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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커트 코베인은 살해당했다?

2002.11.25.월요일

딴따라딴지 미스테리 진상조사반
 

지난 주, 미국 시애틀 출신의 얼터너티브 롹 밴드 너바나(Nirvana) 최초의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었다.









베스트 앨범 <Nirvana>, 2002


그러고보니, 밴드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이 저세상으로 간 지도 벌씨로 8년이나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 너바나 최초의 요 베스트 앨범 발매를 기회로 전세계 유수의 음악잡지들이 앞다투어 특집기사를 마련하며 난리를 친 데다가, 당 앨범에 너바나의 미발표곡이 수록되어 있다는 소식에 수많은 너바나 팬들 또한 뜨거운 호응의 난리 부르스를 쳐댄 걸 보면 지구촌은 다시 한번 너바나 열풍에 휩싸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대중음악 역사의 한 장을 스스로 열고 스스로 닫은 인물이었으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본 기자나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열분들이 그와 동시대를 살았었다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과 거의 동급의 무게감으로다가 대중음악 역사의 쥔공 노릇을 했던 이의 음악을 리얼 타임으로 들었었다는거. 나중에 우리 애기들이 커서 눈망울 반짝거리며 "커트가 살아 있었던 90년대초는 정말 멋졌나요?"라고 물어올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이 역사적으로다가 중요한 밴드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의외로 소홀하게 다뤄졌다는 거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커트의 열혈 팬들조차 따라 자살했으면 자살했지, 그의 죽음이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채 순식간에 자살로 단정지워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들이 없는 것같다.


하지만 본 조사반이 8년전 그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의혹들이 커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게 또 8년이라는 세월동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배후에 대한 또다른 의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따진다면 당 사건의 미스테리어스함은 거의 존 에프 케네디 암살사건과 비견될 만하다는 것이 본 조사반의 결론되겠다.


도대체 8년전 그때, 시애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숨죽이고 따라 오시라.


 


 1994년 4월 8일, 시애틀


아침 8시 40분, 무인경비 용역시스템 회사 "베카 일렉트릭"의 직원이었던 게리 스미스가 경보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가가호호 돌아댕기던 중, 커트 코베인의 집앞 유리문을 통해 그가 얼굴부터 피를 흘린채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당시 총구는 턱을 겨누고 있었고 총신은 그의 가슴에 얹혀져 있었다.


시체가 커트 코베인이었음을 짐작한 그는 직장 상사에게 그 사실을 즉각 보고했고, 직장 상사는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전화를 받았던 DJ 마티 레이머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커트의 죽음은 방송을 통해 전세계로 알려졌다.









일반에 공개된 당시 현장의 모습


오전 10시 15분, 시애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잠겨 있는 유리문의 유리를 깨고 현장에 진입한 그들은 맨 먼저 붉은 펜으로 쓰여진 글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곧바로 유서라고 단정지었다.


온실에 누워있던 커트의 머리 왼쪽으로는 상당량의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레밍턴 20구경 엽총이 그의 다리 사이부터 가슴까지 걸쳐져 있었으며 왼손으로 총신을 잡고 있었다. 총알박스 빈 통 하나, 엽총 총알 22발이 든 가방(총 25발 들이었는데, 3발은 총에 장전되어 있었다)와 현금 120달러, 마약투여용 기구들, 가방, 지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으며, 지갑 속 운전면허증을 통해 경찰은 시체가 커트 코베인임을 재확인했다.


오전 11시 5분, 과학수사연구소 검시관 세명이 도착했다. 그 중 니콜라스 하트션 박사가 나서서 현장 사진을 찍은 후, 커트 코베인이 스스로 총을 쏴서 자살했다고 곧바로 결론내렸다. 또한, 수사 지휘자였던 도널드 카메론 경사는 온실 출입문 하나가 안쪽에서 쐐기로 고정되어 있어서 현장이 밀실이었음을 밝혔다.


이후 부검을 통해 커트 코베인의 사망 시각은 4월 5일 저녁으로 추정되었으며, 그의 혈관에서는 리터당 1.52밀리리터(치사량의 3배)의 헤로인이 검출되었다.


