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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추천0 비추천0




[고발]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2002.10.19.토요일

딴지 민원처리반
 

혹시 독자들은 요즘 지하철역에서 무너진 학교, 세우는 학생들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공연하는 젊은이들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지하철에서 공연을 하게 된 사연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한다. 남의 학교 얘기이긴 하지만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황당한  이야기니까...
 




우리는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의 학생들이다. 이 학교는 노동부에서 인가한 2년 과정의 직업 전문학교이다. 보통 직업전문학교들은 각종 자격증 취득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유일하게 공연/예술 방면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서울 팝스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하성호씨가 설립한 학교 되겠다.


우리학교는 실용음악 / 상업무용 / 공연기획 / 연기 / 순수음악 / 방송연예 / 영화연출 / 애니메이션 / 뮤지컬, 이렇게 9개의 학과로 구성되어 있다. 아니 구성되어 있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문제의 장보고 학장


모든 일의 시작은 4개월 전, 새로운 재단 이사장 겸 학장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장보고. 장보고 장군의 몇대손이라고 하고, 장보고 장군 역사재평가연구소 이사장 직함도 가지고 있는 조금 골때리는 인간이다. 이 사람의 갑작스런 등장과 함께 학교는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고 만다.


사실 이 사람의 등장 전에도 너무나 열악한 학교 상황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있었다. 이것도 긴 이야기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쨌거나, 장보고씨는 학장으로 들어오면서 학생과 교수들에게 여러가지 개선사항을 약속하였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합의문을 작성하고 학장이 직접 서명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학교당국의 파행적 학사운영과 의혹들이 씻겨지길 바라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신학기를 맞았다.


그런데 막상 2학기가 시작되자... 학장은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개강과 함께 3개학과(애니메이션, 영화연출, 뮤지컬)를 학생 수가 적다며 없애버리고, 그 학과 학상들에게는 전과를 종용하여 연기과로 흡수시켜 버렸다. 벌써 학기가 시작되어 버젓이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돈은 돌려주면 그만이라며 하루 아침에 없애버린 것이었다. 한 학기만 다니면 졸업을 하는 선배도 있고, 방학 내내 수업을 준비한 교수님들도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폐과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학장은 교수 회의를 통해 신설 학과를 추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학장이 추천한 새로운 학과는 조리학과, 스튜어디스과, 비서과 등 공연예술이라는 학교의 설립 취지와 아무런 관련도 없고 오직 돈벌이가 되는 학과들이었다. 물론 교수님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폐기되긴 했지만, 학장의 목표는 오직 돈벌이임을 확인시켜 준 해프닝이었다.


뿐만인가. 학생이 돌연 제적을 당했다.


장보고 학장은 방학 동안에는 휴학자들을 일일히 개인적으로 만나서 면담을 했었다. 우리 학교 좋아질테니 꼭 등록하고 열심히 배우라고...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등록시키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개강을 하자 아무런 절차 없이 자기 마음대로 제적시켜 버렸다. 제적당한 학생은 실용음악과의 임원으로, 약속한 합의사항을 빨리 이행하라고 학과대표 자격으로 학장에게 수시로 촉구했던 학생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교수님이 해임당했다. 이유는 없었다. 학장은 "이론만 가르치는 교수는 필요없다. 당장 기획사를 소개시켜 줄 사람이 선생자격이 있다"며 이미 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교수를 낙하산 강사로 갈아치웠다. 이미 개강 후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인데 말이다. 학장은 교수의 수업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한 것이다.


평소 신망을 받아왔던 교수님들의 해임에 학생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자 학장은 돌연 해임을 취소하고, 학교의 유일한 교양수업인 영어를 폐지시키고 대신 낙하산 강사의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렇듯 학교 내부는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학교당국은 갑자기 학교 내에 기획사와 뮤지컬 극단을 차렸다. 지금까지도 한번도 운영된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유령기획사와 유령 극단이다. 물론 학교를 외부에서 볼 때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였다.


또, 정작 다니고 있던 학생은 제적을 당하는 판국에 학장은 돌연 연예인을 학교에 입학시켰다. 다른 학교들도 학교 홍보를 위해 연예인들을 입학 시킨다며, 신입생 입학 기간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기에 연예인을 끌어들여, 학과장과의 면접도, 시험도 없이 명예학생으로 임명장을 주고는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만나본 학생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왜 그러냐며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시켜 결국 명예학생으로 입학시키고 만다.


