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문화] 뉴 밀레니엄 카피를 알려주마 

2001.1.11.목요일
딴지 생활정보연구소

 






 
 

 

 

기래 이거야, 이거

 

싸게 나온 월세 전세방 어디 읍쓰까 하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할 때나, 주머니가 얇아서 짝퉁이라도 뭐 싸게 나온거 없나 찾을 때, 혹은 앤에게 졸라 폼나는 선물을 하나 사주고 싶은데 아무리 석달 열흘 입은 빤스를 뒤집어 봐도 동전 하나 안 나와, 물기어린 눈으로 알바할 데를 찾을 때나 비로서 뒤적거리게 되는 신문 비스무리 생겨묵은 게 있다.

 

동네 버스정류장 부스 한켠에 언제나 오독하니 덩그러이 널부러져 있으면서 사람손을 애태워 기다리는 그건 바로 빈대시장, 세로수, 너희동네, 일방통행로 등과 같은 생활정보지… 

 

시원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고딕 활자나, 팔등신 연예인의 도발적인 몸매사진, 재미있는 만화… 이런 것들은 단호히 배격하며, "한사람 추가 5천원!"하며 내뱉고는 문을 닫아버리는 여인숙 아줌마 톤으로, 존댓말 개무시 정신에 입각하여 지극히 간단하고 무미건조한 정보만을 전하면서도 궁한 사람들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는데...

 

"로칼 꼬뮨 인포메이숑 디스트리뷰팅 페이퍼", 우리말로 동네생활정보지라 일컬어지는 이 신 장르의 신문 구인광고란에 최근 소리소문없이 새로운 형태의 광고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구로만은 도저히 판독할 수 없으며 반드시 전화를 걸어봐야만 그 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 졸라 아방가르드틱하며 허벌나게 뉴 웨이브적인 구인 광고... 울 나라 광고사에 한 획을 긋는 구인광고란의 일대 혁명이건만 업계에서는 인정치 않기에 본지가 화들짝 나섰다. 글고, 정체에 걸맞게 다음과 같이 이름붙였으니, 그건 바로... 

 

두구두구두구둥…

 
 



 
 

UHA (Unidentified Help-wanted Advertisement)
- 미확인 구인 광고 -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열혈 독자들의 빗발치는 분석 의뢰를 받아왔던 본지, 축적된 공력을 바탕으로 이제 독자 너덜도 어리둥절 놀랄 "UHA- 미확인 구인광고"의 그 화려한 분석의 바다로 열분을 안내하고자 한다. 가자.

 
 

 분석대상의 선정과 추출방법 






 
 

 

분석 대상의 늠름한 자태

 

이번 분석에 있어 조사 대상 생활지 선정과 사례 추출은, 전체 합산 나이 928세를 자랑하는 본지 전분야 우수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본 기자가 단독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빙점 이하로 떨어진 기온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 최첨단 전자 시스템이 갖춰진 본지 사옥 앞 전봇대 옆의 생활정보지 부스에서 제호별로 한 부씩 추출, 사례 분석에 돌입하였다. 

 

 분류 및 조사방식

 

객관적이고 엄정한 조사를 위해 얼지 않고 눈맞지 않아 건조 상태가 양호한 것만을 골랐다. 오래 묵어 시효가 지났거나 변질변색된 것은 배제하였다. 정보유형의 분류에 엄정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발행시기도 중시하였다. 광고정보의 즉시성을 중시하였기에, 아무리 얼지 않고 파손되지 않은 거라도 시효가 지난 건 배제하였다. 

 

유형별 사례 분리를 한 다음 개별적으로 해당 업체에 직접 전화를 거는 방식을 취했다. 주관적 추측을 배제하고 사후보복을 미연에 방지코자, 본 기자 특유의 음성 변조법으로 상대와 대화나누며 실체를 파악하였으며 이에 대한 허용 오차는 ±3%이다. 자 그럼 진짜로 시작한다.

 
 

 UHA(미확인 구인광고) 이전 시대

 

 일반 타입






 
 

 

본기자 여기 갔다가 진짜로 빠삐용될 뻔했다. 훌쩍.

 

예로부터 계속되어온 구인광고의 전통적인 유형이다. 모집 직종, 자격, 급여, 업체, 연락처 등이 다 나와있으므로 하고 싶은 사람만 연락하면 된다. 인간적인 호기심이나 궁금증 등 정서적 측면은 완전 무시되고 추가적인 상호 커뮤니케이션 등은 철저히 배제되는 지극히 기계적인 광고의 전형이라 하겠다. UHA가 본격적이기 전 시대로, 대부분의 구인광고가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 회사의 정체 : 광고 그대로임. 추가설명 불필요
 


 청유형






 
 

 


오오, 끓는다. 뜨거운 피!!

