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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자용어 사전] <딮 포커스> A to Z

2001.5.12.토요일

딴지 영진공 업자용어사전 편찬위



나가요 언니들은 말한다.


"어제 손님 하나가 술 마실 땐 피아노 치고, 계산할 땐 눈탱이 친다고 지랄을 해서 아주 혼났어, 얘... 완전 진상났잖아."


목수 아저씨들은 말한다.


"야, 아시바 없냐? 포바이포 좀 갖고와서 기래빠시 좀 대라"


양아들은 말한다.


"어제 벙개해서 만난 냄비하고 비됴방에 갔는데 반콩이더라구. 걔만 닦았어도 한 접시 되는건데..."


영화 평자들은 말한다.


"장르의 컨밴션을 거부하고, 대상에 대한 절시증을 자제하는 모습은 마치 자바티니아포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위의 스피크를 보면서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게다. 그렇다. 바로 업자용어의 심오한 전문적 깊이가 좌뇌를 이단 옆차기로 팍팍 후려치는 스피크들이다.


그런데 각 방면의 업자들끼리 이루어지는 코뮤니케이숑이라면 모르겠지만 업자 아닌 일반인들과의 스피크에서도 전문업자용어가 이처럼 남발된다면, 오소독소한 다이알로그에 지대한 프로블롬을 유발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엄따.


실제 본 공사 민원접수처에도 "미쟝센이 뭔가요? 염색약하고 영화하고 뭔 상관이죠?", "<어둠 속의 댄서>가 고구마 구워 영화라는데 왜 고구마를 굽나요?" 등등등 이러한 업자용어에 관한 민원이 수시로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중에서는 민원을 가장하여 레포트를 해결해 보려는 음흉한 내용, 예를 들면 "장르 영화에 나타나는 자본과 경제학의 이데올로기"를 알려달라는 무시무시한 내용들도 있지만 대개는 영화업자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에 대한 민원이 많음이다.


이처럼 일반인 말씀이 업자와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할 쌔 이를 어엿비 여긴 본 공사는 업자용어 사전을 편찬하였도다. 기쁘지?


하여 그 첫번째 시간은 낄 때 안 낄 때 가리지 않고 낑궈드는 업자용어, <딥 포커스 (Deep Focus)>다. 다소 아카데믹하더라도 겁먹지들 말고 잘 쫓아오기 바란다.
 






 STEP 1


<딥 포커스 (Deep Focus)>는 말 그대로 깊은 촛점이다. 그런데 깊은 촛점이라니? 업자용어를 쓰기가 미안시러웠던지 가끔 딮 포커스 대신 깊은 촛점이라는 번역된 용어를 사용하는 업자들이 더러 있기도 하지만 그 역시 아리송하기는 매한가지다.














[사진 A]


[사진 B]


크게 보고픈 자덜은 사진을 가볍게 한 차례 압박해주시라


위의 사진 두 장을 보자. [사진 A]의 경우는 개는 잘 보이는데 소는 흐릿하게 안 보인다. [사진 B]의 경우는 개나 소나 몽땅 다 또렷하게 잘 보인다.


그런데 개는 카메라로부터 2m 떨어져 있고, 개와 말과 소의 간격은 각각 2m 씩이다. 따라서 개와 소의 간격은 총 4m이며 카메라로부터 소까지의 거리는 6m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진 A]는 카메라로부터 2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촛점이 맞은 경우고, [사진 B]는 2m 정도 거리부터 6m 거리까지 모두 촛점이 맞은 경우인 거다. 그래서 [사진 B]의 경우가 그 촛점이 맞는 범위가 훨씬 넓다.


따라서 그 촛점이 맞는 폭이 넓은 그림, 즉 [사진 B]와 같은 경우의 그림을 업자용어로 딮 포커스라고 한다.
 






 STEP 2


그런데 거리에 의해 촛점이 맞고 안 맞고 하는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카메라에는 렌즈라는 게 있다. 이 렌즈는 렌즈의 중심에서 카메라 몸통 속에 낑궈져 있는 필름의 표면까지의 거리를 가르키는 수치인 촛점거리에 의해 광각, 표준, 망원 렌즈 등으로 나뉜다.


35mm 렌즈, 50mm 렌즈 할 때 35mm, 50mm 하는 이 수치가 바로 그거다.


