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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조선여인열전 - 황진이 3탄

2004.6.8.화요일
딴지 역사부



 


 


  황진이, 서경덕을 꼬셨는가









절씨구~ 담번에 또 나온댄다!


황진이 2탄 때리고 무쟈게 오래 땡쳤다. 혹시라도 기다린 독자들이 계셨다면 정말 죄송스럽다. 먹고 살자고 용쓰다 보니 글케됐다. 서둘러 용서하시고 진도 밀고 나가자. 3탄으로 끝내려 했는데 아무래도 한번 더 쏴야겠다.


자, 다시 황진이랑 서경덕 얘기다. 황진이는 정말 서경덕을 꼬셨을까. 이들이 함께 나오는 자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략 담과 같은 것들이다.


A. 평생 화담의 위인(爲人)을 사모하여 반드시 가야금을 들고 술을 걸러 화담의 농막(農幕)【】에 이르러 즐거움을 다하고 갔다【盡驩而去】. 황진이는 늘 말했다. "지족선사는 30년 면벽(面壁)을 했지만 역시 내게 무너졌는데, 오직 화담선생은 가까이한 지 몇 년이 지났으나 끝내 난잡하지 않았으니 이분이야말로 참 성인이시다【每言 知足老禪 三十年面壁 亦爲我所壞 唯花潭先生 處累年 終不及亂 是眞聖人】(<성옹지소록>)."


B. 화담처사 서경덕이 뜻이 높아 벼슬하지 않고 학문이 빼어나다는 말을 듣고 그를 시험하고자 끈으로 허리에 <대학(大學)>을 묶어매고【束條帶挾大學】 가서 절하며 말했다. "제가 듣자오니,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남자는 가죽띠를 매고 여자는 실띠를 맨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학문에 뜻을 두어 실띠를 매고 왔습니다【妾亦志學 帶絲而來】." 선생이 웃으며 그녀를 가르쳤다【先生而誨】. 진이가 밤을 틈타 친근하게 하기를 마등(摩登)이 아난(阿難)에게 붙어다니듯 했다. 몇일이 지나도 화담은 끝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어우야담>).


C. 일찍이 화담선생을 사모하여 늘 문하(門下)에 나가아 뵈었는데, 선생 또한 물리치지 않고 더불어 담소했으니【嘗慕花潭先生 每造謁門下 先生亦不爲拒 與之談笑】어찌 절세의 명기가 아니리오(<송도기이>).


A와 C에서 황진이가 서경덕을 사모(思慕)했다고 번역했지만 원문 모()가 꼭 남녀간 사랑을 뜻하진 않는다. 존경의 뜻인 경모(敬慕)로 번역해도 그만이다. 그럼 황진이는 정말 서경덕을 꼬셨는가. <성옹지소록>과 <송도기이>를 보면 그게 쫌 애매하지만 <어우야담>(일명 <여우마담>)을 보면 글케 나온다. 마등이 아난에게 붙어다니듯 서경덕을 따라 댕겼단다. 아난은 석가모니의 제자로 얼짱이어서 여자들이 줄줄 붙어 댕겼는데 특히 마등이 스토커였다. 그 정도로 황진이가 서경덕을 좇아 댕겼다니... <어우야담>에 나온다는 게 쫌 찜찜스럽다만 긍가보다 하고 넘어가자.


허면 황진이는 왜 서경덕에게 Dash했을까. 지난 2탄에서 말했다. 황진이는 명사 킬러다. 사랑하지 않더라도 명사만 골라 작살내는 재미로 사는 에이스급 기생이다. 서경덕? 이미 명성 자자한 도학자 아니신가. 이런 분 아작내서 지 화려한 캐리어에 한 줄 더 써넣으려던 거다.