 


 자살이라는 결론


위의 내용이 커트 코베인의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을 통해 발표된 전부이며, 저와 같이 알려진 이래 이날이때까지 일반인들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바로 그 스토오리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들은 생전의 커트 코베인 행각 때문인지 그의 자살에 대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나 저제나 하더니 쟤도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하는 식으로 말이다.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행동과 말을 하기도 했고, 그 전에도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고 알려졌었으니 자살이라는 발표를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들이기 쉬웠을 거다. 하지만 의혹은 바로 그 그럴 수도 있을 법한 사실들에서부터 출발한다.


 1993년, 커트 코베인은 (결국은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되어 버린) 3집 앨범의 타이틀을 <내 자신이 밉다. 그리고 죽고 싶다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라 지으려고 했었으나 프로듀서와 기획사 게펜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자궁 속으로 (In Utero)>라는 제목으로 출시하게 되었다. 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저 원제목에서 자살의 암시를 읽곤 했지만, 커트 코베인은 원래의 제목을 농담삼아 생각해 낸 것이라고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다음 사진을 보라.







사망 당시 커트 코베인의 모습과 매우 흡사해서 섬뜩한 느낌마저 안겨주는 이 사진은 사진작가 유리 렌케트가 당시 유럽 투어중이었던 너바나를 델꼬 프랑스 파리에서 찍은 것으로, 역시 자살을 암시하는 포즈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리 렌케트는 후일 저 포즈를 자신이 커트에게 부탁했었다고 증언했다.


 자살 기도로 곡해된 경우도 있다. 사망 한달전이었던 1994년 3월 2일, 커트는 아내 커트니 러브와 18달된 딸 프랜시스와 함께 로마의 엑셀시어 호텔에 묵고 있다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커트니 러브는 커트가 자살하려 했다며 구급차를 불렀고, 응급실로 옮겨진 커트 코베인은 20시간 후에 깨어났다. 커트니 러브가 자살기도라고 언론에 흘린 것과는 달리 커트 코베인은 "커트니와 함께 자축 파티를 벌였을 뿐"이라고 일축했고, 당시의 담당 의사 역시 "신경안정제와 술을 같이 마시면 이와 같이 위험해 질 수는 있으나, 자살기도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커트니 러브는 당시 "커트의 위장에서 알약 50개가 나왔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경찰기록에 따르면, 자살 기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으로 밝혀진 일을 자살 기도로 커트니 러브가 신고한 경우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자살하고 싶을만큼 고통스럽다고 호소할만큼 커트 코베인을 옥죄워 왔던 것이 분명 있었다. 그것은 만성 위통이었고, 밤마다 찾아오는 극심한 위통을 달래고자 꽤 오랫동안 헤로인을 복용했다고 한다(그리고 헤로인을 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 커트니 러브였다고) . 하지만 1994년, 그 위통의 원인을 치료하는 수술을 받게 되면서 그의 자살충동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하며, 주위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만큼 커트가 행복해보였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한다.


 커트의 시신옆에 운전면허증이 노출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엽총을 머리에 쏘아 자살하려는 커트가 자신의 신분을 알리기 위해(얼굴을 쏘면 얼굴이 뭉개지므로) 그랬다는 썰도 있었다. 하지만 운전면허증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커트의 지갑 속에서 찾아다가 꺼내어 논 것이었다.


그렇다. 커트 코베인 저넘은 자살하고도 남을 넘이라며 세간에 박힌 인식의 상당수가 잘못 알려졌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결론을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저 오해의 더깨부터 걷어 버리고 나면 다음의 본격적인 의혹들이 독자 열분덜에게 좀 더 객관적이고도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


사실, 타살 의혹에 대한 조사는 커트 코베인의 시체가 발견된 바로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었다. 문제는 그게 공식적인 수사기관에 의해 진행된 게 아닌데다가 그 과정이 세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뿐.









톰 그랜트


위에서 언급했던 로마 자살기도(라고 알려진) 사건 이후 커트 코베인은 약물치료시설에 수용되었는데, 곧바로 탈출하여 자신의 모습이 시체로 발견되기 전까지 잠적에 들어갔었다. 그런 커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커트니 러브는 톰 그랜트(Tom Grant)라는 이름의 사립탐정을 고용하게 된다.