그런데 이 촛점거리가 짧은 렌즈일수록 사진에 찍히는 시야가 넓고 촛점이 맞는 폭이 깊다. 반대로 촛점거리가 긴 렌즈일수록 시야가 좁고 촛점이 맞는 폭이 얕다.









렌즈의 촛점거리에 따라 촛점이 맞는 폭이 넓거나 좁아진다. 이때 촛점이 맞는 폭을 피사계 심도라고 하는데 피사계 심도의 폭이 넓을수록 딮 포커스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어떤 렌즈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딮 포커스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외에도 조리개를 조일수록, 피사체까지의 거리가 멀수록 이 촛점이 맞는 범위가 깊어지게 된다.


우쨌든 중요한 것은 딮 포커스라는 것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일이 아니고 촬영자의 의도에 따라 딮 포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딮 포커스는 장 르느와르가 최초로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개 <시민 케인>을 들며 오손 웰즈 감독이 시초였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영화 개론서 같은 거 보면 이 딮 포커스가 설명될 때마다 <시민 케인>과 오손 웰즈가 탕수육에 군만두 따라오듯 따라나온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오손 웰즈의 공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 공은 <시민 케인>의 촬영 감독이였던 그랙 톨렌트에게로 돌아가야 되며 그가 촬영한 영화들에서 특징적으로 처음 발견되었다는 거다.


이처럼 촬영 기술 하나에도 원조를 찾고 영화 관련 서적이라면 빠지지 않고 소개들을 해놓으니 뭐 대단뻑적지근한 기술 같다만 그 장비가 발달한 지금에 와서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기술이다. 아래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동 카메라로 암 생각없이 셔터를 누질러 봐라. 그러면 딮 포커스 된다.














그이름도 유명한 <시민케인>의
딮 포커스


그냥 자동카메라로 암 생각없이
찍으니까 만들어진 딮 포커스


크게 보고픈 자덜은 사진을 가볍게 한 차례 압박해주시라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고 그 기술을 써먹는 마인드에 있음이다.
 






 STEP 3


그렇다면 딮 포커스인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 다시 말해 특정 피사체에만 촛점이 맞는 그림과 앞에서부터 뒤까정 에브리 피사체가 몽조리 촛점이 맞는 그림은 뭔 차이가 있는 걸까?















[사진 C]


[사진 D]


앞에 넘은 유오성이다.
알아보겠냐?


보고픈 넘은 다 볼 수 있다.


위의 두 사진을 보자.


[사진 C]는 촛점이 한 넘에게만 맞혀져 있다. 시력이 쌍안경이라고 해도 촛점 안 맞혀져 있는 넘을 관객이 볼 수는 엄따.


[사진 D]는 촛점이 다 맞혀져 있다. 앞에서 썰푼 딮 포커스다 이거다. 이 경우에는 보고픈 넘은 골라서 다 쳐다볼 수가 있다. 보기 싫은 넘은 안 봐도 되고, 보고 싶은 넘은 맘에 드는 넘으로 골라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보는 넘 꼴리는대로 관람이 가능한 것이다


서서히 감덜 잡히는가?


아직까지도 필이 제대로 안 꽂혀 똥꼬 긁적이며 아리송 때리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다른 예를 또 보도록 하자.

















[사진 E]





[사진 F]


[사진 G]


[사진 H]


이 사진에서 감독은, 여럿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각각의 배우를 하나 하나 클로즈 업 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진 E]로만 갈 수도 있는 것을 [사진 F,G,H]로 나누어 놓았다. 그러니까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인물들만 강조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따라서 만약 세 명의 인물이 대사를 치는 상황이라면 일반적으로 대개 전체 구도를 보여주는 컷 하나와 세 명의 인물이 대사를 치는 각각의 컷 세 개로 편집이 될 꺼다.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을 관객이 보게 될 기회는 적어진다. 그만큼 실제 상황이나 공간, 시간들이 잘게 쪼개어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편집이라는 것이 그렇다. 다시 아래 그림들을 유심히 자알 바바라.













[사진 I]


무표정의 대가 기타노 다케시다. 위의 그림들을 쫘악 보니 기타노 다케시가 여자한테 기술 들어가기 일보직전 같다. 연애에 대한 의지가 엿보이지 않는가?













