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고] 연극이 끝나고 난 후

2004.3.12. 금요일
딴지일보

이 연극에 식상함을 느낀지 오래다. 관객의 입장에서 즐거움이든 휴식이든 어떤 방식의 유익을 기대하며 객석에 앉아 있어봤지만 그 연극이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닌 철저히 배우들의 개인적 이익에 봉사되어진다고 생각되어졌을때, 그리고 그 내용조차 눈과 귀를 동시에 버리게 하는 환멸이었을때 내가 취할 수 있었던 선택은 외면이었다.

그러나 어찌 홀가분 할 수있었으랴. 객석을 뛰쳐 나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어찌됐든 나는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현실은 정치라는 연극에 의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리라. 그것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강박이었고 그리하여 비록 무대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으며 꾸벅 구벅 졸더라도 가끔 실눈을 떠가며 연극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희망을 포기한지는 오래됐지만 최소한 내 삶에 부당함만을 주지 않기를 바라면서나는 객석에 앉아 최소한의 감시를 유지한체 정치에서 자유로운 최대한의 유희를찾기위해 골몰해왔었다. 정치라는 연극의 속성이 모든 껍데기를 제거하고 나면 각자의 이익에 충실한 땅따먹기 게임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면서 내가 배우들에게보이는 관심이 쓸데없이 과도했다는 생각마저 들어 버렸고( 지 앞가림 챙기는데 바쁜 타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는 나 대로 놀겠다는 생각이, 때때로 정치에 너무 무감한 것이 아니냐는 지인의 핀잔을 무시해 버릴 만큼 굳어져 버린 요즘이었다.

그런데....

이제 저들끼리 놀라고 놔둔 배우들이 객석으로 뛰쳐들어와 관객들을 극장에서 쫒아내기까지 한다.  합법적인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은, 그리하여 관객 전체가 합의한 연출자를 단지 저들의 시나리오대로 음직이겠다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 쪽수적 무력을 과시한다. 관객 무시와 관객 모독의 차원을 넘어 관객 퇴출이라는 연극사 전대미문의 폭력 사태를 행사한다.

그리하여 알아서 니들끼리 놀되 내 자리는 지키고 있겠다는 나의 소박한 생각도박살이 나 버렸다.

연극판이 개판이 되든 소판이 되든, 그리하여 배우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는 연출자를 배우들이 단합하여 몰아내겠다는 작당까지도 눈 감아 줄 수있고, 또 이와 뜻을 달리하는 다른 배우들과 패가 갈려 삐꺼덕 거리는 것 까지 정치적 연극 행위로 관대할 수 있다 했건만 이제 관객을 번쩍 들어 극장 밖으로 내팽개쳐 버렸다. 이쯤 되면 저 들은 자본주의 무대에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물질에 의해 대가리 속 색깔이 수시로 변할 수 있는 3류 정치적 배우가 아닌 원시적 깡패집단 으로 그 속내를 노골화 시킨 것이다.

최소한 관객들에 의해 캐스팅 되어지고,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책임감과 도덕성, 아니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지켜야할 눈꼽 만큼의 상식을 기대했던 것이 나의 실수였다면 지금 지사 회환이 무슨 소용이랴.

오히려 내 돈 내고 들어온 극장에서, 아니 은유의 차원을 바꿔 그 돈 보다 더 한 관객의 권리에 의해 뽑은 내 연출자가 퇴출 지경에 이르고 결과적으로 내가 저 극장에서 쫒겨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때부터는 회환과 외면의 차원이 아니라 내영역 지키기의 정당한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

어차피 이 지경까지 간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 연극의 후유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는 명약관화하다. 너도 나도 한결같이 관객을 위하여, 혹은 이 무대를 위하여 라고 명분을 찾을 것이 뻔하고, 관객들끼리 다시 몇패로 나뉘어 멱살잡이를 하게 될 것 뻔하며, 언론은 이 연극에 대해 각자의 이익에 맞춰 서로 다른 소리를떠들어댈 것이 뻔하고, 그 소용돌이 만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하여, 그리고 한번도 있어보지 못한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하여 관객, 아니 국민들은 혼란에 빠져있을 것이 뻔하다. 주식 시장의 변화와 민생치안, 안보와 외신의 음직임이 계속 뉴스를 장식할 것이고..

그리고 다시...이 모든 것이 국민을 위하여 라는 수식어로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부터 나는 그 국민에서 빠져야 겠다. 그 거창한 집단 명사의모호함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지금 나는 관객으로서 내 빼앗긴 권리를 찾겠다는 자기 보호 본능에 충실하고자 한다.  자기 사욕을 위해 남의 의자를 뺏아간 놈을 보며 눈물만 흘리고 있다면 그건 팔푼이다. 193명에 의해 뺏긴 의자는 몇배의 쪽수로 뭉쳐 다시 찾아오면 그만이다. 아니 덤으로 넘들의 의자까지 뺏아오는 것이 사필귀정이요 자업자득에의 충실이다. 나는 지금 그 만큼만 소박하고 싶다. 그리고 그 만큼만 똑똑하고 싶다.

어차피 이 연극에 식상함을 느낀지 오래다.

그리하여 이 연극의 파국이 무척이나 충격적이라고 해도 내 놀라움과 슬픔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땅에서 살아온 내 역사가 이 보다 더 파란만장한 연극을 수도 없이 펼침으로써 내 속에 내성만을 키워줬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내 일상에 어떤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 만큼 정치라는 연극이 나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땅이라는 극장안의 관객으로서 역사는 나에게 내성과 함께 전투력도 함께 키워줬다. 하기에 오히려 나를 이렇게 키워준 이 역사에 감사한다.

그러므로 연극이 끝난 후 남은 것은 나의 빈자리와 한 가지더..내 자리를 찾기 위한 불타는 전의일뿐이다.

 
국민은 강팀이다 조직 위원장
뚜벅이 (ddubuk@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