커트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 몇 주 전부터 커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행방을 좇던 톰 그랜트는 사건 당일에도 검시관들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현장에 도착하여 사건 현장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당시 급박하게 발표되었던 수사당국의 결과가 자신의 조사/판단과는 매우 틀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독자적으로 커트의 죽음에 대해 수사하기 시작한다. 이후의 조사에 대해서는 커트니 러브가 전혀 협조하지 않아 자비를 털어가며 진상조사에 임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동안의 조사를 통해, 자살이라고 단정짓기 힘들다고 결론을 내린 그는 당국에 끊임없이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묵살당했으며 심지어 커트니 러브로부터는 방해까지 받았다고 주장한다(그리고 그 방해의 증거물들은 녹음자료로 그가 보관하고 있다). 톰 그랜트, 그가 제시하는 타살설(혹은,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의 주된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엽총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커트 코베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문제의 엽총 방아쇠에서 커트 본인의 것은 물론, 다른 어떤 사람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총알박스 및 기타 방안 구석구석 어디에서도 지문을 발견할 수 없었는데, 다른 물건의 지문이야 커트 코베인 본인이 지울 수도 있다지만 엽총 방아쇠를 당기고 난 후에 방아쇠의 지문을 주근 넘이 어케 지운단 말인가? 게다가 곧 자살할 넘이 지문이나 지우고 앉아 있는 것도 말이 안된다.


이는 타살설의 가장 완벽한 증거로 꼽을 수 있으며 당시 수사기관의 명백하고도 중요한 실수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외, 엽총에 총 3발이 장전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자살하는 이가 굳이 총알을 꽉꽉 채워 넣었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마약에 떡이 된 넘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가?







부검결과 커트 코베인의 혈관에서는 치사량의 3배가 넘는 양의 헤로인이 검출되었다. 하지만 그는 헤로인 과용이 아니라 머리에 총을 쏘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부검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문제는 치사량의 3배가 넘는 양의 헤로인을 흡입한 사람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시애틀 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커트 코베인은 심각한 중독자여서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약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다른 마약과 달리 헤로인은 내성이 생기지 않음을 명확히 했으며, 시릴 웩트나 로저 루이스와 같은 법의학자/화학자들은 그정도의 헤로인이면 마약중독자라도 수 초 안에 의식을 잃게 되어 총을 쏜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커트 코베인은 헤로인을 맞고 마약 투여기구를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스스로에게 총을 쏜 것으로 나와 있다.


치사량을 훨씬 오바할만큼 마약을 흡입하고서 총으로 자살했다고 보기보다는 누군가가 헤로인을 흡입하게 만든 후 총을 쏴서 자살로 위장했다고 보는게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밀실이 아니었다.


이것 역시 수사진들이 범한 중대한 실수되겠다. 커트가 죽어있었던 온실에는 발표와 달리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안쪽에서 쐐기가 박혀 있었다고 발표되었던 문은 어차피 발코니로 통하는 문이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쪽에 잠겨 있는 문 하나가 더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은 출구로 통한다.


문이 잠겨 있었다 한들, 이미 잠입에 성공한 범인이 나가면서 충분히 잠그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기본적인 오류를 수사진들은 왜 간과하고 넘어간 것일까?


 유서는 조작되었다?


커트의 시체 옆에 놓여 있었던 바로 그 글의 내용 때문에(내용을 보려면 요기를 클릭하시라) 자살이라는 결론은 다른 어떤 의혹을 감안하더라도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 글을 진정 유서처럼 보이게 하는 대목은 겨우 맨 밑의 네 줄이다.






프랜시스 그리고 커트니,
나의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바친다.
계속 전진하길 커트니, 프랜시스에게 건배.
내가 없다면 더욱 온화하고 행복해질 그녀의 인생을 위해.


그리고 이 부분에 와서 커트의 필체는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양 현격히 다른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1997년 2월, 미국의 필체 판별 권위자 매슬 마틀리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필체 판별 전문가 레지널드 엘튼은 미국의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아래의 4줄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감정했다. 그리고 그 외 본문의 내용은 커트 코베인이 쓴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커트가 죽고 4년후, 너바나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그롤은 어느 라디오 토크쇼에서 커트가 죽기전 너바나는 해체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이전부터 톰 그랜트는 이 글이 팬들에게 은퇴를 선언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아래의 네 줄만 제외하면 충분히 그와 같은 내용으로 읽힐 수 있다.