이러한 일들이 개강하고 나서 20일도 되지 않는 기간 내에 벌어졌다면 믿어지겠는가?


물론 학교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학장은 오히려 "내가 학교의 주인이고 니들은 내 노예인데 왜 내가 맘대로 못하?"라는 망발을 하며, 심지어 교수님들에겐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식충이, 종노무 새끼들이라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사실 장보고 학장이 학교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하성호 전 학장이 학교에 남아 있었는데, 그 후 전 학장과 현 학장 사이에 불법적인 계약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학교매매였다. 비 영리법인인 서울공연예술직업전문학교를 매매계약서 한 장으로 인수한 것이다. 원래 하성호 전 학장도 학교를 파행적으로 운영하면서 학교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다. 지난 5월 학생들은 하성호 전 학장의 만행을 참을 수 없어 권리 찾기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일체의 책임도 질 수 없다며 하성호 전 학장은 돌연 사퇴를 하고 바로 그 다음날 장보고 현 학장이 학교를 인수 했다며 나타났다. 재단 인수라는 것이 오랜 시간 숙고 끝에 결정되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볼 때 장보고 학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우리에게 많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어쨌든 장보고 학장이 들어오고 나서 학교는 말 그대로 무법천지가 되었고, 여기에 학생들과 교수님들은 학교의 미래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소수 인원의 학과들을 폐지하였지만, 현재 남아있는 과들도 그들의 이익 창출을 위해서는 충분히 폐과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선례로 남게 되면, 앞으론 더 큰 일들도 학장의 독단으로 결정될 것이 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5개 과중 실용음악, 상업무용, 공연기획과가 같이 의견을 모으고, 학장 측에 정식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하였다. 그 대표적인 내용은



    1. 장보고 학장 사임
    2. 9월 1일 까지 시행되도록 한 합의 사항 이행
    3. 절차 없이 행해진 교/강사 해임과 학생 제적 철회


이러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답변이 없는 것에 항의하여 9월 27일 시위를 벌였다. 물론 학장은 교수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교수가 학생을 선동하고 있다면서 인신공격을 일삼았다.


그러나 학장의 만행은 이것이 시초였을 뿐이었다.


9월 30일, 아침에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학교에 웬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학생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다. 학교엔 외부인 출입을 통제/허가하는 역할을 하는 수위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덩치도 산 만한(짐승을 방불케 하는) 남자들이 학생 출입을 통제하며 저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학생의 출입은 일일이 통제를 하고 확인을 하지만,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험상궂은 사람들은 그냥 출입을 허가시켰다.



















장보고 학장은 사석에서 자신이 주먹 쓰는 애들을 데리고 있고 정관계에 엄청난 인맥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며 학생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협박성 발언을 남발하고 다녔다. 힘없는 학생들은 그저 이러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데 여념이 없었고, 캠코더/ 사진기 등으로 저들의 동향을 조심스레 찍고 있었다. 그러나 사설 경호원들은 캠코더를 들고 있던 학생을 공격하면서 자료를 빼앗으려고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학생 몇 명이 밑에 깔리고 목이 졸리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들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경찰에 즉시 신고 했으나 출동한 경찰들은 학교에 상주하고 있던 방배경찰서 정보계 형사들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되려 학생들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경찰과 깡패가 한 통속으로 위협하자 우리들은 위축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유는 장보고 학장의 힘의 논리에 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더 힘을 내서 발악을 하면서 외쳤다. 장보고는 물러가라고, 우리 합의 사항을 이행하라고...


그렇지만 학장의 반응은 냉담했고, 9월 30일 부로 실용음악과의 학과장님과 조교님이 양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공고문을 통해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임을 당했다. 또다시 강경 대응이었다.



파면 공고가 붙은 다음날부터는 실용음악과의 교수님과 조교의 출입 저지가 이루어지고, 우리들은 교수님과 조교를 사수하면서 들어가려 애쓰고... 악순환이었다. 장 학장은 우리들의 반응이 만만치 않자 더 많은 수(20~30명)의 경호원과 조직 폭력배를 투입해서 학생들을 저지하려 애썼다. 학생들은 이 억울함을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건물 외벽에 대자보를 붙였고, 경호원들은 이것을 찢고 떼고, 10월 2일에는 모일 장소가 마땅치 않아 학교 근처의 야산에 모여 결의를 다지고 힘을 모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신성한 학교가 깡패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셈이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들은 악으로 버티고 학생이 폭행당하고 (10월 4일 전치 2주) 그래도 버티고, 그러면서 학교는 아예 학생들이 모일 수 있을 만한 공간들을 원천 봉쇄해 버렸다. 열쇠를 죄다 바꾸고 개인 연습실도 잠그고, 우리들의 터전을 빼앗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이러한 것들에 오히려 더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힘을 모으자 장보고 학장은 더 큰 일을 우리에게 터트리고 만다. 사설 경호원이 사라지는 대신 공고문이 한장 붙었다. 공고문의 내용은 이렇다.


