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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황만근은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래서?

2002.10.18.금요일
딴지 문화부


 









성성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서정주에서 이문열까지 그 맥을 이어오는 씨바, 글쟁이가 어디까지 사회적 책무를 지는거냐?라는 논쟁이, 또 그놈의 좃선이 만든 동인문학상이 김훈의 뒤를 이어 성석제에게 투여됨으로써 다시 불 붙어버릴 것 같은 조짐이다. 아니, 실은 조짐까진 아니고, 그저 성석제 너도냐 씨바... 이런 정도의 궁시렁거림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이거다.


작년에 김훈이 동인문학상을 탔을 때, 조선일보에 대해 악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래 그렇구먼...정도로 덤덤하기 짝이 없었으나,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 대놓고 야 이 개새끼야 그것도 상이랍시고 낼름 받아 쳐먹었냐?라고 하기엔 성석제의 전과가 약소하고, 그렇다고 해서 허허... 상을 받았다니 거 축하할만한 일이구만. 어디 쾌활냇가에라도 가서 개장국이라도 한 그릇 합세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이 어중간함이 바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라고 본 기자는 생각한다. 이념의 시대에 이념을 비판할 수 없었듯이, 그 매서웠던 안티조선의 바람이 잠시 잦아든 요때, 글쟁이와 조선일보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책무라는 이 뜨거운 감자를 후후 불어 식혀 삼켜보자 이거다. 꼬우면 말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세상에 작정하고 욕하기 만큼 쉬운 일이 없다. 그치 않냐, 누가 너 작정하고 씹기로 한다면, 지금 별 탈없이 살아가는 모습속에서도 조깥고 구린거 열 개는 넘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신비요 인류의 능력이다. 서정주를 비판하건 이문열을 씹건 비슷한 법칙은 적용될 수 있다. 독하게 맘먹고 조지기로 하면, 생긴 거부터 맘에 안 들기 시작하는 게 인간 마음의 작동 구조 아니겠는가.


욕먹을 짓을 욕하지 말자고 물타기 하려는 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욕먹을 짓인지부터 왜 욕을 먹어야 하며 어떻게 욕을 먹여야 하는지에 대해까지 시대와 불화하는 욕 철학자 황봉알처럼 고뇌해보자. 이런 과정 없이 그저 좃선에서 상받았기 때문에 나쁜 놈 되는 세상이라면, 그건 빨갱이 딱지가 친 좃선 딱지로 바뀐 것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세상임에 분명하니 말이다.
 


 게임의 법칙


이쯤 되면 논쟁은 대부분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 먼저 좃선에 반대하는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성석제의 동인문학상 수상에 의문을 제기하면(지금 경우에는, 대자보에서 김수민), 반박에 반박이 오가다가 결국은 아, 물론 조선일보 거 조까튼 신문이지. 동인문학상도 그래. 심사위원에 이문열 들어있는 거 봐. 하지만 그런걸 토대로 함부로 성석제의 소설의 가치를 폄하하는건 더 안 좋은 시각 아닐까?라는 말로 끝이 나게 마련이다. 이런 종말에 다다르기까지, 여태까지 수십번은 반복된 소설가의 위치라는 이야기가 오토리버스로 찰칵 찰칵 반복될 것이고... 그러다가 해가 지나 동인문학상 수상식이 또 돌아오고.


본 기자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조까튼 상을 받았더라도 소설을 폄하하지 마라라는 말이 나오면 게임 셋 되어버리는 인터넷 논쟁의 분위기다. 조까튼 상을 받았으면 소설을 폄하합시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식의 발언은 그 토론 내에서 해당되는 작가와 작가의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거다. 쉽게 말해, 폄하하지 마!라는 말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작품과 작가는 평가할 수 없게 되잖아, 그치? 긍정해버리면, 왠지 상대방에게 지는 것 같아서 도저히 그렇겐 못하겠고, 부정해버리자니 사실은 읽어보지도 않은 소설, 그 소설을 쓴 작가에게 함부로 말하기도 좀 그렇고.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니다. 이건, 게임의 법칙이 통째로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그 작가의 치열한 정신의 산물이라는 원칙이 부정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정신의 산물이므로, 그 작품을 읽으면 작가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고, 따라서 그가 어떤 사회적 실존적 선택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성석제가 동인문학상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덥썩 받아버린 건, 이해를 넘어 공감까지 가능한 일이다.
 


