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나는 반성한다...

2002.10.9.수요일
딴지 생활부

오늘도 전화가 왔다...

벌써 2주가 훌쩍 지나 그녀가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길 날짜가 된 것이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영화판에 널리고 널린 영화하는 선배와 후배의 개념... 편한 누나와 편한 동생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아랫도리 프리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이 화류계판에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는 일도 있었던 사이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그녀와 내가 얼굴 마주대하고 말을 나눈게 작년 10월의 내 결혼식 이후가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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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올해 33살의 노처녀이며, 공공연히 자기입으로 떠드는 "생물학적인 처녀"이기도 한 여자이다. 가수 양희은을 능가하는 풍채에 조금 작은 키 덕분에 요즘의 섹스어필한 여자애들과는 거리가 먼...속칭 말하는 그 <폭탄>으로 분류되는 여자였다. 어찌어찌 나와 같은 방에서 같이 잠을 자게 되었는데도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누나의 그 외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난 지금에서야 조심스레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랬다...그녀는 못생겼다. 그리고 그녀는 뚱뚱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남자친구가 참 많지만, 그 중에서 애인도 없었고, 하다못해 그 떼고 싶다던 <처녀딱지>하나 제대로 떼어줄 남자 하나 없는 여자였다. 단지 그런 여자이기에 성격이 좋다는 말을 들으며 뭍 남성들에게 <성격좋은 여자>로 분류되어서 홀로 인생을 지내왔다.

그녀와 나, 그리고 몇몇의 영화를 하겠다던 젊은 놈들이 모여서 단편영화 한편을 찍고 편집을 하던 순간이 아마도 젊은 시절 우리네들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추억의 한장면>이었을 것이다...지금은 흐릿한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 단편의 이야기 역시 한 남자의 지울수 없는 <기억>에 대한 편린들의 이야기 였다.

그렇게 미친듯이 단편영화를 찍고, 영진공에 단편영화 창작 지원금을 받기 위해 동분 서주하던 99년이 다 지나가던 그때...아마 송년회 자리였을 것이다. 그녀는 유난히 밝았고, 거푸 술잔을 털어넣었다. 소주의 쓴물이 넘어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마신 그녀는 나와 "그녀의 친구"로 분류되었던 유부남 선배의 부축을 받아 술집을 빠져나왔다..(한명이서 부축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 나 암이래... 좀 있다 죽는대...

얼마전 끝났던 "네 멋대로 해라"의 양동근 처럼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따라 웃었다...

  - 술 좀 작작 쳐먹어라 이년아

선배가 던진 한마디 였다.

  - 누나, 다음 시나리오야??

내가 던진 말이었다.

누나는 웃다가 오열했고, 우린 그 누나가 처녀를 아직까지 못떼서 울분에 쌓여 그렇다며 농담도 건네며 누나가 감정이 정리되면 다시 오겠지 하며 거기 앉아 담배를 한대씩 나눠피며 누나의 발걸음을 지켜보았다...그날 누나는 그 송별회 자리를 떠났으며, 우리는 심각하게 호스트 바에라도 데려가 줘야 하지 않겠냐며 치기어린 농담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그해...그러니까 99년도에 난 시나리오로 등단이란 걸 하게 되었고, 영화판에 정식으로 발을 들이밀었다...이제 더이상의 단편을 찍을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생각에 난 충무로로 발걸음을 옮겼고, 거기에서 난 그녀가 진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의 바쁨이랄까?? 내일이 아니었고, 나와 그닥 친분이 있지 않단 이유로 난 3분정도 그녀에 대해 회상하고 5분정도 이 소식을 알려준 후배와 그녀의 걱정을 하는 것으로 내 양심에 위안을 주었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서로의 일상에 대해 묻고, 내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렇게 몇개월이 흘렀을까?? 그녀의 기억이 다시 흐릿해 질때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 성주야...미안한데

로 시작한 이 전화는 그 후로도 정기적으로 나에게 걸려왔었다.

그녀의 병원비가 문제였다...

한때는 활동가로 라디오 조립 공장에서 일했던 그녀...친구라고 있는 사람들이 꽃다지나 무슨무슨 연대나, 어디어디 사회문제 연구소가 다인 그녀에게 있어서 돈을 변통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와 나의 인연을 따져보니 채 1년을 다 채우지 못했던 시간임에도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돈을 빌려달라는 그 말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그것도 후배에게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난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지 못했다.

내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는 변명을 해 보지만, 내가 조금만 무리했어도 그녀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게 전화한 노력에 약간의 성과를 건네줄 수 있었을 것을....