 커트의 사망시각 이후, 누군가 커트의 카드를 긁었다.


신원불명의 누군가가, 시체가 발견되기 불과 몇시간 전에 43달러어치의 꽃을 사고 커트 코베인의 신용카드로 계산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전에 커트니 러브는 커트의 신용카드를 정지시켰기 때문에, 누군가가 카드를 긁으려 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뿐 그 주인공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목숨이 위태롭다" - 죽기 전 커트의 호소.


커트의 친구였던 브래드 바넷의 증언. 그는 커트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 날의 하루 전인 4월 4일 시애틀에서 커트를 만나, 나중에 커트의 시체가 발견된 바로 그 방에까지 갔었다고 한다. 커트는 그날 바넷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내 목숨이 위태롭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시관


위와 같은 의혹들을 무시하고, 현장 도착과 동시에 자살이라고 단정했고, 언론을 통해 이보다도 더 확실한 자살 사건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는 과학수사연구소의 수석 검시관 니콜라스 하트션 박사는 이미 커트 코베인의 아내인 커트니 러브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던 걸로 밝혀졌다. 커트니가 커트를 만나기 훨씬 전에부터 말이다.


마지막 의혹, 그리고 앞서 로마 자살기도 사건에서도 본 바와 같이 우리는 본 미스테리에 커트니 러브도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커트 코베인이 살해당했다면,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 의혹의 실마리는 바로 커트니 러브가 쥐고 있다.


 


 커트니 러브 (Courtney Love)









커트 코베인, 커트니 러브, 그리고 딸 프랜시스 빈 코베인


밴드 "Hole"의 리더이자 영화배우(<래리 플린트>, <필링 미네소타>, <맨온더문>), 그리고 커트 코베인의 미망인인 그녀는 사이키델릭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 매니저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마약과 섹스로 얼룩진 청소년기를 보냈다.


생부였던 행크 해리슨은 자신의 딸에 대해 "허영심이 많고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고 증언한 바 있으며, 그녀의 말 꾸며대기/바꾸기 행적은 숱한 잡지들의 인터뷰들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이제, 본 미스테리와 관련하여 그녀와 연관된 의혹들을 짚어보도록 하자.


 엘든 호크(Elden Hoke)라는 이름의 무명 롹 보컬의 증언이다. 1993년 12월 말, 엘든이 알바로 일하고 있는 헐리우드 소재의 레코드 가게에 커트니 러브가 찾아와 "남편의 머리를 날려주면 5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었다고.


다음해 3월, 레코드 가게 주인인 릭 세퍼디언은 엘든 호크를 황급히 찾는 커트니 러브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당시 엘든 호크는 자신의 밴드 Mentors의 투어를 위해 레코드 가게 알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릭 세퍼디언의 증언에 따르면, 호크가 없다고 하자 커트니 러브는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소리를 지른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엘든 호크의 모습 - 다큐멘터리 영화 <커트와 커트니> 중에서


이 사실의 입증을 위해 엘든 호크와 릭 세퍼디언은 1996년 3월 6일, 코트니의 변호사조차 인정한 거짓말 탐지기의 최고 권위자, FBI의 에드워드 겔브 박사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99.91퍼센트의 신뢰도로 호크의 증언이 허위가 아님을 입증하게 된다.


살인을 부탁했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커트가 타살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 위의 이야기는 재수사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듬해인 1997년 4월 19일, 엘든 호크는 시속 97킬로미터의 열차에 치어 죽는다.


그의 사망 현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가 죽기 이틀전, Mentors의 공연장에서 호크는 친구인 드루 갤러거에게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 가짜 운전면허증을 구할 데를 아는가? 커트 코베인을 죽인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가? 커트니 러브의 주위에서 일어난 죽음, 이게 다가 아니다.