 넌 프로야, 프로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야


내가 저 대사를 어디서 봤더라, 미스터 초밥왕이었나, 하여튼 그런 말이다. 프로는 작품 속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성석제는 프로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 성석제 소설을 읽었다면, 성석제가 동인문학상을 덥썩 받아버릴 것을 예상까진 아니어도 그 수상 결과가 의외라고 놀라지는 않아야 한다. 지랄 자랑하고 자빠졌네 하겠지만, 난 놀라지 않았다. 딴지스들과 술마시며 누누히 성석제 이야기를 해왔던 나로서는 은근히 뿌듯함마저 느꼈음을, 그래서 약간 신나서 이 기사 때리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난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씨바.


비평할만한 소설이 워낙 안 나와서 그러는지, 성석제에 대한 논의가 내가 아는 바로는 칭찬 일색인데, 사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세심하게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성석제 소설에서는 전통적 문법에서의 캐릭터라는 게 등장해본 적이 거의 없다. 아, 딱 하나 주리장창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긴 한데 그건 논두렁 패거리를 비아냥거리고 이치도를 딱한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 바로 자신이다.


어, 너 지금 무슨 소리하는거냐? 라고 생각하는 독자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라. 마사오가 정상적인 의미에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냐? 이치도는? 황만근은? 없다. 내가 아는 바 없다. 캐릭터가 무슨 포졸이같은 그런 게 아니라 풀어 말해 성격 구조라고 한다면, 성석제의 소설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이 등장한 적은 딱 한 번도 없다고 하는 게 옳다. 솔직히 말해, 황만근이라는 설정이 과연 인간인가? 아무리 걸쭉한 입담의 형식을 차용하여 운운해도, 인정해야 한다. 성석제 소설집에는 성석제뿐이다. 여태까지 제대로 된 평론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이런 탓이라고 본다. 분석할만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설령 나의 이런 논의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성석제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것에는 동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성석제는 유약하다라는 것. 이건 작가 본인도 알고 있다. 내 말 정 못믿겠거든 <순정> 앞머리에 달린 작가의 말을 보자. 이렇게 써있을 것이니 참조하면 되겠다.


"이건 착한 척 하는 나쁜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뭘 하고 있고,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하지만 그냥 그 나쁜 소설쓰기를 계속하는 작가가 성석제이다. 그는 나약하다. 무슨 딴지일보 기사에서 작가론을 이렇게 펼치냐만은, 소설을 읽고 이런 정도까지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젊은 작가 성석제의 사회의식 부재를 한탄할 게 아니라, 미리부터 소설을 읽고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왜냐, 그는 프로니까. 그리고 그를 비판해야 하는 이들은, 독자니까.
 


 모차르트 해고하기


이렇게 소설을 읽고 그의 속내를 알았다면, 그리고 그 예상 그대로 동인문학상을 덥썩 받았다면, 독자인 나는 실망하고 그의 책을 안 팔아주면 된다. 가장 무리가 없으면서 합당한 코스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돌아가는 게임의 법칙은 이렇지 않다. 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혹은 두 군데에서 가장 크게 만져지는 것 같다.


우선 첫째로, 작가의 사회적 행위를 비판하면서 작품에 대해 언급할 수 없게 되는 분위기. 앞서도 말했지만, 아무리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어쩌고 하는 소설이어도 그걸 통해 작가를 비판할 수 없다면 그건, 비판대상이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 암송가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문열의 신문 칼럼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이문열 소설에서 드러나는 그의 자의식의 구멍을 짚어낸 유일한 사람이 진중권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 글이 <이문열, 그리고 논쟁의 법칙>이라는 기사에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소설 쓰는 성석제가 상 타는 성석제다. 작품을 그 사람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소설인데...라며 비판하지 못하는 건, 너무 유치하지 않나? 무슨 중학생들이 백일장에서 서로 쓴 소설 읽어주는 것도 아니고, 맘에 안 드는 건 과감하게 씹을 수 있어야, 그래서 독자들 평균 수준이 평론가 급이 되어야 소설판이 큰다.