 

이 업체의 대표는 이전에 건설업체를 운영하다 IMF로 사업에 실패, 갖은 고난을 겪고 재기에 성공했다 한다. 그래서 건설업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예와서, 찾으세요.동지여러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두개의 느낌표까지 실로 예의바르며 인정이 넘치는, 그러나 단호한 사업 의지를 표출한다 하겠다. 그리고 아울러 그렇게 성공한 자신을 교훈 삼으라는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나보라…정말 전화 걸고 싶어진다. 

 
 



 
* 회사의 정체 : 건축 자재 생산업

* 모집직종 : 생산 관리직, 현장근무직
 

 

 

 지역정서 강조형








 
 

 

 


① 경상도 전용

 


② 전라도 전용

 

우리가 남이가 하는 지역정서에 기대는 형태이다. 인정이 메마른 각박한 객지 생활에 그래도 믿을 것은 같은 고향 출신 뿐이라는 신념을 바닥에 깔고 있는데, 급여나 업체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도 뭐 어떤가, 같은 고향인데. 우선 믿고 전화를 하란 말이다.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UHA로의 진입 초기 단계라 할 수 있겠다.

 
 



 
* 회사의 정체 : 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플랜트 사업체. 중소기업

* 모집직종 : 관리직
 

 총평

 

이렇듯, 기존의 광고는 모집 직종, 자격(성별, 연령), 급여, 업체, 연락처 등이 때로는 소상히, 때로는 적당히 눈치깔 수 있는 것으로, 직관적이며 무미건조한 정보를 간결하게 전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세상이 점차 IQ보다는 EQ를, 지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퓨전의 시대로 접어듬에 따라, 생활광고도 점차 다음과 같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UHA의 유형

 

1. 유혹형








 
 

 

 


① 샤론스톤 버전

 


② 일용엄니 버전

 

과연 이 광고만 보고 무슨 일을 할 사람을 찾는 건지 감잡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린 뇨자 아이들이 띄워보내는 원조교제 광고? 커피배달업? 본격적인 UHA로 손꼽히는 이 광고는 최근 자주 등장하는 유혹형 광고 되겠다. 달콤한 커피항과 야릇한 톤으로 인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후다닥 전화를 걸게 만들고 있는데, ①의 경우, 읽는 순간 몸에 착 달라붙는 하얀 드레스의 여자가 담배를 물고 다리를 고쳐 꼬는 모습이 떠오르는 반면, ②는 보는 순간 바로 커피사발을 든 일용엄니가 생각나지 않는가? 

 
 



 
* 회사의 정체 :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 모집직종 : 일주일 교육 수료후 관리직에 종사할 유경력자
 

 

 

2. 단도직입형

 

 

긴 말 필요없다. 무슨 일이든 좋으니 일을 하겠다는, 물에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생활정보지를 보는 사람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취직을 권하고 있다. 존댓말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 존중 사상에 입각한 진한 휴머니즘이 묻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깨를 다독이며 말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가불이 가능하다는 점을 마무리 샷으로 강조하고 있다. UHA의 가장 간결한 형태이다.

 
 



 
* 회사의 정체 :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 모집직종 : 생산직 (남자선호)
 

 

 

3. 구호형








 
 

 

 

 

 

우선 마빡에 구호를 배치하는 형이다. ①형은 괄호를 두개나 겹으로 사용하면서 메아리 효과를 동원, 쓰여있는 글이 마치 들리는 것 같은 공감각적 효과를 유발, 보는 사람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 업체의 사장님에 따르면 일부 연세드신 분들이 샤프 생산 공장이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간혹 있다한다. ②의 경우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 자주 등장하였던 구호를 약간 표절한 듯한 인상을 강하게 준다. 역경을 딛고 새롭게 시작할 의지가 있다면 한 번쯤 연락해보기를 권하고 싶은 광고 되겠다. 개량형 UHA라고 할 수 있다.

 
 



 
* 회사의 정체 : 중소 생산업체. 기계부품(①, ② 공통)

* 모집직종 : 관리직 약간명(①), 생산직 약간명(②)
 

 

 

4. 개인취미강조형

 

 

 

처음 이 광고를 대했을 때 본 기자, 볼링장과 관련된 업무일 것으로 연상했다. 그러나 이 업체의 사장님이 볼링 선수 출신이라 여가 시간에 볼링을 자주 하는 관계로 취미 생활을 아울러 함께 할 직원을 찾는 것이라 한다. 참고로 볼링을 하지 못해도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형태의 광고는 실제 이 업체에서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 볼링이라는 말에 취업 의지를 굽히게 되는 역효과도 예상된다. UHA가 약간 퇴보한 듯한 인상을 준다.

 
 



 
* 회사의 정체 : 중소 기업체. 하청생산업. 을지로 위치

* 모집직종 : 생산직 
 


5. 승용차 강조형














 
 

 

 

① 도리어 질문형

 

② 유행가 표절형

 

 

 

③ 원시형

 

④ 타인 검증형

 

최근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광고되겠다. 공통적으로 멋, 끼, 열정을 강조하고 있으며 승용차 소지라는 기본적 조건과 연령적 중후함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인지라 오해의 소지도 많이 내포하고 있다.

