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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개발에 편자 혹은 베복에 투팩

2004.5.1.토요일
딴따라 딴지


지난 90년대 미국의 힙합계를 주름잡았던 가수가 있었지. 정상의 뮤지션으로 활약하다가 어느 날 괴한의 총탄에 쓰러져 생을 달리한 그의 이름은 2pac(Tupac)이야.

 

West Coast라고 부르는 미국 서부 지역의 대표적 갱스터랩 뮤지션인 그는 훌륭한 리듬, 멋진 사운드와 함께 의미 있는 노랫말로 평판이 높았지. 이런 까닭에 겨우 25살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버린 그였지만 생전의 그를 사랑했던 많은 뮤지션들이 그를 위한 헌정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이 말이지.

 

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애정은 아직도 식지를 않아서, 혹은 아직도 상업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때문에 2pac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음반이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죽기 전보다 죽고 나서 더 많은 앨범이 출시된 참으로 기이한 내력의 뮤지션이다. 그를 닮고 싶어하는 뮤지션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이곳 한국 땅에도 조금 있는 듯 하다. 사기성이 농후하긴 했지만 어쨌든 지난 2001년에는 <Tribute to 2pac>의 제목을 내건 음반이 한국 뮤지션들의 이름으로 발매되기까지에 이르렀다.

 

앞의 한국판 헌정 음반에 참여했던 대다수는 단순하게 말해서 언더 인생들인 반면에 며칠 전에는 오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어느 그룹이 망자(亡者)인 2pac과 듀엣으로 음반을 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는 신문에는 서태지나 조PD, 혹은 이현도 같은 이름 대신 베이비복스라는 이름이 뚜렷이 인쇄되어 있었다. 순간 아, 한류 스타 베이비복스가 이제는 세계시장에 진출하려나보다,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런데 세계 시장이 무슨 애 이름인가, 하는 생각이 그 뒤를 이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지금의 베이비복스는 누구보다도 유명한 가수다. 아이들부터 아저씨들까지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도대체 어떤 노래가 그들 노랜지는 몰라도 그들의 존재만큼은 늘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누군가가 스포츠신문과 맺고 있는 딱 그만큼의 거리다. 최병렬이 건재했다면 한나라당 비례대표 1번으로 금배지를 달수도 있었던 효리를 제외하고 베이비복스보다 더 자주 스포츠신문에 등장하는 연예인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직업이 가수이긴 하지만 음악 이야기로 베이비복스가 신문에 등장하는 일도 물론 거의 없다. 대신 기사란 게 그저 다 이런 식이다. 최악의 가수·연예기사 뽑는다, 저 벗었어요, 김이지 입은 듯 안 입은 듯 등등.




 
 

 

이러한 베이비복스가 [엑스터시(Xcstasy)]라는 이름도 야리꾸리한 타이틀을 내세우고 2pac과 듀엣을 했다면서 요란뻑적지근하게 발표한 최근 앨범이 바로 <라이드 웨스트(Ride West)>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West-Coast 힙합의 상징적 존재인 2pac의 인기에 슬쩍 편승해서 어떻게 한 껀 해보겠다는 속셈인 게다. 그들의 뜻대로 된 건지 어쩐 건지는 몰라도 음반 출시 며칠만에 국내에서는 벌써 한 껀이 성사되고 말았다. 문제는 그게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데, 사연인즉슨 2pac 팬들의 항의 소동이 잇따르고 있다는 게다. 항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베이비복스가 2pac을 두 번 죽였다는 것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2번 트랙에서 4번 트랙까지를 모두 차지하며 세 번이나 우려먹은 [엑스터시]라는 노래는 2pac의 유작 랩핑 샘플을 구매하여 만든 노래다. 사운드의 배치로만 따지면 2pac과 베이비복스가 사이좋게 랩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대화 과정에서 2pac이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욕설은 모두 삭제되고 베이비복스가 원하는 2pac의 이야기만이 흘러나온다. 좋게 말하자면 2pac이 베이비복스를 위해 헌신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베이비복스가 2pac의 작품을 난도질하고 인격을 모독한 셈이다. 돈주고 산 다음 멋대로 찢어 붙이고서는 그걸 듀엣이라고 선전해 대니 2pac의 팬들이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거세게 항의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실 베이비복스의 2pac 샘플링은 누가 뭐라 할 구석이 없는 깔끔한 비즈니스다. 2pac의 목소리가 담긴 샘플을 정식으로 판권을 사서 자기들 맘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누구처럼 들키면 그때 구입하는 비열한 모습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2pac의 팬들은 그저 열 받기만 할 뿐 다른 방법이 없다. 서태지가 이재수를 방법했던 것처럼 베이비복스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저 2pac의 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삭제 당한 2pac의 욕설을 되돌려 주는 일 뿐이다.

 

베이비복스는 2pac 외에 제니퍼 로페즈의 노래도 하나 매입했다. 스포츠신문에서는 로페즈와의 공동 작업으로 보도되었지만 실제 음반을 들어보면 그냥 로페즈의 [Play]라는 음악의 MR(곡의 반주 부분만 녹음된 것)을 사온 조선 처녀들이 괜찮은 노래방에 가서 재미로 따라 부르고 녹음해 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로페즈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살리고 싶었는지 원곡의 키(Key) 그대로 녹음을 했는데 로페즈와는 달리 중저음 보이스가 부실한 베이비복스에게는 이 키(Key)가 좀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노래 역시도 5번 트랙에서 7번 트랙까지 세 차례 우려먹었다.

 

 

이렇게 해서 [인트로], [엑스터시] 3트랙, [Play] 3트랙. 벌써 트랙이 7개가 지나갔다. 한편, 나머지 트랙들은 영 어색한 중국어 발음과 일본어 발음 이외에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는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이런 걸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음반을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건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획사에서도 주제를 파악하고서는 베이비복스의 음반을 사면 2pac의 일대기가 담긴 DVD타이틀을 덤으로 얹어주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로 2pac의 DVD에 베이비복스가 덤으로 얹힌 것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베이비복스의 과장법은 아무리 호객용이라고 해도 지나친 감이 있다. 지금 이야기한 2pac이나 로페즈와의 인연에 대한 호들갑도 그렇고 미국의 별 볼 일 없는 작곡가가 베이비복스와 함께 작업했다는 이유로 닥터 드레라는 유명한 뮤지션 사단의 대표적 작곡가로 둔갑하는 것도 그렇다. 물론 예전에 세또래에서도 활약한 바 있던 베이비복스의 한 멤버가 31살의 나이를 21살로 속여서 활동한 일마저 있었던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뭐 앞의 거짓말들은 차라리 귀엽기까지도 하지만.

 

옛말에 개발에 편자라는 것이 있다. 비슷한 표현으로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것도 있는데 모두 경우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도모하는 이들을 비웃을 때 주로 쓰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2pac과 로페즈가 등장하는 베이비복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자꾸만 저와 같은 옛말이 머리 위로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베복에 투팩, 정말로 개발에 편자다.

 

그런데 혹시 2pac을 개발, 베이비복스를 편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딴따라 딴지 음악만담가
김토일(449tong@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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