성석제


그러나 그것도 힘든 이유는, 앞서도 말했지만 소설을 비롯한 다른 책을 안 읽는 분위기. 이문열을 욕하곤 싶은데 그 양반이 동아일보에 올린 칼럼만 읽었거나 심지어는 그것도 안 읽었기 때문에 그냥 얼굴 생긴 거 씹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책을 안 팔아주니까 결국은, 사회적으로 망언을 내뱉는 작가들을 통제할 수 없다. 아니, 작가가 막말을 하면 그 효과가 바로 판매고에 나타나야 얘들이 말을 들어먹을 것인데, 무슨 헛소리를 하건 출판고는 맨날 사는 사람만 사는고로 거기서 거기라면, 나라도 칼럼에 헛소리 하겠다. 모차르트를 고용해야 모차르트를 해고할 수도 있다.


그나마 이문열의 경우에는 여태까지 많이 팔았으니 책 장례식이라도 가능했지, 성석제의 경우, 성석제의 동인문학상 수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투덜거리는 것뿐이다. 물론 앞으로 책을 안 사주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소설가 성석제에 실망하는 게 아니라 그저 어떤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받았는데 그게 하필 성석제인 경우가 많은 이번 사태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러니까 논의가 당위론으로 흘러간다. 마땅히 받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함부로 욕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등등.


최선은 일단 많이 사서 읽어주는 것이다. 문학도 시장의 통제를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한다. 책이 판매부수만 늘어서 무슨 소용이냐 하겠지만, 판매부수가 늘지 않으면 흔히 말하는 고급독자(우웩)라는 것도 결코 늘어날 수 없다. 일단 많이, 골고루 팔아주고 있으면 독자들의 수준이 향상되고, 그에 따라 각 소설가에게 실존적 결단을 일차적으로 판매고를 통해 강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갑을 열어라


비판의 최소조건은, 비판의식이 아니라 참여의식이다. 소설가를 비판하려면 소설에 대한 비판의식에 앞서 소설에 대한 참여의식을 보여야 한다. 소설 안 읽은 쉑들 입 다물라 다물라 하는 소리까진 아니어도, 성석제가 치열한 자의식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세를 통해 받쳐줄 의무가 우리 독자들에게는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글을 읽고 온갖 게시판에서 창비 독자마당 등지에서 시시때때로 그의 소설론과 작가론을 씨부려 함부로 아무렇게나 글쓰지 못하게 막을 의무 또한 우리 독자들에게 분명히 있었다. 그 의무의 이행과, 어떠한 사회적 결단을 내리길 기대하는 권리는, 함께 진행되었어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지갑을 열어야 한다. 의무를 다하면서 동시에 권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소설 독자가 제대로 형성되어있지도 않은데, 문학판에서 밉보이고 돈 오천만원 거절하면서까지 사회적 결단을 내리는 소설가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물론 기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기대를 특정 개인에게 투사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범죄만 아니라면, 적당히 비겁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그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독자들의 임무이며, 소비자의 힘이다. 어느 분야에 어떤 형태의 것이건, 천재는, 가질 자격이 있는 사회에만 등장한다.


 정리


이 긴긴 글을 확 줄이자면, 조선일보에 반대하기 위해 성석제를 씹지 말고, 성석제를 구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씹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악의 근원이 아니라, 상징이다. 물론 망해주면 고맙겠지만, 그 전까진 문학판, 아니 그보다 더 크게 전체적인 사회 수준이 착실히 올라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투항 실망 등의 단어만으로 글쟁이들을 몰아붙이기엔, 한국 사람들은 책을 너무 안 사지 않나.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조선일보만 어떻게 덜컹 사라진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더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성석제가 황만근같이 우직하길 바란다면, 이쪽은 당연히 뿌린 만큼 거둘 수 있는 논이 되어야 한다. 되어 있어야 한다.


너무 당위론적이라구? 그러나 어쩌겠어. 암이 없어지면 건강해지는게 아니라, 건강해지고 있기에 암이 사라지는게 인체의 신비이듯이, 이거 억지로 비유하면 안될 일이지만, 지금 이 상황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걸. 문제는 조선일보를 적으로서 상대하는게 아니라, 더 이상 존재할 수도 없게 이 나라가 총체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시작은, 역시나 독자 당신이 괜찮은 소설가를 찾아 지갑을 여는 그 한발짝에 있는 것. Shoplifters of The World, UNITE!




하늘이 내지도 않았고 땅이 일으켜세우지도 않은
딴지 문화부 시다바리 모리세이
(bard_of_wi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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