시나리오 작가로 이 땅에서 먹고 산다는 거....아니 어떤 분야든 <글>이란 걸 팔아서 먹고 산다는 건 고단한 삶이란걸 막 알아가던 그 시절에 받은 부담스런 전화에 되고 난 할말이 없었다.

그 뒤로 내 벌이는 조금씩 피었다.

난생처음 접대란 것도 받아봤고, 매니지먼트 사가 억지로 끌고간 청담동의 룸사롱부터 시작해 몇군데 여자 나오는 술집에 제법 얼굴을 팔고 다녔고, 룸사롱이 시시하단 말이 나오며 기방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정도가 되었을 무렵 그녀는 다시 내게 연락을 했다....

그때도 난 내 힘듦과 글쟁이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말했던 기억이 난다....내 손에 쥐어진게 없다는 말...그랬었다...힘들긴 힘들었지만, 그때도 난 누나가 부탁한 돈을 무리했더라면 가져올수 있었을 것이다.

내 알량한 자존심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가 싫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나가요 걸의 하룻밤 벌이 만큼의 돈을 아쉬워 하는 그녀에게 난 내 옆에 있는 나가요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팁을 꽂아주던 시절이었다....

그 뒤로 같이 영화판에 뛰어든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그녀의 소식을 듣노라면 그녀가 돈을 빌려간 다음에 갚지 않았다는 말과 그녀가 힘들어 한다는 말로 점철이 되어갔었다...사정은 딱하지만, 이판에서 우리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남 도와줄 형편이 되겠냐는 선배의 말....

   - 딸린 가족들 입 메꿔주기도 힘든데....

그녀의 남자친구 중 한명을 만났을때 들은 말이다...맞는 말이었다. 힘들었던 시절이었고, 지금도 힘들어하는 영화판....꿈을 먹고 산다 하지만 내 앞가림 하기도 벅찬 이곳에서 남을 생각한다는 건 가진자에게 국한된 사치였었다.

잠시 연락이 뜸할 무렵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서 수소문 했을때 풍문으로 그녀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결혼을 할 무렵, 그녀는 내 결혼식장에 나타났다...한눈에도 초췌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난 할말이 없었다....그녀는 살아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내게 웃으며 결혼을 축하해 준다며 어설픈 미소를 보냈다.

결혼을 하고 정신없이 지내던 그 시절...난 내이름이 들어간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남들이 말하는 그 입봉이란걸 하게 되었다...기쁘다 안 기쁘다란 감정보다는 그냥 그러려니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 겠다 생각하던 시절...대학동기들의 1년 연봉 비슷하게나마 돈을 벌게 되었던 시절이었다.

마누라에게 용돈 받아쓰고, 명절 쇨 때 집에 봉투 하나쯤은 들고 가게 된 시절이 되었다. 장인장모님 오시면 한정식 집에서 식사라도 한끼 살 수 있게 된 그때에도 그녀는 내게 연락이 왔었다.

언제나 초췌한 목소리에 울먹이던 수화기 건너편의 그녀가 내 마음 한구석을 안쓰럽게 만들었다. 2,30만원정도의 액수를 말하는 그녀였지만, 그걸 난 부담스럽게 생각했다...나에게 그돈은 부담스러웠을까?? 한달용돈 2,30만원을 쓰는 나에게 있어서 그 돈은 그저 한달 용돈이었다...그 돈이면 책을 몇권 살 수 있는데란 생각을 하게 되고, 울 마누라 데리고 근사하게 하룻밤 데이트를 할 수 있고, 내딸 루리의 옷 서너벌은 사줄수 있는 돈...

그랬다...

오늘 그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그녀...언제나 첫번째 대사는 정해져 있다.

   - 성주야 미안해 자꾸 이런 전화해서....

그녀의 전화를 받는 다른 선배 동기, 후배들의 느낌 역시 대등소이 할 것이다. 연민을 팔아 돈을 가져가려는 모습?? 내 양심과 내 현실 사이에서 날 잠시나마 갈등시키게 만드는 목소리...하루를 께름직하게 만드는 목소리...

배경으로 들리는 병원 수납창구의 간호원 목소리와 띵동거리는 차임벨 소리 그리고 돈 내려가는 공중전화기의 소리...언제나 이틀뒤에 갚겠다는 약속과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일상의 바쁨 속에서 잠시 날 정적으로 몰고가게 만드는 그 짧은 5분....

20만원을 좀 구해달라는 그녀의 목소리...다 전화했는데 다들 어렵다고 어떻게 현금서비스라도...이틀뒤에 꼭 갚겠다는 말들....

