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동화] 손잡이를 만지는 여자 2002.10.12.토요일
"마태우스, 접니다. 수상한 자를 발견했습니다..." 취재원의 말은 이랬다. 자신은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어느날 지하철에 있는 손잡이를 모두 쓰다듬으며 지나가는 여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나가려면 그냥 지나가지 왜??? 매사를 음모로 해석하는 취재원이 의문을 품은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날은 술약속도 있고 몸도 피곤해 그냥 지나보냈다는 것. 그런데 전화를 걸기 바로 전날, 그녀를 또 봤다는 거다. 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뭘 좀 알아냈나요?" 취재원은 그녀의 뒤를 밟았다. 지난번처럼 그녀는 지하철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이동 중이었다. 다음칸, 그리고 그 다음칸에 갔을 때,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고, 쫓는 것을 눈치챈 그녀가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내려버렸다는 것. "뭔가 냄새가 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피해 전철에서 내릴 리가 있겠냐는 게 그의 견해였다. 난 아까부터 묻고 싶던 걸 물었다. "근데...그 여자, 이쁩디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이런 대답이 나왔다. "상당히. 보면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잠이 확 깼다. "당장 만납시다! 거기 어디요?" 다음날 오후, 난 그와 함께 지하철 3호선을 탔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녀를 보면 찍어주기만 하면 되오" 평소와 달리 그는 내 명령을 거부했다. "싫소! 나도 당신을 돕겠소!" 실랑이 끝에 그는 이만원을 받고 내 말에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하릴없이 3호선에 머물렀다. 옥수에서 압구정에 갔다가, 다시 옥수로 왔고, 금호까지 왔다가 신사로 왔다. 8시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그녀가 출몰하는 시각은 오후 7시, 틀린 게 아닌가 하고 문에 기대 조는데, 취재원이 날 꼬집었다. "어, 어디요?" 난 화가 났다. "지금 밥이 문제요? 눈 똑바로 뜨고 찾으시오!" 다시금 잠이 들려는 찰나, 취재원이 날 꼬집었다. "또 뭐요!" 그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때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양손으로 손잡이를 쥐면서 걸어오는 그 여인, 베이비복스의 다섯명을 합쳐도 그녀의 미모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뭇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고, 그녀는 그걸 즐기는 듯한, 다소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중앙 통로를 걸었다. "전 이만 갑니다. 잘 해보슈!" 취재원의 말에 난 정신을 차렸다. 짐받이에 놓인 생활정보지로 얼굴을 가린 나는 살금살금 그녀의 뒤를 밟았다. 3년 전 독뱀을 쫓을 때,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9킬로를 추격한 적이 있는 나다. 마지막 순간에 들키긴 했지만, 어쨌든 나의 추적 실력은 그정도로 수준급이었다. 다음 칸에 가서도 그녀는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이동했다. 손잡이를 잡는 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 걸까? 취재원의 말이 아니었다면, 나역시 그녀를 별로 이상하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갈아타기 편하려고 앞쪽으로 가는 건 아닐까? 순간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고, 난 들고있던 생활정보지로 잽싸게 얼굴을 가렸다. 문이 열렸고, 그녀가 내리는 게 보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내렸다. 약수역이었다. 6호선으로 갈아타려나 했지만 그녀는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난 화장실이 보이는 기둥에 숨은 채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뭔가가 있는 건 분명했다. 그 뭔가를 알파(α)라고 하자. 알파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다. 최소한 그녀가 남의 물건을 빼앗기 위한 건 아닌 것 같다. 혹시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지 않던가? 그런데 손잡이는 왜 잡고 다니는 거지? 순간 그녀가 나왔다. 핸드백을 옆에 낀 그녀는 여전히 이뻤다. 그녀는 다시 3호선을 탔고, 가끔씩 전화를 거는 것 이외에는 아까 그랬던 것처럼 전철 끝에서부터 손잡이를 잡으며 앞쪽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머릿속이 혼란해질 무렵, 열차는 을지로 3가에 도착했고, 그녀는 전철에서 내렸다. 난 여전히 생활정보지로 얼굴을 가린 채 그녀의 뒤를 밟았다. 그녀는 2층에 위치한 카페로 들어섰다. "미자! 여기!" 다른 여자 둘이 그녀-그녀의 이름이 미자란 걸 그때 알았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입에서 자연발생적으로 4자성어가 튀어나왔다. "유유상종이구나!" 그녀의 친구들 역시 굉장한 미인이었다. 미자는 친구들과 손을 잡으며 반가워했다. 그 동작에서 난 어색함을 느꼈다. 