근데... 우리 화담 쉐임, 만약 황진이가 육탄공세로 밀고 드왔는데도 이를 물리치셨다면 왜 그러셨을까. 명사 킬러 황진이의 얄팍한 속셈을 이미 꿰뚫어보셨을까. 아니면 부인을 뜨겁게 사랑해서? 그치만 집 떠나 농막 지어놓고 제자들이랑 고담준론 풀어댈 때부터 이미 가정은 팽개친 거나 마찬가지다.


<연보>에 따르면, 서경덕은 19세 때 태안 이씨 이계종의 딸과 결혼했다. 서경덕은 이씨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근데도 그는 다시 첩을 맞아들였고, 그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다. 이거 뭐라 탓할 바 아니다. 조선시대인데 뭐 그럴 수도 있지. 그치만 서경덕이 여자에 대해 결벽증이 있었다고 보기는 쫴까 글타. 첩을 둔 뒤 결벽증이 생겼는지도 몰겠다만...



  그 스승의 그 제자-토정 이지함


암튼 서경덕은 남자의 정절도 디따 중시했다 보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도 서경덕의 제자란다(<토정비결>을 이지함이 썼는 지도 확실치 않다). 근데 이지함에 얽힌 이런 얘기가 떠돈다. 서경덕의 제자로 있으면서 이지함은 하숙을 했다. 어느 날 미모의 하숙집 여주인이, 남편을 외출시킨 뒤 자고 있던 이지함을 깨워 교태를 부린다. 뭔가 낌새를 채고 돌아온 남편은 방밖에서 사태를 지켜본다. 이지함은 의관을 갖춘 뒤 부인을 준엄하게 꾸짖고, 쪽팔림에 사무친 여주인은 울음을 터뜨린다.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남편은 즉시 서경덕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자기 집으로 뎃구온다. 서경덕이 와서 보니 들은 그대로다. 그러자 서경덕은 방으로 들어가 이지함의 두 손을 잡고,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이제 돌아가란다(<토정유고> 하).


황진이가 지한테 안 넘어가는 넘을 캡짱으로 보듯이, 서경덕은 여색에 안 넘어가는 넘을 댓빵으로 본 거다. 뭐 그만큼 실천이 어렵단 뜻이겠지만, 사제간에 여자 결벽증은 같았나보다. 어쩌면 서경덕이 이지함한테 보고 배운 건지도...



  황진이는 왜 <예기>를 갖고 갔을까


얘기가 딴데로 샜다. 다시 미스 황으로 돌아오자. <어우야담>을 보면 황진이가 처음 서경덕을 찾아갈 때 끈으로 허리에 <대학>을 묶어 매고 갔단다(조기 위의 B를 한번 더 찬찬히 읽어보시라). 이게 대체 뭔 소린지 몰라 직접 <예기>에서 찾아봤다. <예기> 제12편 내칙(內則)에 일케 나온다.


아이가 자라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오른손으로 먹도록 가르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남자아이는 예라고 빨리 대답하도록 가르치고, 여자아이는 예라고 느리게 대답하도록 가르친다. 남자아이는 가죽띠를 매게 하고, 여자아이는 실띠를 매게 한다【】. 6살이 되면 수()와 방명(方名)을 가르친다.









쟤.. 또 왔네...


아쒸~ 대체 앞뒤가 전혀 연결되지 않네. <예기>에서 말하는 건 알라들이 6살이 되면 남자는 가죽띠, 여자는 실띠를 매줘라 이건데(어떤 번역을 보면 "남자는 가죽주머니, 여자는 비단주머니를 찬다"라고도 한다)... 나이 퍼먹을 대로 퍼먹은 황진이가 실띠 매고 대학 끼고 와서 뭐 어쩌잔 건가. "저 역시 학문에 뜻을 두어 실띠를 매고 왔습니다"란 말이 돗자리는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서경덕은 중종의 상례를 놓고 상소를 올리려 했을 정로도 <예기>에 달통했다. 그런 그가 이 말을 듣고 웃었다면 혹시 "무식한 nyon..." 뭐 이런 건 아녔을까. 암튼 <예기>에 밝으신 분 있으면 이 부분 좀 설명해 주시라(이거 눈치 깔려구 몇 일간 무지 고생했다. 그치만 실패했다).