나역시 마누라 산부인과 병원비 내고 나니 개털이 된 그 상황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아는 사람이라도 변통해서 좀 구해줬으면 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에게 있어 20만원이란 돈의 액수는 하룻밤 술값일수도 있고, 나가요의 팁이 될수도 있다...아니면 인터넷 서점의 책 결제금이 될 수도 있다....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20만원은 다만 얼마간의 <생명>이란 것을 난 애써 외면했다.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했었다...누나가 이뻤다면, 누나가 날씬했다면 사람들은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그녀를 아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돈 20만원이 그녀에게 차지하는 비중보다는 그 20만원으로 자신의 생활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수도 있다는 사실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아니 건네주는 20만원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 돈이 나에게 있어 어떤 효용으로 다가올지에 대해 생각하고 아쉬워 했을 것이다.

더구나 영화판의 그냥그런 작가들, 조연출, 서드...촬영부 막내들에게 있어선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힘든 길을 택했기에 남을 뒤돌아 볼 여유가 없다고 자위하며 우리는 그녀를 외면하였다....그리고 어찌어찌 나 아니어도 그녀는 잘 살아왔고 아직까지 버텨 나가고 있기에 궂이 우리의 도움이 없어도 그녀는 살아남을 거라 생각한다...그리고 그녀가 죽는다 하여도 우리는 그저 <애도>를 할 정도의 친분으로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닥 그녀와 깊은 관계라 생각치 않는다.

그녀의 방에서 커피 한잔을 얻어마시고, 맥주한잔을 나눴고, 같은 이불 속에서 뜬눈으로 날을 새던 기억들....

아랫도리 프리한 화류계 판에서 그녀는 정말 구속하고픈 존재라며 농담하던 존재...그렇기에 우리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애써 외면하며 값싼 동정은 하지만 더이상의 발걸음은 내딛지 않는게 아닐까??

오늘 난 편집장에게 내 원고료 정산액이 얼만지 묻고 돈을 그녀에게 부쳐줄 수 없냐고 전화했다....편집장은 수긍하였고, 난 그녀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다. 돈을 부쳐준다 말해도 그녀는 울먹였다...아마도 자신의 처지에 대한 어떤 비감함 때문일까??

감독과 함께 모처로 끌려와 작업을 하는 지금...오늘 하루 난 아마 갈피를 못 잡을 듯 싶다...돈을 건네주고 나서도 난 내 마음이 아파 노트북의 좁은 자판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맨 처음 전화가 왔을때 건성으로 감독에게 한마디 던졌다.

   - 감독님 돈 있으면 한 20만원 주세요....

감독 역시 돈이 없는 걸 알면서도 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서...돈을 구하는 시늉이라도 한번 해야지 내 마음이 편해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감독에게 물었다...어제 술값도 내 카드로 긁은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피식 웃어버리는 감독님....목소리 가다듬고 애써 미안한 톤을 유지하려고 마음 먹으며 핸드폰을 여는 나에게 감독님이 심드렁하게 한마디 던졌다.

- 너한테 전화한다는게 얼마나 힘들었겠냐?? 넌 그냥 거절하는 거겠지만, 그 여자한테는 자기 목숨 거절하는 전화처럼 들릴거다.

멍해졌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드라도 나에게 있어 20만원은 불편함일뿐, 존재의 문제는 아니다...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20만원은...생명이란것을...난 2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마 난 지금 이렇게 말해도 다음번에 다시 걸려오는 그녀 전화를 받으면 또 어찌 생각하게 될 지 모른다...하지만 지금의 내 심정은 지난 2년간 그녀에게 걸려온 구원의 호소를 거절한 몇몇중의 하나였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는 똑같은 무관심자란 사실을 깨달은 놈이다.....

아마 다음번 전화가 와도 난 그닥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를 아는 이들도 달이면 달마다 한번씩 걸려오는 이 전화를 그닥 반가운 마음으로 받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 전화가 그녀에게 있어선 구원을 호소하는 전화란 것을... 나와 그녀를 아는 이들이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한다...이 글을 쓰고 나서 난 그녀에게 한번의 <구원>을 건넸으니 하나의 면죄부를 얻었고 그러기에 다음번엔 나에게 구원을 호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나 역시 평범한 애아빠이기에 말이다...아마 지금 내 심정이 이럴지도 모른다. 그게 인간이니까 말이다....

인간으로써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그녀를 돕고 나서도 난 스스로에게 욕을 하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p.s. 딴지스 내부게시판에 올라온 펜더의 푸념을 기사로 올렸음을 밝힌다 - 편집자주

딴지군사부 전문우원
펜더(jagdpant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