 - 데모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쓰지 않는 학생은 직권으로 제적처리하겠음


우리들에게 제적이란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의 미래와 직결되어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장은 달랑 이틀의 생각할 시간을 주더니 2일 후에 정식으로 동의서를 안 쓴 우리들을 제적처리 시켰다. 그 인원이 자그마치 100명이다.


실용음악, 상업무용, 공연기획과 학생이 전원 제적당하고 폐과 처리 된 것이다. 이 인원은 학교의 3/4정도 되는 인원이다. 더군다나 학장은 비열하게 제적된 학생들은 병무청에 연락해서 징집시키도록 하겠다면서 협박을 했다. 이젠 학생의 미래까지도 자기가 어떻게 해 보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투쟁을 멈추지 않자 장보고 학장은 또다시 새로운 사건을 터뜨렸다. 투쟁을 하고 있는 3과가 쓰고 있는 건물 1층과 지하를 아예 임대를 내주겠다는 광고를 낸 것이다. 학교의 건물은 건물주가 따로 있는데 학장은 말도 안 되고 수습도 못할 근거를 들면서 학생을 협박하고 회유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런 학교의 내부적인 일들이 학생들을 지치게 만들고 학교에서 있을만한 곳을 박탈하는 가운데서 우리들은 이 일들을 외부로 알려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게 된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지하철 공연이다.


이 공연은 10월 5일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사당 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건상 매일은 못하지만 그 이후로 꾸준히 공연을 잡고 시민들에게 학교를 살리는데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 학생들은 전문 딴따라를 꿈꾸는 학생들이다. 우리들은 다른 대학생들처럼 시위를 잘 못한다. 팔뚝질도 잘 못한다. 그저 우리는 딴따라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시위방법을 가진다. 그것이 공연이다. 그것을 통해 시민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공감하고 힘을 얻는, 그런 일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왜 이렇게 조그만 학교에 목숨을 걸고 꼭 사수하려는 것일까?


우리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비록 인원수도 적고, 역사도 짧지만, 대중문화 전반을 교육하는 국내 유일의 학교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우리가 대중문화를 이끌어갈 차세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저급문화가 아니다.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일 뿐 저급하지 않다. 다만 그것을 상술로 포장하기 때문에 가끔은 저급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대중문화도 더 질이 높아져야한다. 언제까지 대중들은 립싱크 하는 가수들을 보아야 할 것인가? 언제쯤이면 우리나라 작곡가들은 표절 의혹 없이 곡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얼굴로만 밀고 나가서 브라운 관, 스크린을 누비고 있을 것인가? 더 낳은 공연을 기획할 수는 없을까? 더 보기 좋은 춤으로 관객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이런 의식을 가슴에 새겨놓고 있다. 그리고 노력한다. 교육부에서 학위 인정도 안 해 주지만 그런 것 쯤은 장애로 여기지 않는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우리가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에겐 훌륭하신 교수님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 배우는 단계 아닌가? 가슴속에 희망이 남아있기에 열심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장보고 학장의 만행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한다. 이런 사람이 세계평화상을 수상했단다. 한국경호협회회장이란다. 한나라당 재정경제분과 부위원장이었단다. 버젓이 청와대에서 이희호 여사와 찍은 사진을 가보처럼 여기고 있단다. 그러면서 독실한 크리스챤이란다. 자기는 억울하단다. 자기는 학생을 사랑한단다.


우리는 학교를 사랑하고 학교를 발전시키고 싶기에 이러한 학장을 몰아내고 정말 깨끗하고 교육자의 마인드를 가진 학장님이 하루빨리 오시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학생들은 가능성 있다. 깨끗하다. 순수하다. 이런 순수 열정이 우리의 꿈을 위해 100% 투자되기를 바란다.



  열린 총학생회 부학회장 유지훈
(winyard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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