뭔가 지나치게 친밀한 듯이 구는, 한마디로 오버를 하는 게 역력했으니까. 잠시 수다를 떨던 미자는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섰다. 그녀가 나왔을 때, 난 날 불편하게 하는 게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내 눈앞에서 두 번 화장실에 갔지만, 나올 때 물기가 묻어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즉, 손을 안씻었다는 얘기다. 잘 말렸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손에는 물이 닿은 흔적이 아예 없었다. 그녀는 친구들 앞에 놓인 음료를 맛보겠다며 자기 쪽으로 가져왔고, 빨대로 그걸 마시는 척하며 컵 주위를 쓰다듬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그녀는 지금 손으로 뭔가를 묻히고 있다! 난 가지고 있던 노트북 컴퓨터를 꺼냈고, 필요한 정보들을 입력했다. 결과를 보고난 뒤 재빨리 약국에 다녀왔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들은 아직 자리에 있었다. 다소 느긋한 마음이 된 나는 맥주 두병을 시켰고,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맥주를 들이켰다. 10시가 넘어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잘가라고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 전까지 그녀는 화장실에 네 번이나 갔고, 나왔을 때마다 친구들의 손금을 봐주는 등 과도한 접촉을 시도했으며, 친구들의 음료수 컵을 자주 어루만졌다. 미자가 친구들과 헤어지자마자 난 그녀에게 다가갔다. "미자씨!" 미자는 날 바라보더니 누구냐고 물었다. 흔히 있는 치한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 세게 나갔다. "항문이 가렵죠?" 순간 미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뭐라고 했어요, 지금?" 내 말에 그녀가 새파랗게 질려 떨기 시작했다. "잠깐 얘기좀 합시다" 난 그녀를 두고 앞장서서 걸었다. 살짝 뒤를 보니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오는 게 보였다. 난 맥주를 시켰고,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그녀에게 녹차를 시켜줬다. "언제부터 그랬죠?" 여기까지 인정해놓고 앙탈이라니, 난 생각했다. 귀여운 것! 내가 웃자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사, 삼개월 됐어요"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치겠어요. 거기가 다 헐었는걸요" 말없이 녹차를 마시던 미자가 날 째려봤다. "왜,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은 이해하나요? 쪽팔리게....흑흑" 난 빙긋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 "자, 이게 메벤다졸이라는 약이어요. 이거만 먹으면 깨끗이 나을 수 있어요" 미자는 신주단지를 받들듯 그 약을 받았다. "정말... 이거면 그 무서운 벌레들이 없어지나요?" 3개월 전부터 미자는 항문 주위가 가려웠다. 하루 세 번씩 샤워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다 큰 처녀가 항문 때문에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항문 주위에서 하얀 벌레를 발견했을 때, 미자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미자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그 결과 그 벌레가 요충이라는 것, 요충알을 먹어서 감염된다는 것, 요충이 항문 주위에 알을 낳는다는 것, 요충알은 한번 묻혀 놓으면 오랫동안 감염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미자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회에 복수하기로 했다. 내가, 착하게만 살았던 내가 왜 항문이 가려워 밤잠을 설치고, 항문이 헐 때까지 긁어야 하는가. 그래서 미자는 화장실에 가 항문을 만지고, 그 손으로 지하철 손잡이를 만졌다. 누구를 만나도 반갑게 악수를 했고, 그들의 숟가락에 요충알을 묻혔다. "제가 요충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아무말도 못하는 그녀에게 난 덧붙였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말이죠, 더불어 사는 사회랍니다.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나누어야 해요. 사회에 복수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두고 난 카페를 나왔다. 그냥 나오기 아까웠지만, 스승의 말을 떠올렸다. "너의 수사 재능을 여자 꼬시는 데 이용하지 마라. 절대로!" 다음날부터 난 그녀가 다니던 약수역 근처의 유치원을 조사했다. 예상대로 원생의 반 이상이 요충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었다. 그 중에는 유치원 원장도 한명 있었는데, 그녀 역시 항문이 헐었다며 눈물지었다.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항문의 질병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그걸 부끄러워하는 당신의 태도가 병을 키운 거죠. 이 아이들도 어쩌면 당신으로부터 옮았을 수 있어요. 유치원 원장은 무균질이어야 합니다" 유치원을 나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원장과 원생들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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