 커트 코베인이 죽고, 두 달 후인 1994년 6월 16일. 커트니 러브의 밴드 "Hole"의 베이시스트였던 크리슨 파프가 자신의 집 욕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크리슨은 Hole 멤버들의 방탕한 부니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외지 처녀였으며 특히 리더인 커트니 러브와 심각하리만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약에 찌든 밴드, 그리고 커트니와의 불화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크리슨은 밴드와 시애틀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다. 하지만 이사 바로 전날 그녀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욕조 옆에는 주사기와 마약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톰 그랜트는 "피살이 확실하다. 아무도 커트니를 무시하고 함부로 떠날 수 없다. 새출발을 위해 이삿짐까지 싸놓은 사람이 왜 자살을 하겠는가?"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크리슨 사망사건의 현장 수사에 곧바로 출동한 검시관은 커트 사망사건의 검시관이기도 했던 바로 그 니콜라스 하트션 박사였다.


이제 화살은 커트니 러브에게로 향하고 있다. 요 두가지 의혹,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로마 자살기도 사건까지 돌이켜 볼때, 커트니의 행적에는 확실히 구린 구석이 있다.


만약 커트니가 커트 코베인을 살해했다면, 아니 타살의 주동자였다면, 그 동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지막이자 아주 중요한 의혹을 제시한다.


 커트와 커트니 부부의 담당 변호사였던 로즈마리 캐롤의 증언에 따르면, 커트 코베인은 죽기 직전 곧 이혼할 생각이니 커트니를 제외한 내용의 유언장을 써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커트니 러브 역시 캐롤에게 변호사를 구해달라고 의뢰했으며 재산분할에 관한 혼전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고 한다. (여기에 관한 캐롤의 증언은 톰 그랜트가 녹취자료로 보관하고 있다)


혼전계약에 따르면 이혼의 경우 커트니 러브는 커트의 재산에 조금도 손을 댈 수가 없으며 약간의 위자료만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커트가 사망한 후 커트니 러브는 수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유산을 상속받았다.


비록 커트가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커트니를 제외한 내용의 유언장은 존재한다고 한다. 이 유언장은 경찰이 입수하였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커트니 러브 - 비운의 연인인가, 비정의 아내인가?


본 조사반이 당 미스테리를 물고 늘어지는 와중에 느낀 점은, 아니 어떻게 이토록 유명한 인물의 사망사건이 이토록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대충대충 얼버무려질 수가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사결과, 이와 같은 의문과 의혹들은 몽창시리 한 인물에게 귀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커트니 러브.


이미 공식적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했고, 대중들에게 널리 그것이 인지된 상태에서 재수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해당 수사기관으로서 썩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명확한 증거가 나타난다든가 여론의 공세가 집요하지 않는 한 재수사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톰 그랜트라든가 다른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여러 웹진들에서 재수사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 주장들 역시 다수의 여론이라기 보다는 소수의 의견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들조차 생기는 족족 태클을 걸고 들어간 인물이 커트니 러브인 것이다.


애초 자신이 섭외했던 톰 그랜트에게는 물론이고, 누구든 타살설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서기만 하면 자신의 변호사들(톰 그랜트의 녹음 내용에 따르면, 커트니는 자신의 법률팀을 열 두 제자라 불렀다고 한다)을 시켜 회유와 협박 등의 수단을 통해 억눌렀다고 한다.


심지어, 새로운 자살설(초현실주의 소설가 윌리엄 버로우즈가 발명했다는 환각 작용 기구 드림 머쉰을 실험하다가 죽었다는 기상천외한 가설)을 주장하는 커뮤니티의 핵심 멤버로 그녀의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커트니 러브 본인이 나서서 타살설을 희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저토록 자살이라는 결론에 대한 불확실한 증거들과, 타살을 뒷받침하는 의혹들은 숱하게 불거져 나온 마당에 바보가 아닌 담에야 누구든 커트니 러브에게 혐의의 눈길을 보낼수밖에 없을 터.


이제 그녀의 선택은 하나다. 커트 코베인의 연인이자 파트너이며 아내였던 바로 자신이 나서서 제 3의 기관을 통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수밖에. 진정 떳떳하다면야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인가?


언제까지나 손바닥으로다가 하늘을 가릴 수는 없을텐데 말이다.



* 참고 자료
- 웹사이트 : 커트 코베인 살인사건 조사 by 톰 그랜트
- 도서 :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 by 이안 헬퍼린/맥스 월레스 지음, 이수영 옮김, 미다스북스 2002


 
"커트 코베인은 시애틀에 복수할 것이다"
딴따라딴지 미스테리 진상조사반장
카오루 (meanjune@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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