그럼 왜 <대학>을 끼고 갔을까. 서경덕은 이미 18세부터 <대학>을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평생 화두인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개념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이종호, <화담 서경덕>, 일지사, 1998, 26쪽). 그러니 서경덕에게 배우겠다고 찝쩍댈 만한 텍스트는 제대로 고른 셈이다.



  서경덕, 황진이를 제자로 받아들였나


서경덕과 황진이가 사제지간이었단 얘길 심심찮게 듣는다. 글타 한들 뭐 이상할 거 없다만 그래도 함 따져보기나 하자. 황진이가 서경덕이 사는 농막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건 사실인 듯 하다. 글타고 곧 사제지간이 되는 건 아니다.


위에 나온 A.<성옹지소록>을 살펴보자. 황진이는 "가야금을 들고 술을 걸러 화담의 농막에 이르러 즐거움을 다하고 갔다"고 한다. 뭐 서경덕 수업방식이 자유토론이었을 테니 술 마시며 할 수도 있겠지만 가야금은 아무래도 미심쩍다. 공부 끝나고 뒷풀이였거나 아예 공부 제끼고 놀자판일 수도 있겠다. 서경덕 제자들인들 얼씨구나 아녔겠나.


그치만 이게 황진이가 서경덕 제자였단 증거는 안 된다. 교수님과 제자들이 고담준론 주고받을 때 서빙하는 단골주점(단란주점 말고) 새끼마담 다혜가 곧 그 제자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성옹지소록>에는 사제지간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없다.


담은 B.<어우야담> 차례다. 황진이가 실띠를 매고 <대학>을 갖고 가니 서경덕이 "웃으며 그녀를 가르쳤다【先生而誨】"네. 문제는 다. 돗자리는 가르치다로 풀었다만 타이르다의 뜻도 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부분을 타일렀다로 번역하기도 한다.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다.


그치만 가르쳤다라 번역해도 이것만 갖고 곧바로 사제지간이 성립되진 않는다. 수학 교수님 사는 아파트에 동네 고딩놈이 와서 문제 좀 풀어달란다. 그거 갤차줬다고 둘 사이가 갑자기 사제지간이 되는가. 즉 서경덕이 황진이에게 <대학>을 갤차줬다 쳐도 일회성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


이제 C.<송도기이>를 뜯어보자. 황진이는 서경덕의 문하(門下)에 나아가 함께 담소(談笑)했단다. 여기서 문제는 문하와 담소다. 문하라 하면 스승의 밑 또는 스승의 집을 뜻한단다. 마치 둘 사이가 사제지간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근데 담소는 또 뭐냐. 학문적 토론을 담소라 했을까. 뭐 아무래도 다른 제자들에 비해 학문빨이 쫄릴 황진이를 위해 서경덕이 쉽게 쉽게 웃으며 소프트하게 눈높이교육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담소는 어색하다. 즉, <송도기이>는 서경덕과 황진이가 자주 담소를 나눴음을 보여줄 뿐이다.


술집 마담이라도 야간학교에 댕길 수 있음을 우리는 봉숭아학당 황마담을 통해 확인했다. 글타. 황마담이 김미화나 박미선 제자라는 건 분명하다. 그치만 우리 개성골 미쓰황은 사정이 쪼까 다르다. 만약 서경덕의 제자였다 하더라도 청강생에 지나지 않았을 거다. 이지함처럼 서경덕의 농막 근처에 숙소를 잡아놓고 공부를 하던 학생들과는 당근 차이가 있다. 게다가 서경덕이 황진이를 제자로 인정했다는 것과 황진이가 서경덕의 제자로 자처했다는 건 분명히 다르다.