[사진 J]


역시 다케시다. 워떤 시키가 다케시에게 싸가지없이 총을 겨누고 있다. 다케시, 약간 겁먹은 것 같다.













[사진 K]


또한 다케시다. 다케시의 싸랑하는 똘마니가 마빡에 총을 한 방 맞고 피를 흘리고 있다. 다케시의 눈빛이 슬픔에 어려 보인다.


그런데 위의 사진들에서 다케시의 그림은 보시는 바와 같이 다 똑같은 그림이고, 중간에 낑궈진 애덜은 본 우원 꼴린대로 낑궈넣은 거뜰이다.


뭐, 움직이는 활동사진이 아니라 정지된 스틸 이미지다 보니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안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쨌든 옛날 옛날에 쿨레쇼프란 소련 애가 이런 효과를 발견했더랬다. 고걸 그 넘 이름을 따서 쿨레쇼프 효과라고 부른단다.


무표정한 배우의 클로즈 업한 얼굴 다음에 스프가 담긴 그릇의 사진을 편집했더니 그 배우가 배가 고파 보이고, 뛰노는 애덜의 사진을 편집해서 붙였더니 그 배우가 행복해 보이고, 죽은 사람의 관을 편집해서 붙였더니 그 배우가 슬퍼보이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 그림들에서 연애에의 의지가 엿보인다거나 겁먹어 보인다거나 슬퍼 보이는 것 같은 다케시의 감정은 실지로 그런게 아니라 감독이 조뙈로 만들어낸 것이란 거다. 따라서 실제도 아닌 생구라를 마치 실제처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원 모 타임 다시 말해, 이처럼 편집을 하면 실제 현실도 얼마든지 왜곡되고 사발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딮 포커스로 돌아가서 다른 그림을 보자.









[사진 L]


이 장면은 딮 포커스로 촬영되어 전혀 편집하지 않은 채 단 한 컷으로 끝나는 2분짜리 장면이다. 한 컷이 2분짜리면 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긴 장면을 감독은 한 번도 편집하지 않고 한 번에 가는 거다. 맞다. 홍상슈 영화다.


따라서 이 경우에 감독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상황 속에서 연기하는 배우들 그대로 화면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배우들 모두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어 관객이 그들을 보는 데 있어 앞에 앉은 넘을 보든 젤루 뒤에 짱박혀 있는 넘을 보든, 그 관람에 아무런 태클이 없으므로 맘껏 취사선택하여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편집에 의존하는 영화와는 달리 감독이 따로 강조하고 생략하고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러므로 딮 포커스에 의해 편집을 덜 가하는 영화는 인물 하나 하나 집어내어 편집을 가하는 영화하고는 그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딮 포커스는 좀 더 민주적이고 사실적이며 현실에 가깝다는 것이 이 기술을 옹호하는 자덜의 주장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일견 틀린 말은 아님이다.


여러 명이 있는 상황에서 감독이 지 맘에 드는 넘 하나만 골라내어 클로즈 업으로 잡음으로써 감독이 보라는 넘만 일방적으로 봐야 하는 거하고, 관객 꼴리는 대로 왼쪽으로 꼴리면 왼쪽 넘 보고, 오른 쪽으로 꼴리면 오른쪽 넘 보는 거하고의 차이.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강조하는 것과, 상황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니덜 보고 싶은 것 니덜 꼴리는 대로 맘대로 보게 하는 것과의 차이.


그 차이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겠다.


"현실 속에 무엇을 덧붙이는가 보다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드러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딮 포커스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는 것이 그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잠깐!!

편집한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이 왜곡되고, 딮 포커스라고 해서 무조건 현실을 살려내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꼭 짚고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고 그 기술을 써먹는 마인드라는 사실을.

 






 STEP 4


그런데 만약 모든 영화가 이처럼 딮 포커스만을 애지중지 모신다면 그 얼마나 영화가 재미없겠냐? 그래, 안 그래?


그리고 실제로 딮 포커스라는 게 그렇게 민주적이고 사실적이며 편집에 의존하는 영화하고는 다른 효과를 내는 걸까? 그에 대해 다른 주장을 펼치는 얘덜도 있다.


자, 금방 봤던 [사진 L]을 다시 함 봐보자.









