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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견] <어둠소그 댄서>, 난 불편하다

2001.3.19.월요일

딴지 영진공 자유소견 관리부
 




 
 

딴지 영화진흥공사 부설 "자유소견란"에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씨부림을 접수하고 있는 바, 니덜의 그러한 씨부림에 적극 호응하기 위해 본 공사 수뇌부는 각종 우수소견을 지속적으로 발굴/공개할 예정이다

 

아래 소견은 최근 개봉하여 잔잔한 논란을 야기했던 라스폰 트리에의 <어둠 속에 댄써>를 보면서 필자 스스로가 느낀 찌뿌둥텁텁함의 정체를 심층적으로 파헤친 소견으로 그 전문을 공개한다.

 

 

 

(이하 소견 내용)

 

 

 

 

 

 

<어둠소그 댄서>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선 전 할 말이 없슴다. 국내에서 100% 디지털로 찍은 작품들, 내용은 뭐같아도 테크닉에서만큼은 "저게 디지털로 찍었다고라고라?" 싶은 뛰어난 질감을 보여주는 영화도 있지만, 이 영화는 답답거칠구리구리하죠.

 

 

영화특성상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거친 화면을 쓰고, 일부러 거친 카메라 워킹을 구사한 것이겠다, 싶으면서도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런 식의 선의로 봐주기도, 제가 라스 폰 트리에란 이름 앞에서 쫄아서 자발적으로 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근데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영화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전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 개봉 때, 네, 저는 꼽냐아트홀 극장에서 봤습니다. 보구 울었습니다. 근데 뭔가 찝찝한 기운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깨달았습니다. 그 찝찝함과 불쾌함의 정체를... 그리고 라스 폰 트리에 이 씨벌놈! 하고야 말았습니다. 쏙아따... (zot가 없는 저로선 조때따~! 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심까.)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잠깐 비교를 해보도록 하죠.

 

 

<브레이킹 더 웨이브>나 <어둠소그 땐서>나, 영화는 일단 재밌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빨려들어갑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여자쥔공이 무쟈게 학대당합니다... 감독한테... 이야기의 플롯한테...

 

 

그렇심니다. 제가 무지 불편하구 화가 나는 건 그 지점입니다.

 

 

쥔공, 어찌 보면 모자란 백치고 어찌보면 이보다 더 순수할 수 없는 여자들입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여주인공이 결혼식날 신랑한테 화장실에서 날 가져요, 하구, 여기서?라고 묻는 신랑한테 "여기도 충분히 아름다운 걸요" 하고 말할 때 그 표정, 그 대사, 우와, 정말 순수 그 자체 아님까. ... <어둠소그 땐서>에서 비요크가 "저두 비밀을 말해드릴께요. 이래요... 저래요... 돈 거진 다 모았어요" 할 때 비욕의 그 표정... 진짜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표정 아님까.

 

 

두 영화는 이런 여주인공을 극한 상황으로 빠뜨립니다. 그리고 이 쥔공들은 넘덜이 보기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극단적인 희생을 감수함으로써 타인을 구원합니다.

 

 

그게 불구가 된 남편이건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이건... 그거 보고 눈물 만빵 흘리며 전 또 이러케 생각함다.

 

 

아... 똑똑한 척 잘난 척 하는 난 사랑의 사자두 모르는 냉혈잉간이다...
사랑한다믄 저 정도는 되야 하는 거 아녀...
저거야 말로 진짜 사랑 아닌가...
잉간이 사랑 함 땡기려면 저렇게 해야지...

 

 

헉, 근데 함정은 여기에 있었던 검다. 저는 그 순간, 옛날에 쒸네21에 인터뷰와 함게 실린 그의 사진, 그 중에서도 그의 얼굴, 그 중에서도 음영이 깊어 잘 보이지 않는 눈과 그의 입가에 떠 있던 그 미소가 생각나는 검다. 그 앙.마.적.인., 그리고 새.디.스.틱.한. 결국 관객을 매저키스트로 만들어버리는.

 

 

순수한 여인의 고귀한 희생이라는 모티브, 이게 관객 중 하나인 저한테는 "늬들이 사랑을 아냐? 그럼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겠냐? 특히 너거들, 똑똑한 척 하는 뇨자덜 말야! 늬덜보단 내 여쥔공들이 진짜 잉간답지 않냐?" 하는 것 같단 말임다.

 

 

이게,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라고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킹덤> 시리즈와 <어둠소그 땐서>만 본 제 오해와 편견이길 부디 바라는 바임다.
 

 

 


 

 

 

어찌보면,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유럽대륙에서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유럽 인들의 정신상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가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심다.

 

 

 

전쟁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됐던 사람들, 철저한 피해자가 아닌 한은 잠정적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죄책감,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죄씻음의 행동들... 어쩌면 라스 폰 트리에는 이걸 순수하고 약간은 모자른 여주인공들의 극단적인 희생이란 걸 통해 은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제가 아리까리한 건, 과연 이러한 주인공들을 보는 라스 폰 트리에의 시선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더없이 악마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이 여인들을 찬양하는 것일까, 조롱하는 것일까. 저는 헷갈립니다. 시침 뚝 떼고 찬양하는 것 자체가 조롱하는 것 같이도 보이고, 대놓고 조롱하는 걸로도 보입니다.