우정출연... 황마담


결국 돗자리는 황진이를 서경덕의 제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일케 쓰고 나니 좀 캥기기도 한다. 황진이랑 뭔 원수를 진 일이 있다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가. 김탁환의 <나, 황진이>(푸른역사, 2002), 251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바로 돗자리 놓고 하는 말 같다.


꽃못에 들어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동학들과 어울려 학문을 논한 일은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으면서... 황모는 늙어 죽을 때까지 남정네를 유혹하는 기생에 불과했다고 보고픈 사와 대부들의 바람을 모르지 않지만...


근데 황진이는 틈만 나면【] 서경덕을 찾아가서 뽕빨나게 놀다 왔단다【盡驩而去】. 얼씨구, 본업은 내팽겨쳤구나. 뭐 콧대 높고 잘 나가는 에이스의 특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황진이의 인기도 시들하고 시간도 널널했단 뜻일 수도 있다. 이쯤이면... 거의 월매 수준의 퇴기(退妓)로 봐야 한다. 어쩌면... 아직도 지가 건재하단 걸 보여주려는 승부수는 아녔을라나.


그치만 황진이의 퇴기 여부는 아직 뭐라 단정하기 힘들다. 황진이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또 이런저런 남정네들과 스캔들 일으킨 시기 역시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담번 4탄에서 함 건드려볼란다.



  황진이, 서경덕에게 뭘 배웠나


그걸 돗자리가 어케 알겠나. 처음 <대학>을 끼고 갔으니 그거야 배웠겠지. 그 담은 전혀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다. 근데 왜 뭘 배웠나 시비를 거냐고? 황진이가 서경덕에게 뭘 배웠든 그게 황진이에게 무슨 영향을 끼쳤는가 궁금해서다. 즉, 서경덕 만난 뒤 황진이가 어케 달라졌나 하는 점이 궁금하단 뜻이다. 많이 배웠으면 뭐하나. 배운 대로 살지 못하면 꽝이지. 유부녀가 꼬실 때 넘어가면 안 되는 거 누가 모르나. 맘하고 몸이 따로 놀거나 아예 나쁜 쪽으로 같이 놀아서 문제지. 그치만 이지함은 그 유혹을 물리쳤기 때문에 스승에게 칭찬 받지 않았던가.


만약 황진이가 시종일관 난()하고 탕()하게 살았다면 서경덕의 진정한 제자라 할 수 있을까. 기생 처지에 오는 손님 마다할 수 없으니 요조숙녀처럼 살 순 없겠지만, 명사 킬러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다면 서경덕에게 대체 뭘 배웠단 건가. 또 그런 제자를 그냥 놔둔 서경덕도 이상치 않나. 유부녀의 유혹에 안 넘어간 제자 이지함을 칭찬한 건, 바람난 유부녀의 처신이 잘못이란 뜻 아녔겠나. 황진이가 서경덕을 스승으로 섬기면서도 스승처럼 지행합일(知行合一)하며 살지 못했다면 대단할 것 개뿔도 없쟎은가.


황진이의 말년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고 유언도 자료에 따라 다르다. 이건 담번에 쫌 자세히 디벼보겠지만, <숭양기구전>에 나오는 유언 중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천하의 남자들이 스스로 아끼지 못하게 하고 결국 이에 이르렀으니... 천하의 여자들로 하여금 나로써 경계를 삼게 하라【我爲天下男子不能自愛 以至於此... 令天下女子 以眞爲戒】"


이 번역은 "황진이 관련 자료"(<동방학> 3,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1997)에서 옮긴 거다. 뭔 소린지 애매하다. 지 땜시 세상 남정네들이 망가졌단 뜻 같기도 한데... 만약 글타면 황진이는 오랫동안 킬러 생활을 계속했단 뜻인데... 대체 서경덕에게 뭘 배웠단 말일까.


(담탄엔 황진이랑 썸씽을 주고받은 개나리들을 디벼보겠다. 질질 끌어 몹시 죄송시렵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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