[사진 L]


이 그림에서 젤로 먼저 눈에 들어오는 넘이 누구냐? 당연히 크게 보이는 넘, 그래서 눈에 잘 띄는 넘이 젤로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진 오른쪽에 있는 김의성이 말이다. 쪼끄만 것보다는 큰 게 눈에 잘 보이는 건 당연한 거니깐.


그래서 관객들은 가까이 있는 큰 넘들을 먼저 보고 쪼끄만 넘들을 나중에 보게 되어 있다.


어째 이상하지 않냐? 그토록 민주적이라던 딮 포커스에서도 먼저 보는 넘과 나중에 보는 넘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니 말이다. 이건 큰 넘 있는 그림 하나와 작은 넘 있는 그림 하나를 순서대로 편집한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냐?


그 뿐이냐? 영화는 그냥 사진이 아니고 활동 사진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 인물들은 움직일 줄 안다. 그렇다면 화면 안에 같은 크기의 인물이 두 넘이 있는데 한 넘은 지랄발광 오도방정 딴스를 춰대고 있고, 또 다른 한 넘은 복지부동 꼼짝달싹 안 하고 있다면 워떤 넘이 먼저 눈에 들어올까?


이 역시 당근 지랄발광 오도방정 딴스를 춰대고 있는 넘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담에 복지부동하는 넘을 보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화면 안에 움직임이 있을 경우에도 그 보는 순서가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그림을 또 함 봐보자.









[사진 M]


이처럼 같은 크기의 인물이 비슷한 동작을 취하며 같은 조명을 받는 그림에서는 누굴 먼저 보게 될까? 아마 왼쪽에 임창쩡이를 먼저 보게될 거다. 왜냐? 인간은 화면을 볼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한 당연히, 같은 크기의 인물이라면 화면에서 왼쪽에 있는 넘을 먼저 보고 나중에 오른쪽에 있는 넘을 보게끔 되어 있다는 거다.


그뿐이냐. 영화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도 나온다. 그래서 화면 속에서 여러 명의 인물이 있다면 당연히 관객은 그 중에서 소리를 내는 인물, 또는 대사를 치는 인물을 먼저 보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아무리 딮 포커스를 써서 모든 관객이 각자 꼴리는대로 암꺼나 보게끔 만든 화면이라고 해도 관객은 모두 같은 것을 같은 순서로 보게 되는 것이다.


딮 포커스를 통해 모든 관객 각자가 한 화면 중에서 니덜 맘대로 보게끔 한다고 해봤자 실제로 관객은 지덜 맘대로 서로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거의 엇비슷한 것들을 엇비슷한 순서로 보게 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것은 편집을 통해 보는 순서와 볼 대상을 정해서 보여주는 것하고 별 차이가 없는 거 아니겠냐.


따라서 그렇게 민주적이고 사실적이며 관객이 꼴리는 대로 볼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한다는 딮 포커스도 결국 편집을 통해 감독이 자기 맘대로 관객에게 볼 것을 강요하는 영화와 그다지 커다란 차이를 가지지 않게 된다.


물론, 편집을 해서 보는 순서를 감독이 정해주는 영화보다는 덜 노골적이면서 좀 더 순수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딮 포커스 옹호론자들처럼 특정한 형식이나 기술에 대해 최고니, 좀 더 바람직하니 하면서 주디나불대는 일은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이 그 반박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써먹는 마인드인 거다.
 





지금까지 대표적 업자용어 중에 하나인 딮 포커스를 벗겨보고 뒤집어보고 엎어보고 제껴봤다.


딮 포커스의 정의와 기원, 그리고 딮 포커스가 가능케 하는 원근감과 그에 따른 사실성, 그에 대한 반박론자들의 주장들을 마스터했으리라 믿는다. 하여 이제 딮 포커스 또는 깊은 촛점 등의 전문업자용어와 맞짱을 떠야하는 상황에 맞부딪히더라도 일말의 두려움 없을 깡다구를 취득했다 사료하는 바다.


이 깡다구를 바탕으로 업자들과의 커뮤니케이숑에서 좌절하지 말고 다음 시간까지 아무쪼록 자율학습들 하길 바란다.


그럼 이만이다.



 

딴지 영진공
업자용어사전 편찬우원
철구
(chulgoo@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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