 

①은 이러한 광고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자 그 의문을 역으로 질문, 사람들에게 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으며 ②의 경우는 업체 대표가 좋아하는 유행가를 표절한 것으로 하나의 광고란에 가장 많은 더하기(+) 기호가 들어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③은 이러한 승용차 광고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며 ④은 괜찮대요라고 남의 말을 전하는 듯한 간접 화법을 이용함으로써 소득에 대한 객관적 검증 과정을 이미 거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아울러 보기에 따라서는 단순접대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일을 로비스트의 수준으로 격상시킨 사장님의 배포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UHA의 정수라 하겠다.

 
 



 
* 회사의 정체 : 가전제품 제조회사

* 모집직종 : 신설 대리점 개발과 관련, 업체 로비 담당자. 백화점 담당 및 신상품 홍보요원
 

 

 

8. 오라버니형












 
 

 

 

 

 

 

 

술집 웨이터를 찾는 걸까? 절대 아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자신감을 유도하여 적극적인 취업 의사를 타진하는 광고형태다. 나이드신 젊은 오빠,나이든 젊은이라는 기준이 불명확하고 구별이 모호한 표현을 과감히 사용하여 주늑든 구직자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하고 있다. 아울러 ③번과 같이 취업안전지대를 강조함으로써 자신감을 더욱 회복시켜 주고 있다.

 
 



 
* 회사의 정체 : 내수용 전자제품 및 일반 전자기기 생산업체.

* 모집직종 : 조립라인 생산직
 

 

 

9. 호기심 자극형






 
 

 


세상에나...

 

앞서 소개된 승용차 강조형과 같은 내용의 광고이나 그 부류의 광고들이 상호 모방이나 아류의 범주에 머물고 있음을 개탄, 과감히 주제어는 뒤로 배치하고 소득을 강조함에 있어 놀라운이라는 단어를 중복 사용, 차별화를 꾀한 광고 되겠다.

 

처음 경제적인 조건에 놀란 화자는 이후 사회적 직업의 다양함에 놀라게 되고 이러한 만족감은 나아가 자기만족의 나르시시즘에 이르게 되는, 즉 경제적 결과의 형이상학적 승화 과정을 연쇄법을 이용,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업체의 사장님은 실제로 그리 놀랄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귀띰해주셨다. UHA의 최고봉이라 할만한 광고다.

 
 



 
* 회사의 정체 : 대리점 신규 개설 업무. 로비 및 접대.

* 모집직종 : 대리점 개설 관련 업무 유경험자
 

 

 
 

 마무리

 

대충 이 쯤에서 예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이미 감잡았겠지만 이러한 정체불명 구인광고, 즉 UHA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UHA의 특징

 


* 되도록 업체 및 업종 관련 정보는 밝히지 않는다

*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직접적이기보다는 암시적이다

* 과감한 도전적 표현을 이용한다

*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발적 표현을 쓴다

* 어떠한 기존의 광고 규칙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자, 이제 마무리하자.

 

이상에서 살펴본 광고들이 지금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정보지의 정체불명 구인 광고, UHA들이다.

 

본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본 기자는, IMF와 연이은 경제 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하고 활동 능력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 무대책으로 놀고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제조업, 특히 중소업체들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심각한 구인난에 처해있음을 새삼 가슴아프게 생각하게 되었다. 

 

본 기자에게 우리 제조업의 현실을 폭넓게 설명해주신 한 업체의 대표는 광고에 제조업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힌다면 하루에 전화 한 통도 받기 힘들기 때문에 유치한 걸 알면서도 이렇게 광고를 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자조섞인 말로 하였다. 아무 생각없이 쉽게 지나쳐 버리는 불과 40자 안팎의 이 짧은 광고에도 우리의 경제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광고로 이겨내려는 이 땅의 모든 중소업체 대표들에게 본 기자, 이 지면을 빌어 격려의 말씀을 전하며 더욱 참신하고 명랑유쾌한 카피로 더 많은 UHA를 만들어서 명랑광고사회 구현을 위해 졸라 날아가고 있는 본지의 이상 실현 의지를 가일층 북돋워주시길 부탁드린다.

 

 

 

 

피에쑤 : 방금, 비싼 스포추지나 찌라시류를 거부하고 보다 저렴한 생활정보지를 통해 남여상열의 빠굴 세계로 알듯말듯 초대하는 광고를 게재하는 일부 세력들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는 바, 본 기자, 고건 다음에 조사해 까발려 주겠다. 진짜로 이상. 

 

 2000. 1. 11
명랑광고천국 애드토피아 건설하느라 빠질 거 다 빠진
딴지 생활정보연구소 조교 빨간고추
(redpepper@ddanzi.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