수 없다.
 


 진이가 기명(妓名)일 가능성은?


근데 말이다. 어쩜 황진이 기명은 명월이 아니라 바로 진이가 아녔을까. 기생은 本名이 아닌 妓名으로 알려지기 마련이다. <사랑의 트위스트> 부른 가수는 이영춘이 아닌 설운도고, <옥경이> 부른 가수는 조방헌이 아닌 태진아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근데 최근 "조선 중종때의 명기 황진이로 추정할 수 있는 기생의 이름이 적힌 조선시대 공문서가 발견"됐단다(<중앙일보> 2004. 3. 25). 이름하야 <송도관편관청공문서(松都官編官廳公文書>! 그 문서의 사진이 박태상, <북한의 문화와 예술>(깊은샘, 2004)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거 스캔해서 올리고 싶다만, 저작권법 걸릴까봐 쫄려서 못하겠다. 이해해주시라.


그 문서 보면 개성관청 소속 비()의 명단이 나온다. 그 중에 우리 진이도 꼽사리껴 있다. 이들이 모조리 관기(官妓)는 아니겠지만, 한결같이 섹시단아한 이름들이니 함 훑어봐주시라(개인적으론 취옥과 설매가 젤 맘에 든다).


설운(雪雲)·추옥(秋玉)·취단(翠丹)·오정(五貞)·이매(二梅)·별애(別愛)·월단(月丹)·봉화(鳳化)·★진이(眞伊)·몽애(夢愛)·월정(月貞)·단정(丹貞)·천애(賤愛)·계단(桂丹)·성애(聖愛)·연이(蓮伊)·계금(桂今)·장정(長貞)·후매(厚梅)·취옥(翠玉)·설매(雪梅)·수예(水禮)


이 자료를 발견하신 분께서는 요기 나오는 진이를 황진이로 보신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개성+관비+진이=황진이 아니겠나. 관기(官妓)도 관비(官婢)니 말이다.


허나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이 문서가 언제 작성됐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옛분들은 뒷넘들 고생시키기로 작정하셨는지 시기를 달랑 간지(干支)로만 나타낸 경우가 많다. 이 문서가 쓰여진 해는 갑술년(甲戌年)이다. 근데 어느 갑술년인지 어케 아나. 60년마다 돌아오는 갑술년이 한두개냐.  


근데 요기 나오는 진이가 정말 황진이라면 그 갑술년은 1514년 아님 1574년이다. 어느 경우라도 문제다. 황진이 생존시기는 담번에 따져보겠다만, 1514년이면 간난이이요 1574년이면 할무이다. 황진이가 80살까지 살았다는 자료도 있다만... 암튼 요기 나오는 진이가 황진이랑 동명이인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치만 만에 하나라도 그 NYON이 그 NYON으로 밝혀진다면 진이는 妓名으로 봐야 한다. 기안(妓案)에 기명을 올리지 왜 본명을 올리겠나.
 


 황+진이=姓+妓名?


진이가 妓名이라면 과연 그녀를 황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즉, 기생을 姓+妓名으로 불렀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단 뜻이다. 진이의 이 황이란 것과 황진이라 불렀다는 건 별개의 문제다. 가수 비의 이 정이라 해서 정비라고 부르지 않듯이 말이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도 아직 안본 주제에 속단키 어렵다만, 이런저런 자료에 나오는 기생 중 姓+妓名으로 불린 사례는 본 적이 없다(있으면 후딱 알려주시라. 쪽팔려도 기쁘겠다).


아! 글쿠나. 우리 춘향이가 있었구나. 춘향이 姓名은 성춘향(成春香)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춘향 엄니는 그 유명한 퇴기(退妓) 월매(月梅)요 춘향이 역시 관기다. 그럼 춘향은 틀림없이 기명이다. 이몽룡이나 변사또가 妓名 냅두고 本名 불렀을 리 없으니 말이다. 만약 이때도 본명을 불렀다면 대체 기명은 어따 쓰려고 맹글었겠는가.


그럼 성춘향이라 했으니 姓+妓名의 사례가 되겠네. 따라서 황진이가 姓+妓名이라 해도 이상할 거 한탱아리도 없겠구나. 정말 글타면 돗자리도 후련하겠다. 그치만 의심덩어리 돗자리... 아직 개운치 못하다. 대체 어느 자료에 성춘향이라 나오는지 확인을 못해서다. 이거 국문학도 여러분이 열나게 도와주셔야 한다.


돗자리가 대충 들쳐본 <춘향전> 중엔 南湖居士란 분이 쓴 <성춘향가(成春香歌)>(1915)에서만 성춘향이라 나온다. 근데 이 작품은 1915년에 나왔다. 너무 늦다. 지금 황진이라 나오는 18~19세기 자료 갖고도 딴지거는 판에 1915년 자료를 어케 고대로 믿겠는가.









세월 좋은 몽룡과 춘향


아시다시피 <춘향전>은 이본(異本)이 무쟈게 많아 120여 종도 넘는단다. 이걸 언제 어케 다 디비냐. 춘향이가 실존인물이든 가공인물이든 여부를 떠나서, 성춘향이란 姓名이 나오는 <춘향전> 있음 갈쳐주시라. 돗자리는 춘향이가 성참판의 서녀였단 자료도 못찾겠다(월요일에 근처 대학도서관 가서 찾아보겠다만... 그걸 언제 다 디비누 ㅠㅠ).


암튼 요거 빨리 좀 확인됐음 좋겠다. 만약 돗자리 썰이 맞다면, 백번 양보해서 이 황이요 妓名이 진이인 기녀가 있었다 하더라도 황진이란 기생은 사라지게 된다.


물론 이럴 수도 있다. 진이나 춘향은 本名이자 妓名이라고 말이다. 그럼 문제는 간딴시리 해결된다. BoA의 本名藝名이 모두 보아이듯 말이다. 글타면 황진이나 성춘향이라 불러도 시비걸 넘 없어진다.


암튼 이런저런 문제가 있긴 하다만 일단 이 글에서는 계속 황진이로 쓰련다. 그래야 피차에 덜 헷갈릴 거 같아서다. 요컨대 결론은... 황진이란 姓名이 몹시도 의심스럽다만... 진이가 本名인지 妓名인지, 본명이자 기명인지도 혼란스럽다만... 걍 황진이로 부르겠단 거다. 열받으실 독자분들... 죄송시렵다. 그치만 이것도 나름대로 소득 아닌가. 이런 거라도 트집잡아야 분량 메꾼다. 글고 어떤 인물을 디빌 때 그 姓名부터 따지는 거 지극히 당연스런 거다. 이해해주시라.


솔직히 오늘 쓴 부분 딩딩하고 밍밍했다. 무쟈게 죄송시렵다. 담부턴 좀 나아질 거다. 풍류명사 킬러 황진이랑 뭇 남정네들의 개차반같은 활약상이 봄날 개나리처럼 펼쳐지니 말이다.



 


딴지 역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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