 

 

 

 

 

 

 

 

 

흐흐흐흐....

 

 

 

 

 

 

 

아마도 이에 대해 힌트를 주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건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쥔공이 극중에서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미묘한 웃음과 윙크(?)를 짓는 그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조롱하는 것이다, 라면, 비평가 일군의 "트리에는 파시스트다!"라는 비난의 주장이 더이상 증거가 필요없이 증명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예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우째 가해자이기만 하냐, 굽신대는 거 우스운 짓거리다~ 우리도 피해자다~ 그러니 일본인들이여 죄책감느낄 필요 읍따... 란 논지와 비슷할 수 있다는 거시죠.)

 

 

그게 아니라, 그런 여성들을 찬양하는 거시라 해도 문제는 남슴다. 왜 여성은 바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주변인, 특히 남성(남편이건 아들)을 위해 자기 삶을 버려야만 하는 검까. 희생이 나쁘단 건 아닙니다. 저두 제 싸랑하는 남자친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방법 밖에 엄따면, 희생하고 싶따... 할 수 있을랑가는 모르겠지만... 이라구 생각함다. 근데 희생을 "강요"하기 시작하믄, 그때부터 그건 폭력이 되는 검다.

 

 

제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을 너무 천박하게만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심다. 근데 이런 식으로 분노가 나믄서도 대놓고 분노하지 못하는 건, 이러케 화가 난다는 거 자체가 트리에의 전략에 말려든 거란 생각도 들기 때문임다.

 

 

그니까, 이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며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뇨자는 지도 모르게 매저키스트가 되는 거구(희생 이데올로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난 시로~ 하구 격렬하게 반응해두 결국 매저키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갖구 시로마로 하는 거니까... (남자관객들은 암래두 여쥔공한테 감정이입을 하는 거시 아니기 땜에 좀 더 거리를 두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다 맘편하게 볼 수 있겠지만여.)
 

 

 


 

 

 

이건 홍상수 영화를 볼 때랑 비슷합니다. 여자를 대놓고 조롱하고 비꼬고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홍상수 영화... 근데 홍상수한테 손꾸락질하기 시작하믄, 그건 그야말루 홍상수 페이스에 제가 말렸다는 소리가 됨다.

 

 

 

글구 당연한 수순으로 저만 똑똑한 척 하는 녀자, 홍상수가 영화 안에서 그러케 비꼬구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지 혼자 다르고 지 혼자 감성 예민하구 지 혼자 똑똑한 줄 아는, 사실은 한심한 여자가 되어버리는 검다.

 

 

 

 

 

 

 

 

 

나를 한심한 여자로 만드는 저 표정

 

 

 

 

 

 

 

그 매커니즘이 홍상수 영화나 트리에 영화 안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슴다. 그 매커니즘의 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결국 우리 사회에서 작용하는 또다른 이데올리기 때문이겠구요. (그걸 마초성과 폭력성이라구 규정했다간 돌맞을 거 같슴다.)

 

 

암튼... 저는 트리에의 영화가 참 불편합니다. <어둠소그 땐서>는 일 때메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거라 그러쿠, 트리에가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유로파>의 경우 일부러 찾아서 볼 생각이 없슴다. 그러니 저는 트리에의 영화에 대해 더 떠들면 안됩니다.

 

 

모... 이걸 쓴 건, 트리에의 영화에 이런 식으루 반응하는 뇨자들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임다. 모, 뇨자들의 반응 같은 거야 얼마나 중요함니까만, (뇨자들이 좋아하는 장르는 상품성도 못 갖고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당하기두 하지여.) 암래두 저는 zot 대신 가슴이 달린 뇨자가 아님까.

 

 

거기다 우악스럽게 목소리 큰... 그런 저한텐, 트리에의 영화는 무쟈게 새디스틱하고, 폭력적이구, 그렇다는 거져. 여지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구, 홀리듯 중독되듯 끝까지 완전히 빨려들어가믄서도, 마치 여쥔공이 아니라 제가 강간당하구 맞구 오해당하구 멸시당하는 듯한 느낌... 그리구 그걸 다들 고귀한 희생이라구 찬양할 때 느끼는 당혹감...

 

 

이거, 제가 너무 몰입을 해서 그런 검까? 결국, 제가 트리에의 페이스에 말린 거 맞죠? 저만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인가요?

 

 

참고루, 이 영화가 일본에서는 무지막지한 성공을 했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예견한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일본애덜이 좀 매저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다는 편견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씀다만.

 

 

한국 사람덜도 마찬가지져. 일본애덜보단 좀 덜하긴 한데... 누가 자기한테 폭력 행사하믄 "쒸바라 왜 때려! 니도 맞아봐!" 하는 게 아니라 눈 부릅뜨고 다 맞구서 상대방한테 미안한 맘 들게 하려구 하는 거... 전 이런 매저키스트 메카니즘이 박정희 군사정권에 길들여진 탓이 아닌가, 라구 우겨봅니다.

 

 

 

 

 

딴지 영진공
공인 위촉위원 자유
(
invinoverita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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